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32)

배가번드 2021. 8. 18.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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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센터부지 중도금이 지불되지 않은 관계로 공사를 할 수 없었기에 태백센터에서 사태추이를 살피면서 기다리는 동안 전국적인 매입모금에 열을 올리고 있던 그 당시 대구 연락 인이던 K사형에게 한마디조언을 했는데 모금을 하는 당사자부터 내고 권유하게 되면 그 효과가 빠르고 자신이 돈을 많이 내면 많이 낼수록 그 효과는 배가된다고 했더니 자신이 먼저 내고자 하는 액수를 적고 다니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지매입비 모두를 모금했어.

내가 이러한 조언을 하게 된 데는 초기 입문자 시절 대구 동수들과 미리 채식식당을 열기 위한 회의를 해본 결과에 따른 것이었지.

그때는 캄보디아일로 인해서 채식식당을 열기 위한 자금조달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내가 미리 돈을 내겠노라 액수를 적고 나서면 누구나 따라올 거라 생각했었거든.

부지매입금 모금이 완료되기까지에는 많은 분들의 노력이 뒤따랐는데 얼음만 드시고 사신다는 스님을 비롯하여 각 센터 연락인 들이 동수들 개인을 상대로 수없이 많은 대화를 해야 했어.

부지매입중도금이 지불됨과 동시에 공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국제선까지의 기한이 두 달 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서둘러야만 했는데 다른 선 행사 열리는 곳과는 달리 구조물이 하나도 없는 산에다가 건물까지 만들어가면서 해야 하는 만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

먼저 일단의 인력들이 현지에 상주를 해야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와 사이가 좋았던 땅 주인이 아래채를 빌려주는 바람에 작긴 하지만 그럭저럭 지내기로 하였어.

10여명의 남녀가 지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라 화장실부터 시작해서 잠자리와 먹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불편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그나마 갈수록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급기야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일부의 사람만 남기고 다들 각자가 속해있는 센터에서 출퇴근을 해야 했던 거야.

일부는 대전센터에서 또 다른 분들은 대구센터에서 출퇴근을 했는데 명상을 해가며 막노동을 하는 일정소화가 극기 훈련을 하는 듯 했는데 그래도 명분 있는 일에 종사한다는 사명감으로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어.

10일 이상을 그렇게 지내다가 지금 영동센터의 뒤쪽 산 너머 집을 세를 내어 공사 인력들이 상주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임대한집이 이층구조로 되어있어서 산골마을에 누가 이렇게 쓸모도 없이 넓은 아래층의 공간을 포함한 집을 지었을까 했는데 훗날 알고 보니 얼마 전까지 투견 장이었다더구나.

가끔씩 뉴스에도 나오는 개싸움을 시켜놓고 돈 따먹기를 하는 도박장 있지?

바로 그러한 곳을 우리가 임대한 거지.

아들아!

너도 들어보았겠지만 원효 스님이 당나라에 유학을 가다가 동굴에서 해골바가지에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처럼 우리 역시 처음에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미리 알았으면 다들 씻지도 않고 잠도 그곳에서 자지 않았을 테지만 한참을 생활하다가 알게 되었기에 모두들 아무런 불평도 없었어.

솔직히 유별나게 까다롭게 구는 동수들이 많은데 그때 일을 볼라치면 모르는 것이 약이 된다는 말과 원효스님이 말씀하신 일체유심조(一切唯心 助)는 진리라고 생각해.

내가 왜 이렇게 장황설을 늘어놓느냐하면 우리가 숙소로 사용하던 곳은 수도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곳이라 씻기 위해서 숙소위편에 있던 저수지물을 호수로 연결하여 샤워 물로 사용을 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사용한 저수지가 싸움에 져서 죽은 개를 처리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거든.

처음 한동안은 모르고 있다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때 일한 분들 중에는 아직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분들도 있을 거야.

계란이 조금만 포함된 과자를 먹고도 업장이 있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수행자들에는 그야말로 펄쩍 뛸 일이었지만 그때는 까맣게 몰랐어.

