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적이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저 높은 하늘에 두고 있는 많은 이들을 위해 열(熱)과
성(誠)을 다해 성경을 파헤치는 나 홀로목사입니다.
이제 나 홀로목사가 몸을 담고 있는 건설현장이 완공을 앞두고 있는지라 갈 길이 바빠지고
있습니다.
지금 나 홀로목사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국방부호텔 완공 전에 마태복음의 완독을 계획했던
지라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인사말을 될 수 있으면 짧게 하려합니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기숙사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저녁시간 짬을 내어 성경연구
를 할 수 있었습니다만 앞으로의 거취(去就)가 불투명함으로 10월중에는 어떻게든 마태복음
을 완독해야만 하는 절박함이 있지요.
행여 인사말에 소홀한 점이 있거나 내용에 부실함이 있더라도 많은 양해(諒解)를 부탁드리
며 성경강해시간의 문을 열겠습니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마27:27)
Then the governor's soldiers took Jesus into the Praetorium and gathered the whole company of soldiers around him.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마27:28)
They stripped him and put a scarlet robe on him,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
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마27:29)
and then twisted together a crown of thorns and set it on his head. They put a staff in his right hand and knelt in front of him and mocked him. "Hail, king of the Jews!" they said.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마27:30)
They spit on him, and took the staff and struck him on the head again and again.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27:31)
After they had mocked him, they took off the robe and put his own clothes on him. Then they led him away to crucify him.
마태오가 기록한 이 내용은 예수님이 로마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수난과 고통을 당해야했나
하는 것을 말하기위해 기록한 내용이라 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뜻이 담겨있는데 예
수님께서 진정한 유대인(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 찬양)의 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
니다.
홍포는(a scarlet robe) 왕이 입는 옷으로 아무나 입을 수 없는 옷이며 가시관을 씌웠다는
말은 고난을 받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함이며 갈대를 오른손에 들었다는 말은 정의의 지
팡이 (put a staff in his right hand)를 뜻합니다.
시간관계상 번역에 관해 길게 말하지는 않겠지만 몇 가지를 짚어보자면 왜 지팡이(a staff)
를 갈대로 번역해야했는지 알 수가 없으며 유대 왕 만세(Hail, king of the Jews!)라고 해
야 할 것을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갈대가 선택받은 종을 의미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할지라도 이 내용으로 보자면 그
다지 연관성이 있다하기 어렵습니다.
마태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뭔가의 메시지를 전하려했는데 참된 그리스도는
물질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고난과 시련을 당한다는 것을 말하고자했던 겁니다.
총독의 군병들이란 세상의 권세를 움켜진 이들을 가리키며 그들이 얼마나 영적인일을 우습
게 여기며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구도자들의 행동을 비웃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마태오는 이
렇게 기록해 놓은 것이지요.
아무래도 마태복음만 봐서는 나 홀로목사의 말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요한복
음은 이일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요19:1)
Then Pilate took Jesus and had him flogged.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요19:)
The soldiers twisted together a crown of thorns and put it on his head. They
clothed him in a purple robe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요19:3)
and went up to him again and again, saying, "Hail, king of the Jews!" And they
struck him in the face.
여기까지는 마태복음과 비교하여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구절은 마태복음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보고난 후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
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요19:4)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요19:5)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
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요19:6)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
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요19:7)
예문을 올리고 보니 영화한편이 생각납니다.
크리스천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본적이 있는데 오늘 이 내용을 보고나니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심하게 맞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요한복음을 보더라도 예수님이 다소 비웃음을 받고 가벼운 손찌검은 당했을망정 살점이 떨
어져 나갈 만큼 혹독하게 얻어맞은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물론 요한복음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밝히려했
기에 이렇게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나 홀로목사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문으로 올린 요한복음4절을 보시면 빌라도가 예수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데 이와 같은 내용을 볼 때 이는 분명 요한이 의도적으로 기록한 것이 맞습니다.
6절을 보면 빌라도가 유대인들더러 데려가서 죽이라고 했으나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가 있는데 이는 분명 억지로 로마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하려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 것
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나 홀로목사의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니 함께 보겠습니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요19:8)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
하시는지라(요19:9)
and he went back inside the palace. "Where do you come from?" he asked Jesus,
but Jesus gave him no answer.
보시다시피 유대인들이 예수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다 말하자 빌라도가 엄청 두려
워했다했지요.
그리고 어디로부터 왔느냐(Where do you come from?) 물었다했는데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지 않았다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액면그대로 보자면 말이 되지 않지요.
