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긴 휴가가 주어진 관계로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기회가 자주 주어집니다.
성경연구는 기본적으로 매일같이 하지만 성경말씀과 정확히 일치되는 동영상을 보는 일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최근에 물리학교수의 강의를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듣게 되었지요.
물리학이라 하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일인데 이상하게도 내 관심을 확 끌어 당겼던 겁니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게 된 동기는 전기에 관한 주제였기 때문인데 알고 보니 양자역학에 관련된 일이었으며 정확히 영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일이었던 겁니다.
양자 역학을 사전에서는 입자 및 입자집단을 다루는 현대 물리학의 기초라고 적고 있는데 영적인 표현을 하자면 영육모두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학문이라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가방끈도 짧고 머리도 나쁜 내가 전문적인 지식이 있을 리는 만무하고 다만 영적인 체험을 기초로 하여 물리학에서 증명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보충설명을 해볼까 합니다.
과학적 상식이 필요한 분들이라면 당연히 물리학 교수의 강의를 들어야할 것이고 영적인 세계가 물리적인 관점과 어떻게 결합되는가를 알려면 내가 말하는 것이 유용할거라는 말입니다.
우선적으로 말해볼 것은 하나님과 빛의 상관성인데 성경은 하나님을 빛으로 묘사하며 성령으로 이름 짓고 있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빛을 입자로도 보고 파동으로도 보는데 기존의 파동성을 입자설로 뒤집고 몇 번의 시험 끝에 양면성을 모두 인정하게 된 거지요.
모든 사물이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정확히 일치되는 일이며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1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은(the Word) 물리학측면으로 보면 진동력이라 볼 수 있으며 파동으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고 그것이 사람들의 빛이라 했으니 성령은 빛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빛이 입자로 인정되는 일들 또한 성경에는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17:2)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마17:3)
빛의 몸이 있다는 것은 빛이 곧 파동인 동시에 입자라는 뜻이지요.
이렇게 해서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은 완벽하게 입증이 되는 것이므로 물리학이 영의 세계에 어느 정도 근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도 물리적 관점에서는 거시적 범위에 미립자세계를 완전하게 포함시키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영의 세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물리학에서는 역학을 말합니다.
지금은 고전으로 취급되는 과거의 물리학에서는 미래가 예측될 수 있다고 하지요.
힘은 질량에 가속도를 곱하면 나오므로 바람의 방향과 사물의 무게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에 일기예보를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일기예보가 그렇게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 이럴 수밖에 없는가 하면 질량을 가진 것들에 대한 예측은 가능하지만 미립자의 세계에서의 변화를 계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거시적 범위를 넘어선 미립자의 세계까지 볼 수 있는 단계에는 지구과학이 다가서지 못한 탓으로 봐야 합니다.
빛이 파동으로만 인식될 경우 굴절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때로 빛이 굴절을 일으키므로 입자이기도 한 것은 이제 상식에 가깝습니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빛이 파동으로 인식되지만 이렇게 되면 사람의 몸 안에 빛이신 성령이 담기지 못한다는 말이 되며 빛이 입자로만 인식된다면 영의 세계를 부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의 몸이 영과 육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종교적 관점은 극히 과학적인 것이며 입증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어떤 물리학 교수님은 양자의 세계에는 귀신이 산다고 하는 겁니다.
아직까지는 물리학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지만 이제는 영의 세계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세상이기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는 이제 더 이상 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며 생활에서 적용되어야할 일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빛이 파동으로만 여겨지다가 최근에 와서야 입자 설을 입증하였다고 하니 아직도 과학은 영성을 쫓아가는 중이라고 봐야 합니다.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논쟁은 물리학계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일이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결론이 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끝없이 이어질 논쟁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러한 양자역학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도 아주 극소한 세계를 가리키는 거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공기 중에 산소를 믿고 있는데 이러한 물질들이 입자라는 점을 볼 때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빛의 세계는 이보다 훨씬 작은 미립자의 세계를 뜻한다고 봐야한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종교인들이 기적의 힘을 말하는 것은 절대 허구가 아니며 예측 불가능한 날씨에 비유될 수 있는 겁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우리스스로의 내면에 존재하는 영혼을 빛으로 인식해야만 하며 그렇게 되었을 때라야 진정한 영혼의 세계를 안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빛이신 성령과 하나 되었다 말하기는 어려우며 하나님왕국에 올라 영생을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아직도 입자로서의 삶이 많이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점을 인정하던 말든 이 같은 일은 너무나 과학적인 일이며 물리적으로 증명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삼아 한 가지 말하자면 예수가 탄생되기 500년 전 석가모니부처는 물 한잔에 수천생명이 들어있음을 설하신적이 있지요.
현미경은커녕 망원경도 나오기 전에 이미 한잔물속에 담긴 수천생명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미시의 세계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을 알게 합니다.
게다가 아미타세계에는 항하사 모래만큼 많은 부처가 있다고 했으니 빛의 파동성과 입자 성을 동시에 설하신겁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성경에도 있습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4)
It is sown a natural body; it is raised a spiritual body. There is a natural body, and there is a spiritual body.
육신으로 심고(sown a natural body)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산다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영혼의 향방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바울(뜻: 지극히 작은 자)이 빛을 본 후(성령을 영접한 후) 빛의 몸이 따로 있음을 알고 이렇게 말해놓은 거지요.
사람이 사는 동안 물질세상의 생명탄생과 소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증명하고 사람의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는 사람들은 과학이 중요하겠지만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영적인 가르침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질 겁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결국 그러한 학문적 성과는 핵폭탄을 만들어 내었으며 인류를 핵폭탄으로 만든 침대위에 눕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잘했다 못했다 말하기는 어려우나 삶의 목적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말은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하고 있으며 타인들은 자신들만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으니 그저 자신의 역할에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삶의 정답이라는 말을 남기며 물리학과 영성의 합일의 시간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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