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식인의 풍습이 사라진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습니다.
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뒷골목시장에서는 인육(人肉)탕을 팔았다고 합니다.
고단백 스테미너 식품이라 환자들 사이에서 많이 먹혔다고 하지요.
인육가운데 가장 비싼 것이 백인 탕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입니다.
처음에는 치료목적으로 먹다가 인육에 중독이 되면 습관적으로 먹게 된다고 합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중국의 암시장에서는 인육캡슐이 지금도 팔리고 있습니다.
우 원춘 토막살인 사건은 2012년 당시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이었고 이 사건을 밀착취재 하는 과정에서 실지로 중국에서 인육캡슐이 판매되는 현장이 방송을 통해 알려진 적이 있었는데 중국정부의 강력한 반발에 막혀 취재를 더 이상 못하고 사건의 진상은 끝내 밝히지 못했지요.
그런데 그 당시 중국 상인들의 말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사람의 몸에 사람고기만큼 도움을 주는 것은 없다는 논리였고 죽은 사람의 사체를 이용하는 것이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조차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 태반을 먹는다는 말이 있었음을 볼 때 인육의 습관이 먼 나라 이웃에서만 일어난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아마 사람을 잡아먹는 것과 사체일부를 먹거나 태반을 먹는 것이 같지 않다 말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인육을 식용한다는 점에서는 오십보백보입니다.
아프리카 뿐 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미개한 종족이나 남미아마존의 부족일부는 최근까지도 식인의 풍습이 전해 내려온다고 하며 중국에서조차 인육만두를 팔았다는 역사적 사실도 있고 보면 인류역사에 있어 식인풍습은 그렇게 오래전의 일도 아닌 겁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버마 전선에서 오래근무하신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동료를 잡아먹어가면서 생존했다고 하며 북한에서 300만 명의 인민이 아사했을 때 사람의 사체를 먹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선조가 떠난 한양 땅에서는 자식을 잡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하니 사람이 극한 상황에 다다르면 식인을 하기 마련이며 이런 일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의 식인습관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견해를 가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창1:29)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1:30)
창세기 어디를 봐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짐승이나 물고기를 잡아먹으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먹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지요.
우리가 알기로 성경에 사자나 호랑이 등의 육식동물이 짐승을 잡아먹으라는 말은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잡아먹으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본능에 관한 문제이며 약육강식의 세상법칙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람과 짐승을 창조의 마지막인 여섯째 날에 만들고 나무의 열매와 푸른 풀을 음식으로 준 것은 영적 부활에 대한 상징적인 말로서 지켜야할 법도는 아닌 겁니다.
액면대로 보자면 사람이고 짐승이고 풀만 먹어야 마땅합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고 사람이 곧 하나님과 같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27절에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 한거지요.
하지만 이러한 창세기의 내용을 액면대로 해석해서 사람이고 짐승이고 풀만 먹어야한다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호랑이도 사자도 풀만 먹으며 더 이상 무엇인가를 잡아먹는 일을 하지 않는다 말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성경을 받아들이게 되면 영혼도 무엇인가를 먹어야한다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22:30)
죽은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마22:31)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마22:32)
무엇인가를 먹어야한다는 것은 아직도 완전한 영이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소화를 시킨다는 말이며 성장을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상황에서는 하나님이신 성령과 하나 되었다고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쉽게 생각해서 우리가 죽게 되면 무엇인가를 먹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하게 이런 인식에 도달하게 됩니다.
흔히 우리조상들이 제사를 모시는 것은 영혼이 있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위패를 모시고 절을 할 때 조상의 혼이 실지로 온다 생각하며 절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어서 영혼이 되어 영생의 하늘로 올라간다면 어떻게 해야 마땅할까요.
더 이상 이 세상에 오지 않는 영생을 얻었는데 제사를 모신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먹는 것으로 성령과 하나 된 영혼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며 철없는 아이들의 발상에 불과합니다.
육식을 하건 채식을 하건 성령과는 무관한 것이며 남의 식습관을 가지고 함부로 영혼을 심판한다면 본인이 심판받을 겁니다.
심판의 자리에서 내려설 영혼만 들으시오.
'짧은생각 긴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효도는 살아생전 하는 것이다. (1) | 2023.04.09 |
---|---|
그리스도=멜기세덱=성령. (1) | 2023.04.08 |
성경을 상고(詳考)해야 영생을 얻는다. (0) | 2023.04.06 |
내재(內在)하신 성령(聖靈)을 따르라. (0) | 2023.04.05 |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이가 살았다. (0) | 2023.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