왜냐하면 요한복음 18장에서 예수께서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어느 정도 밝혀놓았고 진
리에 대한 말씀도 했으며 빌라도역시 예수가 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내용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기위해 요한이 말해놓은 것이
며 이일을 통해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려했던 거지요.
그렇다면 어떤 교훈을 주려하는 것인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
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19:1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요19:11)
요한이 전해주고자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의 권세(權勢)를 가지고 빌라도가 뻐기고 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이지요.
이 말씀을 우리들은 아주 깊이 되새겨봐야 합니다.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부와 권력이 스스로가 득한 줄 알고 있지만 하나님(신)이 허락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요한이 말하고자한 가르침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었지요.
그런데 한 가지 아주 숙고해봐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11절의 예수님말씀 끝에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했는데 이는 과연 어떤 뜻일까요?
누군가 이스라엘사람들의 죄가 막중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 하는군요.
일반적으로 다들 그렇게 알기 쉽지만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가볍게 여기
는 구도자의 행태를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성령과 하나 된 예수를 물질세상의 권력자인 빌라도에게 넘긴 행위를 가리킨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세상 사람들)가 자신의 권력을 함부로 휘둘러 영적인면들을 우
습게 여기는 것도 죄가 되지만 영적인 길을 걸어가는 구도자(이스라엘백성, 오늘날의 성직
자들이나 소위 말하는 수행자, 등등)가 영의 것을 가볍게 여기고 권세(權勢)에 의존(依存)하
는 행위는 그 죄가 더욱 크다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들을 보면 나 홀로목사의 말이 이해되리라 생각됩니다.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
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
이다(요19:12)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
에 앉아 있더라(요19:13)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빌라도는 뭔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으며 죽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황제 가이사의 이름을 들먹이며 예수를 심판하라 다그칩니
다.
물질세상을 살아가려면 이 세상을 움직이는 왕의 말을 들어야하며 그 왕의 말을 거역하는
자는 반역하는 자라는 말이지요.
여기에서 우리들은 빌라도를 통해 스스로의 마음속을 들여다봐야합니다.
분명히 영적가르침을 들어보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불구하고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물질과 권력의 유혹에 굴복하고 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빌라도가 그러한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예수를 끌고나가서 재판 석에 앉았다는 말은 영적인면보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선
택을 했다는 거지요.
이렇게 해석하고 보니 요한이 참으로 지혜롭게 비유(比喩)해 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어떤 비유의 가르침이 있을지 궁금해지는군요.
함께 보시겠습니다.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
로다(요19:14)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
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
이 없나이다 하니(요19:15)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요19:16)
이제 우리들은 유월절이 가지는 의미가 뭐라는 것을 압니다.
이날이 정말 유월절의 준비일 이었는지 유월절 중이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며 예수
님께서 희생양이 되기 위해 준비했다는 것만이 중요하지요.
그런 맥락으로 육시란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지창조 기간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유대인들에게 너희 왕이라 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영적인왕이라는 말
입니다.
그리고 15절의 내용은 앞서 말한 대로 영적 길을 걸어가는 구도자(이스라엘백성과 대제사
장)들이 영적인왕(예수)를 선택하지 않고 물질세상의 왕(가이사)을 선택했음을 보여줍니다.
요한은 빌라도의 입을 통해 물질세상의 권세를 선택한 유대인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
고자 한 겁니다.
이렇게 해서 요한이 전해주고자 했던 가르침을 어느 정도 알았으니 또다시 마태복음으로 돌
아가 십자가를 지게 된 예수님의 행적을 뒤따라 가보겠습니다.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
더라(마27:32)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마27:33)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
니하시더라(마27:34)
여러분들은 아마도 영화를 통해 이 장면을 많이 보았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가다 몇 번이나 넘어진 끝에 누군가가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갔
으며 누군가는 물을 마시게 하였지요.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모두가 픽션(fiction )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역사를 살펴보면 십자가를 죄인이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형이 집행되는
장소에 미리 주 기둥을 만들어놓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소상하게 말하자면 십자가형에 사용되는 나무는 주로 올리브나무가 사용되었고 높
이가 그리 높지 않은 나무를 사용했습니다.
영화에서와 같이 높은 나무에 반듯한 십자가가 아니라 살아있는 올리브 나무를 다듬어서 십
자가형에 사용했지요.
경우에 따라서 사람이 걸터앉을 수 있는 엉덩이 받침대도 있었으며 발에도 받침목이 있었습
니다.
받침대가 있는 십자가형의 경우에는 살아있는 시간이 더욱 길어졌으며 받침대가 없는 경우
에는 조금 더 시간이 단축되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쇠막대기로 다리를 부러트리기도 했는데 이럴 경우 쉽게 숨을 거두었지요.
