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목사

마태복음38.

배가번드 2019. 2. 1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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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목사와 함께하는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할까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서울가본사람과 가보지 못한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 아십니까?

우리나라에 사는 분들이라면 여기에 대한 답을 아실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서울을 가보지 못한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아시는 분이 있는

지요?

나 홀로목사는 이 같은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으며 한 가지 결론을 얻었습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이 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의 생각에너지 때문이라

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사람들안에는 창조력이 담겨있으며 이러한 창조력은 무한한 에너지를 품고 있기에 세상을

만들어내기까지 합니다.

이와 같은 힘을 매 개인이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이 진실로 여기는 일에 대해서는 누구의 말

도 듣지 않으며 오히려 누군가를 설득하려 들지요.

마찬가지로 영적인 일에 대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경험한 사람을 언제나 이기려듭니다.

자신의 상상력이 보태어져 어마어마한 환상의 세계를 만들기 때문에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런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이비종교에 빠져있는 사람들 모두가 이러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으며 나 홀로목사역시 이러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지요.

다만 나 홀로목사가 그러한 분들과 다른 점은 세상의 모든 종교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비록 타인들 눈에는 사이비로 보일지라도 그들 자신에게 있어서는 진리의 길이 분명한지라

누군가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뿐입니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신 안에 내재한 신의품성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른

다할지라도 그들 또한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그러한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이지 않다 생각하고 있지만 하

나님 품을 벗어난 일은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도 않는다는 것이 성경에 나와 있지요.

하나님은 편재하고 무소부재하며 전지전능하다 했으니 그가 모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을 벗어날 수가 있을는지요.

마찬가지로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이란 온 오주를 말아 코 옆의 땀구멍 속에 말아 넣는다

했으니 그가 바로 하나님과 하나 된 존재입니다.

부처는 그리스도나 멜기세덱, 등과 똑같은 반열에 오른 동양식으로 포현된 또 다른 기름부

음 받은 자를 뜻합니다.

나 홀로목사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일이며 무엇인가 특별한 교리를 주장하고

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의 완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다시 한 번 더 나 홀로목사의 목적을 상기시켜

드리기 위해 사설을 늘어놓았으며 여러분들의 목적지인 영생을 향해 성경 속으로 들어가도

록 하겠습니다.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26:57)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26:58)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26:59)

Now the chief priests, and elders, and all the council, sought false witness against

Jesus, to put him to death;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26:60)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26:61)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

하냐 하되(26:62)

And the high priest arose, and said unto him, Answerest thou nothing? what is it

which these witness against thee?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26:63)

But Jesus remained silent. The high priest said to him, "I charge you under oath by

the living God: Tell us if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God."(NIV)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

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26:64)

"Yes, it is as you say," Jesus replied. "But I say to all of you: In the future you

will see the Son of Man sitting at the right hand of the Mighty one and coming on

the clouds of heaven."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

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26:65)

Then the high priest tore his clothes and said, "He has spoken blasphemy! Why do

we need any more (NIV)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26:66)

 

 

여러분은 이 내용을 보고서 이상하게 생각지 않으셨나요?

나 홀로목사는 또다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죄인을 잡기위해서는 당연히 죄목(罪目)이 정해져야하는데 예문에서는 사람을 먼

저 잡아놓고 죄를 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야바를 비롯하여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정말 예수를 죄인으로서 잡아 죽일 생각을 했더라

면 이미 죄는 정해져 있어야 마땅하며 억지로 죄를 찾아내려 애쓸 이유가 없겠지요.

59절을 보면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기위해 온 공회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노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62절에 기록된 대제사장의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지을 수 있다 말한 것이 너(예수)를 치는 증

거로서 어떠하냐고 물었는데 이것은 분명 예수님의 동의를 구하는 말임이 분명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침묵하셨다했는데 이는 그러한 말로는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것을 의

미합니다.

이에 대제사장은 예수님께 더욱 큰 증거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는데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

을 말하라했지요.

이 말인즉 그리스도라고 하면 증거로서 충분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64절에서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 된 이라는 것을 말함으로서 죽어 마땅한 죄

인이 될 증거를 제시해줍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여러분께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에게 말한64절의 내용은 축복의 말씀일까요?

