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요 며칠간 하늘에서는 억수같은 비가 내렸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지 않고 밤낮없이 내리는 비는 우리가 중국땅을 떠나는것을 서러워 하는것 같더구나.
동네분들 몇몇은 우리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서 눈물을 찍어내기까지 했는데 정작 떠나는 나는 가슴속이 후련함을 느끼고 있었으니 똑같은 비를 다르게 보는 사위와 장인의 심정같았던거야.
아마도 너는 내말에 또다시 딴지성 질문을 할거라 생각해.
지난번 당신은 언제나 신의 축복을 느낀다고 했는데 이제는 마치 지옥속에서 탈출하듯이 속이 시원하다고 말씀하시네요 하고 말이야.
솔직히 네가 하려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적으로 네말이 맞다고 할수있어.
하지만 한가지 알아야 할것은 내면의 우리들 스승은 우리 육신의 두뇌를 이용하여 때때로 이러한 판단과 저러한 가치를 가지게 만들거든.
그러하기에 나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판단과 가치관을 달리한 대답을 할수밖에 없는거지.
내가 이곳에서 붙박혀 살아야 할때는 천국과 같이 느껴야 하고 이제 다른 인연을 만나기 위해 떠나야 하기에 지옥을 탈출하는듯한 기분을 가져야만 하는거야.
이같은 점을 달리 표현하자면 신이 나를 움직이기 위해 내주변 환경을 도저히 참지 못할 어려움속에 빠트린다고도 볼수 있어.
물론 이같은 일도 생각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수용할수 있는데 목이 떨어지는 순간조차도 즐거움으로 받아들일수 있지 않겠어?
어떠한 경험을 하려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이것은 사실화 될수 있는데 이것을 결정짓는 것은 내 개인안에 머무는 신이라기보다 우리들 모두에게 내재한 신이라 할수 있는거야.
이것은 우리들이 인식을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가치관을 달리할수 있다는 증거이며 이것이야말로 수행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개념일수 있는거지.
이번 한국행때도 나와 함께 개사료 사업을 함께 했던 사저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이와같은 점을 확인할수 있었어.
그분은 우리들의 개사료 사업이 무산된것이 못내 아쉽고도 미안했던지 나를 만나고 싶어 하셨는데 나로서는 그분이 그토록 나에게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 생각했거든.
우리들이 처해진 지금 당장만 보게되면 내가 잘못된 것으로 보여지겠지만 시각을 조금만 멀리하면 오히려 좋은 일일수가 있는거야.
그러니까 지금의 현재시간으로 보자면 과거 우리들의 개사료건이 물건너 간것이 아주 잘된 일이 된다 이 말인거지.
무슨 말같지 않은 말씀을 하시는지요?
개사료를 시작하기 위해 당신은 동생에게 상당한 액수의 돈을 빚져야 했고 앞으로도 그돈을 갚기위해 한동안 애를 먹어야할텐데요.
그저 현실은 무시하고 말로서만 좋다고 해서 납득할 사람이 도데체 얼마나 될까요?
이제 제발 꿈속을 헤메는것을 중단하고 현실로 돌아와서 사람답게 사는것이 어떨런지요?
그래.
네말이 맞아.
나 역시 이제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모든것을 정리하고 들어오려고 하거든.
그러하기에 네가 말한것처럼 지금까지 중국에서의 삶을 사람이 살지 못할 환경인것처럼 여기는 선택을 내가 한거야.
이러한 생각처럼 개사료건도 만약 그 당시 순탄하게 진행 되었더라면 더욱 큰 낭패를 당했을 가능성이 너무나도 커기에 나에게는 무척이나 다행스럽고 고마운일이 된거지.
지금 중국의 개사료가 전세계적으로 문제시 되는 바람에 사실상의 수출입이 금지 되고 있어.
그 당시 우리들의 개사료 수출이 원할하게 진행되었다면 아마도 투자자들을 끌어모아 더욱 크게 공장을 확장했을 것이고 지금쯤은 크게 망했을것이 분명해.