전국각지에서 지원하신 분들이 늘어나는 만큼 차량 또한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조용하게 보호되던 자연이 우리의 작업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

그런데 일을 하면서 신기했던 것은 어디서 그렇게나 많은 인재들이 나오는지 평상시는 말없이 조용하던 분이 알고 보면 엄청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떠벌리기 좋아하는 나는 정작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없는 것이 어떨 때는 내가 여기 왜왔나 싶을 지경이었지만 그나마 호주에서 있었던 선 행사 때 미리 가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얘기하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아야 했어.

공치사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매일같이 차를 마시면서 우리가 나눈 대화가 다음날 공사의 대부분을 결정 내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그 당시 함께 일한 분이 알고 있으니 알게 모르게 내가한 역할이 참모의 역할이었을 거라 생각해.

전체적인 공사를 지휘하는 곳은 관음사자가 있는 곳에서 이루어졌지만 어디까지나 실질적인 공사가 실무 팀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현장 공사감독이라 할 수 있는B스님과 C사형을 모시고 차를 마시는 자리는 그냥 즐기는 자리가 아니었어.

처음우리가 차를 마시기 시작할 때는 이층에 있던 방 두 개중 하나를 사용하였는데 차를 마시지 않는 분들에게 명상과 수면을 방해한다 하여 방 두 개에 딸린 자그마한 창고 같은 데로 밀려났다가 그조차도 시끄럽다 하여 아래층으로 쫓겨 내려가야 했거든.

나중에 쫓겨 내려간 일층에서도 계속 차를 마시며 떠들어대자 한번은 평소 알고 지내던 대구사형 한 분이 나에게 부탁을 하는 거야.

나보고 모범이 되어 좀 조용해주면 고맙겠다고 하면서 피곤하게 일을 하고 와서 명상도 하고 잠도 자야 다음날 일하는데 지장이 없지 않겠냐며 부탁을 하시는데 절대로 들어줄 수가 없었던 것이 나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었거든.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나로서는 피곤함을 무릅쓰고 느낀바알고 있는 바를 얘기를 해야만 했어.

같이 차를 마시는 분들은 못 느꼈겠지만 차를 마시는 동안 내게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퍼부어지고 있었는지 몸이 꼿꼿한 채로 밤새워 차를 마시다시피 해도 피곤한 줄을 몰랐지.

우리가 워낙 차만 마시고 명상은 않는다 해서 나중에는 새벽4시까지만 차를 마시고 그때부터 명상을 하다가 아침에 남들이 일하러 나갈 때 같이 일을 했더니 그제야 뭐라는 사람들이 없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만큼 별스러운 성격들도 다 있었는데 남들이 명상을 안 하는 것까지 시비를 하는 사람도 있었어.

한번은 다들 잠이 들었을 때였는데 연세도 높으신 어른이 젊은 동수들과 함께 일을 하시다 보니 피곤하신 모양으로 명상을 않고 코를 골며 주무시자 깨워서 명상하라고 나무라는 것을 보았지.

동수를 생각해주는 모습은 좋게 생각해야겠지만 남이 명상을 하던 안 하던 자는 사람 팔을 잡아당겨서 깨울 이유까지는 없을 것 같았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이러한 일은 지금도 가끔 볼 수 있는데 남이 명상을 못해 등급이 떨어지면 그 사람이 알아서 할 문제 일뿐 왜 남의 일에 참견을 하나 이거야.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이 여겨져서라고 억지로 생각하고는 있지만 결코 아름답게 여겨지진 않아.

실지로 이런 점 때문에 우리단체를 등진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감안하면 웃고 넘길 문제가 결코 아닌 것이 스승님이 따로 있는데 왜 자신이 나서서 스승님이 제자 나무라듯 하는가 이 말이거든.

이런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를 들어보면 같은 스승님을 모시는 제자로서 서로의 도구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한마디로 웃기는 발상들이야.

상대방이 원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상대를 가르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말이지.

