나홀로목사

마태복음33.

배가번드 2018. 11. 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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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성령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나 홀로목사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이런 인사말이 이상하다 여기시는지요?

요즘 나 홀로목사의 하루는 성경으로 시작해서 성경으로 끝을 맺다시피 하다 보니 이렇게 인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들여다볼수록 성령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에 성령을 머리위에 얹고 산다했습니다.

성령에 대해 알지 못하고서는 영생을 얻지 못하기에 성령의 실체를 아는 일이야말로 중요하다 할 수 있을 겁니다.

불필요한 말은 줄이고 성경 안에서 성령을 만나기 위해 곧바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24:1)

And Jesus went out, and departed from the temple: and his disciples came to him for to shew him the buildings of the temple.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24:2)

And Jesus said unto them, See ye not all these things? verily I say unto you, There shall not be left here one stone upon another, that shall not be thrown down.

 

지금 이 말씀은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성전과 제자들이 생각하는 성전의 차이점을 알게 하기 위해 기록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나왔다는 말은 높은 천국에서 내려온 영혼을 나타내보이고자 한 것으로 육신을 성전으로 보고 성령이 밖으로 드러난 분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며 제자들이 성전 건물을 가리켜 보이려했다는 것은 그들의 인식에서는 성전이 내면에 있지 않고 외형적인데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겁니다.

다음 구절을 보면 나 홀로목사의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니 함께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24:3)

And as he sat upon the mount of Olives, the disciples came unto him privately, saying, Tell us, when shall these things be? and what shall be the sign of thy coming, and of the end of the world?

질문내용을 가만히 분석해보면 조금 이상한 점이 보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있는데 불구하고 주의 임하심(the sign of thy coming)과 세상 끝(the end of the world)에는 어떤 징조가 있느냐고 물었다는 것은 뭔가 다른 뜻이 있음을 암시해줍니다.

따라서 2절에서 말씀하신 성전의 무너짐은 우리의 육신이 무너지는 것을 말하며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는 말은 육적인 에고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이때가 되어야 비로소 주(성령)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3절의 내용은 성령이 임하게 되려면 어떤 징조들이 있게 되는가를 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들어볼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24:4)

And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them, Take heed that no man deceive you.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24:5)

For many shall come in my name, saying, I am Christ; and shall deceive many.

이 말씀은 구도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첫 단계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적(靈的) 스승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린거지요.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온다는 말씀은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 깨달음을 얻은 자)를 말합니다.

이러할 때 사람의 미혹을 받지 말라 한 것은 사람의 육신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 내면에 있는 성령에 초점을 맞춰야한다는 말입니다.

누군가 자신이 그리스도((재림예수)라 하더라도 그 육신에 매이거나 숭배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다시 말해서 존경은 하되 육신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첫발을 디디고 나면 그때부터 고난의 날들이 시작됩니다.

과연 어떤 고난들이 구도자의 앞날에 펼쳐질까요?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24:6)

And ye shall hear of wars and rumours of wars: see that ye be not troubled: for all these things must come to pass, but the end is not yet.

난리와 난리라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전쟁을 뜻합니다.

구도의 길을 걷기전의 육적이고 물질적인 사고방식과 영적인 삶을 살기위해 선택한 신의식이 내면에서 투쟁을 벌인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어떤 전쟁들이 일어날지 볼까요?

민족민족,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지진이 있으리니(24:7)

For nation shall rise against nation, and kingdom against kingdom: and there shall be famines, and pestilences, and earthquakes, in divers places.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24:8)

All these are the beginning of sorrows.

해석에 앞서 번역의 문제점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민족과 나라에 해당되는 단어 nationkingdom을 국가와 천국으로 바꿔야 하리라 여겨집니다.

왜 이렇게 해야 되는가 하면 kingdom은 구어로 쓰일 때에는 내세(來世), 천국, 미래, 죽음 등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국가(國家)가 하나의 이념에 동질성을 갖춘 집단체임을 감안할 때 이념과 이념이 부딪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뜻하며 천국이 천국에 대적한다는 말은 종교 간의 분쟁을 뜻하는 것이니 내적으로 종교의 벽이 허물어져야함을 말해줍니다.

이모든 것은 내적인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나타내지요.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조용하던 삶에 풍파가 일어나게 되는지라 기근과 지진이 일어난다고 표현했습니다.