물론 이것은 또다시 흥했을수도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개념이긴 하지만 이미 끝나버린 개사료건에 대한 해석은 이와 같은 것이 나에게 좋다는 말인거야.
이러한 해석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수 있는 개념이고 우리들이 선택할 여러가지의 인식선중에 가장 유익한 인식점이라 할수 있어.
이러하기에 나는 주저없이 이러한 인식을 선택했고 늘 행복할수 있는거지.
네 고모에게 빚을 진 일도 생각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좋은 일일수 있는데 앞으로 내가 경험해야 할 그 무엇이 그러한 빚 때문이라 한다면 그야말로 즐거운 일이 아닐까?
다시 말해서 내가 앞으로 네 고모에게 빚진 돈을 갚기 위해 해야할 일을 통한 경험들이 나를 무척이나 즐겁게 만들거라는거야.
아들아!
늘 하는 말이지만 말이야.
나와 상대하던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모두가 승리자 들이란다.
나에게 얼마를 투자하였던지 혹은 얼마의 도움을 주었던지 그들 모두는 각자가 해야만 했던 일들을 그 시기에 맞게 정확하게 했다는거지.
나를 비방하거나 칭찬 하거나 관계없이 그들은 그들이 해야만 했던 일을 했었고 그러한 역할들을 통해 오늘날 내 인식정도를 만들어 낸거야.
그러하기에 우리들은 결코 떨어져 있지 않았고 늘 함께 하였으며 항상 통일된 동일체였어.
이것은 어디까지나 초점의 문제였으며 선택의 문제라 할수 있는데 어떠한 경험을 우리들이 원하는가 하는 인식만이 우리들의 진로를 결정하고 있거든.
지난 시간에도 잠시의 언급이 있었듯이 우리들이 어떠한 미래의 경험을 가지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만이 우리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방향타라 할수 있는데 부처와 마왕이 경계를 달리하는 시점이 바로 여기라 할수 있을것 같아.
우리들은 흔히들 부처와 마왕이 하나라고 말들은 하지만 다들 부처를 하려고 들지 마왕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없어.
하지만 우리들은 자신들도 모른체 마왕의 역할들을 아주 잘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들은 그와같은 일을 말해보기로 해.
취직을 하기위해 서울에 머무는 동안 동수들과 한편의 다큐형식의 영상물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을 보는 동안 참으로 놀라운 사실 몇가지를 발견할수 있었던거야.
첫째로는 동수들이 모두다 물질적인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사실이었고 물질적인 풍요를 마음속으로 다들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며 수행을 잘하면 물질적인 부가 더해진다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었어.
그 어떠한 경우도 사실이 아닐수는 없었지만 동수들이 그같은 사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던거지.
처음 내가 동수들과 둘러앉아 영상물을 시청할때는 나도 모르게 그들의 말을 좋게 여겼었는데 어느 순간 내면에서는 이러한 답이 올라오더구나.
이것은 우리 관음법문의 동수들이 추구할 내용이 아니다.
동조는 할수 있어도 동수들이 걸어가야할 수행의 목표점이 아니며 참조만 해야지 그들의 방식을 따라서는 안된다.
도대체 어떠한 내용인데 그러한 내면의 대답을 들을수 있었는지요.
그저 이 정도로만 들어서는 전체적인 내용파악이 어려우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영상물 내용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
네가 그렇게 간청한다면 어쩔수없이 내용을 말해보도록 하자꾸나.
전체적인 내용을 모두 말할수는 없는 만큼 간략하게 요약해서 말해보도록 해.
그 영상물의 내용은 얼마나 집중을 잘하느냐에 따라 물질적인부가 얼마든지 더해질수 있다는 말이었고 권력이든 명예든 한순간에 취할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었어.
그러면서 미국의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소위말하는 출세가도를 달리는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들도 그러한 방식으로 부와 명예를 득할수 있었음을 설명하고 있었던거야.