아니면 저주의 말씀일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는(the Son of Man sitting at the right hand of the

Mighty one)일과 천국의 구름을 타고 오는(coming on the clouds of heaven)것을 볼 수

있는 것이 만약 지옥에 가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면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엉터리가 되어야합니다.

앞서 성경을 통해 보았듯이 인자가 임하게 되면 이러한 일들을 보게 된다고 했으니 이는 분

명 예수님께서 이들을 축복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을 통해 확인해볼까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

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16:28)

Verily I say unto you, There be some standing here, which shall not taste of death,

till they see the Son of man coming in his kingdom.

 

예문으로 올린 16장과 2664절은 같은 내용입니다.

16장에 대한 설명은 마태복음 24편에 충분히 해놓았으니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나 홀로목사의 말이 믿기지 않겠지만 여기에 대한 증거가 다음구절에 이어지고 있으

니 다시 한 번 더 예문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65절에서 대제사장이 자신의 옷을 찢었다고 했지요.

이는 분명 자신의 권위를 내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인정했다는 말과 마찬가지의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이 같은 말을 인식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대제사장옷이란 그냥 일반

적인 옷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의 사명과도 같은 겁니다.

한마디로 권위의 상징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찢었다는 것은 그때까지의 겉모습에 치중된 허위와

가식을 벗었다는 말과 같다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같은 나 홀로목사의 말에 동조할 수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와 동일한 내용을 요한복음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에 군대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18:12)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18:13)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18:14)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

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18:15)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18:1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18:20)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18:21)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18:2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18:23)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18:24)

똑같은 장면이 요한복음에는 다르게 기록되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곧바로 가야바에게 끌고 간 것으로 기록되어있지만 요한복음에서

는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에게 끌고 갔다 했지요.

그리고 마태복음2659~65절까지의 내용은 요한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어떤 분들은 마태복음에는 안나스에게 끌려간 내용만 기록되지 않았을 뿐 가야바에

게 끌려간 후부터 기록되었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할지라도 내용은 많이 다릅니다.

비교해서 읽어보면 베드로가 세 번 예수를 부인하고 통곡한 내용은 일치하지만 중간과정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그리고 요한복음 15절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가 예수를 따라 갔는데 베드로는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다른 제자 한사람은 대제사장 집으로 들어갔다 했지요.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다른 제자는 누구일까요?

이 사람은 대제사장과 예수님사이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던 사람이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습

니다.

나 홀로목사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요한복음을 기록한 저자(著者) 요한이 이

사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의 제자들과도 사이가 좋았고 대 제사장 측과도 관계

가 좋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어쩌면 이 사람은 요한이 만든 가공의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혼자만 잡혀갔다고 하면 후세사람들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믿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도 요한복음도 결국 누군가 본 사람이 있어야 기록이 되는 것이기에 이러한 사람은

분명 있어야합니다.

어찌 보면 마태복음의 내용도 마태오가 자신의 생각으로 기록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자신이 직접 그 자리에 있었거나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어야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에서도 베드로가 결말을 보려고 대제사장 집 뜰 안에 들어갔다고 기

록했던 겁니다.

두 가지 복음서를 비교분석해보면 요한이나 마태오가 직접 보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

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 홀로목사는 성경의 가르침자체가 잘못되었다거나 예수님이 성령과 하나

되신 분이 아니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요한도 마태오도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

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며 후세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기위해 비유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나 홀로목사가 성경을 통해 분석하고 밝히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자는 것보다

담겨진 뜻을 헤아림으로 우상숭배의 자리에서 내려와 영생의 하늘로 오르자는 겁니다.

이제 나 홀로목사의 진심을 알았으니 다시 한 번 더 마태복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26:67)

Then they spit in his face and struck him with their fists. Others slapped him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26:68)

and said, "Prophesy to us, Christ. Who hit you?"

 

 

마태오가 이렇게 기록해놓은 것은 예수님이 얼마나 육신적인 모욕과 고통을 당했나를 알리

려했다기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점을 가르치려 했던 겁니다.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듯이 그리스도라고하면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어야하고 앞날을 예견

해야한다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라는 뜻이지요.

