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54)

배가번드 2021. 10. 12.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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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다시 옮겨간 방에서는 또 다른 특이한 인생을 살고 있는 분을 만날 수 있었어.

내 신상에 대해 말을 하다 보니 우연히 중학교 얘기가 나왔는데 그때까지 한마디의 말도 없이 듣고만 있던 분이 처음으로 말을 꺼내는 거야.

 

저어 혹시 앞산 미태잇는 H학교 아이미꺼?”

나도 그으 나왓는데예. 밋년도 졸업해심미꺼?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따져보니 나보다 한해 아래 후배였어.

그래서 이런 저런 얘기와 그곳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참으로 힘든 인생을 살았던 것 같더구나.

어찌 보면 호강에 빠져 살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양반이 후회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고생스러운 경험을 한 것 같았어.

군대에서 워낙 높은 분을 모신 덕에 제대를 하고도 그 인연을 살려 덕을 본거였는데 서울명동에 자리하고 있는 모 백화점의 셔틀버스 운영권을 독점하게 된 거야.

이런 기회라는 것은 사람이 태어나서 맞이하게 되는 여러 가지의 기회 중에 아주 드문 기회라고 볼 수 있는데 땡잡았다는 표현은 이때 쓰라고 만든 말이라고 보면 돼.

물론 가치기준이 물질적일 때 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 후배님께서 그렇게 드문 기회를 잡고서 엉뚱한 쪽으로 눈길을 돌려버린 것이었어.

아들아!

너는 아직 어려서 이런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을 거야.

 

비단이 장사 왕 서방 밍월이 한 테 반해서 비단이 팔아 모은 돈……

 

중국의 비단장사가 돈을 벌어 조선의 기생에게 돈을 모두 다 털어 넣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된다는 내용의 노래인데 이런 노래가사처럼 후배님께서 서울의 모델들과 놀아나기 시작한 것이었어.

한 달 수입이 기 천만 원은 간단하게 넘어 설수도 있을 만큼 수입도 좋았고 독점으로 따낸 운영권에 밑천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으니 잘만 운영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도 있는 사업이었지만 잘못 빠져든 옆길에는 여자라는 깊고도 넓은 늪이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게다가 업 친데 겹친 격으로 때마침 셔틀버스 운행을 중단시킨다는 말까지 있었으니 지금껏 조합에 보증금을 걸고 자신의 차를 사서 들어왔던 기사 분들이 돈을 돌려달라고 하는 통에 탕진해 버린 뒤라 막을 길이 없었던 거지.

이후배가 정신을 차린 것은 집안의 돈까지 모두 탕진을 하고 더 이상 돈을 구하려야 구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였어.

자신이 교도소에 들어오고 나니 최소 7백 이상의 모피코트를 사다 안긴 여자 분들이 단한명도 면회를 오지 않더라는 거지.

이분의 사건이 원할 하게 처리가 되기 위해서는 친인척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누구도 도와줄 생각들을 하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하였는데 후배님께서 잘 나갈 때 친척들에게 거만하게 대한데다가 돈까지 빌려 쓰고 손해를 끼쳐 놓았으니 좋게 말해줄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던 거야.

이래서 사람들은 잘 나갈 때 나중을 위한 준비를 하라고 하나 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열심히 기도를 하시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더구나.

무슨 종교를 믿는가 물었더니 불교라고 하기에 부처님께 열심히 빌면 해결방법이 생길지도 모르니 열심히 빌어보라는 말을 해주었어.

달리 할 말이 없었거든.

그렇다고 모든 것이 연극이니 웃어라 할 수도 없고 당신의 영혼이 원해서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이 후배의 사건이 심각했던 모양으로 서울에서 시작된 재판이 1심도 끝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1년을 넘기고 있었고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도 했었어.

쾌락을 좆은 결과 치고는 혹독하다 싶지만 그것이 바로 쾌락이 가져다주는 열매였지.

아들아!

그렇다고 내가 쾌락이나 여자를 사귀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란 것을 네가 알아주길 바라.

다만 이 후배의 경우처럼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야.

