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목사

마태복음35.

배가번드 2019. 1. 2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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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된 나 홀로목사입니다.

지난시간 나 홀로목사는 누가복음의 문제점에 대해 말을 했는데 사실은 문제점을 지적했다기보다 성경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습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마태오는 12사도 중 한사람으로 예수님 생존당시의 제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온갖 일들을 겪었으며 특별한 가르침 또한 받았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 차례 보았듯이 그들만 아는 어떤 가르침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고 있었는데 마태복음이 중요한 이유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이러한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12제자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거지요.

이미 우리들은 마태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해주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았으며 자신이 숭배 받고자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또 하나 알아야할 점은 아무리 예수님께서 거룩하고 영광된 영생을 얻게 해주려 노력했어도 사람들의 인식이 모두 높지는 않았으며 영생을 얻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 까닭으로 예수님은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했지요.

인식의 여러 단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성경역시 여러 가지 비유의 말로서 속 깊은 내용은 가려놓았습니다.

지금껏 나 홀로목사가 했던 성경해석은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보이지 않는 내용들이었으며 성경속의 여러 선지자들이 비유로서 감추어두었던 내용들을 밖으로 드러냈던 겁니다.

만약 누군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말이 되지 않는다하거나 진실 되지 못하다 여긴다면 그분이 한쪽 면만을 보아서라고 생각합니다.

외형적인 면만을 보고 담겨진 뜻을 헤아리는 데는 소홀(疏忽)한 탓이었다는 거지요.

이런 의미로 예수님께서 하신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뜻이 한곳에 한꺼번에 들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각자의 인식정도에서 받아들인 탓에 각 복음서마다 약간씩의 차이가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나 홀로목사는 영생을 얻는데 초점을 맞춘 상태로 성경을 보고 있으며 성령과 하나 되신 예수님의 인식에서 보이는 성경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도 변함없이 성경 속에서 홀로 거룩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보겠습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25:1)

Then shall the kingdom of heaven be likened unto ten virgins, which took their lamps, and went forth to meet the bridegroom.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25:2)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25:3)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25:4)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25:5)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25:6)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25:7)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25:8)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25:9)

이 내용 역시 24장에 이어지는 깨달음(기름부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절에서 천국(영생)에 이르는 일을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는 일에 비유했는데 이는 영육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우리내면(성전)에 깊숙이 들어앉은 성령이 밖으로 드러남(하늘에서 내려옴)을 결혼에 비유한 거지요.

그리고 2절에서 4절까지의 내용은 슬기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점을 기름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구분 지었는데 이는 빛(소리)을 볼 수 있는 자와 보지 못하는 자를 말해줍니다.

10처녀 모두가 등을 들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모두에게 등()이 있다는 말이며 그중에서 다섯이 기름을 준비했다는 말은 영적인 스승(기름부음을 받은 자, 깨달음을 얻은 자)과 인연을 맺어놓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5절에서의 신랑이란 진아(眞我)의 모습인 성령을 말하지요.

우리들이 살아있는 동안 영적인 스승과 인연을 맺고(입문, 세례) 구도의 길을 걸어가더라도 그 당장 성령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신랑이 더디 온다는데 비유했습니다.

밤중에 신랑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 6절의 말씀은 불시에 성령이 임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죽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죽게 되면 모든 사람이 영의 세계로 올라가게 되는지라 7절에서 모두가 등을 준비했다 했지요.

8절과 9절에서 기름을 나누어주지 않았다는 말은 입문이나 세례를 누군가 대신 받아줄 수 없다는 말이며 파는 자에게 가서 기름을 사라고 말한 것은 기름부음을 받은 이에게 가서 입문을 하거나 세례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나 홀로목사의 말이 이해될 것 같으니 함께 보시죠.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25:10)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25:11)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25:12)

그들이 사러갔다고 했는데 이 말은 또다시 윤회를 하여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해줍니다.

준비를 하지 못한 처녀들, 즉 기름부음을 받은 이와 인연을 맺지 못한 사람들이 윤회를 하는 동안 미리 준비를 한 처녀들이 혼인잔치에 들어갔다는 말은 성령(신랑)과 하나 되어 영생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왔다는 말은 세상에 내려(기름을 사러, 기름부음을 받은 이와 인연을 맺으러)갔다가 다시 왔다는 말이며 주여 라고 말한 것은 신랑(성령)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너희를 알지 못한다 했는데 이는 그들이 세상에 내려가서 진정한 영적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기름을 얻지 못했다는 말이지요.

이 말씀을 보게 되면 살아있는 동안 예수님과 같은 참된 스승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들이 기름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25:13)

Watch therefore, for ye know neither the day nor the hour wherein the Son of man cometh.