영적인 삶의 시작과 동시에 많은 재난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또한 시작에 불과하다 했으니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일어날는지요.

성경 속으로 들어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24:9)

Then shall they deliver you up to be afflicted, and shall kill you: and ye shall be hated of all nations for my name's sake.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24:10)

And then shall many be offended, and shall betray one another, and shall hate one another.

사람들이 환난에 넘겨준다는 말은 비유의 말씀으로 사람들로부터 고통(afflicted)을 받게 된다는 말인데 이렇게 되는 이유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육신의 자아가 죽어야하기 때문(너희를 죽이리니)이라는 말입니다.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는다 한 것은 성령과 하나 되는 영적인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육적이고 세상적인 것(모든 민족)들로부터 멀어지게(미움을 받게)된다는 겁니다.

10절의 내용은 9절의 연장으로 세상 적이고 육적인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불쾌하게 생각하여(many be offended) 서로가 등을 돌리게(betray)되고 미워하게(hate)된다는 거지요.

영적인 길을 걷게 되면 세상적인 기준과는 별개의 인식과 생활을 하게 됨으로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며 서로가 함께 생활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러한 상태가 되어 고립이 되다시피 하고 나면 혼자만의 생활을 고집하게 되며 내적인 세계(명상, 기도)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도 어려움은 다가온다 했으니 예수님 말씀에 귀 기울여 보겠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24:11)

And many false prophets shall rise, and shall deceive many.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사랑이 식어지리라(24:12)

And because iniquity shall abound, the love of many shall wax cold.

11절에서 말하고 있는 거짓 선지자와 4절에서 말씀하신 선지자는 다릅니다.

앞서 말한 선지자는 육신을 가진 영적 스승을 말하는 것이며 11절의 거짓선지자는 명상이나 깊은 기도 속에서 만나는 비전(vision)상의 선지자를 말합니다.

이 말씀은 어디까지나 내면에서 일어나는 환시에 대해 경계하라는 말씀인데 예수님역시 이러한 내면의 환시에 대한 시험을 거치셨지요.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볼까요?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가사(4:1)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5편에서 충분히 했으므로 더 이상 하지 않겠지만 영생을 얻기 위해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도중에는 이와 같은 시험은 반드시 겪어야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한 가지 의문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깊은 명상이나 기도를 통해 내적인 체험이나 환시를 경험하게 될 터인데 그러한 환시 속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이나 선지자들을 무조건 거부한다면 영의 세계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하는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수행공덕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평소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하고 물질을 귀하게 여기기보다 영적 삶을 추구했다고 한다면 올바른 체험이 주어질 것이고 평상시 욕심에 젖어 이기적인 생활을 했을 경우 반드시 마(사탄)가침범하게 되어있지요.

예수님 같은 경우에도 마귀가 시험을 했지만 영의 세계를 더욱 귀하게 여겼기에 세상권세를 마다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평소에 물질을 귀하게 여길 경우 반드시 시험에 빠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주변을 살펴보면 많은 목회자들이 물질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도중하차한경우를

볼 수 있지요.

가족들끼리 재산 다툼이 벌어져 법정에 서게 되는 일들이 이미 지옥 속에 빠져있음이 아니

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사람들이 아무리 영적인 체험이 좋다한들 결국 물질적인 가치관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스스로 밝히는 꼴이니 영생과는 거리가 멀다하겠습니다.

12절은 비유의 말씀으로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부정성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말하며 세상에 대한 애착이 없어지는 것을 사랑이 식어짐(the love of many shall wax cold)에 비유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예수님과 같은 영적스승을 따라 수행하게 되면 반드시 넘어야하는 일이기도한데 스승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나게 되며 스승을 불신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 홀로목사의 이 말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분들은 다음구절을 보시기바랍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4:13)

But he that shall endure unto the end, the same shall be saved.

이 내용은 12절의 연장(延長)되는 말씀으로 예수님(영적스승)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불신의 마음이 일어나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직도 나 홀로목사의 말이 믿기지 않는 분들은 3절에서 제자들이 질문한 내용을 되새겨보기 바랍니다.

분명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 대해 물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다음구절의 해석이 가능하게 됩니다.

함께 보실까요?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14)

And this gospel of the kingdom shall be preached in all the world for a witness unto all nations; and then shall the end come.

