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더불어 다툰다.

배가번드 2024. 7. 25.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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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은 이미 여러 차례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절대자 하나님이 여럿이라는 말이 나왔던 겁니다.

성경을 읽다보니 하나님이 여럿이라는 내용이 여러 군데서 나오더라는 내말에 동생은 하나님이 여럿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라 말했지요.

유일하게 한분만 있기에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인데 여럿이 되어버리면 하나님이라는 말자체가 의미를 상실하게 되므로 어쩔 수 없이 복수의 하나님을 찾아야하기에 궁여지책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들고 나온 거라 봅니다.

실지로 인터넷을 검색하면 복수의 하나님에 대한 해석을 다들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 내용을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을 가져와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1:26)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3:22)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창6:1)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6:2)

 

창세기 1장을 보다시피 창조가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은 여럿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 3장을 통해 하나님이 여럿 있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지요.

최초의 인간 아담이 만들어 지기 전부터 하나님이 있었으며 훗날 인간들이 번성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혼인까지 합니다.

이러한 장면들을 보면서도 복수의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에 비유한다면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봐야 하는 겁니다.

삼위일체 하나님도 모르고 유일신의 뜻도 모르며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의 뜻도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성부이신 하나님이 성자인 사람의 몸에 성령으로 임하게 되는 것을 뜻하지요.

즉, 사람의 몸 안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임하게 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겁니다.

이러한 점을 완전히 깨닫게 되었기에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라 부르는 것이며 그리스도 예수라 부릅니다.

독생자는 빛으로서 하나가 되었다는 뜻으로 육신적으로 유일무이(唯一無二)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상대하는 내가 유일하다는 의미인 동시에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뜻이지요.

창조의 영역인 빛의 세계에서는 시공간의 벽이 허물어짐으로 전체가 하나의 빛다발과 같아진다는 뜻에서 독생자라 부르는 겁니다.

완전체인 빛을 0으로 보면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이 아무리 많다 해도 유일함에 속해져있으므로 안과 밖은 둘이 아닌 인식의 경계에 도달한 상태를 가리키는 겁니다.

언제나 합체가 이루어지고 동시에 분리도 가능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 축성 받은 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축성을 받은 사람을 가리키며 예수의 뜻은 “하나님이 구원하신다.”입니다.

즉, 예수가 하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구원자가 되었다는 말이지요.

따라서 예문으로 올린 창세기 내용 모두는 담긴 뜻이 따로 있는 것으로 액면대로 볼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몸이 어떠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며 그러한 점을 깨닫고 영적 부활이 일어나게 만들기 위해 이렇게 기록해 놓은 겁니다.

사람의 몸 안에 빛이신 성령이 들어있음을 알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 완전해 지라는 뜻이지요.

이러한 뜻에서 성경은 다음과 같은 내용도 기록해놓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6:3)

And the LORD said, My spirit shall not always strive with man, for that he also is flesh: yet his days shall be an hundred and twenty years.

 

이 내용을 액면대로 보면 하나님에게도 영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그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신 성령이 사람의 몸 안에 들어앉아 있는 것을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것에 비유한거지요.

성령은 원래 빛으로서 영원한 존재이지만 사람의 몸 안에 갇히는 바람에(깨닫지 못하는 바람에) 육신과 함께 미망의 세계에 머물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성령)이 사람과 더불어 다툰다고 하는 겁니다.(My spirit shall not always strive with man)

이는 영육이 항상 갈등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우리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양심과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으며 영육간의 전쟁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내용은 어디까지나 양심이 살아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며 양심이 죽어버린 사람이나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의 날이 일백 이십년이라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his days shall be an hundred and twenty years)이는 인간의 수명이 아니라 12와 완전의 숫자 10(0)의 연합된 숫자를 가리키는 겁니다.(12×10=120)

삼위일체(3) 하나님이 인간(4)과의 연합을(3×4=12) 통해 완전을(10) 이룰 때까지 영육간의 전쟁은 지속될 것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

만약 이 같은 내용을 사람의 수명을 말한 것이라 여기게 되면 심각한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 이 내용은 노아의 방주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기록된 것인데 사람의 수명이 120년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았던 내용은 창세기 6장에 기록된 것으로 노아의 방주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일어났던 일을 기록해놓은 겁니다.

또한 5장을 보면 사람의 수명이 어떠했다는 것을 기록해 놓았는데 이 또한 담긴 뜻이 따로 있는 걸로 봐야 합니다.

팔백년 구백년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담긴 뜻이 따로 있다는 말이지요.

이럴 것 같으며 다음과 같은 말은 부정되어야 하며 성경은 엉터리를 기록한 책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이러한 내용을 지구를 둘러싼 물 층이 노아의 홍수 때 모두 빠져버림으로 인해 인간의 수명이 줄어든 탓이라 말하지만 별로 신빙성(信憑性)있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홍수사건은 있었겠지만 지구가 물로 덮여져 있었다는 점은 믿기 어렵다는 말입니다.(물이 지구 옆구리에 매달려 있음을 인정할 수 없음)

다윗은 BC10세기의 인물로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의 인물이지요.

이때 당시 수명이 칠팔십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800년대 유럽인들의 평균수명이 35세 내외였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보면 칠팔십이라는 숫자만으로도 충분히 오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담긴 숫자는 모두 뜻이 있는 것이며 그러한 점을 모르고 읽는다면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됩니다.

내말을 믿고 안 믿고는 자유이지만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봐야 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을 이해하는 이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