깨어있으라는 말로 쓰인 Watch는 주시하다 지켜보다 살피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신 것을 볼 때 이는 분명 특별한 가르침을 전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집중상태를 유지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니 언제 빛(소리)을 보게 될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영역본 후반부를 보면 인자가 오는 때와 날을 알 수 없다고 말했음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인자는 영육이 하나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성령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해서 열 처녀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마쳤는데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언젠가 어떤 교회 목사님께서 13절 내용을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을 말씀하신 거라 하셨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가 있지요.

예수님께서 만약 성령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재림하는 일을 말한 것이라 한다면 이미 예수님과 함께 있는데 뭣 하러 인자가 다시 오는 때를 기다리라고 했겠습니까?

벌써 몇 차례나 이와 같은 말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육신으로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야말로 웃기는 일입니다.

나 홀로목사가 단연코 말하건대 그러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이생을 사는 동안 성령을 만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만약 그분들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재림해야만 영생을 얻는 것으로 여기게 되면 예수님 사후로 2천년동안 아무도 영생에 이르지 못했다는 결론을 얻게 됨으로 이치에 맞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왜곡되게 받아들이고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부디 지금부터라도 미망의 세계에서 깨어나길 바라며 또 다른 천국 가는 길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겠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25:14)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s a man travelling into a far country, who called his own servants, and delivered unto them his goods.

   

참 재미있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하나님이며 그 종이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천국에 가기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위해 이러한 비유를 한 것인데 정말 어마어마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눈에도 보이시는지요.

예수님은 지금 우리인간들이 하나님의 품성을 그대로 간직한 신과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종들을 불러 자기소유를 맡겼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인간들이 신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나 홀로목사의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지셨나요?

그렇다면 조금은 긴장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만큼 책임 또한 막중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임이 주어지게 되는지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해보겠습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25:15)

각 사람들마다 역량에 따라 책임이 주어졌다는 것을 금전으로 비유했습니다.

사실 달란트라는 말자체가 재능과 재주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과 재주가 주어져있다는 말이며 태어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각자의 재능을 주고 떠났다는 말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품성(신성, 성령)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잊고서 살고 있다는 것을 주인이 떠난 것으로 표현했지요.

우리들이 알고 보면 하나님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신적인 존재들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재능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들이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겁니다.

다시 한 번 더 성경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25:16)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25:17)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25:18)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25:19)

After a long time the lord of those servants cometh, and reckoneth with them.

여기에서 장사를 했다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는 것을 말하겠지요.

오랜 후에 종들의 주인이 돌아온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돌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들이 죽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산한다(reckoneth with them) 했습니다.

이들의 행위에 따라 어떠한 결말이 주어지는지 무척 궁금해지는군요.

함께 성경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25:20)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25:21)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25:22)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25:23)

His lord said unto him,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thou hast been faithful over a few things, I will make thee ruler over many things: enter thou into the joy of thy lord.

이 내용을 살펴보니 지난번 보았던 포도원의 비유가 생각납니다.

더 많이 일한 사람이나 적게 일한 사람을 차별주지 않고 공평하게 한 데나리온씩 주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을 똑같이 칭찬하고 상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세상의 법칙과는 무관하게 노력만 보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더 많은 것을 주리라는 말씀은 더욱 많은 책임을 주신다는 말과도 같으며 하나님의 전권(全權)을 더 많이 위임하신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주인의 즐거움에 함께 하게 될 것이라(enter thou into the joy of thy lord)했지요.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영생을 뜻합니다.

맡은바 책임을 다한 종에게는 이렇게 크나큰 상이 주어졌지만 그렇지 못한 이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요.

확인해보겠습니다.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25:24)

Then he which had received the one talent came and said, Lord, I knew thee that thou art an hard man, reaping where thou hast not sown, and gathering where thou hast not strawed: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25:25)

먼저 24절을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에 대해 오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이 심지 않고도 거둘 수 있고 흩어지지 않은 것도 모을 수 있다 여기고 있었지요.

이 말은 일반적으로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굳은 사람으로 쓰인 단어 hard는 강하다는 뜻이 있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전지전능하신분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거지요.

그래서 종이25절에서 말하기를 두려워했다고 했으며 달란트를 땅에다 묻어놓았다고 했던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니 땅에 묻어놓아도 얼마든지 불릴 수 있다고 믿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내용은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능력이 전지전능해서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다면 땅에 묻어놓아도 불릴 수 있어야 할 것인데 그저 본전만 했지 않느냐한 거지요.

