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

배가번드 2022. 12. 23.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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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저주가 하나라는 말의 진정한 뜻은 성령이 깨어났다는 말입니다.

인식의 확장으로 인해 음양의 조화를 완벽히 이해했다는 말로서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을 이해한다면 성경에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이유를 알게 됩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창32:24)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창32:25)

And when he saw that he prevailed not against him, he touched the hollow of his thigh; and the hollow of Jacob's thigh was out of joint, as he wrestled with him.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2:26)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32:28)

And he said, Thy name shall be called no more Jacob, but Israel: for as a prince hast thou power with God and with men, and hast prevailed.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창32:29)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창32:30)

And Jacob called the name of the place Peniel: for I have seen God face to face, and my life is preserved.

 

많은 이들이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하여 이긴 후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이스라엘 뜻: 하나님과 싸우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다)

결과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지만 속 깊이 들여다보면 뜻밖의 뜻이 담겨있음을 알게 됩니다.

24절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맞으며 25절에 하나님과 씨름을 한 끝에 환도뼈가 위골된 점은 다시 해석해야 합니다.

액면대로 묘사하면 환도뼈가 아니라 야곱의 사타구니를 친 것으로(he touched the hollow of his thigh) 생식기를 빼버린 겁니다.(Jacob's thigh was out of joint)

물론 의역이라 이럴 수 있다 하겠지만 의역을 해도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되며 생식기능과는 별개의 존재가 된 것으로 묘사해야 마땅하지요.

즉, 인간의 생존방식과는 별개의 존재가 되었다는 뜻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고관절이 탈골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와 씨름을 해서 이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당연히 깊은 뜻이 담겨있으며 영적인 해석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 장면은 야곱의 내면세계에서 육과영이 전쟁을 벌인 것으로 봐야하는 겁니다.

따라서 26절에 날이 새어 가려하라 한 것은 빛이신 하나님이 영의 세계로 떠나려는 장면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깨어나면 하늘로 올라가야 마땅하다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야곱이 축복을 주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겠다했는데 이 말인즉슨 육신인 야곱 안에 하나님을 담고 살아간다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아직 주어진 역할을 마치지 않았음으로 인해 세상에 육신으로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육신으로 살아가되 하나님이신 성령이 깨어난 채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향한 구도의 길을 걸어갈 때 반드시 시험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것은 악마가 우리를 영생을 얻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실은 우리를 성장하게 만드는 시험과 같은 거지요.

스파링상대가 강할수록 내 실력이 향상되어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것과 같이 시험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우리의 믿음도 강해지며 종국에는 하나님과 하나 되어 영생을 얻습니다.

이러한 일을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한 것으로 비유한 겁니다.

그러므로 알고 보면 우리에게 시험을 주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하나님이며 그가 우리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악마의 가면을 쓰고 온갖 어려움을 선사하는 거지요.

그래서 악마의 저주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한 것이며 축복과 저주를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은 깨달음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성령이 깨어났다면 이런 일은 아주 기본적인 일이 됩니다.

성령이신 하나님이 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 의미로 29절에서 야곱이 이름을 물었을 때 어찌하여 이름을 묻느냐 한 것은 사람의 몸이 아니라 영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름을 가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성경을 읽어본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하며 여호와, 엘로힘을 예로 듭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뜻은 “나는 바로 나다, 나는 있는 자 그로다” 이며 엘로힘의 뜻은 “능력 있는 자”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야곱이 씨름한 상대는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 구도자가 직면하는 온간 어려움을 비유로서 나타냈음을 인식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30절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대면하여 생명이 보전되었다 했습니다.(브니엘의 뜻은 “하나님의 얼굴”)

성경에 이르기를 하나님을 보고 산자가 없다한 것과 동일한 뜻이지요.

하나님을 보게 되면 더 이상 육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며 야곱이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말한 것은 영생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과연 이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영생을 향한 여정에서 시험이 없다면 좋아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걷는 길을 의심 해봐야하며 시험이 주어질 때 주저앉으면 성장이 멈추었다는 점을 알아야합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순간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천만번을 죽고 깨어나도 나에게 축복과 저주는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