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몸과 피를 아낌없이 제자들에게 준다.

배가번드 2024. 10. 24.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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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장에 인용된 구약의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인용된 열왕기 내용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왕상19:15)

 

다메섹은 오늘날의 다마스쿠스로서 뜻은 “봇물대기 좋은 땅”이고 하사엘의 뜻은 “하나님은 보신다.” 이며 아람은 오늘날의 시리아로서 뜻은 “높이다, 높은 지방”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보면 이 내용은 준비가 된 이에게(다메섹) 성령(엘리야)이 임하시어 높임(아람)받는다는 뜻이 됩니다.

이어지는 내용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왕상19:16)

And Jehu the son of Nimshi shalt thou anoint to be king over Israel: and Elisha the son of Shaphat of Abelmeholah shalt thou anoint to be prophet in thy room.

 

님시의 뜻은 “족제비”이고 예후의 뜻은 “여호와”이며 아벨므홀라의 뜻은 “춤추는 목장”이고 사밧의 뜻은 “심판”이며 엘리사의 뜻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입니다.

이렇게 열거하고 보니 세상을 다스리는 이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지고 영적인 길을 걷는 이에게도 하나님은 구원의 손길을 내려주신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세상을 교활하게 살아가며 스스로를 높이는 자(님시의 아들 예후)에게나 하나님께 순종하며 심판의 날에 구원받을 것을 믿고 있는(사밧의 아들 엘리사) 이들 모두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엘리사는 엘리야의 방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선지자가 된다는 겁니다.(thou anoint to be prophet in thy room)

이 말씀인즉, 성령과 하나 된 엘리야로부터 직접 기름부음을 받는 것과 원래부터 내재하고 있는 성령의 축복을 받는 것이 다르다는 거지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담겨있는 것은 맞지만 성령과 하나 된 이로부터 직접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결과를 달리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왕상19:17)

 

물질세상으로부터(하사엘) 자유로워지려면 먼저 육을 죽여야 하고(예후가 죽임) 다음으로는 영을 죽여야 한다는(엘리사가 죽임=빛이신 성령이 드러남)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길에도 단계가 있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단계를 밟지 않고 곧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8)

Yet I have left me seven thousand in Israel, all the knees which have not bowed unto Baal, and every mouth which hath not kissed him.

 

칠천 명이란 창조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완전히 깨달은 이들을 가리킵니다.(7은 창조의 한주기, 0은 꽉 차고 완전한 숫자=7×1000=7000)

이러한 점을 알게 되면 구태여 단계를 밟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곧바로 성령의 임하심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왕상19:19)

So he departed thence, and found Elisha the son of Shaphat, who was plowing with twelve yoke of oxen before him, and he with the twelfth: and Elijah passed by him, and cast his mantle upon him.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왕상19:20)

And he left the oxen, and ran after Elijah, and said, Let me, I pray thee, kiss my father and my mother, and then I will follow thee. And he said unto him, Go back again: for what have I done to thee?

 

한글 성경은 열 두 겨릿소라 했지만 영어성경은 열두 마리의 소의 멍에로 밭갈이 한다고(plowing with twelve yoke of oxen) 적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비유의 말씀으로 삼위일체(3) 하나님을 깨달은 사람(4)이 마음 밭을 간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과 완전히 연합하여 인자가 되었다는 뜻이며(3×4=12) 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멍에를 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자신의 십자가는 자신이 져야함)

그래서 성령과 하나 된 엘리야와 같은 인자의 몸이 되었다는 뜻으로 그를 지나쳐(육신을 넘어서) 그의 역할을 그에게 던졌다고 한 겁니다.(Elijah passed by him, and cast his mantle upon him)

이 말씀은 성령이 임하시게 되면 성령의 불씨를 전해줄 임무가 주어진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엘리사가 부모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따르겠다하자 엘리야는 즉시 돌아가라 했으며(Go back again)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성령과 하나 된다는 것은 혈육관계를 넘어서있다는 뜻입니다.

엘리야가 혈육으로 보면 엘리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빛이신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지 않았냐는 겁니다.

이 말에 엘리사는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왕상19:21)

And he returned back from him, and took a yoke of oxen, and slew them, and boiled their flesh with the instruments of the oxen, and gave unto the people, and they did eat. Then he arose, and went after Elijah, and ministered unto him.

 

엘리사가 부모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라 소의 멍에를 취했다고 했습니다.(took a yoke of oxen)

성령과 하나 된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성령으로부터 돌아옴) 육신을 입고 자신의 멍에를 졌다는 것이며 육의 속성을 죽이는(slew them) 선택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소의 기구들과 함께 고기를 끓였다고(boiled their flesh with the instruments of the oxen) 한 겁니다.

이는 소를 잡아 고기를 백성에게 나누어주었다는 말이 아니라 육신(소)의 모든 부분을 이용해서 백성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는 거지요.

말씀의 떡을 나누어주었다는 것과 같은 비유라고 보면 됩니다.

깨달은 스승이 자신의 몸과 피를 아낌없이 제자들에게 준다는 말과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최후의 만찬과 동일함)

이렇게 해서 로마서 11장에 인용된 구약의 두 번째 시간을 마칠 시간이 되었으니 세 번째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