다음구절을 보면 이 같은 나 홀로목사의 말에 신빙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25:26)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25:27)

주인(하나님)이 불같이 화를 내며 말하길 네가 정말 나를 전지전능하다는 것을 생각했더라면 달란트를 땅에다 묻지 않고 취리하는 자들에게 맡겨서 원금과 이자를 받게 했을 거라 했습니다.

취리하는 자들이란 환전상(the exchangers)을 말하지요.

예수님당시에는 돈을 바꾸어주거나 빌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날로 보자면 암달러상이나 은행에 해당한다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비유하신 것은 한 달란트 받은 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했다고 말은 했으나 속 깊은 마음으로는 시험을 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고 무소 부재함을 안다고 한다면 환전상들조차도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달란트를 맡기면 될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한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런 까닭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25:28)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25:29)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25:30)

And cast ye the unprofitable servant into outer darkness: there sha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전권이 필요 없으니 믿음을 가진 이에게 전권을 더해 주라는 말입니다.

있는 자가 풍족하게 된다는 말은 믿음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전권을 더욱 많이 위임 받을 것이라는 말이며 없는 자가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는 말은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힘이 소용없다는 것을 말해주지요.

30절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성령(, 소리)과 멀어지게 되며 무저갱(outer darkness)에 빠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까지가 달란트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아주 깊은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생각할 때 하나님은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고 편재하시는 분이라 여기고 있는데 그 말씀의 진정한 뜻이 무엇이라는 것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품성을 그대로 간직한 존재들로서 각자가 맡은바 일을 재능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무소부재의 일부분인 동시에 전지전능함의 일부분이며 편재하는 한곳이라는 말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하나님과 우리는 언제나 둘이 될 것이며 성령과 하나 되는 일은 영원히 어렵게 됩니다.

시간관계상 이 내용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들을 모두 말할 수는 없지만 보면 볼수록 속 깊은 내용들이 줄줄이 담겨져 있습니다.

각자가 그 의미를 살펴보시라 권유하며 예수님의 다음말씀에 집중해보겠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25:31)

When the Son of man shall come in his glory, and all the holy angels with him, then shall he sit upon the throne of his glory:

사람의 아들(인자)이 자기내면에서 성령을 드러내어 하나님과 하나 됨의 영생을 얻었으니 거룩한 천사들(all the holy angels)과 함께 성전에 올라 하나님의 자리(sit upon the throne of his glory)에 앉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사람의 아들인 우리들이 하나님과 하나 됨의 거룩한 보좌에 앉을 수 있다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며 깨닫는다는 것은 자신 안에 성령이 있음을 아는 것이니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요.

성령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과 하나 된다 했으니 그에게 주어지는 권한은 어떤 걸까요?

다음구절에 해답이 있으니 보시죠.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25:32)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25:33)

언젠가 성경을 통해 보았듯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이스라엘백성들을 심판하리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와 마찬가지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왜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한다했을까요?

분명 양과 염소는 같은 소과에 속한 동물들인데 성질은 많이 다릅니다.

가축을 키워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염소는 성질이 급하고 야생성이 강합니다.

반면에 양은 순한 동물의 대명사로 통하지요.

성경 상으로 보자면 염소는 불순종하고 사악한 동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백성은 양에 비유했고 성령에 대해 모르며 영생을 믿지 않고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는 이는 염소에 비유한 겁니다.

하나님말씀대로 사는 이들은 오른편에,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사는 이들은 왼편에 둔다했는데 오른편은 긍정적이고 정의로움을 말하며 왼편은 부정적이고 불의한쪽을 나타낸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른쪽은 선하고 이타 행을 실천하는 이들이며 왼쪽은 자신의 욕심대로 살아가는 이기적인 이들을 가리킵니다.

성경을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25:34)

여기서 임금이란 하나님과 하나 된 인자(성령)를 말합니다.

이 말씀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지난시간 보았던 다니엘서를 한 번 더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9:25)

Know therefore and understand, that from the going forth of the commandment to restore and to build Jerusalem unto the Messiah the Prince shall be seven weeks, and threescore and two weeks: the street shall be built again, and the wall, even in troublous times.

이렇게 왕(메시아)이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하나님)과 하나 된 인자를 임금이라 호칭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호칭으로서 임금을 하나님이라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예수님을 인자(the Son of man)라 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라 부르기도 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 하나님이라 하신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되어져야합니다.

그리고 창세로부터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한 것은 영생을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영생을 얻을 수 있을는지요.

예수님말씀을 경청해 보겠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25:35)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25:36)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25:37)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25:38)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25:39)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25:40)

And the King shall answer and say unto them, Verily I say unto you, Inasmuch as ye have done it unto one of the least of these my brethren, ye have done it unto me.

