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걷고 있다.

배가번드 2025. 4. 16.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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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4장에는 시편이 인용 되었습니다.

다윗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시편 내용 모두는 영의 세계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들이지요.

그러므로 속뜻을 헤아려가며 읽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다윗은 멜기세덱의 반차에 오른 인물이므로 그가 써놓은 시편내용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변화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겁니다.

영적인 길을 걷는 구도자라면 읽는 순간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을 거라 생각됩니다.

과연 그러한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시116:1)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시116:2)

Because he hath inclined his ear unto me, therefore will I call upon him as long as I live.

 

이 내용은 무척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데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믿음의 길을 걷기가 어렵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원하는 것들 대부분은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기도는 기복신앙의 전형적인 행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때마다 응답이 있기에 하나님이 귀를 내게로 기울인다(he hath inclined his ear unto me) 말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한 기도할거라(I call upon him as long as I live)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기복적인 신앙만으로 멜기세덱의 등급에 오를 수는 없지요.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다윗이 노래한 것은 다른 뜻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시116:3)

The sorrows of death compassed me, and the pains of hell gat hold upon me: I found trouble and sorrow.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시116:4)

Then called I upon the name of the LORD; O LORD, I beseech thee, deliver my soul.

 

사망의 슬픔이 나를 범주(範疇)에 두고(compassed me) 지옥의 고통을 나로 알게 하니(gat hold upon me) 내가 환란과 슬픔을 발견했다고 합니다.(3절)

달리 표현하면 각가지 어려움과 슬픔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자 나 자신이 죽음의 슬픔아래 놓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즉,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받을 때는 자신이 죽음이후의 세계에 대해 몰랐는데 환란과 슬픔을 경험하면서 본인의 영혼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4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의 영혼을 구해 달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밝히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실체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뜻이 “스스로 있는 자”라는 점을 볼 때 하나님은 누군가로부터 만들어지는 육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물질적 축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영혼을 위하는 기도를 하게 된 거지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시116:5)

Gracious is the LORD, and righteous; yea, our God is merciful.

 

여호와는 은혜이고(Gracious is the LORD) 공정함(righteous) 자체라고 하며 우리의 하나님은 자비롭다(our God is merciful) 말하고 있습니다.

삶속에서 각가지 고통과 환란을 겪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총과 공정함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깨달아야만 하며 세상적인 욕심을 내려놓아야만 합니다.

다음내용을 보면 다윗이 왜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시116:6)

The LORD preserveth the simple: I was brought low, and he helped me.

 

단순한 자를 지킨다는 것은(The LORD preserveth the simple) 세상을 복잡다양하게 살지 않는다는 뜻인 동시에 매사를 간단명료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가 낮은 곳에 임하였을 때(I was brought low)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셨다 한 겁니다.

세상욕심을 버리고 높이 올라가기보다 스스로 만족하여 겸손한 삶을 살면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음을 알게 된다는 거지요.

이러한 마음은 육에 속한 이는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영의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하기에 다윗은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시116:7)

Return unto thy rest, O my soul; for the LORD hath dealt bountifully with thee.

 

영혼의 안식처는 영생의 하늘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우리가 삶을 대함에 있어 초점을 영에 맞추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사를 풍족하게(bountifully with thee) 처리하고(hath dealt) 있음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재하신 성령을 깨닫게 되면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는 거지요.

이렇게 되면 다음과 같은 찬송이 절로 나옵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시116:8)

For thou hast delivered my soul from death, mine eyes from tears, and my feet from falling.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시116:9)

I will walk before the LORD in the land of the living.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시116:10)

I believed, therefore have I spoken: I was greatly afflicted:

 

육신의 죽음과 함께 죽어질 영혼을 구원하셨고(hast delivered my soul), 지혜의 눈을 떠 슬픔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셨으며 육적인 길에서 영적인 길로 걸어가게 하신다고 합니다.(8절)

내재하신 성령을 알게 되면 우리의 삶을 주관하게 되기에 당연히 이렇게 기도하게 되지요.

그러므로 생명의 땅에서(in the land of the living) 여호와 앞에 걷게 될 거라 말하고 있습니다.(9절)

빛이신 성령이 삼라만상에 만연함을 깨닫고 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걷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성령을 깨닫고 나면 삶을 영위함에 있어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겠지만 그 순간조차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다는 겁니다.(10절)

비록 육신적으로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겠지만 이미 내적으로는 평화를 얻었으므로 믿음은 변치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점을 바울이 깨달았기 때문에 고린도후서에서 인용했다는 말씀을 드리며 시편강해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