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또다시 재촉하여 사도행전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행2:25)
이 말씀은 시편을 통해 다윗이 노래한 내용을 인용한 것으로 아주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동일한 듯 다르게 보임으로 본문을 가져와 상고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지요.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시16:7)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16:8)
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shall not be moved.
7절에 다윗이 여호와를 송축(頌祝)한다했는데 이는 다윗의 영혼이 성령과 하나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밤은 빛이신 성령의 반대되는 육신을 뜻하며 심장은 영혼이 머무는 곳으로 사랑이신 하나님을 가리키며 내재하신 성령을 뜻합니다.
비록 육신에 가려져 빛이신 성령을 볼 수는 없지만 이미 내재함을 알게 되었기에 성령이 갈 길을 알려주신다는 거지요.
그래서 항상 여호와를 자신 앞에 모신다고 한 겁니다.(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하나님이 다윗의 우편에 있다는 말은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뜻으로 더 이상의 흔들림이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바로 이점을 베드로가 사도행전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12사도 모두가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뜻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좀 더 명확하게 이해가 되리라 생각되는바 또다시 사도행전 속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행2:26)
앞서 보신대로 심장에는 빛이신 성령이 들어있으므로 당연히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뻐한다는 것은 성령이 되살아났다는 뜻이며 입술이 즐거워한다는 것은 성령이 사도들의 입을 통해 말씀을 전해주실 거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육신이 습관에 의해 완전치 않다 하더라도 완전체인 성령이 있음을 알기에 희망에 거한다 말하고 있는 겁니다.
또한 이 말씀은 아직 성령에 대해 경험하지 못한 이들도 이러한 점을 알고 희망을 가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행2:27)
Because thou wilt not leave my soul in hell, neither wilt thou suffer thine Holy One to see corruption.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행2:28)
Thou hast made known to me the ways of life; thou shalt make me full of joy with thy countenance.
거룩한 자는 성령을 뜻하며 썩음을 당치않게 한다는 부분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영혼은 더 이상 썩을 수 없으므로 corruption은 변질이나 오염, 및 타락으로 해석되어야합니다.
성령을 깨닫지 못하면 영혼이 타락하여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길을 알게 하셨다고 했으며(Thou hast made known to me the ways of life)하나님의 얼굴로서 나로 즐겁게 만들 거라고 했습니다.(thou shalt make me full of joy with thy countenance)
이 말씀을 보건데 베드로 및 12사도는 성령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말씀은 아직 성령을 경험치 못한 이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다음내용은 나 홀로목사의 말이 진실 됨을 증명해 줍니다.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행2:29)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행2:30)
Therefore being a prophet, and knowing that God had sworn with an oath to him, that of the fruit of his loins, according to the flesh, he would raise up Christ to sit on his throne;
미리 보는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행2:31)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2:32)
다윗은 분명히 죽어 장사지낸바 되었고(29절) 선지자가 되었습니다.(being a prophet)
그래서 앞날에 대해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하여금 다윗의 왕좌에 앉게 할 거라는 겁니다.(to sit on his throne)
그런데 다윗의 자손에 해당하는 부분은 다시 한 번 더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직역해보면 다윗의 육신에 따른(according to the flesh) 그의 허리춤의 결실로(the fruit of his loins) 하나님께서 서약으로 맹세한거지요.(God had sworn with an oath to him)
어찌 보면 다윗의 후손이라 하면 간단한 것 같지만 이 내용은 그런 것이 아니라 육신을 가지고 구도의 길을 걷고 난후에 얻는 영적인 결실을 나타내기 위한 겁니다.
바로 이어지는 뒷부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일으켜 세워 다윗의 왕좌위에 앉힌다고 한 것이 바로 그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he would raise up Christ to sit on his throne)
31절에서 다윗이 미리 본다한 것은 성령과 하나 된 다윗의 영혼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곧 성령인지라 성령으로 부활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으리라 했고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셨다 했으니 뭔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이 내용역시 시편을 인용한 것인데 보고난 후 해석을 이어가도록 하지요.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시16:9)
Therefore my heart is glad, and my glory rejoiceth: my flesh also shall rest in hope.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16:10)
For thou wilt not leave my soul in hell; neither wilt thou suffer thine Holy One to see corruption.
9절은 보면 다윗의 육체가 희망 속에서 휴식을 취하게 될 거라고 합니다.(my flesh also shall rest in hope)
이 말씀인즉, 성령을 보장받았기에 사는 동안 평온함을 유지할거라는 뜻입니다.
또한 육신의 몸이 있으니 영의 몸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가죽은 썩어지지만 영체는(영혼) 때가 되면 홀연히 들어 올림 받을 거라는(희망) 겁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10절에서 다윗의 영혼은 지옥에 버려지지 않으며 거룩한 자가(Holy One) 훼손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 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다윗의 영혼이 거룩하게 되었다는 뜻이며 성령과 하나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면 사도행전에서 말한 썩지 않는 것은 육체(肉體)가 아니라 영체(靈體)임을 알게 됩니다.
시간관계상 긴말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며 다음 내용으로 설명을 대신하며 마칠까 합니다.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19:26)
And though after my skin worms destroy this body, yet in my flesh shall I see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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