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어린양과 목자는 둘이 아니다.

배가번드 2023. 11. 10.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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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나운 개라도 먹을 것을 던져주면 받아먹습니다.

그래서 개 도둑들이 고기에다 독약을 싸서 담벼락 너머로 던져줍니다.

개가 먹고 나서 죽으면 담을 넘어 들어와 개를 가지고 가서 보신탕집에다 팔아넘기는 겁니다.

내가 중국살 때 실지로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있지요.

밤에 개가 워낙 심하게 짖어대는지라 후레쉬를 들고 나와 살펴보니 고기 안에 캡슐을 담아 실로 동여맨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개였다면 받아먹고 죽었을 것인데 워낙 영리한 개였고 나와 인연이 있는 개다보니 먹지 않고 나에게 이런 사실을 알린 겁니다.

그 당시 성경을 들여다보기 시작할 때였던 만큼 하나님의 가호(加護)가 개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경을 통해 영생을 얻을 수 있노라 기록한 내용 따라 매일같이 성경을 상고(相考)하며 살고 있었으니 성령의 보호가 작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깁니다.

이렇듯 개조차 하나님이 보호하시는데 성령이 드러나 하나님과 하나 되신 예수님을 믿는 이에게 하늘의 영광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요10:26)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And I give unto them eternal life; and they shall never perish, neither shall any man pluck them out of my hand.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9)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10:30)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요10:31)

 

이 내용은 예수님을 공격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유다의 뜻이“ 찬송, 찬양”임을 볼 때 유대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들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해 성령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진정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들은 성령이 드러난 사람을 알아보기 마련이며 이를 모른다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성령이 드러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성령이 깨어날 시기가 된 사람들이라는 뜻이기에 예수님도 그들을 알고 그들 또한 예수를 따른다고 합니다.(27절)

이 말씀인즉 2천 년 전의 예수가 되살아난다는 말이 아니라 보내신다는 보혜사가 자신 안에서 되살아난 이시대의 목자를 뜻하는 거지요.

이 내용을 액면대로 보면 마치 양과 목동이 따로 인 듯이 보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스승과 제자 사이를 설명하는 것일 뿐 어린 양과 목자는 둘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가르침을 받기 위해 목자의 지도아래 들어가지만 이는 육신이 아니라 내재한 성령이 그를 목자에게로 인도하는 겁니다.

즉, 어린양은 성령을 뜻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하지요.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이런 사람이 영생을 주고 영원히 멸망하지 않게 하며 하나님의 손에서 뺏어가지 못하게 한다 말하고 있습니다.(28절)

성령이 드러나신 예수님과 같은 이를 따른다는 것은 자신역시 하나님이신 성령과 하나 되는 것이고 영생을 얻게 됨으로 믿음의 길에서 뽑아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은 성령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그가 바로 태초에 사람의 몸에 불어넣은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비록 습관에 길들여진 육신에 담겨 있는 탓에 처음에는 완전히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과 같이 성령이 드러난 분을 만나 가르침을 따름으로 인해 영적성장을 하게 된다는 거지요.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각자가 숱한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으며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예수와 같이 성령이 드러난 이를 만나게 된 겁니다.

이러한지라 한번 심어진 성령의 불꽃을 누구도 뺏어가지 못한다했습니다.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천지창조는 물론 삼라만상을 만드신 하나님과 하나 된 이를 분리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29절)

만유는 만물을 뜻하는 것인데 온 우주보다 크신 이와 하나 되었다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이 되었다는 뜻이지요.

즉, 성령이 드러나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30절)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한 것은 그들 수준으로서는 당연한 겁니다.

그들이 이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은 구약에 나오는 양에 대해 오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레16:8)

And Aaron shall cast lots upon the two goats; one lot for the LORD, and the other lot for the scapegoat.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레16:9)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16:10)

But the goat, on which the lot fell to be the scapegoat, shall be presented alive before the LORD, to make an atonement with him, and to let him go for a scapegoat into the wilderness.

 

양과 염소는 동일하게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입니다.

그래서 한글성경에는 아사셀이라 말하고 있지만 영어성경에는 희생양이라는 뜻의“scapegoat”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사셀은 보낸다는 뜻의 “아젤”과 염소라는 뜻의 “에즈”의 합성어이지요.

액면대로 보게 되면 염소를 두 마리 택하여 한 마리는 속죄 물로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광야로 보낸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그런 뜻이 아니라 육과 영을 구분지어 말하고 있는 겁니다.

육신은 습관에 의한 죄악덩어리 임으로 여호와 하나님 전에 제물로 바치고 성령은 또 다른 아사셀을(죄 사함이 필요한 이들) 위하여 광야로(이방인의 마음) 보내진다는 뜻입니다.

즉, 속죄양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세상으로 보내진다는 거지요.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성령이 드러난 이는 육신을 입고 살아가지만 육신은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며 성령이 주관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육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영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예수생존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장의 안수를 통해 사람의 죄를 염소나 양에게 전가한 후 한 마리는 잡아서 번제를 지내고 다른 한 마리는 광야에다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했던 것은 성경을 액면대로 보았기 때문으로 속뜻을 헤아리지 못했던 탓입니다.

이러한 점을 아신 예수님은 제대로 된 성경의 뜻을 가르쳐주기 위해 자신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려 희생양이 되어 본보기를 보인거지요.

그러나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희생양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이들이 이 세상에는 넘쳐납니다.

마치 구약을 믿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꿎은 양과 염소를 잡아 죽였듯이 오늘날도 예수의 육신부활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는 거지요.

도대체 이렇게 믿어서 어떻게 하나님이신 성령과 하나 되겠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저 달콤하게 던져지는 독약을 받아먹는 어리석은 개 마냥 구원이라 말하면 무조건 좋아하고 있는 꼴입니다.

자신의 육신이 성전이며 성전 안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들어있음을 안다면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到來)한 어린 양들은 들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