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보면 하나님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육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육신을 성전으로 만들었고 그 안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겉옷에 불과한 것이며 죽음이후에는 홀연히 들어 올림 받는다는 확신을 하기에 세상의 어려움 따위에 굴복하지 않는 겁니다.
겉보기에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영혼은 이미 성령과 하나 되었기에 힘든 현실을 묵묵히 받아 냅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불가에서는 이런 일을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견성성불과 성령이 임하시는 일을 하나로 보는 근본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구도의 길을 걷는 많은 이들은 깨닫게 되면 몸이 금강불괴가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겁니다.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이 육신의 안락함과 물질적 풍요를 보장받을 것 같으면 이 같은 말은 성립 되지 않으며 중생의 고통을 안는다는 표현도 틀린 말이 됩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것은 피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임한다는 것이 진정 어떠한 의미인지 사도들의 행적을 통해 또다시 배워보겠습니다.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행선하니 이는 자기가 도보로 가고자 하여 이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행20:13)
And we went before to ship, and sailed unto Assos, there intending to take in Paul: for so had he appointed, minding himself to go afoot.
앗소는 아볼로니아를 가리키며 그 뜻은 “아폴로에게 속한 곳”입니다.
아폴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을 관장하는 신으로 빛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내용은 성령과 함께하는 과정을 설명해주고 있는 겁니다.
13절에서 말하는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원하는 모든 구도자를 가리키며 바울은 성령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생을 향한 여정을 항해에 비유하고 있으며 바울은 성령의 입장으로 등장하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빛이신 성령(바울)을 앗소에서 태웠다 했고 그가 약속한바 되었다고 했으며(for so had he appointed) 그자신이 도보로 걷는다는 표현을 한 겁니다.
하나님이 구약을 통해 믿는 사람들과 영생의 언약을 맺은 것과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며 성령은 사람의 육신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걷는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himself to go afoot)
본문을 통해 알듯이 영생을 향해 구도의 길을 걷는 이는 빛이신 성령이 임하셔야함을 알 수 있지요.(바울을 태우기 위해 항해함)
영생이 목적지라고 볼 때 반드시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적어도 성령이 드러난 바울 같은 사도와 동행해야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올리고 미둘레네에 가서(행20:14)
And when he met with us at Assos, we took him in, and came to Mitylene.
미둘레네의 뜻은 “조개가 많은”으로 성과물이 많았다는 뜻이지요.
성령과 하나 된 바울을 태웠다는 것은 성령과 함께 한다는 뜻이며 그로인해 많은 성과가 있었음을 이렇게 표현해 놓은 겁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리고 또 그 다음날 밀레도에 이르니라(행20:15)
And we sailed thence, and came the next day over against Chios; and the next day we arrived at Samos, and tarried at Trogyllium; and the next day we came to Miletus.
기오의 뜻은 “뱀”이고 사모의 뜻은 “높은 봉우리”이며 밀레도의 뜻은 “피란민”입니다.
기독교인 대부분은 뱀을 사악하고 교활한 동물로 여기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뱀은 지혜를 가리킵니다.
즉, 성령을 영접하면(바울을 태운일) 지혜로워지고 높은 인식을 갖게 된다는 것을 비유로서 말하고 있는 거지요.
하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되면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뒷부분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환란 속에 빠져있는 것과 같은 이방인들의 마음에(밀레도=피란민) 성령의 불씨를 전해줄 책임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같이 성령과 하나 된 이는 다음과 같이 행동하게 되어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행20:16)
For Paul had determined to sail by Ephesus, because he would not spend the time in Asia: for he hasted, if it were possible for him, to be at Jerusalem the day of Pentecost
아시아는 해 뜨는 동쪽이라는 아사에서 비롯된 말로서 그 뜻은 “중앙”입니다.
육신의 중심을 가리킴으로 하나님이신 성령이 거하는 심장을 뜻한다고 볼 수 있지요.
하나님은 중심을 본다는 말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하나 된 바울은 중심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바른 가르침을 주기 위해 항해하기로 작정했다고 한 겁니다.(Paul had determined to sail by Ephesus)
그래서 바울이 서둘렀던 것은(he hasted)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있기 위해서라고(to be at Jerusalem) 했습니다.
오순절은 성령강림절을 뜻하므로 육신의 성전 됨을 아는 이들에게 바울이 성령으로 임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로서 말하고 있는 거지요.
다르게 표현하자면 성령과 하나 된 바울로부터 바른 가르침을 받게 되면 육신이 성전 됨을 깨달아 성령이 임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빛이신 성령을 깨닫고 나면 어떤 방식이던 사람들에게 성령의 불씨를 나누어줄 책임이 생긴다는 겁니다.
내말을 믿거나 말거나 이런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으며 그것은 성령과 하나 된 사람의 책임과 의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며 오늘의 강해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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