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형제와 화목한후 예물을 드리라.

배가번드 2022. 12. 21.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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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의 길을 걷다보면 동료들과 다툼을 벌이거나 반목(反目)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함께 구도의 길을 걷는 사람을 일러 동료수행자라 해서 동수(同修)라고 부르기도 하고 불교에서는 도반(道伴)이라 부르지요.

기독교에서는 형제자매라고 부르며 서양사회에서는 시스터, 브라더하고 호칭합니다.

중국에서는 사형, 사저라고 하는데 이모두가 하나님의 다 같은 자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폭넓게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 인연을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는 동수나 다름이 없다 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러한 인간관계 속에서는 언제나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게 되며 마찰이 일어납니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은 일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성경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마5:23)

Therefore if thou bring thy gift to the altar, and there rememberest that thy brother hath ought against thee;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4)

Leave there thy gift before the altar, and go thy way; first be reconciled to thy brother, and then come and offer thy gift.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마5:25)

Agree with thine adversary quickly, whiles thou art in the way with him; lest at any time the adversary deliver thee to the judge, and the judge deliver thee to the officer, and thou be cast into prison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5:26)

Verily I say unto thee, Thou shalt by no means come out thence, till thou hast paid the uttermost farthing.

 

예물을 제단에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묵상을 통해 하나님(성령)을 만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깊은 명상에 잠기게 되면 성령을 만나게 되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평상시 누군가 심하게 다투었을 경우 깊은 내면의 세계로 진입할 수가 없으며 기도나 눈을 감는 것조차 어렵지요.

바로 이러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럴 때는 기도나 명상을 잠시 접어두고 다투었던 사람과 화해를 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는 급히 합의 하라 했습니다.(Agree with thine adversary quickly)

송사하는 자는 나와 마찰을 일으켜 기도를 못할 정도로 다툼을 벌인 상대방을 가리킵니다.

구태여 송사하는 자라 번역한 것은 이 사람과 합의를 못할 경우 둘 다 하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심판의 하늘에 올라 잘잘못을 따지게 된다는 것을 이렇게 묘사한 겁니다.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은 성령을 깨닫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묵상이나 깊은 기도를 통해 성령을 만나 영생을 얻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령은 흠결이 없이 순수한 영혼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우리의 진정한 영혼인 성령은 해와 같아서 약간의 어둠조차 허용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 눈을 감고 명상을 할 수도 없고 두 손 모아 기도할 수도 없는 거지요.

그러므로 마찰을 일으키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동안 화해를 해야 합니다.

화해하지 못한 채로 생을 마감하게 되면 윤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됨으로 울타리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 했습니다.(no means come out thence, till thou hast paid the uttermost farthing)

사화(私和)는 원한을 풀고 서로 화평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서로 합의를 통해 잘못을 해소시키지 못한다면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사화하지 못한다고 해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영생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러한 일에 대해 알아야하며 실천을 해야 됩니다.

성령은 곧 빛이며 빛은 한 점의 어둠이 없는지라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지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Jesus saith unto him,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no man cometh unto the Father, but by me.

 

여기에서의 예수는 육신의 예수가 아니라 빛이자 성령이신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영생을 얻고 싶은 이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