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구치소로 옮겨가기 위해 다들 버스에 짐을 싣고 있었는데 북새통이 따로 없더구나.
이불에다가 지금껏 자신이 쓰던 물품을 싸서 한쪽 어깨에 메고 굴비 엮듯이 엮이어서 옮겨갔는데 도착하고 소지품검사를 하기위해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지루한 시간이 한없이 흐르고 있었어.
몸수색과 소지품검사를 이 잡듯이 하고 방 배정을 받고 보니 오촌 당숙은 내 옆방에 배정이 되었고 구미에서 온k라는 친구와 내가 한방에 가게 되었는데 방에 들어선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던 거야.
배정 받은 방이 전날 내가 꾸었던 꿈에서처럼 너무나 좁은 것이었어.
7명이 한방에 배정이 되었는데 숨이 막힐 정도의 좁은 방이더구나.
앞서 우리가 있던 교도소와 배정도의 차이가 날 것 같았는데 4평이 조금 넘는 곳에서 살다가 그나마 공간이 반으로 줄어들었으니 그 갑갑함이란 어떠했겠냐 말이야.
얼른 내가 꾸었던 꿈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바꾸었지.
내가 갇힌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갇힌 거라고….
그렇게 마음먹었더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주위가 밝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니.
아마 신이 내가 이곳을 오게 될 것을 미리 알고서 꿈을 주신 것 같았어.
이렇게 마음을 바꿔 먹고 보니 깨끗한 실내에다 마룻바닥도 깨끗하고 화장실도 플라스틱유리로 된 칸막이라 밖이 보이긴 해도 깨끗하며 건물의 벽도 하얗게 칠이 되어 있었고 새 건물이라 어느 한곳 깨끗지 않은 데가 없었으며 무엇보다 지독한 냄새가 없어서 좋더구나.
새 건물인데 냄새가 없을 수 없겠지만 먼저의 교도소에서 나는 냄새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어.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인 화원교도소는 사람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특유한 냄새가 깊게 배여 있었는데 안에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악취가 나고 있었거든.
물론 나에게만 맡아지는 냄새인지는 모르겠지만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났던 것만큼은 틀림없었어.
모두들 각자의 물품을 풀어놓고 정리를 하고 서로 통성명들을 하는데 단 한분도 비슷하게 생기신분이 없었고 살면서 보니 그러한 특이한 점들은 갈수록 선명하게 차이가 나기 시작하더구나.
모두들 각자의 역할분담을 위해 형식적으로라도 감방장과 배식반장을 뽑기로 했는데 다들 나를 보고 감방장을 하라 추천을 했지만 앞서 배식반장을 할 때의 기억 때문에 다시는 책임자 역할을 맡지 않겠노라 내심 결심을 하고 있었고 오로지 수행의 방편을 삼기 위해 더욱 하심을 하리라 마음먹었기에 첫날부터 걸레를 들었고 설거지를 자청하였으며 뺑기통 담당을 내가 하겠노라 선언하였어
그 대신 내 의견을 말씀 드렸지.
여기에서는 다들 협조하고 화목하게 효율적으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만큼 나이가 제일 많으신 어른이 감방 장을 맡으시고 배식반장은 돈을 맡아서 운영해야 하는 만큼 투표를 통해서 뽑도록 하자고 했어.
결국 내 말대로 하여서 연세가 제일 많으신 K선생님께서 감방 장이 되셨는데 이분은 연세가 60이 다된 분으로 노름을 하다가 빌려 쓴 돈을 갚지 않아서 들어오신 것 같았는데 재수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으신 아주 웃기는 인생을 사신 분 이었지.
왜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되는가라는 것은 나중에 천천히 사건전개가 될 것이니 기대해 보도록 하고 지금은 옮겨간 방에서의 일만 얘기하도록 하자꾸나.
배식반장은 구미에서 룸살롱을 하다 온 젊은 친구K가 맡기로 했어.
