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떡과 포도주는 성령의 가르침.

배가번드 2024. 10. 23.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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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장에서도 어김없이 구약의 내용들이 인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2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바울이 인용한 구약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구약이 어떤 뜻이기에 바울이 인용하게 되었을까를 알아야 우리들도 성경을 오해 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사말은 자제하고 곧바로 본문을 보겠습니다.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왕상19:1)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왕상19:2)

 

이 내용은 18장의 연장으로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를 죽인 일을 아합왕이 이세벨에게 고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성경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명이나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담긴 뜻을 알아야합니다.

아합의 뜻은 “아버지의형제”이고 바알은 “주인, 남편, 소유”의 뜻으로 비와 폭풍을 주관하는 곡물의 신으로 알려있으며 이세벨의 뜻은 “고상한”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보면 이 내용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영적전쟁이라는 점을 바로 알게 됩니다.

18장 전체를 보면 내면의 전쟁에서 성령(엘리야)이 승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그 결과가 있기까지의 과정을 19장에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결국 아합 왕의 내면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났으며 빛이신 성령(엘리야)이 바알(탐심, 소유욕)의 수하(선지자)들을 괴멸시킨 과정을 말하자 이세벨(육적인 속성)이 반발하여 들고 일어선 것을 비유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2절에서 이세벨이 사신(使臣)을 보내어 엘리야를 죽이겠노라 했는데 이는 육적속성이 성령의 드러남을 가로막고 나섰음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자 성령으로서의 엘리야는 다음과 같이 반응합니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왕상19:3)

 

성령의 불씨가 심어지면 소유욕과 탐심이 사라짐으로 육적속성은 견디기 힘들어 하게 되어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가진 재산이 없어지고 각종 재난이 닥치는지라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까지 일어나게 됨으로 성령은 어딘가로 숨어버리는 것을 비유로서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엘리야(성령)가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뜻: 일곱 우물, 맹세의 우물)로 갔다 한거지요.

즉, 성령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창조주의 하신 일을 깨닫는 사람의 마음 안에만 들어있다는 뜻입니다.(불신하는 마음에는 잠들거나 숨어버림)

액면 적으로는 하인을 남겨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뜻이 아니라 성령의 하수인, 즉 성령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구도자의 마음상태를 가리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성령을 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상태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런 까닭에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왕상19:4)

 

4절에 언급되고 있는 광야는 믿지 않는 마음상태를 가리키며 로뎀의 뜻은 “매다, 묶다” 이지요.

이방인(광야)이라 할지라도 성령이 들어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엘리야가 광야로 들어갔다 말하고 있습니다.

죽기를 원한다는 것은 육적 속성이 죽기를 바란다는 뜻이며 넉넉함은 만족을 가리키며 생명을 거두어달라는 말은 만물이 하나님으로 비롯되어 났으니 온 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다는 말은 겸손을 나타내는 말이지요.

이러한 마음상태가 되면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왕상19:5)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왕상19:6)

 

5절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일어나 먹으라했는데 이는 성령의 임하심을 가리킵니다.

숯불에 구운 떡은 성령으로 축성 받은 육신을 가리키고 한 병의 물은 성령을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12제자들과 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눈 것이 이러한 내용을 그대로 실현한 것이라 보면 됩니다.

떡과 포도주는 성령의 가르침으로 구도자의 골육을 성장시키는 영양분이나 다름없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가르침은 단발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왕상19:7)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왕상19:8)

 

7절을 보다시피 여행의 길이 너무나 엄청남으로(the journey is too great for thee) 말씀의 떡과 생명수를 계속해서 먹어야한다 말하고 있지요.

이러한 천사(성령)의 말에 따라 구도자(성령을 담고 있는 그릇)가 말씀(가르침)에 의지하여 인자를 이루어내고(4=인자의수,10=0을 가리키며 완전한 숫자, 4×10=40) 하나님께(호렙산) 당도하게 된 겁니다.

호렙의 뜻은 “건조한 곳”이라는 뜻이며 “가시나무숲”이라는 뜻의 시내산과 같은 곳을 가리킵니다.

성경상의 가시나무숲은 떨기나무숲을 가리키는데 성령의 불꽃을 뜻합니다.(출애굽기3장 1~10절 참조)

즉, 구도자가 엄청난 고난의 여정을 통해 결국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에 도달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19:9)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19:10)

 

구도자의 영생을 향한 여정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 육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으로부터 한 치도 못 벗어나기에 이렇게 강력하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믿음의 길을 지키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는 뜻이지요.

원래 바울은 10절만 인용하였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1절부터 올리게 되었으니 너그럽게 이해하기를 바라며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