   

만약 액면 그대로 일 것 같으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천국복음이 전파되어야 세상 끝이 오게 되고 그때 가서 주가 임하게 된다는 등식이 성립되게 됩니다.

이렇게 될 경우 예수이후로 2천년동안 아무도 구원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 되며 저세상 어딘가에서 세상 끝이 오기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지요.

따라서 이 말씀은 어디까지나 비유의 말씀으로 해석되어져야합니다.

온 세상이란 우리 몸(몸은 소우주)을 말하며 모든 민족(all nations)이란 우리 몸 안에 새겨진 인식(유전자정보)들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목회자들이 이 내용을 이스라엘민족이 당해야할 고난과 수난을 예언한 거라 가르치고 있는데 사실을 말하자면 전혀 근거 없는 말입니다.

이 같은 나 홀로목사의 말을 증명해줄 구절이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보시죠?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24:15)

When ye therefore shall see the abomination of desolation, spoken of by Daniel the prophet, stand in the holy place, (whoso readeth, let him understand:)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다니엘서를 인용한 것이니 먼저 보고난 후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9:23)

At the beginning of thy supplications the commandment came forth, and I am come to shew thee; for thou art greatly beloved: therefore understand the matter, and consider the vision.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9:24)

Seventy weeks are determined upon thy people and upon thy holy city, to finish the transgression, and to make an end of sins, and to make reconciliation for iniquity, and to bring in everlasting righteousness, and to seal up the vision and prophecy, and to anoint the most Holy.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9:25)

Know therefore and understand, that from the going forth of the commandment to restore and to build Jerusalem unto the Messiah the Prince shall be seven weeks, and threescore and two weeks: the street shall be built again, and the wall, even in troublous times.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9:26)

And after threescore and two weeks shall Messiah be cut off, but not for himself: and the people of the prince that shall come shall destroy the city and the sanctuary; and the end thereof shall be with a flood, and unto the end of the war desolations are determined.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9:27)

And he shall confirm the covenant with many for one week: and in the midst of the week he shall cause the sacrifice and the oblation to cease, and for the overspreading of abominations he shall make it desolate, even until the consummation, and that determined shall be poured upon the desolate.

예수님께서 인용하신구절은 마지막 27절인데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앞 구절까지 한꺼번에 올렸습니다.

보시다시피 다니엘서를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해하기가 무척어렵지요.

그래서 마태복음 15절의 마지막부분에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whoso readeth, let him understand:)하고 토를 달아놓았습니다.

그만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말입니다.

알고 보면 이 내용은 다니엘이 깨달음(성령과 하나 됨, 그리스도인식에 오름)을 얻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인데 시간관계상 간략하게만 올렸습니다.

23절을 보시면 천사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러 온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이미 하나님은 응답을 주셨다는 말씀이며 기도하는 기한을 70주로 정해놓았음을 24절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허물이 그치며 죄악이 용서되고 영원한 의가 드러난다는 말은 인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뜻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한다는 말은 뜻한 바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함이 없이 한다는 말입니다.

언젠가 성령과 하나 된 상태를 설명했는데 다니엘 역시 그러한 경지에 오르게 되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25절은 말해주고 있지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commandment to restore and to build Jerusalem) 떨어지고 69주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기름부음을 받은 자(구세주),곧 왕(the Messiah the Prince shall )이 일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7주와 62주라고 (be seven weeks, and threescore and two weeks) 나누어서 말해놓은 이유는 기름부음(깨달음)을 받는 기한이 짧게는 7주에서 길게는 69(7+62)가 걸린다는 말입니다.

그 기간 동안에도 많은 어려움이(in troublous times) 있다고 했는데 몸 안에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예루살렘이 중건되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26절은 그야말로 중요한 내용입니다.

예순 두이레 후에 기름부음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진다는 의미는 다니엘의 영혼을 뜻합니다.

여기에서 62주는 25절에서 말한 7주와 62주후라는 부분에서 뒷부분의 62주를 이어받은 말입니다.

25절과 마찬가지의 내용으로 7~69주 동안 기름부음 받은 자가 일어나는 동시에 끊어진다는 말이지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는 다니엘의 영혼인데 그 영혼이 깨어남(기름부음)과 동시에 없어진다 했으니 무슨 뜻인가 할 겁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이어지는 내용 중에 있습니다.

장차 왕의 백성이 와서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린다 한 것이 그 해답입니다.