그리스도나 멜기세덱은 육신이 아니라 성령(진정한 의미에서의 영혼)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령과 하나 된 사람은 육신의 고통을 마다하고 신통을 부려 세상을 마음대

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자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또 어떤 가르침이 있는지 성경 속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

었도다 하거늘(26:69)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26:70)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26:71)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26:72)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

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26:73)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26:74)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26:75)

 

 

이 내용은 마태오가 오늘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믿음을 굳건하게 해주기 위해

남긴 가르침이기도하지만 그보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

하리라(26:34)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26:35)

 

앞서 우리들이 보았듯이 비록 육신으로 당해야하는 모든 아픔들은 일반인들과 다름없지만

그 말씀만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지금껏 나 홀로목사는 이 내용을 믿음이 강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믿음의 길에서 내려서서는 안 되며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신앙

(信仰)을 지켜야한다 생각했지요.

하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이 같은 내용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러한 점을 나쁜 쪽으로 이용하면 많은 사람들이 꼼짝없이 당하게 된다는 것

을 발견하게 되었던 겁니다.

언젠가 T. V를 보다가 이와 같은 일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의 증인이라는 단체에 속해져있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어린 딸이 죽

음을 앞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술을 못 받게 하는 바람에 이웃사람들이 나서서 수술을

받도록 하고 목숨을 구하게 된 내용이었지요.

왜 이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가하면 피를 중하게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피는 생명이고 생명은 곧 하나님의 숨결과 같으니 함부로 수혈을 받아서는 안 된다 믿었던

탓으로 잘못된 믿음이 가져온 결과였던 겁니다.

사실 이 같은 점을 잘못된 것으로 말하기 어려운 것이 피는 생명이고 생명은 하나님의 생령

이기 때문인데 그분의 단한가지 잘못은 타인들조차(이방인) 다 같은 하나님의 숨결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만이 여호와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생령을 담고 있다 믿었으니 타인들의 피를 받

아들일 수 없었던 거지요.

여기까지 들어보고 어떤 크리스천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피란 예수님의 보혈을 가리키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 안에

는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정말 이렇게 믿고 있다면 그야말로 잘못된 믿음입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아담이 인류최초의 인간이 아니라 사람을 가리키는 히브리어이며 에덴동산

이란 사람이라는 몸의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져있는가 하는 것과 사람 마음 안에서 선악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말해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 체 성경을 본다면 성경을 통해 영생을

얻기는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 됩니다.

성경을 믿는다고 자신하는 여러분들이 만약 인류의 역사를 성경에 국한시킨다고 한다면 지

구를 비롯하여 온 우주의 창조역사는 겨우 7천년이 못됩니다.

지구의 나이를 45억년이상으로 보는 과학계와는 동떨어진 주장을 하고 있다는 거지요.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지구의 나이를 측정함에 있어 방사능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방사성원소가 붕괴할 때 다른 원소로 바뀌는데 이때 변화된 원소의 양과 남아있는 방사성원

소의 양을 비교하여 물질이 생성된 연대를 구하는 방법을 씁니다.

이 방법으로 모든 물질의 생성시기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지요.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방법을 인정하기가 어렵다면 빛의 속도를 통해 우주의 나이를 측정해

볼 수도 있습니다.

아마 중학교 과정만 공부해도 지구와 태양사이의 거리를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더 넓은 우주에는 수많은 은하계가 있다는 것도 배웠지요.

빛이 진공 속에서 1년 동안 진행하는 거리를 광년이라 부르는 것도 배웠을 것이 분명합니

.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지금까지 발견된 은하계중에 가장 먼 은하가 지구로부터 약 132억 광

년 떨어진 UDFJ-39546284인데 이는 그 은하의 나이가 132억 살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물질적인 인식(현대과학의 주장)으로서 영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말씀을 육적이고 물질적인 해석의 범주아래서 헤매고 있기

에 좀 더 영적으로 성경을 봐야한다는 뜻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아직은 기성세대들이 살아있는지라 구시대의 성경해석이 효력을 발생하고 있는지 모르겠지

만 현시대를 살아가는 어린학생들에게 구시대적인 교리로서는 더 이상 믿음을 심어줄 수 없

으며 보다 더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방식의 교리가 필요합니다.

사실 영적가르침이란 초 과학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러한 초 과학을 과학적이지 못하게 만드

는 것이 오늘날 목회자들의 현주소입니다.