과거의 영웅들이 그러한 방법들을 통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수 있었다고 했는데 히틀러를 비롯한 세상의 많은 권력자들과 부귀영화를 누린이들이 모두 그러한 방법들을 알고서 자신들의 삶에서 적용시켜 나왔다는 것이며 그것이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비법이라 소개시키고 있었던거지.
어찌보면 하나의 수행방법이었는데 그것을 동수중에 한분이 관음법문 사이트에 올린것을 동수들이 모여앉아 보게 된거였어.
아들아!
이말을 하는 순간 그때 내가 받은 충격적인 감정이 되살아나 온몸에서 전율이 일어나는구나.
그것이 하나의 수행방법이라는것을 알게된 직후 나는 동수들이 그러한 영상물을 보는 자체가 이상하게 여겨지게 되었는데 그보다 더욱 놀라웠던것은 영상물 내용중에 나온 여러사람들 중에는 내가 늘 인용하길 즐겨하던 "신과 나눈 이야기" 의 저자인 도날드 윌쉬 도 있었던거야.
내가 참으로 좋아하던 형이었는데 그곳에서 만난것은 참으로 유감이었던거지.
이것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만남인가 하는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갈때 그 사이를 비집고 파고드는 또다른 생각이 있었어.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하나의 일직선상에 연결된 하나의 인식선상의 일점이며 선택점의 차이일 뿐이다.
부처와 마왕은 일직선상의 다른 영역의 표현일뿐으로 그가 부처라면 나는 마왕이요 내가 부처가 되는 순간 그는 마왕이 되는것인데 그것을 어떠한 관점에서 보는가의 문제이며 이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였던거지.
결국 이것은 그가 선택한 길과 내가 선택한 길이 노선을 달리한것일뿐 그가 틀리고 내가 맞거나 내가 틀리고 그가 맞는등의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거야.
그가 신과나눈 이야기라는 책을 성공시켰기에 그곳에서 그러한 말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렇지 못한탓에 지금 내가 하는 말을 하는중이다 이말이거든.
그렇다고 한다면 한가지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이 말한데로 그들도 옳고 당신도 옳다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는것이 좋을런지요.
좁은 소견으로는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는것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한다면 당신말대로 물질적인 어려움을 감수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듯한데요.
미치지 않고서야 부자가 되고싶지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겠냐는 거지요.
권력이나 명예, 물질적 부를 가지는 것이 나쁜것이 아닌 다음에야 왜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그것은 말이야.
가난한 사람이 되라거나 부자가 되라거나 하는 식의 말을 하는것은 아니거든.
다만 하나의 선택의 문제라 볼수 있는데 그들은 부자가 되고자 노력하는 선택을 한것이고 나는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형태를 선택한것에 불과해.
그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걸어가야할 길을 가기위해 선택한 하나의 인식이 있어.
물질적 분배의 법칙에 관한 인식으로서 언젠가 말한적이 있는데 에너지 보존의 법칙, 혹은 질량보존의 법칙이라고도 할수있는 물질적 세상의 법칙에 따라 내가 얼마를 점유하느냐에 따라 나머지 사람들의 점유률이 줄어들수밖에 없는 현실에 관한 인식이야.
전체를 100 으로 할때 네가 10 을 가지게 되면 나머지는 90 이 될것인데 네가 많이 가질수록 나머지는 줄어들지 않겠어?
이러할때 우리들이 원하는바는 남이 가질수 있는 기회를 뺐는 결과가 된다 이말이거든.
이것은 권력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수있어.
내가 권력을 얼마나 행사하는가에 따라 남들이 행사할수 있는 권력을 내가 움켜쥔 꼴이 된다 이말인거지.
그것은 전혀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내가 사용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사용을 하게 될터인데 그것을 운좋게 내가 취한다고 해서 뭐가 잘못된건지요?
어디까지나 그것은 실패자의 변명일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을 통해 이러한 말씀을 하셨는걸로 알아요.
"먼저 하나님의 왕국을 찾아라. 그 모든것이 더해 지리라. 하나님의 왕국에는 모자람이 없다"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재물이요 권력인데 우리들이 아무리 점유하고 취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끝도 없이 주실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말입니다.
