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목사입니다.
지난시간 조금 흥분했었지요?
그저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저산의 소나무같이, 천년의 세월을 미동도 없이 자리매김하는 천년바위같이 관조자의 시각을 유지할 수도 있건만 그러지 못했던 것은 나 홀로목사의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완독(玩讀)이라는 목표가 설정이 되었던 만큼 성경에 충실해야만했고 성경을 해석하는 목적이 여러분들과 함께 영생을 얻는 것인 만큼 목표점에 놓인 방해물들을 용납할 수 없기에 강력하게 그 모든 삿된 인식들을 향해 일갈을 날려야만 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어느 정도 종교에 대해 알고 있는 분들이니만큼 우상숭배가 무엇이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또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복신앙의 형태를 벗지 못한다는 말을 이제 웬만한 신앙인들이라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많이 들었지요.
마찬가지로 불교도들 역시 기복적인 신앙의 행태에 있어서는 기독교도들보다 더욱 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절에 스님들조차 사주팔자는 물론 관상에 손금까지 봐주는가하면 심지어 굿판을 벌이는 주지스님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근본이유가 물질적인 인식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 말씀드렸는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러한 일들은 있어야만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 홀로목사의 생각입니다.
학교도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대학교까지 있듯이 믿음의세계도 단계가 있기 마련이지요.
따라서 선생님도 유치원보모부터 대학교수까지 있어야하며 영적인 세계역시 각 단계별로 선생님이 따로 있어야 마땅합니다.
그런 의미로 나 홀로목사는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영생에 대한 일만 말씀드리고 있으며 기성종교가 가르치는 교리와는 방향을 달리한다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지금껏 받아들이고 있던 예수찬양을 기대하거나 자신이 믿고 있는 대상에 대한 존경심만을 원하고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시라 권하며 성경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마27:1)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마27:2)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마27:3)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마27:4)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27:5)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마27:6)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마27:7)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마27:8)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마27:9)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마27:10)
지금까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바대로 예수를 판 유다가 죄책감에 못 이겨 스스로 목을 맨 내용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注目)할 사항이 있습니다.
신약의 사대복음서중에 이 내용은 마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는 겁니다.
유다가 배반한 사실을 모든 복음서가 다루었는데 유독 목매어 자살한 내용은 마태복음이 유일하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마태오는 무엇을 말하기위해 유다가 목매단 사실을 기록했을까요.
9절에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졌다 한 것은 토기장이에 대한 이야기(렘18~19)를 말하는 것인데 보다 실제적인 내용은 스가랴서를 인용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스가랴서를 먼저 봐야할 것인데 보기에 앞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구약의 내용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스가랴서역시 심오한 뜻이 담겨있지요.
그런 까닭에 전체 내용을 한꺼번에 올리는 것보다 한 구절씩 그 뜻을 음미하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슥11:4)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명령을 했다는 말이니 이 시대에는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스가랴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였지요.
잡혀죽을 양떼란 스스로의 내면에서 성령이 깨어나지 못한 불쌍한 백성들을 가리키는데 영생의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영원한 미망(영적인 죽음)의 세계를 떠돌게 될 거라는 말을 죽음으로 표현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기름부음을 받은 스가랴로 하여금 불쌍한 백성들에게 기름을 나누어주라는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슥11:5)
Their buyers slaughter them and go unpunished. Those who sell them say, `Praise the LORD, I am rich!' Their own shepherds do not spare them(NIV) .
Whose possessors slay them, and hold themselves not guilty: and they that sell them say, Blessed be the LORD; for I am rich: and their own shepherds pity them not.(KJV)
해석에 앞서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영역본 두 개를 동시에 올렸는데 두 가지를 비교하라는 뜻도 있지만 성경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 성경이 히브리어를 번역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나 홀로목사의 느낌과 경험으로 보건데 우리나라 성경은 영어성경을 토대로 번역한 것이 맞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구절은 (NIV)를 번역했고 어떤 구절은(KJV)를 번역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관계상 직접 올릴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여 이쪽저쪽을 번갈아가며 해석해놓았습니다.
여담이긴 합니다만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성경은 오늘날 우리들이 보고 있는 성경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라는 것이 나 홀로목사의 생각이며 이스라엘사람들이 신약을 믿지 않는 이유도 충분히 짐작이 가는바 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남아있는 구약의 말씀과 신약의 내용을 비교분석해보면 우리들이 영생을 얻는 데는 하등문제 될 것이 없으며 이미 말씀드린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영생을 얻을 수 있다 확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앞세워 자신들 밥벌이를 하는 이들이 말해주는 성경해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언제든지 영생의 하늘은 여러분에게 열리게 되지요.
