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순수한 영혼이 성령과 하나된다.

배가번드 2024. 6. 5.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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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을 읽는 동안 놀라웠던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놀라웠던 점은 성경에 담긴 지명과 인명에는 깊은 뜻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놀라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사명감까지 들게 되었지요.

그런 점을 감안하지 않고 성경을 읽어서는 속뜻을 알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성경을 상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겁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들은 반드시 여기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마련이며 액면대로 읽어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직도 성경에서 모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거나 상고해보지 않은 거라 보면 정확합니다.

무조건 믿고 보자는 식이 아니라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점을 불수밖에 없으며 반드시 모순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진리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담긴 뜻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도행전을 통해 이 같은 점을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행20:1)

And after the uproar was ceased, Paul called unto him the disciples, and embraced them, and departed for to go into Macedonia.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행20:2)

And when he had gone over those parts, and had given them much exhortation, he came into Greece,

 

19장을 통해 본 바로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하였고 제자들을 마게도냐로 보냈으며 후에는 자신도 합류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바울이 마게도냐로 간다고 말하고 있으니 액면대로 보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제대로 보려면 담긴 뜻을 알아야하는 겁니다.

따라서 성지순례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으며 구태여 고생해가며 예수님이나 바울이 걸었던 고장으로 가볼 필요가 없지요.

이러한 이유로 1절 말씀은 액면과는 다르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소요가 그쳤다는 말은 내적으로 혼란이 잠잠해졌다는 뜻으로 성령과 함께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제자들을 포옹하였다 한 겁니다.(Paul called unto him the disciples, and embraced them)

embraced는 껴안는다는 뜻도 있지만 “수용하다,아우르다,받아들이다,포괄하다”등의 뜻이 있으므로 성령과 하나 된 바울과 합류한 것으로 봐야하는 거지요.

그렇지만 성령(바울)은 어느 한곳에만 머물지는 않으므로 넓은 땅의 뜻을 가진 “마게도냐”로 갔다 말하고 있습니다.(1절)

2절에서 보듯이 여러 곳을 다니며(he had gone over those parts) 강력한 권고를 했고(had given them much exhortation) 헬라에 이르렀다 한 것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말입니다.

헬라는 그리스를 가리키며 뜻은 “거품”입니다.

잘못된 믿음의 형태를 거품에 비유했으므로 이방인이나 핵심을 모르는 신앙인을 가리킨다고 봐야합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렇게 해석되어야하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행20:3)

And there abode three months. And when the Jews laid wait for him, as he was about to sail into Syria, he purposed to return through Macedonia.

 

석 달을(3) 거주했다는 것은 이방인들이(헬라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닫고 높은 의식에 도달할 때까지 가르침을 주었다는 뜻입니다.[수리아(뜻: 높은 곳)]

그리고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하려고 공모했다는 말은 [KJV]영어성경에는 없습니다.

직역해보면 유대인들이 그를 기다리며 누워있을 때 입니다.(when the Jews laid wait for him)

스스로 하나님을 찬양 한다 자부하지만 성령이 깨어나지 못하고 잠들어 있기에 성령과 하나 된 바울을 기다리고 있다 한거지요.

바울은 이미 빛이신 성령과 하나 되었으므로 수리아(뜻: 높은 곳)에 가있고자 했으나(he was about to sail into Syria) 이들을 위해 세상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했다는 겁니다.(he purposed to return through Macedonia)

이 같은 점이 이해가 되지 않으므로 [NIV] 성경이 만들어 졌으며 오늘날 우리가 보는 한글성경역시 그렇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다음 내용을 보면 더욱더 기가 막힌 내용들이 나옵니다.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행20:4)

 

아시아까지 함께 간다는 것은 빛의 세계로 동반해 간다는 말로서 성령과 하나 됨을 뜻합니다.

아시아는 해가 뜨는 동쪽을 의미함으로 곧 성령을 가리키는 겁니다.

열거되는 이름에 담긴 뜻을 보면 이 같은 말이 참됨을 알 수 있지요.

베뢰아의 뜻은 “너머의 땅”이고 부로의 뜻은“불꽃같이 붉은”이므로 세상너머의 빛이신 성령을 가리킵니다.

소바더의 뜻은 “건전한 출생”이고 데살로니가의 뜻은“텟살리의 승리”이며 아리스다고의 뜻은 “최고의 통치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령과 하나 되려면 성령의 씨앗으로 태어나야 하고 영적전쟁에서 승리하여야 하며 최고의 권력자인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한다는 겁니다.

또한 세군도의 뜻은“둘째”이고 더베의 뜻은“소나무”로서 하나님을 증거하고(2=증거와 증인의 숫자) 변치 않는 믿음이 있어야한다는 뜻이지요.

또한 가이오의 뜻은“기쁨”이고 디모데의 뜻은“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인데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알며 하나님을 공경할 줄 아는 이가 빛의 세계로 함께 갈 자격이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두기고의 뜻은“행운의 아이”고 드로비모의 뜻은 “양육하다”이므로 성령과 함께하려면 아이처럼 순수하고 맑아야한다는 말이며 스스로의 내면에 거하시는 성령을 양육할 줄 알아야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들이야말로 성령과 하나 될 자격이 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사도행전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행20:5)

 

드로아의 뜻은“관통”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보면 앞서 열거한 인물들이 성령과 하나 되어(관통하여) 이미 도달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6을 통해 이것이 비유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행20:6)

And we sailed away from Philippi after the days of unleavened bread, and came unto them to Troas in five days; where we abode seven days.

 

무교절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날, 즉 순수한 영혼(성령)과 하나 됨을 뜻하며 빌립의 뜻은“말을 사랑하는 자”로서 믿음과 헌신을 나타냅니다.

즉, 가르침을 통해 성령의 불씨를 전해 받은 후(무교절후) 믿음과 헌신으로 무장하여(빌립보) 구도의 길을 걷는 동안 하나님의 은총에(닷새=5=하나님의 은총) 힘입어 성령과 관통되어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 되는(7일=창조주 하나님의 숫자) 영광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만약 사도행전 내용에 담긴 뜻이 없다면 너무나 단조로운 내용이 되고 맙니다.

누구와 함께 가서 며칠 동안 머물렀다는 사실만 기록한 것이라면 우리가 성경을 통해 무얼 배울 수 있겠냐는 겁니다.

부디 여러분은 이러한 무지의 믿음으로부터 탈출하기를 바라며 오늘의 시간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