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성령은 욕망을 질투한다.

배가번드 2023. 12. 9.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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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나누어주는 소식지를 보면 사람의 생활상이 예전이나 오늘날이 별다르지 않음을 획인하게 됩니다.

시대에 따라 생활관습(慣習)이나 풍습(風習)이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인간본성은 변함이 없다는 겁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것이 무려 2천 년 전인데 불구하고 사람의 행동양식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 놀라워하게 된다는 거지요.

과연 그러한지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야4:4)

Ye adulterers and adulteresses, know ye not that the friendship of the world is enmity with God? whosoever therefore will be a friend of the world is the enemy of God.

 

2천 년 전 이스라엘은 간음하는 여자들이 돌에 맞아 죽는 사회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것이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면 간음을 한 것이 여자의 잘못으로만 치부되고 있다는 점은 이상합니다.

여자와 남자 공히 처벌을 받아야 마땅한 것인데 여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는 간음죄가 없어져 버렸지요.

과거에는 남녀가 함께 처벌을 받았는데 최근에 바뀐 것은 간음의 근본원인을 감안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법적으로 인간본성에 대한 문제는 다루지 않고 있으며 전생에서부터 이어져오는 인과관계는 현재에 적용하지 않습니다.

인간사회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영적인 세계를 모르고 있으며 육적이고 물질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과거에는 단순하게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책임을 여자에게만 전가했던 겁니다.

암컷이 꼬리를 쳐야 수컷이 반응한다는 단순논리에 근거하여 여자에게만 책임을 물었던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인간사회가 이러한 모순점에 눈을 뜨게 되어 남녀가 함께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되었던 것인데 이마저도 사람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을 법이 처벌하는 모순점을 인식하여 간음죄가 폐지되어 버린 거지요.

가정을 가진 남녀가 바람이 난 것은 죄라 볼 수 있지만 근본원인에 대한 책임은 각자의 배우자에게 있다는 점을 감안한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남녀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을 단순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같은 인간의 감정은 전생부터 이어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단순하게 이생에서 일어나는 현상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또한 미래의 우리가 겪어야 하는 일을 위해 지금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므로 현재의 일만으로 함부로 판단 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지요.

겉보기에 그저 남녀 간의 만남으로 보일지라도 어떤 경우에는 영적인 일이 숨겨져 있기도 합니다.

서로 간에 깊은 인과의 고리가 형성되어 있을 수도 있기에 남의 일에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언젠가 이런 일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지요.

어떤 부부가 이혼을 한다는 소식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중간에서 화해를 시켰고 다시 합친 후 몇 년을 더 살게 된 겁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두 사람은 벌써 헤어져야할 운명이었는데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정으로 인해 시기가 늦춰졌던 것뿐입니다.

이미 신으로부터 예시(豫示)까지 받았고 두 사람 모두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육신이 받아들이기 힘겨워하고 있었던 거지요.

이러한 가운데 갑자기 끼어들어 화해를 시킨다고 나섰으니 신의 뜻에 반하는 짓을 한거나 다름없었던 겁니다.

이런 일을 일러 남의 인과에 개입한다고 합니다.

그 일로 인해 그분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상세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자신이 연관된 일이 아니라면 함부로 나서서는 안 되며 남의 일을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특히 영적인일을 육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겁니다.

성경은 어디까지나 영생에 목적을 두고 쓰인 책이므로 세상기준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영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문에서 보다시피 겉보기에는 간음을 한 여인에게 말을 하고 있지만 상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이는 누구든지 하나님과 원수 된다고 했으니 남녀불문하고 육적이고 물질적으로 치우친 사람들은 모두가 해당됩니다.(whosoever therefore will be a friend of the world is the enemy of God)

그런데 말을 하고보니 야고보서는 단순하게 간음한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듭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예문으로 올린 4절의 앞뒤로 아주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야4:3)

Ye ask, and receive not, because ye ask amiss, that ye may consume it upon your lusts.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야4:5)

Do ye think that the scripture saith in vain, The spirit that dwelleth in us lusteth to envy?

 

3절에 정욕에 해당하는 lusts는 욕정이라는 뜻도 있지만 욕망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렇게 적용하여 3절을 해석하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원하지만 얻지 못하는 이유가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됩니다.

인간의 욕심과 욕망으로 인해 신이 무엇인가를 주지 않는 거라는 뜻이지요.

이러함으로 4절에 등장하는 간음하는 여인은 영보다 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구도자를 가리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위반되게 행동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봐야합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5절에 대한 해석도 자연스럽게 되는 겁니다.

영어성경을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아무리 의역이라 해도 5절의 해석은 잘못되었습니다.

너희가 성경이 헛되다 생각하느냐(Do ye think that the scripture saith in vain) 까지는 정확하게 해석한거라고 보이지만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는 것은 억지로 갖다 붙인 걸로 보입니다.

아마도 한글성경은 [NASB]를 해석한 걸로 보이지만 그 역시도 이러한 해석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Or do you think that the Scripture speaks to no purpose: "He jealously desires the Spirit which He has made to dwell in us"?

 

직역해보면 “너희는 성경말씀이 목적을 두고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느냐”(do you think that the Scripture speaks to no purpose)

그가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욕망을 질투한다(He jealously desires the Spirit which He has made to dwell in us)입니다.

이렇게 적용하여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욕망을 질투한다가 됩니다.

전체적으로 재해석하게 되면 다음과 같이 바뀝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욕망을 질투하신다는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어떻게 받아들이든지 자유이기는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해석은 바뀌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