이야기가 궤도(軌道)를 벗어난 것 같습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본문에 집중하겠습니다.
이 내용은 비유의 말씀으로 참된 목자(스승)를 만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길 잃은 백성들을 뜻합니다.
사들인 자와 판자들은 신도(信徒)들을 물질적인가르침으로 이끄는 삿된 목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목자라 한 것은 백성들의 영혼을 가리킵니다.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자면 우선적으로 사들인 자에 해당하는 목자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영적스승(성직자를 통칭)이라 여기는 자들을 가리킨다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신도들을 얼마든지 이용해도 된다고 여기는 부류입니다.
한글성경을 보면 잡는다고 표현했지만 영역본을 보자면 slaughter 라는 단어를 사용했지요.
이는 살육, 도살 등의 뜻을 지닌 단어로서 영의 세계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을 마음껏 이용해도 죄가 없다 여긴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의 신도들이 죽거나 말거나 아무런 상관도 않는다는 말이며 그들을 죽인다 해도 죄 될 것이 없다고 여긴다는 거지요.
그리고 두 번째로 판자들에 해당하는 목자들은 첫 번째 목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이들인데 한 가지 틀린 점은 신도들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서 그 감사함을 하나님께 돌리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팔아 자신들의 신도들로부터 재물을 끌어 모으고 사리사욕을 채우고서 감사기도를 매일같이 드리는 부류의 성직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하겠습니다.
세 번째의 목자는 불쌍한 백성들의 자신 안에 내재(內在)한 영혼을 가리키지요.
여러분들은 이 말을 올곧게 이해하십니까?
지금껏 나 홀로목사는 수차례에 걸쳐서 자신 안에 내재한 성령을 찾아야한다 말씀드렸는데 바로 자신의 참된 자아인 영혼이자 성령인 참된 목자, 즉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이 궁금하실 겁니다.
정말 각자의 내면에 참된 목자이신 그리스도가 존재한다면 왜 우리자신이 그러한 사실을 모를까하겠지요.
여기에 대한 해답이 다음구절에 이어집니다.
보시죠.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슥11:6)
보시다시피 자신의 내면에서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외면하셨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외면하셨다는 말인즉 하나님께서는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으신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긴다했는데 이는 영적인 스승들에게 하나님의 권한을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웃이라 표현한 것은 우리들과 똑같은 모습을 한 인간이라는 말이며 임금이라는 말은 깨달음을 얻은 영적스승(성직자)을 가리킵니다.
결국 소위 말하는 영적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유린(蹂躪)할지라도 하나님이 직접 관여하시지는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영적스승에게는 하나님의 권한을 주시고 일반인들에게는 권한을 주지 않으실까요?
이 같은 일을 제대로 이해하기위해서는 복잡한 영의 세계를 말해야하지만 최대한 줄여서 설명하겠습니다.
사람의 영혼이 완전한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 안에 내재하고 있는 성령을 깨달아야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 안에 영혼이 있는 것조차도 모르고살지요.
이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지 못한 이유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들 자신의 업장(業障)때문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세세생생(世世生生) 윤회를 통해 쌓아놓은 업장으로 인해 그들의 영안(靈眼)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라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전자를 통한 정보공유현상 때문입니다.
표현이 달라졌을 뿐 사실은 모두가 동일하다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상태에서는 자신의 내면에 성령(그리스도, 멜기세덱)이 있음을 알 수가 없기에 하나님께서 외면하셨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성령을 깨달아 아는 영적스승들은 어떻게 자신의 내면에 성령이 있음을 알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스가랴나 예수님 같은 영적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전수받아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성경을 통해 몇 번이나 확인을 했듯이 가르침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음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구약속의 수많은 영적스승들이 그러하며 예수 또한 그러하고 예수의 제자들 또한 영생의 깨달음을 얻었지요.
오늘날에도 수없이 많은 성직자들을 통해 영생의 하늘은 쉼 없이 열리고 있으며 천국복음(영생의 가르침)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 홀로목사가 여러분들에게 전해주고자하는 바로 이러한 일들입니다.
