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따르면 성령을 깨닫게 되면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영생을 얻게 된다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따로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살던 인생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처음에는 날아갈 듯이 기쁩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알아야할 일이 있지요.
성령이 드러난 사람과 인연을 맺어두어야 한다는 겁니다.
스스로의 내면에 자리한 성령에 대해 모르고 있다면 성령이 드러난 사람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죽었을 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막상 죽어서 영혼이 되었을 때 누구를 따라가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에 살아생전 인연을 맺어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영가(靈駕)들이 있지요.
죽어서 어디로 갈지를 몰라 떠도는 영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을 볼 때 이 같은 일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살아생전 예수님과 같이 성령이 드러난 분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성경에는 이런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요13:4)
He riseth from supper, and laid aside his garments; and took a towel, and girded himself.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요13:5)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요13: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13:7)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요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요13:10)
이 내용을 보면 성령이 드러난 예수님과의 인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행위를 통해 인자와의 연결고리를 형성해놓는 것이 자신의 영혼을 위해 좋다는 거지요.
그런데 예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4절을 보면 예수께서 겉옷을 내려두었다고 했는데(laid aside his garments) 이는 육신을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즉, 성령이 드러났다는 겁니다.
수건은 깨끗하게 한다는 뜻이며 허리에 동여맨다는 것은 인연의 고리를 뜻합니다.
성령이신 예수와 제자들이 인연으로 엮어진다는 거지요.(girded himself)
깨끗하게 해주는 수건으로 자신과 제자들을 매는 것은 성령으로 하나 됨을 뜻하며 그로인해 죄 사함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수건으로 씻어준다 표현했습니다.(5절)
물은 곧 생명을 뜻함으로 영적부활을 뜻한다고 볼 수 있지요.
침례를 할 때 물에 잠겼다가 올라오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을 모르는 베드로는 질색을 합니다.
어째서 성령이 드러나신 예수께서 하찮은 사람의 발을 씻길 수 있냐는 거지요.(6절)
여기에 대해 예수께서는 아직은 모르지만 후에는 알게 될 거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는 성령을 깨닫게 되면 발을 씻기는 의미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7절)
우리가 표면적으로 보면 그저 발을 씻어주는 것이지만 담긴 뜻을 보면 죄 사함을 통해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령이 드러난 예수님이 제자들과의 연결고리를 갖지 않는다면 구원을 해줄 방법이 없지요.
또한 이 말씀은 성령의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성령이 죄를 씻어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이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 한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목욕한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성령이 드러나신 예수님과 연결이 되어 있으므로 목욕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혼이 깨끗해졌다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발만은 씻어야한다 말씀합니다.
성령의 씨앗이 심어짐으로 인해 온몸이 깨끗해진 것은 맞지만 사는 동안(걸어가는 동안) 지은 죄에 대해서는 살아가면서 씻어야한다는 겁니다.
이 같은 일은 각자의 인생길을 돌아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교회에서 침례를 통해 거듭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구원을 받아 과거, 현재, 미래 죄가 모두 사해졌다 할지라도 여전히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징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은 이미 성령과 연결되어 깨끗해졌지만 육신이 사는 동안 지은 죄만큼은 자신이 책임져야함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예수님은 성령과 하나 될 제자들의 자격요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Then said Jesus unto his disciples, If any man will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
For whosoever will save his life shall lose it: and whosoever will lose his life for my sake shall find it.
누구든지 예수를 따를 수는 있지만(any man will come after me) 조건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육신을 부정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라야한다는 겁니다.
여기에서의 예수는 육신 예수가 아닌 성령이신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성령을 따르기 위해서는 육신을 철저히 부정하고(let him deny himself)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은 마땅히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예수님께서 형벌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듯이 본인들 역시 형벌의 십자가를 질 각오가 되어야합니다.
가끔씩 주변을 둘러보면 영생을 그저 먹으려 드는 이들이 보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는 생각지도 않으면서 왜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느냐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일이 무엇이든지 본인이 지은만큼 돌아온 것이라는 생각을 않고 있다는 거지요.
부처를 믿던지 하나님을 믿던지 자신이 상을 받을 짓을 했으면 상이 돌아올 것이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이 죄를 지어놓고 돌아온 벌은 달게 받으려 하지 않는 건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이런 이들은 마음 안에 성령이 사는 것이 아니고 마왕이 살고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까닭에 요한복음 10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했던 겁니다.
마찬가지로 마태복음 24절에서도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성령을 잃을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whosoever will save his life shall lose it)
또한 예수를(성령)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찾는다 한 것은 육신을 철저히 부정해야(에고가 죽어야) 성령이 되살아날 수 있음을 비유한거지요.
본인이 진정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예수님과 하나 되었는지부터 점검해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 십자가는 지지 않으려 하면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다 말하면 지나가는 개도 소도 코웃음을 칠겁니다.
성령과 하나 될 자신이 있는 이들은 이 말씀을 먹을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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