스승님조차도 제자가 원하지 않으면 절대 가르치시는 법이 없는데 하물며 공부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 상대에게 잘못을 저질러놓고서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변명까지 하는 것을 보면 한심하기까지 하더구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상근기라면 어떤 수난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십중팔구는 떨어져나가게 되어있거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에게는 그런 일로 시비를 거는 사람이 그때까진 없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게도 시련의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넘을 산을 넘기 마련인가 봐.

날짜가 갈수록 더 많은 인력들이 자원해서 모여들고 있었고 그 당시 외부를 오가며 물품구매담당을 하고 있던 나에게 한 스님이 조수로 합류하고 싶다고 해서 만나보니 묵언 중이라고 하는 거야.

묵언을 하면 어떻게 함께 일할 수 있겠냐 싶어 안 된다고 거절을 했더니 일을 할 때는 묵언을 풀 수가 있다고 하기에 그렇다면 같이 일을 해도 좋다고 합류를 시키게 되었어.

아들아!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는데 묵언이 뭔지 알고 있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그렇구나.

네가 알고 있는 묵언은 그런 거였구나.

묵언은 수행 방편중의 한가지라 할 수 있는데 스님들이 주로 수행을 목적으로 행하고 있기도 하고 인도의 아힘사의 영웅 마하트마 간디가 일주일에 한번 묵언과 금식을 한 것으로 유명하거든.

이 묵언에 대한 정의도 가지가지라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아는 것만 얘기하기로 해.

우선 어떤 스님은 묵언을 말하길,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진정한 묵언이다라는 분도 있고 “할 말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은 안 하는 것이 진정한 묵언이다라고 말하는 분도 있어.

모두가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지켜보는 이는 원래 말이 없다가 내가 생각하는 묵언이야.

그때 그 스님은 묵언을 아주 자유롭게 하는 듯 했는데 재미있는 묵언법이라 생각되었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묵언 중이라는 명찰을 보여주면 될 것이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상대는 말하는 아주 편리한 묵언 법이라 여겨지더구나.

그 스님과 물품을 사러 가는 도중 한번은 내게 선문답 비슷한 것을 물으셨지.

 

사형은 수행의 요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뜬금없이 물어오는 통에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내가 평소 하던 명상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였어.

 

다른 분들처럼 공부도 많이 못한 터라 잘은 모르겠지만 오로지 스승님만 생각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나의 대답에 무릎을 치면서 동의를 하더구나.

자신도 그러한 일념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열심히 함께 걸어가자고 하셨지.

나야 뭘 모르고 급작스러운 질문에 대답한 것에 불과했지만 그분은 엄청 많은 고민을 했던가 보았는데 몇 달을 장고한끝에 내린 결론을 한 순간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내가 말하자 놀라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모양이었어.

아들아!

이러한 일을 보여주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으니 한번 들어보자꾸나.

있었던지 없었던지 모를 옛날 중국에서 사신이 조선 땅으로 왔는데 문제를 맞히지 못하면 왕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리는 통에 비상이 걸린 조정에서 재상이던 김 대감에게 사신을 맞이하라는 엄명을 내리게 되었대.

잘못하면 목이 달아난다는 어명에 걱정이 된 김 대감네 식구들이 회의를 한 결과 원래가 무식하고 떡만 먹을 줄 아는 떡 쇠가 김 대감과 비슷하게 생겼으니 변장을 시켜 보내기로 했어.

그런데 이 사신이 문제를 낼 때나 대답할 때 절대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지.

사람이 좋기만 한 떡 쇠가 중국사신을 만났는데 느닷없이 손바닥을 땅을 향하게 하고서 앞으로 팔을 내미는 중국사신을 보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자신 또한 손을 내미는데 이번에는 손을 뒤집어서 내미는 거야.

그렇게 내미는 떡쇠의 손을 보는 중국사신의 눈이 왕방울만 해지더니 이번에는 손가락 세 개를 내미는 것이 아니겠니.

그러자 이번에는 떡쇠가 머뭇거리는 기색도 없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이자  중국사신이 그 자리에서 꿇어 엎드려서 절을 하더니 황망히 제 나라로 돌아가서 황제에게 보고하길 조선에는 인재가 무궁무진하니 왕으로 인정할 뿐 아니라 앞으로 조선을 넘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는 거야.

