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같지도 않은시

속삭이는 가을비.

배가번드 2022. 10. 28.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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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잠든 새벽 속삭이듯 내리는 빗소리가 나를 깨웠다.

 

온산을 물들이는 오색 잎사귀에 흩뿌려지는 빗줄기는

가을이 깊어짐을 알리고자 이른 새벽 나를 깨웠나보다.

 

 

동그라니 몸을 말고 앉아 대지에 뿌려지는 겨울전령들의 속삭임을 듣노라니

어느덧 여명이 다가온다.

 

 

물밀듯 밀려오던 적막한 외로움들이 해오름에 밀려 저 멀리 사라지고

또다시 활기찬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별반 달라질 것도 없는 하루를 억지로 즐거운 척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통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자체가 신통스럽기 그지없기에

세상은 살만한가보다.

 

 

이제 곧 비 내린 오후 산책길은 나에게 지금과는 별스럽게 다른 길을 선사할 것이다.

 

길가에 흩어져 내려온 낙엽들은 센티맨탈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며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기회를 주겠지.

 

 

이웃집 정원 감나무에는 감이 많이도 달렸건만

딸 사람이 없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풍경이 내 눈에 들어오고

산책길 뒷자락에 서있는 밤나무에는 알을 떨군 밤송이 몇 개 만이 입을 벌리고 있을 것이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감꽃이 피었던 것 같은데…….

언제 적인가 밤꽃 냄새를 맡은 것 같은데 하며 걸었던 길을

그제도, 이제도, 다가올 이제도 또다시 걸을 것이 분명하다.

 

 

비 내리는 날이나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울 때까지

모락산을 돌아오는 나의 산책길은 이어질 것이며

동그라니 몸을 말고 앉아 세상을 바라보는 관조자가 되는 시간 속에서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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