성경속의 하나님이 과거, 현재, 미래를 총괄하는 알파요 오메가라는 사실조차도 모른 체 무

조건 하나님을 믿어야하고 예수를 믿어야한다고 말해서 믿어질는지 묻고 싶습니다.

선악의 분별을 넘어서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 말해놓은 에덴동산의 일을 어찌해서 중동지역

어딘가에 실제 했던 곳이라 믿고 있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세가 말해놓은 어린양의 의미를 예수 한사람에게만 묶어놓고 그 누구도 영

생에 이를 수 없게 만들고 있는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이지요.

온 인류역사를 통틀어 구원자가 예수한사람이라면 어째서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을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가 보낸다는 보혜사가 2천년동안이나 오지 않았다고 한다면 2천년동안 지구상에 살았

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는지 생각해 봐야합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예수님의 피의 의미가 옳다는 것을 누가 확신할 수 있을는지요.

마찬가지로 어떤 기독교 종파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있는데 그들이 주장하는바에 따

르면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해 있으며 그러한 일에 대한 전조현상(前兆現像)이 지구촌 곳에

서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유행병처럼 만연하고 있는 지구온난화현상이 바로 지구의 종말을 가리키는 것이며

예수가 재림할 징조라는 거지요.

이들 역시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 공언하고 있으며 타종교나 종파들은 모두 지

옥 갈 사람들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점에서는 나 홀로목사역시 자유롭다 말할 처지가 아닙니다.

과거 나 홀로목사역시 오랜 세월 채식을 한지라 다른 사람들과 피가 다르다 여기고 있었으

며 채식하지 않는 사람들은 높은 영적세계에 갈 수 없다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요.

실지로 나 홀로목사와 함께하던 많은 이들 가운데는 수술을 받은 이가 있습니다.

그 당시 아주 어린아이였는데 채식단체의 많은 이들이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헌혈에 동참

했으며 그 결과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가 채식하는 사람들의 피는 깨끗해서 육식하는 사람들의 피를 수혈해서는

안 된다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아이도 채식단체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으며 그 아이에게 헌혈해준 많은

이들 또한 단체를 떠났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러한 믿음을 가지지 않고 있으며 또 다른 믿음을 가지게 되었거나 혼자만

의 인식세계를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토록 절박했던 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좀 더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지요.

많은 이들이 단체를 떠난 이들을 향해 영적퇴보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 홀

로목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절대적인 진리의 길이라는 것이 정해져있다고 한다면 그 길만 들어서면 모두가 깨달음

을 얻거나 하나님과 하나 된 영광을 얻어야 마땅하겠지만 이 세상 그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습니다.

나 홀로목사가 이십년 동안 속해져있는 채식단체도 마찬가지이며 십 수 년 전부터 다니던

교회도 그러하며 삼십년 전에 다니던 성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곳에서도 진리를 발견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며 깨닫지 못하

는 사람 또한 있다는 겁니다.

진리를 발견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는 거지요.

많은 종교단체에서 사람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경전의 말씀들을 인용하여 믿음을 굳건히 하

라 가르치지만 결국 그 믿음이라는 것이 잘못되면 자신의 발목을 묶는 쇠사슬이 될 수도 있

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근본원인은 자신 안에 내재한 신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며 믿음의

대상이 외적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영육이 하나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구도자들은 영육의 하나 됨을 인식함에 있어 신통을 논합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면 없던 능력이 생겨 세상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리거나 못해도 타인들보다

세상 것을 더 많이 차지할 수 있다 여기고 있지요.

그러나 성경을 통해 확인해본결과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사탄의 일로 규정짓고 과감하게 뿌리치셨지요.(마태복

4)

이러한 증거가 성경곳곳에 산재해있지만 성경을 통해 물질을 취하려는 자들은 베드로의 믿

음을 빙자하여 자신들에게 충성을 맹세케 만듭니다.

영적인 체험이라고는 없는 이들이 영적인 것을 가르칠 수밖에 없는 것은 예수님생존당시보

다 훨씬 전부터 있어온 일이기에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그러

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 홀로목사가 성경을 통해 알아본 결과 영과 육은 동일한 몸 안에 들어앉아있는 또 다른

영역의 세계에 속해져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좀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성경을 통해 알았다기보다 영적인

체험을 통해 알았으며 성경을 통해 확인을 했지요.