갑자기 거들먹거리던 중국사신이 왜 돌아가게 되었는지 알아보니 처음사신이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내민 것은 땅의 이치를 아는가이었는데 오로지 떡 먹는 것밖에 모르던 떡쇠가 받아들일 때는 손등모양이 시루떡처럼 보였으므로 자신에게 “시루떡 먹을 수 있나” 라고 묻는 것으로 보였던 거지.

그래서 당연하게 손을 뒤집어 내밀며 “너는 시루떡만 먹을 수 있나 보지만 나는 인절미도 먹을 줄 안다고 한 것인데 사신이 봤을 때는 “너는 땅의 이치만 아나 본데 나는 하늘의 도리도 안다라고 본 것이었어.

그렇게 대답을 시원하게 하자 놀란 중국사신이 이번에는 삼강을 아는가라고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던 건데 떡쇠는 “세 판 먹을 수 있나” 라고 봤던 것이고 당연히 우리의 주인공 떡쇠는 의기양양하게 조금도 망설임 없이 “너는 세 판이지만 나는 다섯 판 먹을 수 있다라고 손가락을 다섯 개를 펴 보인 것이었고 중국사신이 보기에는 “너는 삼강만 아는 모양이지만 나는 오륜 또한 알고 있다라고 본거지.

이렇게 해서 조선의 왕을 인정하게 되었다는있지도 않은 말이겠지만 똑 같은 일이라도 보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어.

그때 그 스님과의 대화 역시도 그러했지 않나 생각한단다.

내가 낮거나 그 스님이 높거나……

알고 했건 모르고 했건 수행의 요체는 스승님에 대한 신심이라는 데는 의견 일치를 보았으니 즐겁게 같이 일을 하게 되었어.

그 스님과 한번은 우리숙소 쪽을 넘어가고 있었는데 차를 운전하시던 스님이 길에 놓여 있던 돌을 미쳐 못 본 모양으로 차바퀴가 튕겨 나가는 바람에 차가 도랑에 빠지는 일이 일어났는데 지휘본부라 할 수 있는 관음사자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가서 차가 빠진 것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더니 그 당시 자금담당책임자 역할을 담당하던 사형이 대뜸 나무라는 것이었어.

우리가 밤새워 차를 마신다는 소리를 들었던지 밤 새 차를 마시고 잠을 자지 않고 일을 하러 나와 졸음운전을 하다 차가 빠졌지 않냐 는 것이었는데 누가 운전했는지는 물어보지도 않고 경솔하게 대응하는 것에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뭘 몰라서거니 했지.

그 일이 있고 나서 스님은 다른 일에 배치가 되었고 그때부터 자금 담당하는 사형과 몇 번의 부딪치는 일들이 이어졌는데 한번은 가스설치문제로 상주까지 가서 가스기술자를 연결을 해놓고 돌아와 보니 자기에게 보고도 않고 일을 처리했다고 기껏 힘들게 설치하려고 온 업자를 돌려보내 버렸다는 것이었어.

물품을 구입하고 업자와 연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실무 팀에서 해야 하는 일인데 자금 관리책임자에게 보고도 않고 일을 했다는 것이었지.

화가 났지만 참기로 했어.

어디까지나 수행을 목적으로 들어온 단체에서 보다 큰일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이 정도로 화를 낼 일도 아니다 싶기도 하고 스승님을 보고 수행하지 동수를 보고 수행하는 것은 아닌 만큼 참기로 했는데 보다 큰 문제는 다음에 일어나게 되었지.

누군가가 제공해 주고 있던 차를 돌려주기 위해 그때까지 모아둔 장부를 내려두고 차를 갖다 주고 돌아와 보니 장부가 없어진 것이었어.

장부라야 항시 물품을 사고 난 흔적들인 만큼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서든지 구할 수 있는 그런 영수증들이었는데 웬만하면 내가 영수증을 만들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사무실에 앉아있는 분들이 시간여유도 많을 터이고 보고 삼아 말을 했더니 노발대발 난리가 난 거야.