원래 이 친구가 나를 추천하였는데 너무나 강력하게 추천을 하기에 도리어 내가 역으로 추천을 하게 되었지 않겠니.
방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젊은 친구를 맡겨놓고 주위에 나이 많으신 분들이 도와주시면 별 어려움 없이 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말씀 드렸더니 내 말을 모든 분들이 들어주시는 바람에 안 하려는 K에게 배식반장의 책무가 주어지게 된 거야.
아들아!
웃기지 않니?
뭐가 웃기냐고?
너는 아직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구나.
감방장과 배식반장을 결국 내가 임명하고 있는 사실이 보이지 않니?
내가 안 하는 대신에 내가 추천하고 내가 말을 해서 다들 수긍하게 만들었으니 결국은 직접 하지만 않았을 뿐 내 입김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거라는 것이고 내가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거지.
그렇지 않니?
골치 아픈 일을 내가 맡기 싫어서 하지 않았을 뿐 결국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언제나 내가 되고 있었다는 거야.
어찌 보면 야비한 짓일지도 모를 일을 내가 하고 있었던 거지.
나도 모르게…….
늘 방안에서 일이 생기면 내가 나서서 하려고 하니 남들 보기에는 괜찮은 사람쯤으로 보였을 테고 식사도 이상스럽게 하는데다가 초저녁이면 이불을 덮어쓰고 새벽이면 앉아서 기상나팔소리가 들리도록 명상에 잠겨있으니 다들 도인사촌은 된 듯이 나를 보게 되었던 거라 이 말이거든.
그런 사실만으로 내가 야비하다는 말을 듣기는 그렇지만 어떤 결정적인 일들이 생길 때마다 내 목소리를 내온 것 때문에 나 자신 스스로를 비판하고 싶은 거야.
남들을 위한 봉사를 한답시고 걸레질하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와 뺑끼통 청소를 한 것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은 행동을 한듯한데 실상을 보면 결국 그것마저도 내가 하고 싶어서 했던 또 다른 욕심에 지나지 않더라 이 말이지.
이 같은 사실은 다른 분을 바라보는 내 시각을 보면 잘 알 수가 있어.
우리 방에 나이가 나와 비슷한 사람으로 J씨가 있었는데 이분은 들어온 지가 며칠 되지 않은 분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1년이 넘은 분이기도 했는데 어째서 그러냐 하면 처음 교도소에 들어와서 재판을 받고서 1년을 살고 나가는 도중 다른 죄목이 드러나는 바람에 또다시 구속이 되었기 때문이야.
웃기지 않니?
그런데 이분의 행동이 사사건건 내 눈에 거슬리는 것이었어.
좁디좁은 방에 늘 운동을 한답시고 입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 그랬으며 설거지를 하는데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는 처사가 그러했고 도무지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행동하는 것이 너무나 짜증나는 일이었거든.
좁은 방이라 식사가 끝나는 대로 설거지를 물이 나오는 화장실에서 해야 했고 화장실 옆에 그릇 놓는 받침대에다 올려놓아야 했는데 화장실 문도 닫지 않고 샤워를 하면 물이 어디로 튀는가 말이야.
우리자신이 먹어야 하는 밥그릇에 물이 튀는데도 불구하고 아랑곳 않고 문을 열고 샤워를 하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그렇게 하니 나중에는 다른 행동까지도 못마땅하게 보이기 시작하더구나.
밉다고 생각하기 시작 하면 걸어가는 뒤꿈치도 밉게 보인다던 옛 어른들의 말씀은 많은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고 나 자신 또한 그러한 말로부터 조금도 자유롭지가 않더라는 것이었어.
내 딴에는 이해를 하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를 않더구나.
앞서 내가 배식반장을 하면서 결심했듯이 절대 남들 앞에 나서거나 튀지 않겠다고 했던 것들이 이번에는 멀리서 관망한다는 핑계로 나서지만 않았다 뿐 온갖 간섭은 모두하고 있었으며 모든 문제점을 조목조목이 보고 있었어.