이제 궁금한 점이 조금은 해소가 되었으리라 여기며 또다시 성경 속으로 뛰어들겠습니다.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슥11:7)
하나님께서는 비록 백성들을 내버려두시지만 스가랴 선지자는 불쌍한 백성들을 보살펴 주었다고 했지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참된 영적스승이라는 말을 4절에 말해놓았는데 거짓된 목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은총과 갈라져있는 많은 믿음의 길을 하나로 연합하는 참된 스승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해석을 하다 보니 참으로 스가랴 선지자가 놀라운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자신의 자랑을 조금의 거부감도 들지 않게 이렇게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할 수 있으며 영적스승과 하나님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이분에 대한 놀라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다음구절을 보시죠.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슥11:8)
Three shepherds also I cut off in one month; and my soul lothed them, and their soul also abhorred me.(KJV)
In one month I got rid of the three shepherds. The flock detested me, and I grew weary of them(NIV)
한 달 동안이란 짧은 기간을 뜻하는 비유의 표현이며 세목자란 앞서 말한 세 부류의 목자들입니다.
그런데 목자들이란 외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 안에 심어져있는 근본적인 인식들로서 앞서 말한 세 부류 목자들의 인식을 말합니다.
영역본을 보면 마음에 해당하는 단어가 soul로 되어있습니다.
이는 영혼을 말하는데 영혼 중에도 참된 영혼, 즉 진아(眞我)를 뜻하지요.
영역본을 비교해보면 두 가지 모두가 영혼에 대해 모르면 절대 이해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스가랴는 이미 깨달음을 얻은 영적스승이며 세 부류의 목자들을 싫어했다했는데 문제는 그들(잡혀죽을 양떼) 영혼도 스가랴를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들의 영혼이란 성령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의 영혼(성령)이 스가랴를 미워했을까요?
이는 분명 영혼의 세계를 설명한 것으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혼이란 하나라는 말입니다.
내가 미워하면 상대 또한 미워한다는 말과도 같다 할 수 있지요.
깨닫지 못한 이들의 내면에도 하나님의 품성인 성령이 함께하지만 그들의 행위에 따라 받아야할 업장(業障)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과 귀를 막아놓았습니다.
이러한 이들이 못된 목자들을 만나 자신들의 악업에 따른 과보를 받는 것인데 이를 스가랴 선지자가 나서서 은총과 연합이라는 선물로 구원을 받게 만들자 성령이 반대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보충설명이 다음구절에 이어집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슥11:9)
보시는 바대로 스가랴 선지자가 더 이상 양떼(백성)들을 보살피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스가랴 선지자가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 되었음을 스스로 밝히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지은 업보(業報)에 따라 죽을 자는 죽게 될 것이고 망할 자는 망하게 될 것이며 서로가 인과응보의 법칙아래 잡아먹고 먹히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겠다는 말이지요.
스가랴 선지자 역시 6절에서 여호와하나님께서 말씀하신바대로 하겠다는 말이지요.
나 홀로목사의 말이 믿기지 않는 분들은 다음구절을 보시기바랍니다.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슥11:10)
당일에 곧 폐하매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슥11:11)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인과응보의 법칙아래 두셨음으로 내버려둔바 되었지만 선지자 스가랴(깨달음을 얻은 스승)가 나서서 은총으로 구원해 내려했는데 그들의 때가 되지 않았음으로 인해 언약을 폐하려했다는 말입니다.
당일에 폐했다는 말은 언약을 한날과 동일하다는 말이니 시공이 없는 영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공의 영역이 허물어진 상태, 즉 분별심이 없어져 성령과 하나 되었기에 가련한 양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줄 알았던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들이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11절에서 말한 가련한 양들은 믿음이 결여된 양들이 아니라 선지자 스가랴를 하나님처럼 믿고 따랐던 굳센 믿음을 가진 양들이었으며 스가랴의 말을 하나님이 그를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만큼 지혜로웠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했다는 말이며 하나님나라로 돌아갈 때(영생)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명확하게 하나님과 영적스승 및 제자들의 관계를 묘사 해놓았는지 볼수록 기가 막힙니다.
다음구절에는 어떤 가르침이 있을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보시죠.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슥11:12)
이 말씀 역시 지혜롭기 그지없는 내용입니다.
삼라만상에 대한 가격을 사람이 매긴다는 말과도 상통하는 말씀으로 모든 사물에 대한 의미부여나 값어치는 사람에게 달렸다는 말이지요.