처음에는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얘기했지만 끝도 없이 화를 내는 것이 꼭 내가 남의 밑에 일을 하다가 당하는 것 같은 생각에 슬그머니 기분이 나빠 오더구나.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사람 밑에 고용된 입장도 아닌데 아랫사람 부리듯 하는 바람에 짜증이 나서 마음대로 하라고 말해주고 나와 버렸지.

그때부터 물품을 살 때마다 돈을 주지 않는데 작업하시는 분들은 물품담당을 맡고 있는 내게 짜증을 내게 되고 나로서도 미안하니 어쩔 수 없이 젊은 동수에게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어.

돈을 탈 때마다 나를 보면 화를 내니 나대신 돈을 타달라고 부탁을 했던 건데 한번은 어디를 다녀와 공사 감독하시는B스님과 얘기를 하는데 저쪽에서 내가 부탁한 동수가 돈을 타려다 꾸지람을 받고 있는 것이 보이는 거야.

책임자동수 앞에 공손한 모습으로 서있는 모습에 갑자기 내 안의 어떤 기운이 넘쳐 나면서 욕이 튀어나왔어.

 

!

이 새끼야!

네 돈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오늘 내가 너 때려죽여버리겠어!

 

갑자기 욕을 하며 달려들자 옆에 계시던 분들이 말리고 난리 통이 벌어졌는데 나보고 나무란 것도 아닌데 왜 나서느냐는 책임자동수의 말이 더욱 나를 화가 나게 했어.

뻔히 나를 애먹이기 위해서 행동을 해놓고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듯 발뺌하는 동수가 얼마나 괘씸하든지 몇 번이나 참고 있던 내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여 나오자 주위의 동수들이 모두들 피하기까지 했어.

이 일이 있고 난 후 며칠을 단식을 하고 고민을 했지.

 

정말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스승님 밑에서 공부를 했다는 사람이 어쩌면 저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계속 이 길을 가야 하나?”

 

끝없이 이어지는 내면에 대한 물음 끝에 과거를 돌아보는 순간 대만 선에서 스승님이 문제의 그 동수와 내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통쾌하게 웃으시던 기억이 나는 것이 아니겠니.

어쩌면 “스승님께서는 미리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다.”라는 생각과 “그 사형과 내가 분명히 어떤 인과가 얽혀있다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어.

결론을 그렇게 얻었다고 해서 분이 삭혀진 것은 아니었는데 어느 날 단식을 풀고 식사를 하는 도중이었어.

날이 흐린 탓에 찬 산 공기가 만들어낸 안개로 시야가 흐릿한 가운데 누군가 내 차문을 여는 것 같았는데 무심코 바라보는 바람에 누군지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이상하다 싶은 마음에 차로 가서 확인해보니 차에 문제의 장부 가방이 놓여 있었던 거야.

너무나 기가 막힌 일에 어처구니없었지만 누군지 살필 새도 없이 갖다 놓았으니 할 말이 없었어.

아들아!

이러한 일을 네가 당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니?

너무나 어려운 문제라 너에게 답을 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구나.

이러한 일을 남이 당하게 되면 이래라 저래라 충고도 많이 한 것 같았지만 막상 내가 주인공이 되고 보니 참으로 어려웠는데 20년을 얼음만 드신다는 스님께서는 전생의 업장이 다가오면 피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신걸 보면 인과를 뛰어넘기란 무척 어려운 것이 사실인가 봐.

아마도 그러한 점을 역대 조사들께서도 말씀하고 계신 것을 보면 사실인 것 같거든.

그런데 이 사형과의 일로서 내가 생각한 많은 일들 중에는 단순히 인과로만 받아들여졌던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

내 마음속에 깊이 잠재한 나의 폭력성과 억눌린 감정의 찌꺼기들이 그 사형과의 일로써 여지없이 드러난 것을 생각하면 그 사형이 고맙기까지 해.

뉘라서 나에게 그러한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니.