한번은 배식반장이 물품을 구입하기위해 각자의 예치금에서 돈을 거두기로하고 물품선정을 하기위해 공책을 펼쳐놓고 적고 있었는데 다들 한마디씩 거들게 된 거야.
누구는 콜라를 사자, 누구는 사이다를 사자, 누구는 빵을, 누구는 또 무엇, 무엇, 신문구독은 뭐를 하자, 뭐는 안 된다, 얼마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지 결국 배식반장을 맡고 있던 친구가 공책을 내팽개치면서 자신은 이제 배식반장을 그만두겠다는 거였지.
한두 번도 아니고 물품구입 때마다 모두들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통에 도저히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였어.
그도 그럴 것이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닌 것을 누가 하고 싶겠냐는 거야.
하다못해 전에 화원교도소에서처럼 자신이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라도 주어져야 하고 싶은 것이지 돈 한 푼 생기거나 이익은 고사하고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고 시끄럽기만 하니 누가 하고 싶겠냐는 거지.
결국 내가 나서서 사람들에게 모두들 한발씩 양보하자고 하고 모든 선택권을 배식반장에게 맡기자고 해서 사태를 수습하게 되었어.
결국 이 일에도 내 입김이 작용이 되었으니 내가 모든 일에 깊숙이 관여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니.
내가 항시 일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고는 해도 모든 일의 결정에 내가 개입이 되고 있었던 만큼 판단을 함에 있어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고 그나마 잘했다고 여겼는데 막상 내가 손해를 봐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는 또 다른 내 모습이 튀어나오곤 해서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더구나.
J씨의 경우 운동을 한답시고 고개를 좌우로 획획 도리질을 하는 운동으로 입으로 휘파람소리를 내기도 하였는데 방안의 모든 분들이 각자 조용히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시간 이분은 휘파람소리를 내면서 운동을 하는 거야.
다들 싫어하는 표정들이 역력하였고 특히 Y씨는 욕을 하기도 했는데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 역시 그 소리가 너무나 듣기가 거북했어.
이럴 때 마다 왜 내가 그분을 미워해야만 하는가라는 강한 의문을 나 자신에게 제기하고 있었지.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잘할 수 있게 말을 하고 고쳐 주기위해 노력을 하면 될 것을 미워할 필요까지 있나하는 자성의 소리였는데 그것이 그리 되지를 않더구나.
처음 한두 번은 어떻게 해보았는데 자꾸 반복이 되니까 한계점이 오더라는 거야.
결국 나 자신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는 나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지.
어찌 되었건 이해를 하기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는 나날이 계속되는 어느 날인가 운동시간이 되어서 모두가 운동장이란 델 갔을 때였어.
운동장이래야 10평 남짓 되는 늑대우리 같은 곳을 14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풀어놓았으니 그것이 어디 운동할 곳이라 볼 수 있을 것이며 복닥거리기는 방안이나 별다를 바 없는데다가 오히려 먼지가 펄펄 나는 것이 도저히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곳은 그전과 달리 열외가 없다 보니 억지 춘양 격으로 가야만 했지.
팔을 뻗치면 겨우 손이 닿을 지점에 창살이 있기에 매달려서 턱걸이로 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새싹들이 조금씩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구나.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더니 저쪽너머로 절이 보이고 있었고 그 너머로는 화장터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사람의 시신을 태우는지 연기가 피어올랐어.
꼭 타이어 태우는 냄새처럼 노리끼리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는데 먼저 있던 교도소에서의 냄새와는 또 다른 냄새가 나고 있었지.
누군가 고기 굽는 냄새가 향긋하다고 농담을 했지만 결국 내가 늘 말하듯이 쓰레기차를 간신히 피하고 나서 똥차를 만난 격이었지 않겠니.
나 자신의 분별의 벽이 무너져 어느 곳도 천국 아닌 곳이 없어지면 그야말로 똥차건 쓰레기차건 가리지 않겠지만 그 당시는 모든 것이 인내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각종 차들이 무척이나 많더구나.