스가랴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귀하게 여겼기에 그들이 은 삼십 개를 달아서 품삯으로 주었다했는데 여기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은이라 한 것은 하나님(금)을 대변하는 스승이라는 의미로 은이라 말했으며 변하지 않는 믿음을 뜻합니다.
또한 삼십이라는 숫자는 삼과 십으로 분리하여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삼이란 삼위일체 하나님을 뜻하는 동시에 최고의 원형 계를 나타내며 십이란 인간 몸의 완성된 숫자를 말합니다.
일곱 차크라가 열려 원형계의 삼극점(三極点)과 합하여질 때 완전한 몸(영혼의 완성)을 형성하는데 이때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때이며 예수님이 말한 인자가 임할 때입니다.
8절에서 말한 한 달 과도 의미가 상통한다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알려지지 않은 이스라엘의 비밀교의입니다.
속 깊은 내용을 더 이상 말할 수 없지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스가랴 선지자의 품삯은 사람들의 것으로(물질적이고 육적인) 헤아릴 수 없으며 영적인 것이라는 말이지요.
여기에 대한 부연(敷衍)설명이 다음구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슥11:13)
여기서 토기장이란 하나님을 뜻합니다.
왜 하나님을 토기장이라 했냐하면 우리인간들을 하나님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스가랴 선지자를 하나님과 하나 된 이로 여기며 삯을 주었으니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지요.
은 삼십 개에 대한 의미가 결코 사람들이 말하는 돈이 아님을 이제는 아셨으리라 여기며 다음구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슥11:4)
이 또한 스가랴 선지자가 하나님과 하나 된 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모든 종교나 종파(宗派)의 벽을 허물어트리고 하나로 연합시키려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형제의 의리를 끊어놓으려 하시는지라 그 뜻에 부합하기로 했다는 말이지요.
바꾸어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업보에 따라 나라가 둘로 나뉘게 하셨지만 스가랴 선지자가 나서서 연합이라는 막대기로 민족을 통일시키고 종교나 종파의 벽을 허물어트리려 했다는 겁니다.
이 말인즉 스가랴 선지자가 연합을 시킬 수도, 분리시킬 수도 있는 권한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말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나 홀로목사의 말을 뒷받침해주는 내용이 다음구절에 이어집니다.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들을 빼앗을지니라(슥11:15)
보시다시피 여호와께서는 스가랴 선지자에게 하나님과 마찬가지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들을 빼앗는다는 것은 영적스승들로부터 권한을 뺏는다는 의미이니 하나님과 마찬가지의 힘을 발휘한다는 말이지요.
달리표현하자면 스가랴 선지자는 삿되고 참되지 못한 영적스승들과는 차원이 다른 스승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 된 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는 동시에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영적스승이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어쩌면 이리도 지혜로운지요.
다음에는 얼마나 더 놀라운 말씀이 있을지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슥11:16)
For I am going to raise up a shepherd over the land who will not care for the lost, or seek the young, or heal the injured, or feed the healthy, but will eat the meat of the choice sheep, tearing off their hoofs.(NIV)
For, lo, I will raise up a shepherd in the land, which shall not visit those that be cut off, neither shall seek the young one, nor heal that that is broken, nor feed that that standeth still: but he shall eat the flesh of the fat, and tear their claws in pieces.
여러분은 이 내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나 홀로목사는 참으로 놀랍다는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표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어떤 분들은 이상하게 생각할겁니다.
이 내용은 어디까지나 잘못된 목자를 가리키는 내용인데 어째서 하나님과 연관을 짓는가 하겠지요.
나 홀로목사가 그런 점을 몰라서 그렇게 말씀드린 것이 아니라 삿되고 잘못된 인식을 가진 목자를 일으킨 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스가랴가 말해놓았기에 그렇게 말씀드린 겁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하나님은 나쁜 스승도 일으키고 좋은 스승도 일으킨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또다시 누군가는 궁금해 하며 말하길 어째서 하나님은 좋은 스승만 남겨두고 나쁜 스승을 없애버리지 않는가 할 것이 분명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 대한 해답이 나와 있는데 스가랴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기 위해서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쁜 제자(좋은 일이라고는 하지 않고 업장을 많이 쌓아놓은 이들)에게는 나쁜 스승이 주어져야하고 좋은 제자들에게는 넘어서야하는 시험의 대상으로서 필요하다 할 수 있지요.