실상 그 사형에게만 잘못이 있다고도 할 수 없고 나에게도 내가 모르는 잘못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전생에 어떤 인과가 있다 한다면 그야말로 빚을 갚을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단 말이야.

이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왼쪽 뺨을 내밀어라” 하셨으리라 생각해.

그 사형과는 그러한 일로서 인과를 해결한듯했고 또 다른 동수들을 만나게 되는데 처음 내가 센터건설에 관련된 물품을 사기 위해서 영동에 있는 목재상을 단골로 정했던 곳의 주인이시던 J사형과의 만남이었지.

이분은 그때 당시 다른 수행을 하던 중이었는데 영동일대에서 갑부소리를 듣던 재산이 이런저런 이유로 손해를 보고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는 가운데 나와 인연을 맺게 되었어.

지금도 수행을 하고 계셔서 뵐 때마다 고맙게 여기고 있지만 처음에는 명상을 하면서 더러 맥주한잔 정도는 마셔도 되는 줄 알고 계시다가 지금은 철저한 계행과 철야도 불사할 만큼 명상에 깊이 빠져계시는데 재산은 갈수록 줄어들고 줄어든 재산대신 마음속에 명상의 힘으로 채우고 있는 분이야.

처음에는 태산도 무너뜨릴 마음으로 용맹 정진하다가 작은 고난이 다가와도 넘어져버리는 용두사미 격인 수행자가 아니라 처음시작은 미지근하다가 나중에는 쇠를 녹이는 용광로처럼 수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수행인 이라 하지 않을까 해.

이분은 지금도 가끔 만나고 있는데 갈수록 열심히 하시는지라 이제는 꾀를 부리는 내가 도리어 배워야 할 정도로 열심히 명상하고 있어.

그 당시 우리가 차를 마시는 일층에 텐트를 치고 계시던 또 한 분의 소중한 동수를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다른 곳에서 이미 수행을 많이 하신 분으로 입문을 하고 교통사고까지 당하고 최근에는 파산신청까지 해야 할 정도로 곤란을 겪고 계시는 분인데 이분 또한 힘들어 하기는커녕 항시 웃으시면서 다니는 통에 이분 앞에서는 감히 힘들다는 말도 꺼낼 수가 없었지.

한번은 사형과 가스랜지 구입도하고 가스설치도할 목적으로 함께 상주를 갔을 때였어.

화장실을 찾다가 마땅하게 소변볼 곳이 없어 살피는 중인데 옆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에 아주 급한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나오는데 보니 옷에 소변이 줄줄 묻어있었지.

속으로 “애도 아닌 양반이 어떻게 소변을 저리도 흘려가며 보았을까?”했는데 알고 봤더니 급해서가 아니라 대소변 보는 주머니를 몸에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겠니?

아들아!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솟구치더구나.

수행하다 어려움을 만나면 다들 돌아서기가 쉬운데 입문해서 당한 교통사고로 똥오줌주머니를 차고서도 신에 대한 원망은커녕 누구보다도 열심히아니 더욱더 많이 봉사하고 명상하시는 그분은 누가 뭐래도 성인이었어.

어떤 이들은 입문을 하면 아무런 고난이 없다는 분도 있지만 수행의 정도가 틀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업력이 틀린 만큼 모두가 편하지는 않는데 그분의 삶이 그러했던 것 같았지.

오늘날까지도 대소변을 보기 위해서 애를 먹고 있는데 그런 몸으로도 막노동을 하고 계시는 그분 앞에만 서면 왠지 나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아.

가끔씩 센터 연락인 들이 불우이웃돕기를 하자고 떠들어대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너 자신이나 돌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내 옆에 앉은 동수의 힘든 사정도 살피지 못하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를 돕는다는 말인지 우습지만 그 또한 신의 안배라고 여기는 만큼 자신들이 필요한 공부를 스스로들 하고 있으리라 생각해.

그곳에서 만난 많은 인연과 수많은 일들을 모두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의 이야깃거리는 남아 있는 것 같으니 오늘은 여기에서 쉬었다가 다음에 또다시 여정을 계속해나가자꾸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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