방안에서는 나 혼자만의 인내심만으로도 되지 않는 일도 일어났어.
나와 같은 고향인 Y씨와 대구에 사시는 집사출신이신 K씨가 심심하면 싸움을 하는 통에 다들 가슴들이 조마조마해야 했는데 내가 끼어들어 말려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
둘 다 기독교인들이긴 한데 한 사람은 성경을 들여다보는 목적이 사업을 위한 수단이었고 또한 사람은 교회집사여서 자기 딴에는 굉장히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라 서로가 같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가운데 한방을 쓰게 된 만큼 다툼이 잦았던 거야.
Y씨는 나에게 노골적으로 교회를 하나 차리자는 제안을 스스럼없이 하였는데 그분 생각은 교회가 하나의 또 다른 사업의 형태일 뿐 진정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었거든.
이분이 이렇게 말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어.
친한 친구 하나가 교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신도수가 많아지면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한다면서 함께 교회를 만들자고 권하더라는 거야.
처음 얼마간만 고생하고 나면 신자들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홍보도 하고 교회를 키우기 위해 모든 봉사를 아끼지 않으며 저절로 교회가 운영이 된다고 하니 어처구니없긴 하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성경 안에 그러한 일을 하게끔 만들어놓은 구절이 너무나 많이 있어서 성경을 제대로 열심히 읽고 난 사람들이라면 교회를 열심히 다니지 않을 재간이 없고 봉사 또한 안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사업이 어디 있겠냐는 거야.
십일조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버는 만큼 꼬박꼬박 교회에 갖다 바칠 것이고 물질적인 풍요가 오면 더욱 신심이 나서 봉사를 할 것이며 재난이 오면 재난이 오는 데로 더욱더 재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빌 테니까 이 얼마나 괜찮은 사업이냐 말이지.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한 수순을 밟기 마련이라는 거였어.
이러한 모든 일에 대한 책임역시 누구도 질 이유가 없고 스스로가 모든 것을 판단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거든.
하기야 어떤 이들은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결국 성경을 믿고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잣대보다는 나 자신의 잣대와 평가기준이 가장 크게 작용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니.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Y씨의 말이 충분하게 일리가 있는 거야.
아마도 내가 성경을 펼쳐놓고 보고 있었으니 그분으로서는 내가 행동하는 것과 말이 다르게 보였던 모양이었고 잘하면 나하고 종교 사업을 한판 벌이면 될 것 같기도 한 모양이었지.
그도 그럴 만 한 것이 내행동이 일관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이었거든.
식사를 하는 모습이나 새벽으로 앉아서 명상하는 폼으로는 분명히 불교도인데 낮으로 성경을 펼쳐서 읽고 있는 모습은 그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니 오해를 한 것 같았고 평상시 대화중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자주 인용 하였으니 당연히 내가 사이비 종교 하나정도를 만들려나보다 생각할 수도 있었을 거라 여겨지긴 해.
하지만 내 의도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고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었기에 그 같은 그분의 말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K씨는 또 다른 생각을 가진 분이다 보니 Y씨의 말이 곱게 받아질 리가 만무했고 하는 짓이 미워보였던 거였어.
사실은 내가보기에 오십 보 백 보의 차이 정도밖에는 되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들 표현대로 하자면 내가 너보다는 조금 낫다는 그런 비교심리가 작용한 것 같았지.
그래서 각 종교들이 천국과 지옥도 모자라서 연옥을 만들기도 하는가 보았고 지옥도 종류가 다양하다고 겁을 주는가 보았어.
죄를 많이 지으면 벌도 더 많이 받아야지 나보다 적게 받으면 절대로 안 될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Y씨는 부인 외에 딸 같은 나이의 2호 부인을 얻어서 자식까지 두고 있었는데 교도소 오기 전에 백일잔치를 하고 왔다며 사진까지 보여주었고 K씨는 살림까지는 아니더라도 애인이 있는 눈치였으니 그야말로 오십보백보였건만 내심으로는 나는 너보다 그래도 낫다는 심리가 감춰져 있었던 거지.