영역본 두 가지를 동시에 올린 이유는 그 뜻을 음미해보기 위해서 인데 강건한 자에 해당하는 내용을 NIV에서는 feed the healthy라고 했고 KJV에서는 that standeth still 이라 했습니다.
이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로서 믿음이 좋거나 바로 서있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는 것을 먹이지 않는다고 표현한 겁니다.
믿음이 좋거나 바로 서있다 할지라도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믿음이 퇴보할 수도 있기에 이렇게 말해놓은 것이며 올바른 스승이라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게 계속해서 가르침을 준다는 말입니다.
또 살진 자에 대한 내용을 보면 NIV에서는 선택받은 자의 고기를 먹는다(eat the meat of the choice) 했고 KJV에서는 살진 자의 고기를 먹는다(eat the flesh of the fat)했습니다.
이두가지 모두는 영적에너지를 취한다는 말이니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아 영적에너지가 충만한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영적에너지를 빼앗는다는 뜻입니다.
그 굽을 찢는다는(tear their claws in pieces) 말은 영적진보를 더디게 한다는 말이며 아예 주저앉게 만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만약 누군가 스승을 따라 수십 년을 수행했는데 영적에너지가 충만하기는커녕 퇴보했다 여긴다면 여기에 해당한다 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이러한 일을 경험한분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못된 스승에게는 다음과 같은 벌을 주신다고 했으니까요.
보실까요?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슥11:17)
Woe to the worthless shepherd, who deserts the flock! May the sword strike his arm and his right eye! May his arm be completely withered, his right eye totally blinded!" An Oracle(NIV)
Woe to the idol shepherd that leaveth the flock! the sword shall be upon his arm, and upon his right eye: his arm shall be clean dried up, and his right eye shall be utterly darkened.
해석에 앞서 여러분들에게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이 내용은 분명 (NIV)를 번역한 것인데 아래쪽 (KJV)를 보면 의미가 약간 달라집니다.
양떼를 버린 못된 목자에 해당하는 내용(the worthless shepherd, who deserts the flock)을 (KJV)에서는 the idol shepherd that leaveth the flock라 했지요.
이는 분명 숭배 받는 목자를 뜻합니다.
이 뜻은 우상숭배의 자리에 스스로 올라서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우상숭배를 하도록 만드는 것도 해당한다 할 것입니다.
이런 목자에게 벌이 내리는데 팔이 완전히 마르고 (his arm be completely withered) 오른쪽 눈이 먼다했습니다.(his right eye totally blinded!" An Oracle)
팔이 마른다는 것은 힘의 상실을 뜻하며 오른쪽 눈이 먼다한 것은 정의(正義)를 볼 수 없다는 말이며 신으로부터 버림받음을 의미합니다.
An Oracle은 신탁(信託)을 뜻하는 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목자의 사명을 부여받았지만 그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으므로 더 이상 신뢰받지 못하고 외면당한다는 말입니다.
성직자로서 이보다 더한 벌은 없지요.
하나님을 팔고 예수님을 앞세워 우상숭배의 대열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조심해야 하리라 여겨집니다.
이렇게 해서 스가랴서 11장을 모두 보았습니다.
마태복음과 동일한 내용은 스가랴서11장 13절입니다만 전체내용을 보지 않으면 그 뜻을 알 수가 없는지라 부득이하게 많은 내용을 올렸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내용은 진정한 영적스승이란 어떤 사람인가하는 것을 말해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스가랴서에서 말하고 있는 진정한 목자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마태오는 이 내용을 인용했던 거지요.
스가랴서의 뜻을 알고 보면 마태복음의 내용은 상당히 많이 달라집니다.
시간관계상 더 이상 이 내용을 다룰 수 없으니 다음시간에 다시 한 번 더 마태복음 27장초반부로 돌아가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쉬어가겠습니다.
신이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놓은 것은
천국 갈 자들과 지옥 갈 자들을 위한 것이로되
지옥은 천국 갈 사람들을 위해 필요하고
천국은 지옥 갈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것을
말하는 이는 드물도다.
지옥이 있기에
천국에 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천국이 있음에
지옥가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거늘
어리석은 이는 지옥과 천국이 둘이 아님을 알고
지옥 갈 짓을 스스럼없이 할 것이고
지혜로운 이는 지옥을 위해 천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위해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니
그 신구의(身口意)를 더욱 정결케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