왕의 백성이란 인자(the Son of man)를 뜻하며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는 것은 영육이 하나 되는 과정을 묘사한 겁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자신의 내면에서 성령을 깨닫게 되는 순간 성령과 육신이 하나가 되는지라 이렇게 표현한 거지요.

그의 마지막이 홍수에 휩쓸림 같다는 말은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은 일반인들과 다름없이 인과의 적용을 받고 살아가게 되겠지만 죽음에 이르러서는 육신은 완전히 버려지고 영혼만 남게 된다는 말입니다.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다는 말이 바로 이러한 상태를 말합니다.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육신을 입고 있는지라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아래 놓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죽음)에 이르러서는 육신을 비롯하여 모든 육적인 인식들은 한순간에 사라지고(홍수에 쓸려감) 영혼은 영생의 세계로 들어 올림을 받게 됩니다.

27절을 보면 보다 상세하게 기록되고 있는데 한 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9:27)

And he shall confirm the covenant with many for one week: and in the midst of the week he shall cause the sacrifice and the oblation to cease, and for the overspreading of abominations he shall make it desolate, even until the consummation, and that determined shall be poured upon the desolate.

He will confirm a covenant with many for one `seven.' In the middle of the `seven' he will put an end to sacrifice and offering. And on a wing of the temple he will set up an abomination that causes desolation, until the end that is decreed is poured out on him."

영역 본을 두 개올린 것은 서로 비교분석하기 위해서인데 한글성경과 함께 올린 것은 KJV 이고 아래쪽이 NIV입니다.

영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은 이해석이 얼마나 엉터리라는 것을 알 것이며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영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글성경과 가장 근접한 것은 아래쪽 NIV라고 할 수 있는데 이조차도 정확하다 할 수는 없습니다.

앞부분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는데 까지는 두성경모두가 비슷하게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는데 후반부에 가서는 의미가 달라지게 번역해놓았습니다.

먼저 KJV를 살펴보면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라는 부분은 (for the overspreading of abominations he shall make it desolate)가증함(혐오스러움)으로 뒤덮인 것을 그가 황폐하게 만든다고 해야 맞습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왜 이렇게 하는지 알 수가 있지요.

완성되어지는 날까지 (even until the consummation) 가증스러움을 황폐하게 만드는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했으며 이 같은 일이 정해져있다고(and that determined shall be poured upon the desolate) 했습니다.

이 내용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면 육신에 각인되어있는 인식(유전자정보)을 씻어내는 일을 죽는 날까지 지속적으로 해나간다는 말이며 이러한 과정역시 예정되어있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NIV쪽을 살펴볼까요?

전반부는 마찬가지며 후반부에 가서 완전히 달라지는데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라 했지만 (And on a wing of the temple he will set up an abomination that causes desolation) 직역해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 됩니다.

포악하다는 말도 없을 뿐 아니라 그가 성전의 날개위에 세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가 누구를 세운다는 말일까요?

그는 다니엘의 영혼을 말하며 황폐해질 가증스러운 것을 성전의 날개위에 세운다는 말이지요.

가증스러운 것은 다니엘의 육신을 말하는 것이니 그가 예정된 끝날(죽음)까지 황폐해지는 일이 계속된다는 겁니다.

정리를 해보면 KJV의 내용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이모든 일들이 다니엘이 기름부음을 받는 과정과 받고난 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기록한 것입니다.

물론 이 같은 일은 다니엘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며 기름부음을 받는 이들이 공유하게 될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27절 전반부에서 사람들과 한이레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는다는 말을 했는데 이것은 영적스승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해주는 스승의 역할을 할 거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한이레(7)는 천지창조를 하신 하나님의 완전함을 나타내보이기 위함이며 다니엘이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말입니다.

한이레의 절반을 숫자로 보면 4가 되는데 앞의 3과 뒤의 3 중간에 4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앞의 3은 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원형 계를 가리키며 뒤에 3은 지금의 세상을 나타내는 물질계의 숫자 6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영(앞의3)과 육(뒤의3)이 하나님 안에서(7) 하나로 연결(4)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거라 한 것은 육신의 다니엘이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보이기 위함인데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이 제사와 예물을 바칠 필요가 없지요.

또한 이 말씀은 영적으로 스승의 자리에 오른 이가 사람들로부터 숭배를 받거나 예물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한 말씀은 이미 예수님께서 하셨지요.