만약 하나님이 벌을 준다고 가정하자면 어느 편에다 벌을 더 많이 주어야 할지 한참을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았어.
아들아!
너는 누구에게 벌을 더 많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교회집사님이 그래도 애인만 사귄 것 같으니 봐줘야 하고 살림을 차린 분은 벌을 많이 받아야 할 것 같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해석을 해보자면 Y씨는 본 부인을 버리지도 않고 새 부인을 사랑해주고 있으니 그것을 벌하자면 새 부인에게 잘못한다든지 전 부인에게 잘못 대한다든지 두 사람이 모두 불평을 호소해야 하는데 그분 말로는 전부인과 새 부인이 서로 잘 알고 지내고 있고 서로 왕래도 한다고 했거든.
그렇지만 K씨의 경우 교회집사 인데도 불구하고 애인을 사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십계명을 엄연히 어긴 것이 아닌가 말이야.
뭘 몰라서라면 몰라서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집사님씩이나 되고 보면 그런 변명은 통할 수가 없는 노릇이 아닌가 말이야.
이제는 어때?
반대가 되어야 할 것 같다고?
아들아!
솔직히 말하자면 벌주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양심이 벌을 줄 것이라는 결론을 말할 수밖에 없구나.
한 사람이 열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것 또한 사랑임에 틀림이 없고 하나님 몰래 한 사랑이던 하나님 허락 하에 하는 사랑이건 그 또한 사랑임에 틀림이 없는 이상 벌을 받아야 하는 어떠한 일도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하지만 내가 한 사랑이 누가 벌을 주는 것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그 선택에 따른 어떠한 결과만큼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라는 것과 벌을 주는 하나님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는 것만은 말해주고 싶어.
누군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더구나.
만약 그렇게 벌하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세상사람 들에게 말하면 안 그래도 도덕성이 무너진 사회가 더욱 퇴폐해지면 어떻게 하냐고…
하지만 아들아!
그런 말은 사실 기우에 지나지 않아.
지금껏 도덕을 그토록 강조하고 수많은 종교가 지옥과 천국을 말해왔으며 연옥까지 만들어 억제하였지만 죄를 지을 자는 끓임 없이 죄를 지었고 지금도 열심히 죄를 짓고 있지 않니.
그렇지만 풀어준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심하게 죄를 짓게 될 거라고?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만 할 것이 있어.
절대 내가 하는 어떠한 일이 죄가 되고 안 되고의 판단은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고 심판하지도 않겠지만 그 일에 대한 결과만큼은 반드시 본인이 떠맡아야 한다는 거야.
죄로부터는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그 결과만큼은 반드시 자신이 거두어들이게 된다는 아주 평범하고도 불변의 법칙을 감수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하지 말아야 하거나 하면 안 되는 일 따윈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두고 싶어.
그 당시 K씨를 보면서 말씀 드렸지.
“선생님!
어차피 두 분의 부인이 생기신 것 운명으로 아시고 두 가정 모두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분의 잘잘못을 판단할 권한을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기에 이 말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거든.
그 방에서는 또 다른 K라는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겉으로 뵙기에는 아주 점잖게 생긴 분이셨고 많이 배운 분 같았어.
자신 스스로 서울에 있는 명문대를 나왔다고 하셨는데 건설업을 하시다가 부도를 내고 들어오게 되었다더구나.
배운 만큼 말씀도 점잖은 것 같았고 항시 남들과 논쟁을 하거나 잡담을 하기보다 책을 많이 보시는지라 나와는 뜻이 통하는 것 같았고 내가 호주에서 양털이불공장을 하였다는 말을 듣고 아주 좋은 사업을 했다면서 나중에 교도소를 나가게 되면 함께 사업을 해보자고 하였는데 실지로 교도소를 나와서 한동안 만나 동업까지도 도모하던 사이로 발전이 되었지.
