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矛盾)이라는 말의 유래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창과 방패를 파는 사람이 창을 들어 말하길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뚫을 수 있다 하고 방패를 들고는 세상의 그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다고 선전하는 바람에 이런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된다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일입니다.
문자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 말을 접하는 순간 창도 방패도 완전하지 않고 장사치가 거짓말을 한다고 여기겠지만 속뜻을 헤아리는 사람은 이 사람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장사치의 거짓말을 이해한다는 말이 아니라 창도 방패도 어떤 사람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완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무적의 창과 방패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믿음과 역량에 달렸기 때문에 장사치가 거짓말을 했다고 볼 수 없는 겁니다.
성경은 이런 일에 대해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마17:18)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마17:19)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없음)(마17:21)
Howbeit this kind goeth not out but by prayer and fasting.
위 내용은 간질병 환자를 낫게 하신 예수께서 하신 말씀으로 몇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내용을 액면대로 받아들일 경우 심각한 모순점에 봉착(逢着)하게 됩니다.
믿음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20절에서 말했는데 21절에서 기도와 금식 외에는 간질병이 낫지 않는다 했기 때문입니다.
한글성경에는 없음으로 나오지만 영어성경은 21절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여겨지는지라 한글성경은 없음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속 깊은 뜻을 헤아려보면 이 내용은 지극히 영적인 내용이지요.
처음 간질 환자를 예수님 제자들에게 데려왔을 때는 서로 간에 믿음이 없었던 겁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자들이 아직 성령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창조의 영역인 영의 세계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성령이 어떠한 존재라는 것을 제자들이 알지 못했음으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지 못했음을 말해줍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겨자씨만한 믿음은 믿음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가르쳐주고 있는 거지요.
성령은 물질세상과는 별개의 존재로서 제한된 시공간을 넘어선 무한한 영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은 창조의 영역에 있는 하나님과 같아서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을 비유한 겁니다.
물리적으로 보게 되면 말도 안 되겠지만 창조의 영역인 영의 세계에서는 동서남북이 따로 있지 않으며 생각만 해도 저절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비유한거지요.
그래서 21절에서 이런 유의 병은 금식이나 기도를 해야 낫는다 했습니다.
밥을 굶으라는 말이 아니라 성령은 먹는 것과는 별개의 존재라는 뜻이며 그에게 기도를 해야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성령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한다는 겁니다.
예전에 이런 일을 목격한 일이 있습니다.
어떤 간질병 환자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영적으로 고양된 이에게 갔는데 함께 차를 마시는 동안 병이 나았던 거지요.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인지라 환자의 어머니는 그이에게 데려가면 자식의 병이 나을 수도 있겠다 싶어 데리고 간 것인데 기적이 일어났고 병이 나았던 겁니다.
그러나 그날이후 성령에 대해 알기보다는 우상숭배의 길을 걷는지라 병이 재발하고 말았습니다.
진정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더라면 그가 하는 말의 속뜻을 살펴야 했는데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상숭배에 빠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겁니다.
그저 병을 낫게 한 것에 대한 고마움만 가졌을 뿐 믿음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그가 병을 낫게 할 거라 믿었으니 그 믿음에 따라 병이 치유가 되었지만 정작 병이 낫게 되자 처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앙심으로 돌아갔던 거지요.
수십 년 동안 종교를 가지고 믿음생활을 했지만 병이 낫지 않았는데 누군가를 만나 병이 나았다면 믿음을 달리해야 마땅합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병이 낫고 나자 수십 년을 믿었던 종교생활을 고집하여 또다시 우상숭배의 길로 돌아섰던 겁니다.
이것이 바로 겨자씨만한 성령이 심어졌을 때 어떤 믿음을 가져야하는가를 보여주는 일입니다.
성령을 통해 이심전심이 이루어졌으면 성령을 키우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거지요.
본인의 내면에 성령이 있음을 아는데 어디에서 누구를 숭배한다는 말입니까.
성경을 통해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이 들어야할 말을 남겼습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3)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24:24)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마24:25)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6)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
For as the lightning cometh out of the east, and shineth even unto the west; so shall also the coming of the Son of man be.
일단 성령이 내재함을 알았다면 외부에서 신을 찾는 행위는 멈춰야 합니다.
기적과 표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려야하며 내모든 행사를 성령이 주관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는 겁니다.
성령은 빛이신지라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듯(the lightning cometh out of the east) 내면의 빛을 보았을 때 진정한 인자가 된다는 거지요.(the coming of the Son of man be)
그렇지만 내재한 성령을 만나지 못했다면 죽으라고 성령을 만난사람을 찾아야하고 찾았으면 따라가야 됩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눅11:9)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눅11:10)
열심히 구하면 반드시 주어집니다.
그렇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그 손을 놓아버릴 겁니다.
성령을 따라갈 사람들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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