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속담을 보면 현실과 맞지 않는 말들이 있습니다.
구도의 길을 걷기 전에 내가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말 중에 하나가 때린 놈은 다리를 오므리고 자고 맞은 놈은 다리를 펴고 잔다는 말이었지요.
맞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억울하게 두들겨 맞고 나면 밤잠이 안 올 정도로 분합니다.
그렇지만 때려놓고서는 잠이 잘 옵니다.
나 같은 경우에는 혹시라도 상대방이 심하게 다치지나 않았을까 걱정을 했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다들 잘 자더라는 겁니다.
이러한 비유는 조금 극단적이라 마음에 와 닿지 않겠지만 예를 달리해보면 우리의 마음상태가 어떠한지 정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억울한 말을 들었을 때는 밤잠을 설쳐가면서 고민을 하고 상대방을 미워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받을만한 말을 했을 경우 밤잠을 설치기는커녕 잘 잡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자신의 잘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말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시에는 화가 나서 앞뒤분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처 자신의 잘못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본인이 내뱉은 말에 상대방이 상처를 받을 수 있겠다 생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종교를 통한 신앙생활이 자신의 삶에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결코 이렇게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이유로 육조혜능은 좌선(坐禪)에 대해 상세하게 말해놓았지요.
좌(坐)라 함은 밖으로 혼란스러움을 잠재우고 앉는 것이 좌요.
선(禪)이라 함은 남의 잘못을 보기보다 자신의 잘못을 보는 것이다.
똑같은 가르침이 성경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마5:23)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4
)Leave there thy gift before the altar, and go thy way; first be reconciled to thy brother, and then come and offer thy gift.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마5:25)
Agree with thine adversary quickly, whiles thou art in the way with him; lest at any time the adversary deliver thee to the judge, and the judge deliver thee to the officer, and thou be cast into prison.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5:26)
Verily I say unto thee, Thou shalt by no means come out thence, till thou hast paid the uttermost farthing.
예물을 제단에 드린다는 말은 성전에서 기도를 드린다는 뜻으로서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을 가리킵니다.
성전이 우리자신의 몸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가장 큰 제사는 자신을 봉헌 물로 바치는 것이며 내재한 하나님(성령)과 만나는 일이지요.
묵상을 해본사람들은 알지만 눈을 감고 내면(성전)으로 깊이 들어가려고 할 때 만약 누군가와 다툰 일이 있으면 눈을 감기가 어려울정도로 괴롭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해 23절은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만약 누군가와 다투고 그 일이 내가 기도하는데 영향을 미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합니다.(24절)
명상과 기도가 안 될 정도로 힘이 든다면 내가 잘못한 것이 맞으며 사과를 해야 하는 거지요.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인과의 세상을 넘어서기 위해서입니다.
물질세상을 넘어 영생의 하늘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일은 필수라 할 수 있습니다.
시시비비를 따진다는 것은 선악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이며 심판의 하늘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25절에서 상대방에게 급하게 동의하라 말해 놓은 거지요.(agree with thine adversary quickly)
다툼을 벌인다는 것은 서로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기에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동조하고 합의를 한다는 것은 옳고 그름이 없음을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선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시비를 따지지 않을 만큼 성숙한 영혼이라면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요.
내가 만약 그런 경지에 이르렀는데도 불구하고 명상과 기도가 안 된다면 상대방이 나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았음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과를 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동조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상대방을 위해서이며 앞선자의 사랑이 드러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적용될 말이라 할 수 있지요.
목적지가 다른 사람들은 이런 말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이런 점을 이용해서 믿는 사람들을 시험하려 듭니다.
너희가 정말 예수님제자라면 오른쪽 뺨을 맞더라도 왼쪽 뺨을 내밀어야하지 않느냐를 말하며 조롱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와 같은 길을 가는 동안(thou art in the way with him)이라 기록해 놓은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길을 가다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모른다 할지라도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은 압니다.
그래서 오른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내밀지는 못하더라도 같이 맞대응을 하지는 않게 됩니다.
내가 두들겨 맞은데 대해 시비를 가리기보다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원인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거지요.
이렇게 되면 인과로부터 자유로워져 영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겁니다.
호리라도 갚지 못하면 결단코 거기서 나올 수 없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게 된다는 말입니다.(Thou shalt by no means come out thence till thou hast paid the uttermost farthing)
따라서 맞은 놈이 발을 뻗고 잔다는 것은 영의 세계를 아는 사람이 하는 말이자 영생(영원한 해탈)을 예약 받았다는 말이며 때린 놈이 발을 오그리고 잔다는 말은 세세생생 윤회를 거듭하며 두들겨 맞을 것이 예정되어있음을 뜻합니다.
발을 펴고 잠들고 싶은 이들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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