십자가형에도 여러 형태가 있었던 것 같으며 죄의 성질과 형량에 따라 방법을 달리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이 내용은 나 홀로목사가 사사로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어떤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스라엘의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자료를 취재(取材)를 통해 밝혀놓은 사실
입니다.
만약 의심스러우시다면 백과사전을 들추어봐도 십자가형에 대해 알 수가 있지요.
참고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십자가형은 고대 페르시아에서 먼저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탄생보다 무려 5백년이나 먼저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의 십자가형은 우리가 알고 있
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항문을 통해 등 쪽으로 나무를 통과하게 만들어 가로막대에 걸쳐두는 것이 초기의 십자가형
인데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었지요.
여기에 비하면 예수님시대의 십자가형은 아주 신사적이며 인간적인 사형집행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보면 32절의 내용은 십자가 전체를 진 것이 아니라 부목으로 쓸 여러
재료들을 지고 갔음이 짐작됩니다.
또한 34절에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게 했다했는데 이는 몰약이 섞인 포도주였습니다.
몰약은 그 당시 굉장히 비싼 약재였습니다.
이약은 상당한 진통효과가 있으며 방부제이기도합니다.
아마도 제자들 중에 누군가가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당하는 동안 고통을 덜어드리려고 마
시게 하려했던 모양인데 예수님께서 거부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 같은 말에 이의를 제기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마가복음을 보면 나 홀로목사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함께 확인하신 후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막15:22)
확인이 되었으니 다음구절로 넘어가도록 하지요.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마27:35)
거기 앉아 지키더라(마27:36)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마27:37)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마27:38)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마27:39)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마27:40)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마27:41)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
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마27:42)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
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마27:43)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마27:44)
이 내용을 액면 그대로 보면 그렇게 중요한 내용인 것 같지 않습니다만 요한복음을 보면 사
정이 많이 달라집니다.
우선 요한복음에서는 이와 동일한 장면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보고난 후 이야기를 잇겠
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
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요19:23)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
고(요19:24)
요한복음을 올린이유는 24절에서 말한 내용 때문인데 이는 시편을 인용한 내용입니다.
이야기전개상 아주 중요한 내용이니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시22:6)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시22:7)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시22:8)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
다(시22:9)
But thou art he that took me out of the womb: thou didst make me hope when I
was upon my mother's breasts.(KJV)
Yet you brought me out of the womb; you made me trust in you even at my
mother's breast.(NIV)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시22:10)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시22:11)
Do not be far from me, for trouble is near and there is no one to help.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시22:12)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시22:13)
Roaring lions tearing their prey open their mouths wide against me.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
았으며(시22:14)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시22:15)
My strength is dried up like a potsherd, and my tongue sticks to the roof of my
mouth; you lay me in the dust of death.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시22:16)
시편을 보고나니 요한복음보다는 마태복음이 이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합니다.
마태오는 다윗이 시편에 기록한 내용과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는 과정이 동일하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다윗과 예수님이 같은 반열에 오른 분이라는 것을 알리
고자 했던 거지요.
그렇다면 우리들이 시편을 해석해보면 자연스럽게 마태복음의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
리라 생각됩니다.
먼저 6절을 살펴보면 다윗은 자신을 벌레에 비유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여기에 대해 생각해보신적이 있습니까?
다윗이라면 이스라엘 역대 왕들 중 최고의 믿음을 가진 존재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멜기세덱
의 호칭을 받았고 오늘날의 이스라엘사람들조차 다윗을 최고의 왕으로 손꼽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왜 자신을 벌레에 비유했을까요?
이는 분명 다윗이 자신의 육신을 가리킨 것입니다.
육신의 한계점을 나타내보이기위해 자신의 육체를 벌레에 비유했으며 영혼과의 별개성(別個
性)을 보여주고자 했던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7절과 8절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며 머리를
흔든다했지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영혼을 볼 수 없으며 상대방의 육신만 본다는 것을 말하기위해 나를
보는 자는 모두 다 나를 보고 비웃는다했습니다.
사람들이 영의 세계를 모르는지라 깨달음을 얻은 이가 육신적으로 고통을 당하거나 물질적
으로 어려움에 처해진 모습을 보며 비웃는 모습을 말해놓았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를 비방한자들의 행태가 바로 이러했던 겁니다.
하지만 정말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고 영의세계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
는지 다윗은 9절에서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태어나게 만들었으며 엄마 젖을 먹을 때도 소망하게 만든다했으니 이 얼마나
큰 믿음인지요.
