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라는 말이 관계회복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죄를 묻지 않겠다는 것이지 잘못을 저지른 전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신이 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어놓고 없던 일로 하자 말한다고 해서 없어지지는 않지요.
남에게 상처 준 사람이야 당연히 없던 일로 했으면 좋겠지만 이세상의 법칙상 그렇게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어떤 과정을 통해 돌려받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반대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가령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그를 용서하기 위해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거나 반대되는 상황이 온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높은 천국에서 영혼들이 세상을 내려다보며 신기해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주고받으며 즐거워했다가 괴로워하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던 겁니다.
빛으로 된 천국에는 사랑만 가득하므로 사랑을 느낄 방법이 없었던 탓에 어린 영혼하나가 너무나 신기해하며 경험해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사랑을 경험하고 싶다 말했는데 하나님은 어린영혼에게 사랑을 가르쳐줄 것을 늙은 영혼에게 명령했지요.
늙은 영혼은 흔쾌히 대답하며 어린영혼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세상으로 내려가 너에게 사랑을 가르쳐줄게.
다만 너는 한 가지만 명심하렴.
네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너를 가장 심하게 괴롭히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기억해.
이런 이야기가 이해되기는 어렵겠지만 사실상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담긴 뜻이 있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런 일이 영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겁니다.
정확히 표현해서 현상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에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있다는 거지요.
이세상은 학습장이기 때문에 역할을 바꿔가며 상처를 주고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받은 상처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야할 때도 있고 상처준 일을 용서받기 위해 상처받아야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중요합니다.
내가 준 상처는 곧바로 사과하고 내가 받은 상처는 재빨리 소화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현재 나의 말과 행동은 집약된 과거의 생활에서 비롯된 겁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잘못된 생활습관이 고착되어 나의 신구의(身口意)를 형성하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시계태엽을 다시 감듯이 반대로 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악행을 일삼았다면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사랑을 베풀고 오해와 불신을 쌓아왔다면 이해와 용서를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나는 수많은 죄를 저질렀고 끝없는 이해와 용서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일은 가능하지요.
사랑의 힘은 이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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