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린 것 같습니다.
처음 목적은 물리학에 대한 일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영성계(靈性界)와의 합일점을 찾으려 했는데 주어긴 시간이 너무나 제한적인 탓으로 제대로 말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오늘은 전기를 주제로 삼아 과학과 영성의 합일점을 찾아보겠습니다.
전기라는 것은 온 세상에 편재한 것으로 음(-)극과 양극(+)으로 나뉩니다.
마치 하나님이 삼라만상을 만들었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으며 세상이 음양으로 만들어졌다는 도가의 말과 정확히 일치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기는 근원적인 것으로 보편적인 전기는 사람이 이를 사용할 수 있을 때를 가리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공중에 흩어진 전극들을 모아들여 사용하게 될 때 비로소 전기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삼라만상 속에 거하시는 근원적인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통하여 나타내 보이실 때 하나님이 현현(顯現)되었다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편재하여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성부) 인간의 몸을 통해(성자) 빛이신 성령(성신)으로 나타날 때 완전한 하나님이 된다는 뜻이지요.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 전기와 동일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개념 속에서의 하나님과 근원적인 하나님은 전기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인식과 괘를 같이한다고 보면 됩니다.
전기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짓느냐에 따라 삼라만상이 전기로 가득 차 있다 말할 수도 있고 전기를 사람이 사용할 수 있어야 전기라 부를 수 있다 여길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세상은 전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일부물리학자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며 음양의 조화로 세상이 생겨났다고 말하는 도가의 교리가 틀린바가 없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음과 양으로 표현하는 전기의 극성은 성경에서는 빛과 어둠으로 표현됩니다.
음극과 양극이 만나야 전류가 흐르게 되듯이 빛과 어둠이 조화를 이루어야 만물이 생겨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물리학자들의 실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빛이 가득한 방에서는 전등불이 켜진 상태를 확인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육신은 어둠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성령은 빛으로 묘사되는 겁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사람의 몸은 영육의 합일 체라 볼 수 있으며 전기가 작동되는 기계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빛이신 성령과 하나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시 전기로 돌아가서 물리학은 세상의 창조에 대한 영역을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겨두고 있지만 불확정성 원리를 통해 영의 세계를 본의 아니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기의 영역을 에너지차원까지 넓힌 상태에서는 빛으로 받아들여지며 실지로 빛은 곧 전기이기도 합니다.
근자에 와서 물리학은 이러한 빛의 파장성과 입자 성을 증명하기 위한 시험을 하는 중에 영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 겁니다.
빛을 파동으로 보고 다양한 파장을 합하여보면 가운데만 볼록하게 튀어나오는 형태가 되는데 이때 볼록한 것은 위치가 되지만 여러 개의 파장이 합쳐졌으므로 거리를 묻게 되면 한가지로 답할 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인데 이 같은 일이 신의 실체와 아주 가깝다는 거지요.
다양한 파동들이 각각 존재할 때는 일정한 파동을 유지함으로 거리와 위치파악이 명확하지만 겹쳐지게 되면 정확한 실체 파악이 어렵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물이 빛으로 이루어져있고 다양한 파동들의 중첩이 일어남으로 파동의 일치점을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실험을 통해 밝힌 겁니다.
사람들이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때문이라 할 수 있으며 영적으로 보자면 정확히 이해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가시(可視)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중첩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그 결과 또한 물질 세상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것은 영의 세계에서는 이 같은 일이 실지로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창조의 영역에서는 시공간이 무너져 있기에 동시에 다양한 일들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물리학이 증명한 꼴이지요.
내가 달을 보지 않아도 달은 존재한다는 말로도 표현되는 이러한 점은 실생활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층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넓은 거실에서 여러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본다고 가정해보면 간단하게 이해가 됩니다.
각각의 아이들이 노는 모습들을 내가 동시에 보는 것은 다양한 경우들을 한꺼번에 인식할 수 있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좀 더 인식의 폭을 넓혀보면 좀 더 명확하게 이 같은 점을 인식할 수 있지요.
만약 내가 공중부양을 할 수 있고 투시의 눈을 가졌다고 했을 때 내 눈 아래에 펼쳐지는 모든 일들은 한눈에 다 들어옵니다.
이 같은 점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And Jesus said unto them, Because of your unbelief: for verily I say unto you, If ye have faith as a grain of mustard seed, ye shall say unto this mountain, Remove hence to yonder place; and it shall remove; and nothing shall be impossible unto you.
미립자의 세계는 영의 세계이고 창조의 영역이며 빛다발이 흐르는 세계임을 아는 이는 들으시오.
'짧은생각 긴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더불어 다툰다. (7) | 2024.07.25 |
---|---|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9) | 2024.07.24 |
육신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산다. (0) | 2024.07.22 |
세상을 살아가되 묶이지는 않는다. (0) | 2024.07.20 |
영적체험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 (5) | 202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