영역본 두 가지를 동시에 올린 것은 (NIV)에 담겨진 의미가 워낙 감동 깊어서 여러분과 공
유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비웃거나 비방할지라도 자신은 하나님이 태어나게 했다는 것을
믿는다 했습니다.(Yet you brought me out of the womb)
그뿐 아니라 어머니의 품속에서 젖을 먹을 때조차 하나님께서 믿음 안에 있게 만들어주었다
했지요.(you made me trust in you even at my mother's breast)
이러한 다윗의 믿음을 10절은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11절은 참으로 가슴 아픈 내용인데 이 세상에서 구도자가 살아가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영적인 길을 제대로 알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며 물질세상의 기준에 부합
하기 어렵다는 말이지요.
늘 주변과의 마찰로 인해 문제가 발생되는 까닭에 환난이 가까이 있다 했으며(trouble is
near) 하나님이 가까이 있어 달라(Do not be far from me)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12절에 기록된 바산의 힘센 소들은 이방인들(믿음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호시탐탐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구도자들을 실족하게 만들려 하는 것을 13절에서
사자로 표현했습니다.
이 내용은 정말 실제적인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기도 합니
다.
곳곳에서 유혹의 손길은 물론 실족하게 만드는 함정이 산재해있으며 조금만 틈을 주면 영혼
까지 흔들어 놓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구도자의 앞날에는 수없이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잡아먹으려고 입
을 벌리는 사자와 같다 했지요.
그리고 14절과 15절은 다윗의 믿음에 정도를 나타내주는 내용입니다.
자신의 의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이기에 몸이 물같이 쏟아져내렸다했고 뼈가 어그러졌으며
마음조차도 녹아내렸다했습니다.
또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다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겁니다.
질그릇이란 토기장이(하나님)가 만드는 그릇이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주장이 여지없이 깨
트려지는 것을 아는 까닭에 다윗은 이렇게 묘사한 것이지요.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는 말은 자신의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죽음의 진토속(in the
dust of death)이란 우주와의 합일을 뜻하는 말로 영혼의 자각을 말해줍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영원의 세계를 뜻하며 진토라는 말을 한 것은 하나님을 전체 우
주로 보고 다윗자신의 몸을 먼지하나로 보기 때문입니다.
다음 내용을 보면 나 홀로목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시22:17)
I can count all my bones; people stare and gloat over me.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시22:18)
They divide my garments among them and cast lots for my clothing.(NIV)
They part my garments among them, and cast lots upon my vesture.(KJV)
자신의 뼈를 모두 셀 수 있다는 말은 육신을 벗어나 영의 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물질을 통과하는 자유자재한 몸이 되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다윗을 겉모습만을 본다했습니다.
주목(注目)하여 보았지만(stare and gloat over me) 결국 볼 수 있는 것은 겉모습뿐이었기
에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뽑는다 했지요.
그런데 한 가지, 18절 내용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역본(NIV)는 속옷을 clothing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KJV)는 vesture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의복이라는 뜻 외에 씌우개라는 의미도 있으며 지상수확물(地上收穫物)이나 지상성육
물(地上成育物)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보면 18절 내용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은 사람(다윗이나 예수와 같은 성령과 하나
된 이)의 내면, 즉 영혼을 볼 수 없어 겉모습으로 판단을 한다는 말이며 물질적성취도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요한이 인용한 시편의 해석을 마쳤는데 이제 우리들은 다시 한 번 더 요한복음
19장 23절로 돌아가 봐야할 것 같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니 요한은 그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여겼는지 시편을 통해 알려주려
했으며 마태오 역시 마태복음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적인 가르침을 주려했음을 알 수 있습니
다.
오늘날 우리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2천 년 전 이스라엘사람들도 똑같이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영생을 얻는 것은 보다 쉬워진 듯합니다.
문제를 알고 나면 해결방법역시 나타나기 마련이라 했으니 이제 해결방법이 나타난 셈이고
오늘우리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이 다된 관계로 여기에서 쉬었다가 다음시간에 뵙도록 하
겠습니다.
입으로는 신을 믿는다하면서도
몸은 신을 따라가기보다
이세상의 것을 따르는 도다.
몸이 자신의 주인이 된 자의 영혼은
죽음 후에도 그 육신을 따라
땅에 묻힐 것이요
살아생전
자신의 신구의(身口意)를 관장하는 이가
신임을 아는 자의 영혼은
신과 하나 됨의 영광을 얻을지니
영원의 세계가
아래에도 있고
저 하늘 위에도 있음을
어리석은 백성은 알 길이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