이분의 결점은 사람이 정에 약해서 한번 마음을 주면 헤어나질 못하는 것이었어.
그 상대가 남자건 여자건 그 사람이 좋다면 무조건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타입에다가 상대가 설사 잘못을 했더라도 감싸주는 그런 분이었지.
어찌 보면 좋은 것 같은데 나 같은 사람과는 질적으로 다른 분이셨어.
나는 아무리 친해도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말을 하고 고칠 것을 주장하기 때문에 가끔씩 동수들 중에 나에게 인간적인 동정이나 동조성 발언을 구하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비해 그분은 끝까지 편을 드는 그런 분이셨거든.
아들아!
너는 어떤 타입의 사람이 좋으니?
그분이 인간적이어서 좋아 보인다고?
그래!
그렇기도 하겠구나.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아두어야 할 거야.
이런 분들은 남에게 정을 너무 많이 주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실망감이나 배신감 또한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해.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을 하는 것이 결국은 둘 다를 구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지 잘못하는 것을 정으로써 감싸 안는 것이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구나.
나중에 정이 많은 이분 때문에 좀 더 많은 힘든 시간이 내게 주어져야 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올 때 다시 한 번 언급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배식반장의 주변을 살펴보도록 할까?
이 친구는 그야말로 의리의 돌쇠 그 자체였는데 화원에서부터 한방에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나를 조금은 겪었다고 볼 수 있었고 나에게 호감을 가진 것도 사실이었지만 내가 워낙 줏대 없이 노는 것 같다 보니 실망을 했는지 나중에는 불퉁해져서 결국 돌아서버린 사나이 이었어.
나로서는 어찌 되었건 수행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있었고 제대로 된 하심을 하여야 했으며 모든 이들이 내 눈에 부처로 보여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현실이 너무나 뜨거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거든.
속으로 터져 나오려는 울화통을 간신히 붙들고 나오는 중이라는 것을 그가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었으랴.
뭔가 한칼을 보여줄 것처럼 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꼬리를 내려버리니 젊은 나이의 그 친구 눈에는 내가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으리라 여겨져.
비록 그가 나에게 등을 돌리긴 했어도 의리의 사나이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어.
그가 모신다던 구미지역의 조 폭들에게도 충성을 바치는 일원이었으며 자신보다 나이가 몇 살이나 아래인 사람에게도 형님이라는 소리를 예사로 할 수 있는 겁나는 사나이였다 이말 이거든.
이 친구가 아무에게나 굽실거린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착각이고 자신이 존경할만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면 목숨이라도 걸 정도의 열정을 가졌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두말없이 돌아서는 사나이라는 말이야.
진정 이 친구만큼 제대로 연극을 하는 사람을 지금껏 보지 못했고 어쩌면 이세상은 이런 연극을 잘하는 사람들을 위한 무대가 아닐까 해.
나는 정말이지 이러한 연극은 너무나 서툴러서 항시 애를 먹곤 하는데 조금만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불평불만을 터트리기 일쑤였으니 어떻게 제대로 된 연극을 할 수 있었겠냐 이 말이야.
불평등과 불만만을 얘기하다 마칠 내 인생이 그나마 관음법문이라는 위안처를 만나고 스승님의 가르침 따라 걸어왔기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사회적인 기준으로 보면 형편없어 보일지도 모를 삶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사회생활을 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해야 하리라 여겨지기도 해.
그래도 어쩌겠니?
이 또한 내 선택인 것을….
아들아!
이렇게 옮겨간 방 식구들의 개성과 나 자신 내면의 움직임을 파악이 되려는 순간 또다시 운명의 손짓이 시작되고 있었어.
우리 방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거였지.
나와 노름을 하다 들어오신 K선생님이 제일 먼저 다른 방으로 이감되어 가게 되었으니 다음시간에는 또 다른 방에서 또 다른 인연들과의 일들로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쉬어가도록 하자꾸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