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이삭의 씨가 되라.

배가번드 2024. 1. 31.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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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로마서를 볼까 합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로마서를 보게 되겠지만 구도자 한분으로부터 메시지한통을 받았는지라 가불을 하는 심정으로 들여다보려 마음먹었지요.

보낸 사람은 특별한 의도가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 내용이 단순하지 않고 깊은 뜻이 담겨있기에 들여다볼 생각을 한 겁니다.

로마서는 사도바울의 편지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이 실생활에 적용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성경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알게 해주는 내용이 담긴 것이 로마서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로마서를 펼쳐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롬9:1)

I say the truth in Christ, I lie not, my conscience also bearing me witness in the Holy Ghost,

내용 없음(롬9:2)

That I have great heaviness and continual sorrow in my heart.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

For I could wish that myself were accursed from Christ for my brethren, my kinsmen according to the flesh: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롬9:4)

Who are Israelites; to whom pertaineth the adoption, and the glory, and the covenants, and the giving of the law, and the service of God, and the promises;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9:5)

Whose are the fathers, and of whom as concerning the flesh Christ came, who is over all, God blessed for ever. Amen.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롬9:6)

Not as though the word of God hath taken none effect. For they are not all Israel, which are of Israel: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롬9:7)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9:8)

That is, They which are the children of the flesh, these are not the children of God: but the children of the promise are counted for the seed.

 

한글성경과 영어성경을 비교해보면 1절과 2절을 합쳐서 번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뜻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 이므로 바울은 성령이 깨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심적으로 말하길 큰 근심과 고통이 끊임없이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지요.

성령을 깨달았다고 해도 육신을 가진 이상 근심과 고통은 항상 있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성직자들은 성령이 임하게 되면 걱정근심이 사라져 완전해진다 말하고 있지만 육신을 가진 이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이 양심선언을 하는 것으로 인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를 받는다(myself were accursed from Christ) 할지라도 기꺼이 받겠다 말하고 있습니다.(3절)

여기에서 말하는 형제와 친척은 혈육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영생을 목표로 삼고 있는 동료구도자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4절에서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라 말하고 있는데 이는 국가와 국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을 가리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성령을 깨달은 사람) 모두는 이스라엘 사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며 그들은 양자에 속하여(pertaineth the adoption) 영광 및 언약들과 율법이 주어지고(the giving of the law) 하나님의 배려와 약속들이 있게 된다(the service of God, and the promises)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까닭에 그들이 곧 조상이라 할 수 있고(Whose are the fathers) 그리스도의 육신이 그들에게서 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as concerning the flesh Christ came)

그래서 모든 것들 위에 있으며(who is over all) 하나님의 축복이 영원하다(God blessed for ever) 말하고 있지요.(5절)

이러한 점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은 영향력이 없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Not as though the word of God hath taken none effect) 그럼에도 이스라엘 사람이라 해서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6절)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다 말하지만 성령을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는 뜻입니다.

7절을 보다시피 아브라함의 씨라고 해서 모두가 그의 자녀라 할 수 없으며 이삭으로부터 나야 진정한 아브라함의 씨라 말하고 있지요.

이 말씀은 창세기를 인용한 내용이므로 본문을 가져와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창21:12)

 

아브라함의 뜻은 “백성의 아버지”이고 사라의 뜻은 “백성의 어미, 열국의 어미, 왕비”이며 이삭은 “웃음”으로 세상의 즐거움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이 멜기세덱의 반차에 오른 후 아브람으로 바뀌는데 그 뜻은 “존귀한 아버지”입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볼 때 아브라함과 사라의 결혼은 인간적인 결혼이라기보다 영적인 합일을 비유한 것이며 그 자식 이삭은 참된 즐거움으로 만족하는 삶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도의 길을 걷는 이가 참된 즐거움(웃음)을 모른다면 아직은 완전치가 않은 겁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다 말은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 만족이 없으며 완벽을 보지 못하고 있기에 이렇게 말해 놓은 거지요.

또한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양삼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 일을 비유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드린 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의 말로서 세상 즐거움(이삭=웃음)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입니다.

세상적인 유희를 포기하고 오로지 영적인 길을 걷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거지요.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바울은 창세기를 인용하여 이삭의 씨로 난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 한 겁니다.

이러한 해석이 아니라면 성경자체는 말이 안 됩니다.

이삭도 아브라함의 씨인데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니라하면 앞뒤가 맞지 않게 되며 진리의 말씀이 되지 못하지요.

이러한 내말이 옳다는 것을 바울은 8절을 통해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라야 씨로 인정받을 수 있다 말하고 있습니다.(the children of the promise are counted for the seed)

즉, 성령의 불씨를 물려받아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이고 믿음의 자식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성령의 불씨를 대물림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과연 이러한 뜻을 아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될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기독교인 모두가 이삭의 씨가 되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 홀로목사와 함께 하는 이들만큼은 이삭의 씨가 되길 바라며 성경강해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