한 번 더 되새기는 의미에서 다시 보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23:11)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23:12)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라도 사람들로부터 섬김을 받고자한다면 인자가 아니라는 말이니 영적스승의 자격이 없다는 말입니다.

영적 스승이라 하니 특별한 사람인 것같이 들리겠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오늘날 목회(牧會)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이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과거 이스라엘로 말하자면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영적체험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목회의 일을 하고 있으니 영적스승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더러 모세의 자리에 올랐다 나무랐던 겁니다.

적어도 영적스승이나 목회자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말을 흘려들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지금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할 줄 알아야합니다.

다니엘서에 집중하다보니 이야기가 옆길로 샌 것 같은데 다시 궤도수정을 하겠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다니엘은 육신으로서 거룩한 곳에 올라섰으니 하나님과 하나 된 영광을 얻었습니다.

이 내용을 확인하려면 마태복음으로 돌아가 보면 정확하게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stand in the holy place) 했는데 이렇게 말한 이유가 바로 다니엘서에 기록한 내용 때문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니엘서에 기록된 한글성경은 마태복음의 예수님말씀을 토대로 임의로 해석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포악이나 진노라는 단어는 들어있지도 않은 것을 성경학자들이 자신들의 인식대로 해석했기에 그러한 결과를 낳은 겁니다.

이미 나 홀로목사가 출범을 알리는 시간에 말씀드렸다시피 성경을 보는 인식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했으니 그분들이 무조건 잘못했다기보다 나 홀로목사의 해석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하겠습니다.

이쯤에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성경을 정말로 믿습니까?

많은 분들이 그렇다고 하시는군요.

그렇다면 한 가지 더 물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나 홀로목사의 말을 들어본 결과 여러분이 알고 있던 성경과 동일합니까?

아니면 많이 다릅니까?

만약 동일하다고하면 그분은 거짓말을 하거나 이곳에 올 필요가 없는 분이며 많이 다르다고한다면 나 홀로목사의 성경해석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 일겁니다.

왜 이렇게 말씀드리는가하면 모든 종교의 근간(根幹)은 믿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의 성경해석을 보면 모든 중심이 예수에게 있으며 예수를 신격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구약의 말씀조차 예수가 말한 것을 먼저 대비한 다음에 해석을 하며 심지어 예수가 인용하지 않은 기록들은 성경으로 채택 받지도 못합니다.

이러한 성경외의 기록들은 외경으로 분류되어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요.

가톨릭에서는 이러한 외경들도 성경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기독교도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결국 오늘날 우리들이 보고 있는 성경의 구약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담긴 신약에 내용이 인용 되었나 그렇지 않은가하는 것으로 인해 그 존재여부가 결정되어 진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을 믿는 이들로서 당연하다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될 경우 우상숭배의 자리에서 영원히 내려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신 예수님처럼 우리역시 하나님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할 장벽과도 같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함께 살펴본 다니엘서만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인용하지 않았더라면 여러분이나 나 홀로목사는 접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여러분은 누군가 이러한 내용을 말했더라면 귀신들린 자의 넋두리정도로 치부했겠지요.

아마 아직도 나 홀로목사의 성경해석에 불신의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태산 같은 진리의 말씀도 믿음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성경에는 수없이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들 모두가 환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거나 대천사들을 만났는데 이러한 일들조차 예수님의 말씀과 부합하지 않는다싶으면 자신들 생각대로 해석을 하고 기록을 하지요.

이것이 오늘날 크리스천들의 현주소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사람들과 조금도 틀린바가 없다는 것이 나 홀로목사의 개인생각인데 여러분생각은 어떠신지요.

영적인 체험이 없이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지라 그렇게 해석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적어도 이곳을 방문하시는 여러분들은 꿈속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오늘의 시간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웃으면

내가 웃는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누군가에게 나타난 신을

내가 믿을 수 있다면

내가 신이 되는 것이라네.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다 말은 하지만

본 사람은 드물며

보았다는 사람을 믿는 이도 드물도다.

대저(大抵)사람들은

부화뇌동(附和雷同)하기 마련이어서

많은 이들이 가는 길을

진리의 길로 알고 따라가지만

눈먼 장님을 따라가면

그 길은 무저갱(無底坑)일지니

지혜안(智慧眼)을 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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