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영생을 상속받는다?

배가번드 2023. 5. 8.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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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세계를 말하다 보면 전생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번생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바꿔가며 세세생생 산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서는 영의 세계를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몸이 육신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돌아간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생명이 다했다는 것인데 육신이 전부라고 한다면 생명이 끝나는 순간 모든 것이 소멸되어야합니다.

그렇지만 죽었다 해도 육신은 그대로 남아있으니 떠난 것은 영혼이며 죽음이란 영혼이 육신을 버리고 떠난 상태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영혼의 세계가 따로 있게 되는 것이며 온 곳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게 되지요.

그러나 영혼이라 해서 다 같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만약 영혼이 같다고 한다면 모두가 한곳으로만 가야 할 것인데 어떤 영혼은 지옥에 떨어지고 어떤 영혼은 천국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삼라만상을 짓고 숨결을 불어넣었다 했으니 생물 모두는 하나님의 동일한 숨결을 담고 있는 겁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것이 헛됨이로다(전3:19)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3:21)

 

만약 하나님의 숨결(성령, 신성)이 사람에게만 있고 짐승이나 다른 생물에는 없다면 성경의 이 말씀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동일한 호흡)

그렇다면 우리는 또다시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하나님의 숨결이 모든 생물에 담겨있는데 왜 사람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간다 했을까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숨결은 모든 생물에 공히 담겨있지만 영혼이 다르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즉, 영혼과 성령은 별개의 존재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시110:1)

The LORD said unto my Lord, Sit thou at my right hand, until I make thine enemies thy footstool.

 

The LORD는 성령이신 하나님이며 my Lord는 다윗의 영혼이지요.

다윗은 자신의 영혼과 성령과의 관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점은 네 원수로 발등상 삼는다는 대목입니다.

원수에 해당하는 enemies는 적이라는 뜻도 있지만 장애물이라는 뜻도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마주하는 모든 역경이나 어려움들이 이러한 장애물이라 할 수 있는 겁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시련들을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라 여기며 이겨내게 되면 그자체가 우리영혼을 높이 올려주는 받침대가 된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다윗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약간의 어려움만 닥쳐도 상대방을 향해 저주를 퍼붓거나 신을 원망하는 것이 사람이기에 성령과 하나 되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지금 예문으로 올린 시편은 다윗이 멜기세덱의(義의 왕) 등급에 오른 일을 기록한 것으로 우리가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얻어맞거나 돈을 빌려주었다가 떼였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욕을 하거나 저주를 퍼붓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신 성령의 역사하심을 아는 사람의 경우에는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으로 받아들입니다.

성령이신 하나님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를 징계했다고 여기거나 받아야할 과보를 돌려받는다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결론적인 생각으로 무조건 받아들인다는 말은 아닙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난후에 받아들이는 최종적인 인식이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령이 드러났다면 자신의 것을 되찾기 위해 과한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습니다.

조금 비약적인 비유이긴 하지만 이러한 일을 영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전생에 내가 누군가에게 빚을 졌기에 이생에서 돈을 떼이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영생의 하늘에 오를 사람에게는 당연하게 주어질 것이며 윤회를 해야 할 사람은 끝까지 자신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할겁니다.

상대방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 주어야한다 여기며 자신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게 될 거라는 거지요.

아마도 성경을 아는 이들은 윤회를 인정하지 않겠지만 예수님도 윤회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막10:29)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30)

But he shall receive an hundredfold now in this time, houses, and brethren, and sisters, and mothers, and children, and lands, with persecutions; and in the world to come eternal life.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10:31)

But many that are first shall be last; and the last first.

 

 

보다시피 이번생과(in this time) 다음 생을(in the world to come)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목적(my sake)과 복음을 위하여(the gospel's)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이는 이생에서 물질로 돌려받을 수도 있고 영생으로 돌려받을 수도 있다고 했지요.

예수님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만드는 일이니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30절에 영생을 받지 못할 사람이 없다 했지만 31절을 보게 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수도 있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있다는 것은 이번 생에서 영생을 얻게 될 수도 있고 다음 생에서 얻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라 해서 같을 수가 없으며 성령을 깨닫게 되면 인자라 칭함을 받고 영생의 하늘에 오를 것이고 짐승처럼 자신의 것을 쟁취하기위해 남들과 다투기를 즐겨하면 짐승의 혼과 같이 땅으로 내려갈 겁니다.

결국 우리가 확인하지는 못하지만 많은 생을 통해 세상을 두루 경험한 영혼은 이번 생을 마지막으로 영생의 하늘로 돌아갈 것이며 아직 경험이 더 필요한 영혼은 세상을 다시경험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할 것은 아무리 윤회를 많이 한다 해도 영의 세계에서는 찰나에 불과하다는 거지요.

이미 모든 것들이 그 안에 있으며 그 품을 벗어나는 일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와 같이 성령을 드러낸 분을 믿고 따르면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게 됩니다.

 

 

오래된 영혼들은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