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이어 에베소서 5장에 인용된 시편 내용을 상고해보겠습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시4:1)
Hear me when I call, O God of my righteousness: thou hast enlarged me when I was in distress; have mercy upon me, and hear my prayer.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시4:2)
O ye sons of men, how long will ye turn my glory into shame? how long will ye love vanity, and seek after leasing? Selah.
내가 곤란 중에 있을 때 당신은 나를 확장했으며(thou hast enlarged me)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자비롭게 하셨다(have mercy upon me) 했습니다.(1절)
지금 이 기도는 단순하게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괴로움과 고통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당면하는 어려움들 모두가 인식의 확장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임을 깨달았기에 나의 의로우신 하나님이여(O God of my righteousness) 한거지요.
정의롭다는 것은 옳은 일에는 상을 주고 잘못한 일에 벌을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무조건 용서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편기자는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절에서 너희 사람들아(O ye sons of men) 언제까지 내 영광을 망신시키려하는가 했으며 헛된 사랑을(love vanity) 하며 임대(賃貸)를 추구하려는가(seek after leasing) 했습니다.(셀라의 뜻: 찬양하다)
이 말씀은 1절에 대한 화답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인 동시에 성령을 드러낸 인자의 말씀이라 봐야 합니다.
육에 속한 이에게 성령의 입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거지요.
잠시 왔다 머물고 가는 인생이라는 뜻에서 임대한다는 표현을 한 것이며 영원하지 못한 육과 물질을 추구하는 인생을 꼬집고 있는 겁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왜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시4:3)
But know that the LORD hath set apart him that is godly for himself: the LORD will hear when I call unto him.
여호와께서 자신의 경건함을 위하여(godly for himself) 그를 구별하였음을(set apart him) 알라고 하며 내가 그를 부를 때 들으실 거라 했습니다.(the LORD will hear when I call unto him)
영적인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들과 육신적인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라는 뜻이며 삶에서 마주하는 괴로움을 이겨내라는 말이지요.
다시 말해서 성령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당면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응답과 같이 여기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시4:4)
Stand in awe, and sin not: commune with your own heart upon your bed, and be still. Selah.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시4:5)
Offer the sacrifices of righteousness, and put your trust in the LORD.
경외심에 서고(Stand in awe) 죄짓지 말라 했으며 너의 침상에서(upon your bed) 너희 자신의 마음과 교감하고(commune with your own heart) 조용하라(be still) 말합니다.(4절)
이 말씀인즉, 육적 속성을 잠재우고 침묵 속에서 내재하신 성령과 교감하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내재하심을 알게 되면 당연히 두려움 안에 서는 것과 같고 죄는 맑고 순수한 성령을 가리는 먼지와 같으므로 양심을 속이는 짓을 하게 되면 성령을 가리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5절에서 의로운 제사를 드리고 너희 믿음을 여호와께 두라했습니다.(put your trust in the LORD)
스스로 생각할 때 정의롭다 여기는 일을 하며 성령이신 여호와가 내재하심을 믿으라는 뜻이지요.
이러한 일은 영적인 길을 걷고자하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그들은 항상 다음과 같이 원합니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시4:6)
There be many that say, Who will shew us any good? LORD, lift thou up the light of thy countenance upon us.
많은 이들이 선을 보일 자가 누군지를(Who will shew us any good?) 궁금해 한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 얼굴의 빛을(the light of thy countenance) 들어 올려 달라(lift thou up) 했지요.
즉,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으니 빛이신 성령을 드러내 달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길을 걷는 이들의 최종목적은 빛이신 성령이 드러나는데 있다는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재하신 성령을 깨닫는 것이 선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는 말이 됩니다.
이러한 점을 깨닫게 되면 다음과 같이 노래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4:7)
Thou hast put gladness in my heart, more than in the time that their corn and their wine increased.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4:8)
I will both lay me down in peace, and sleep: for thou, LORD, only makest me dwell in safety.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put gladness in my hear) 곧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7절은 내재하신 성령을 깨닫는 것은 물질적인 축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평화롭게 눕고 자게 되며(lay me down in peace, and sleep) 당신 여호와로 인하여(for thou, LORD) 안전하게 지낸다(dwell in safety) 노래하게 되지요.(8절)
바울이 에베소서 5장에서 인용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내재하신 성령에 대해 알게 되면 누구나 이렇게 살게 됨으로 축복의 선물을 받은 셈입니다.
물론 이 같은 축복도 믿음을 가졌을 때라야 유효합니다.
오늘 믿고 내일은 불신하는 그런 믿음으로는 성령이 깨어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며 시편강해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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