이 내용을 보고 나 홀로목사는 참으로 많이 놀라워해야만 했습니다.

지금껏 이 내용을 그저 사람들을 돕는 것이 영생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돕는 것은 분명 복을 짓는 일이며 의로운 일이 맞지만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에는 아주 깊은 뜻이 담겨있었습니다.

앞 구절 모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이니만큼 더 이상 되새겨볼 필요가 없지만 40절 내용은 아주 중요한 대목이 담겨있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라고(Inasmuch as ye have done it unto one of the least of these my brethren)한 것은 인자, 즉 기름부음을 받은 이(깨달음을 얻은 자)를 가리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이는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은 임금이니 영생의 세계에서 말을 한 것이지요.

이 말씀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또 한 번 지난시간을 되돌려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잠시 보고난 후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11:11)

Verily I say unto you, Among them that are born of women there hath not risen a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 notwithstanding he that is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is greater than he.

보시다시피 11절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요한을 향해 말씀하신 겁니다.

40절에서 여기 내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한내용과 정확히 일치되고 있지요.

임금이란 인자이신 예수님이며 여기 내형제란 예수님처럼 영생을 얻어 천국에서 하나님과 하나 된 이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보면 성령을 깨달아 아는 이, 즉 예수님이나 요한 같은 이를 돕는 것이 하나님을 돕는 것과 마찬가지일로서 의로운 일이라는 말이며 오른편에 속한 이들이 영생을 얻는 이유가 됩니다.

그렇다면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는지요.

예수님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25:41)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25:42)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25:43)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25:44)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25:45)

Then shall he answer them, saying, Verily I say unto you, Inasmuch as ye did it not to one of the least of these, ye did it not to me.

그들은 영벌,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25:46)

And these shall go away into everlasting punishment: but the righteous into life eternal.

지난시간 요한의 죽음을 두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 알았듯이 깨달음을 얻은 이(기름부음을 받은 이)를 해치게 되면 자신에게 이롭지 못한 일이 발생되지요.

여기에서는 예수님께서 아예 영벌(into everlasting punishment)에 처해진다했습니다.

그만큼 죄가 막중하다는 말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 내용을 보고 이상하다 여기는 분들은 없습니까?

사람이 살다보면 사정에 따라 어려운 이들을 보고도 못 도와줄 수 있는 법이고 또한 누가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인지 모를 텐데 단순하게 그들을 돕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지옥을 보내거나 영원한 불속에 던져진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여기지 않았는지요.

나 홀로목사는 여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며 쳐다보지 않았겠지만 여기에는 단순하게 그런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속 깊은 내용이 있을 거라 여기며 잠시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었지요.

그랬더니 곧바로 답이 주어졌습니다.

이 내용은 자신 내면에 성령이 거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앞서 오른편에 속한 사람들은 인자를 도운 것으로 나왔는데 인자는 성령을 말하며 하나님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람을 도운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품인 성령을 보고 도왔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에 대해 몰랐기에 주께서 어려움에 처해진 것을 본적이 없다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어떤 분들은 오른편에 있는 이들도 성령에 대해 모르긴 마찬가지였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자세히 보면 마지막40절에 그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분명히 여기 내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중에 하나에게 해준 일로인해 영생을 얻는다고 말해놓았지요.

이것은 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성령과 함께하는 이들과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불교에서 탁발을 하는 이유가 중생들과 스님들이 인연을 맺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탁발(托鉢)이란 스님들이 집집마다 방문하며 금전을 받거나 곡식을 받는 행위를 말하는데 단순하게 동냥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복덕을 쌓는 기회를 주는 일이기도 하고 인연을 맺는 것이 하나의 목적이기도하지요.

영생(영원한 해탈)을 추구하는 구도자를 돕는 일이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이며 그들과 인연을 맺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성직자를 비롯하여 목회 일을 하시는 많은 분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며 그들과 좋은 인연을 맺거나 돕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아주 좋은 일이라 할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들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는데 급급한 사람들은 거기에 따른 응보를 반드시 받게 될 겁니다.

각자가 자신의 현재위치에서 오늘의 성경말씀을 되새기길 바라며 오늘의 성경연구는 여기에서 마침표를 찍겠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함에 있어

주기만 하는 사랑이 있고

받기만 하는 사랑이 있으니

그 사랑은 외사랑

아름답긴 하나 가슴 아픈 사랑이니

열매를 맺진 못하는구나.

온 누리에 가득한 신의 사랑은

주기만 하는 사랑

세상에 넘치니

받아들이면 빛과 하나 될 것이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신과 분리되어

늘 사랑에 목말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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