아들아!
네가 그렇게 여긴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너에게는 유효한 말이 될거야.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가 선택한 개념은 아니거든.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하나님의 왕국은 이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멀리 하늘 나라에 있는것으로 알아.
이 말의 진정한 뜻은 우리들이 깨달음을 얻게 되면 물질적인 유한성을 떠나 무한의 세계로 진입하는것을 이름인데 인식 경계의 벽이 무너지게 됨으로서 얻게되는 의식세계를 말하는거야.
한마디로 시공간의 벽이 허물어져서 물질적인 제한성을 상실한 개념인 것이지 물질적인 유한의 세상에 적용시킬 말이 아니라 생각해.
이것은 어쩌면 이렇게도 볼수 있을것 같아.
누군가의 물질적 욕구에 따라 95%의 부가 점유당하고 나머지가 5% 밖에 없다 할지라도 그 나머지를 95% 이상의 크기로 느낄수 있는것을 말한다는거지.
제한성을 상실한 무한의 세상에서는 한계점이 없거든.
그러하기에 0.5%에 불과하거나 그보다 더 작은 크기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크게 느껴질수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에는 모자람이 없다 말하게 되는거야.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윌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마왕이나 다름없군요.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마음대로 취할수 있으며 이것은 누구나에게 일어날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거든요.
아니야.
네가 그들을 그렇게 평가해서는 곤란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들로서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것 뿐이거든.
언제나 우리들이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야.
우리의 선택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거지.
다시 말해서 내가 오늘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이것이 절대적인 진리 일수는 없는 일이며 이같은 일을 진리라 여기는자들에게만 진리가 될거라는 말인데 너의 선택은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을 너에게 던져야만 할것 같아.
물론 나 역시 당신의 말이 진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하기에 지금껏 당신말을 경청하고 있고요.
하지만 당신말이 진리가 되기위해서는 그들의 말이 부정이 되어야 하는 모순점을 어떻게 극복하겠는가 말입니다.
그것은 말이야.
네 주위와 환경을 둘러봐야 할것 같아.
네가 처해 있는 환경이 윌시가 주장하는것과 비슷하다면 너는 그들의 말을 진리라 여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러한 역할을 맡았다고 보면 될거야.
하지만 내가 말하는것이 절대적인 진리라 여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너는 내말을 진리라고 여기는 삶을 살아가는 역할을 담당한거다 이말이거든.
여기에는 절대적인 진리따위는 있을수 없으며 어떠한것도 진리 아닐수는 없다는 개념이 도입되어야 해.
이것이 왜 이리도 중요한가 하면 내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순간 나는 부처인 동시에 마왕이 될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네가 누군가를 심판 내리게 될때 너또한 심판대에 올라야하기 때문으로 그러한 점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들을 인정하며 나를 인정받는 인식이 필요한거지.
그러하기에 그들과 내가 동시에 진리일때 내가 처한 상황을 완전히 만족함으로서 그들과 내가 동시에 승리자가 될수 있어.
내가 동수들이 그러한 영상물을 볼 필요가 없으며 그러한데 심취해서는 안된다고 극단적이다시피 말한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거든.
우리 동수들 대부분이 남들이 원하는 물질적인 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남들과의 다툼에서 자신의 이익보다는 양보를 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었던거야.
동수들의 수행목적이 한계점 없는 내면세계를 향해 있고 그러한 하느님의 왕국을 발견하고자 명상들을 하고 있는데 자칫 진정한 목표점을 잃어버릴까 우려된 때문이었어.
그러기에 나는 관음법문과 그 영상물은 하등 함수관계가 없다 말했던거지.
아들아!
오늘 우리들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를 다루었구나.
사실 이같은 일은 이기적인 선택을 할것인가 이타적인 방식의 삶을 따를것인가의 문제와 결부될수 있는데 지금 여기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는 시간이 너무나 짧은것 같아.
다음시간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파고 들어 보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