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동수들과 차를 마셔서인지 꿈을 꾸었습니다.
스승께서 극히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나타나셨고 내 가까이 오셨지요.
그 발아래 엎드려 큰절을 하였을 때 스승이 내손을 잡아 자신의 마차에 이끌어 올렸는데 이상하게도 스승은 사라지고 나만 덩그러니 마차에 남아있는 꿈을 꾼 겁니다.
아마도 요 며칠 사도행전 8장을 연구하여서 이런 꿈을 꾼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동수들과 차를 마시면서 나눈 대화가 이런 꿈을 꾸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혹자는 내가 꾼 꿈을 두고 우상숭배에 대해 비판적인 내가 우상숭배를 한다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승을 대하는 마음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우상숭배는 명암을 달리하게 됩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7)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8)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9)
네 이웃을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율법이라 예수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인즉, 이웃사람을 하나님처럼 섬기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안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들어있음을 알라는 뜻이지요.
내안에도 상대방의 안에도 하나님이신 성령이 들어있음을 안다면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대할 수 있다는 말인 동시에 삼라만상에 거하시는 성령을 알아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점을 알게 되면 일반인들조차 하나님처럼 여기게 된다는 것인데 영적인 가르침을 주는 스승을 하나님처럼 여긴다고 해서 우상숭배가 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나 같은 경우 교회에 가면 목사님의 입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을 보게 되고 절에 가면 스님을 통해 부처를 떠올립니다.
심지어 부처상이나 마리아 상을 보고 배불을 할 때조차 예수를 떠올리고 부처를 상념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나에게는 스승이 따로 있지도 않고 우상이 따로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성령만이 있을 뿐입니다.
사실 내가 꿈을 꾸고서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어떻게 성경과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여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성경내용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행8:39)
And when they were come up out of the water, the Spirit of the Lord caught away Philip, that the eunuch saw him no more: and he went on his way rejoicing.
생명으로 거듭난 것을 물에서 나왔다고t(hey were come up out of the water) 표현하고 있으며 성령과 하나 되었음을 말하기위해 빌립의 영을 하나님이 이끌어 간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the Spirit of the Lord caught away Philip)
더 이상 육신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위해 내시가 더 이상 빌립을 볼 수 없었다고 한거지요.(the eunuch saw him no more)
성령이 빌립 한사람에게만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풀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14:1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빌립이 올곧게 받아들여 사도의 길을 걸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속해있고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다했으니 예수님이 하나님과 성령으로서 하나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0절에서 그날이라 한 것은 성령으로 거듭날 때를 가리킵니다.
사도행전에서 내시가 침례를 통해 거듭나게 되었을 때가 바로 이때이지요.
이렇게 되었을 때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된 것과 같이 모두가 성령으로서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진정 이렇게 되려면 보다 겸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내재함을 알았다고 해서 무턱대고 일반인들 위에 군림하려 들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길거리에 나앉은 거지조차도 하나님이신 성령을 담고 있는 그릇임을 알게 될 때가 성령과 하나 될 때라고 할 수 있는데 하물며 성령의 불씨를 전해주는 영적인 스승을 우습게 여긴다면 그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등 돌림을 당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 홀로목사는 자신의 종교를 바꾸지 말라고 하며 지금 속해져 있는 곳에서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합니다.
다만 심판의 자리에서 내려서며 우상숭배의 오류를 범하지 말기를 권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어떠한 종교에 속해져 있으므로 인해 타종교를 비방하거나 함부로 심판하지 않으며 믿음의 대상을 가지되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지요.
내안에 있지 않은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알아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도 여기에 대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눅17:20)
And when he was demanded of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should come, he answered them and said, The kingdom of God cometh not with observation: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눅17:22)
And he said unto the disciples, The days will come, when ye shall desire to see one of the days of the Son of man, and ye shall not see it.
20절을 보면 하나님 왕국은 볼 수 있게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The kingdom of God cometh not with observation)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안, 즉 지혜안(영안)이 열려야 보인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21절에서 하나님 왕국은 너희 안에서 볼 수 있다 말하고 있는 겁니다.(behold,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22절을 보면 이 같은 느낌이 더욱 확실하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날이 온다는 것은(The days will come) 성령이 함께하게 되는 날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인자의 날을(the days of the Son of man) 보고자 하는 욕구의 마음으로는 결코 볼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육적으로 보고자 해서는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시공간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위해 인자의 하루를 언급했지요.
단 한순간만이라도 성령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은 구도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욕구의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성령이 스스로 깨어나려면 육적인 에고를 먼저 내려놓아야 하므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지요.
이러한 까닭에 나 홀로목사가 처음 스승을 모실 때 목숨을 걸었던 겁니다.
지금도 나는 가끔씩 동수들 앞에서 스승의 발에 입 맞출 수 있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내말을 육적으로 받아들이면 우상숭배에 빠진 사람이라 할 수 있으며 영적으로 받아들이면 성령과 함께 하는 이라 보면 됩니다.
내게 있어 스승은 더 이상 육신이 아니라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빛임을 아는 이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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