세상의 수많은 종교단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자신들의 교리야말로 참된 진리를 말한다

고 하며 자신이 믿고 따르는 스승만이 구원자라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오시는 여러분들이 확인해본결과 성경속의 많은 이들이 하나님과 하나 된 구

원자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만이 유일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여러분 자신들조차 하나님의 어린양이 될

수 있음도 알았습니다.

혹시 여러분가정에 종교에만 심취해서 사회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까?

만약 그런 분들이 있다면 그 가정은 그야말로 축복받은 가정입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말려야 할일이 아니라 도움을 주어야 마땅하며

그가 바로 그 가정의 어린양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불교에는 7대가 복을 지어야 스님한사람이 난다는 말이 있지요.

그만큼 영적인 길을 걸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며 깨달음을 얻기는 더욱더 어렵다는 말입

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모세가 말한 흠이 없는 어린양수컷이란 동정남(童貞男)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아(眞我)인 성령을 깨달아 아는 인자(人子)를 말합니다.

동정의 몸으로서 스님이 되거나 신부님이 되는 것은 보다 쉽게 진아를 깨닫기 위한 방법의

일환(一環)일 뿐 그자체가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절대적인 조건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일에 대해 언급한 구절이 있지요.

다시 한 번 더 되새기는 의미로 보고 넘어가겠습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24:40)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

니라(24:41)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24:42)

 

이 내용은 인자가 임하게 되는 과정을 말해놓은 것입니다.

성별(性別)의 구분도 동정의 여부(與否)도 필요 없이 불현 듯이 성령을 깨닫게 된다는 거지요.

이 말씀을 어떤 목사님은 예수님이 임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고 하시는데 만약 그럴 경우 2

천년동안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는 말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육신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자 성령이신 예수님이 임하는 것이지요.

만약 이 구절을 육신의 예수님이 임하게 된다 해석하게 된다면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엉

뚱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2천년동안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는 말이 되고 맙니다.

이런 가르침이 과연 옳은 가르침이라 할 수 있을는지 여러분들 각자가 생각해보시기바랍니

.

2천년동안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이 하나도 없는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

한 일이며 이런 믿음아래 있는 사람이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을는지요.

자신은 물론 타인들까지 영생의 문턱도 못 넘어 가게 막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다면

그들의 앞날이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나 홀로목사가 감히 말 하건데 성경이 세상에 알려진 이래로 성령을 깨달아 하나님과 하나

된 존재들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습니다.

바꾸어서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이 재림하시지 않고는 구원이 이루어 질수 없다는 사람들만

빼고 모두가 하나님이 계신 영생의 하늘로 들어 올림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말을 하다 보니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무리 옳다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개인의 인식일 뿐이라는 사

실을 나 자신이 알고 있기에 어떨 때는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느끼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 홀로목사가 주장하는 하는바와 상반되는 교리를 받아들이는 많은 이들은 틀림없이 나 홀

로목사를 비난할 것이 분명합니다.

자신이 지금껏 알고 있던 서울의 모습과 나 홀로목사가 말하는 서울의 전경(全景)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나 홀로목사로서도 이렇게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직접 경험해보고 느낀 바를 숨기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말하듯 예수찬양에만 열을 올린다면

무슨 이득이 있을는지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살아계신다고 하면 자신을 무조건 찬양하고 이방인은 모두 지옥 보내는 것을

원하실까요?

아니면 자신에게 다소(多少) 불이익이 돌아오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것을 옳다하실까요?

돈을 교회에다 바쳐 교세를 확장하고 목사재산을 늘려주는 공로를 인정받아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 돈 한 푼 받지 않고 전해주는 영생의 방법을 받아들여서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는

여러분 믿음에 달렸습니다.

부디 여러분들의 현명한 판단을 바라며 마태복음 26장을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내 사랑은 상사초사랑,

 

아무리 그리워도 볼 수가 없고

목메게 불러 봐도

대답조차 들을 수 없네.

 

해가 져야 달뜨듯이

잎이 져야 꽃이 피듯

내가 없어져야

당신이 살아 숨 쉴 수 있기에

 

매일같이 눈을 감고

숨을 가다듬으며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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