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목사님께서 인용한 성경내용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성경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듦으로 깊이 있게 상고해볼 필요가 있지요.
그러므로 오늘 다시 한 번 더 되새김질 해보고자 합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마10:35)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6)
우리가 자식을 키워보면 참으로 많은 일들을 깨닫게 됩니다.
도대체 나와 자식이 어떤 인연이기에 이리도 속을 썩이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며 어찌 이리도 부모마음을 몰라주나하는 생각도 하게 되지요.
그러다보니 불가(佛家)에서는 부모 자식 간을 전생(前生)의 원수로 보기도 합니다.
지난 생의 빚을 받으러 자식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자식이 아무리 속을 썩여도 부모는 무조건 사랑과 이해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역시 부모에게 무언가를 해준 바도 없으면서 당연히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고 잘못을 용서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이러한 이유라 볼 수 있는 겁니다.
예수께서 전생을 언급하지는 않았고 이 말씀을 하신 근본이유는 성령이 육신과는 반대된다는 뜻이지만 부모자식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자면 이러한 시각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도 고정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도 있고 보면 자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구도자의 사명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근본목적은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라는 말이며 그 같은 목적을 위해 사람사이에 인연설정이 된다는 거지요.
혈육관계보다 더욱 높은 차원인 신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는 인과를 넘어서야하기에 원수조차 사랑하라 말씀하신 겁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5:45)
That ye may be the children of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for he maketh his sun to rise on the evil and on the good, and sendeth rain on the just and on the unjust.
원수조차 사랑해야 하는 근본이유는 악인과 선인, 의로운 자와 불의한자 모두의 안에 빛이신 성령이(his sun) 있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성령과 하나 됨이니 삼라만상이 그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는 뜻이지요.
악인에게 어떻게 성령이 들어있을 수 있나 하겠지만 죄업으로 가려져 있을 뿐 악인의 내면에도 성령은 잠들어 있는 겁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되면 인과의 세상을 벗어나는 것이고 모르면 세세생생 역할을 바꿔가며 연극을 지속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9: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예수생존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과법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세상의 법칙을 자신들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전생에 지은 죄로 인해 불구의 몸으로 태어난다고 여겼으며 부모역시 지은 죄로 인해 불구자 자녀를 두는 것으로 생각했던 겁니다.(2절)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과법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심지 않는 것이 싹이 날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3절에서 인과를 넘어서는 말씀을 합니다.
부모나 자식의 죄로 인해 불구의 몸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하신 것은 인식의 폭을 넓혀 세상을 살아가는 궁극적 목적을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이세상은 분명히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이 적용되는 곳이지만 이런 세상을 만든 하나님의 뜻은 완전한 사랑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씀이지요.
본인이 불구의 몸으로 태어났더라도 이 같은 점을 깨닫게 되면 성령과 하나 되어 하나님자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며 불구자 자식을 두었더라도 인과법을 넘어서는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성령과 하나 되라는 겁니다.
결국 예수님말씀은 육신을 넘어선 영의 세계를 깨달아 빛이신 성령과 하나 되는 것이 삶의 궁극적 목적이라는 뜻이 됩니다.
주어진 현실은 냉혹하지만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손길을 알게 되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실지로 주변을 보면 불구자나 그들을 자녀로 둔 이들이 본인의 처지(處地)를 넘어서 사랑의 실천을 통해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이들이 있지요.
반면에 불구자가 태어날 것을 알고 낙태수술까지 하는 이들도 있고 치매 걸린 부모를 길거리에 버리는 이들도 있으니 다 같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다양한 인식들이 이 세상에는 존재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넘지 못한 산과 강은 또다시 나타나기 마련이며 갈수록 힘든 일이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인과를 넘어서지 못한 이상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가 없으며 점점 더 큰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이렇게 말하면 성령의 내재하심을 깨달으면 어려움을 피할 수 있다 여길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성령을 깨닫고 나면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지며 가치관이 바뀝니다.
불구자 자녀를 두거나 불구자로 태어난 것을 사랑을 실천하라는 하나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어려운 상황을 주신 것도 내 죄를 씻어주기 위해 주신 것이라 여기게 된다는 겁니다.
박해받는 가운데도 믿음을 지킨다면 내 믿음이 커지는 것이기에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게 되며 불구자 자녀가 있기에 내가 더욱 큰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여기게 됨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만약 성령의 내재하심을 깨닫는다고 해서 어려움이 일시에 사라져 버리게 되면 헬렌 켈러같은 사람은 있을 수 없으며 성경속의 수많은 선지자들의 고난과 시련은 없는 거지요.
이 같은 일을 잘 말해주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곤충학자 한사람이 나비가 태어날 때 번데기를 찢고서 나오는데 그 고통이 너무나 심하다는 사실을 알고 메스로 껍질을 잘라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나비는 날지 못하고 그대로 죽고 말았던 겁니다.
그때서야 학자는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고통을 겪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고통이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했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깨닫는다고 해서 육신의 어려움이 일시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련과 고난을 통해 내 믿음이 강해지고 그러한 강한믿음으로 인해 성령이 깨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점을 깨닫게 되면 자식이 아무리 잠투정을 심하게 해도 내 사랑을 확장시켜주기 위해서라 여기게 되고 투정하는 모습조차 예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육신적으로 혹은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할지라도 그 일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성령과 하나 되는데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그 모든 어려움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사람의 몫이라 말합니다.
과연 누가 이렇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 홀로목사에게 축복과 저주는 항상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되새김질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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