삶의 목적이 여자와의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면 이렇게 살아도 무방하겠지만 다른 목적을 위한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유혹의 손길은 인내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

여자들과의 빗나간 사랑으로 인생의 쓴맛을 톡톡히 보고 있는 후배와는 별도로 첫날 내가 신고식을 거부했을 때 나를 나무라듯 말씀을 하시던 분과는 또 다른 인생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지.

차 부속 도매업을 하던 중 장난삼아 노름을 한 죄로 들어오게 된 이분은 자신의 억울함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었는데 들어보니 억울한 것이 맞기도 한 것 같기에 1심 재판에서 탄원서를 내보지 그랬냐고 했더니 탄원서를 썼다는 거야.

그런데도 1년이나 형을 받은 것은 너무나 억울하다고 하면서 실지로 울먹이기까지 하더구나.

나이도 나보다 3살 위였는데 그렇게 쉽게 눈물을 보여서 어쩌면 이리도 여린 사람이 교도소를 오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종교를 물어보았는데 기독교인이라 하기에 스승님으로부터 들었던 얘기하나를 들려주었지.

 

옛날 유럽 어느 나라에 신부님이 한분 계셨는데 이분은 꽃을 무진장 사랑하는 분이셨답니다.

그런데 이분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지요.

그것은 꽃을 가꾸는 만큼 잡초 또한 같이 자라는 것에 대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이 신부님은 농부들에게도 물어보고 좋다는 방법은 백방으로 써보았는데 별다른 차도가 보이지 않자 맥을 놓아버리고 포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이웃에 계시는 대주교님에게 가보라고 권유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지요.”

 

세상에서 모르는 것이 없으신 대주교님께서는 아마도 해답을 아시고 계실 겁니다.”

 

이 얘기를 듣고 난 신부님께서는 곧바로 대주교님께로 달려갔고 자초지종을 말씀을 드렸더니 얘기를 다 듣고 난 대주교님께서는 되물으셨어요.”

 

잡초를 뽑아보셨습니까?”

 

!

나기 바쁘게 뽑아봤지만 또 자라고 있었습니다.

주교님!”

그러면 제초제를 써보았어요?”

 

그럼요.

약을 뿌려도 그때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자라나더라고요

 

으음!

그렇다면 농사를 잘 짓는 농부들에게 물어보지 그랬어요?”

 

물어보았고 말구요.

가르쳐주는 온갖 방법을 모두 다 동원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답니다.”

 

이렇게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수많은 방법이 오간지 얼마나 흘렀을까 더 이상 방법이 생각이 나지 않게 된 대주교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렇다면 형제님!

여기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나님께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방으로 들어가신 지 1시간이 넘었을 무렵 기도 방에서 나오신 대주교님께서는 신부님께로 돌아오셔서 신부님 손을 지그시 잡으시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형제님!

형제님은 잡초를 사랑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제님이 잡초를 사랑하시길 바라고 계십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수행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끓임 없는 번뇌 망상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는 수행의 비법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그분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런 말을 하더구나.

 

나 역시 기도도 해보았고 교도소 내에서 40일간 단식도 했으며 단식 끝에 하나님도 보았지만 결국 내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미심쩍은 마음에 하나님이 어떤 형상을 하고 계시던가 물었더니 빛으로 나타나셨다고 하였지.

그렇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형상을 본 것 같으니까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보라고 했어.

아들아!

솔직히 내가 그분에게 한말은 내가 나 자신에게 한말이었어.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을 내가 남에게 해주는 말의 형식을 빌려 내게 하고 있었던 거야.

스승님께서 말씀해주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생활 할 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말이기도 해.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기울인 노력이 최선을 다한 것인가를 살피기도 전에 불평을 하기도 하고 나름의 최선을 다한 분들은 그들대로 실망을 하고 극단의 길을 택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럴 필요도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말해주고 있는 거야.

그런데 웃기게도 얼마 되지 않아서 기적 같은 일이 실지로 일어나고 말았어.

하나님을 단식 끝에 보았다던 그 양반이 정말로 나가게 된 거야.

이 일이 있은 후 그 방에서는 보이지 않게 기도하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었고 종교에 관계없이 기적은 똑같이 일어난다는 내 말에 따라 염주를 돌리는 사람도 있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어.

나 역시 그 일이 있고 난후 내가 기울인 노력이 최선을 다한 것이었나를 두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때마침 앞두고 있는 항소심심리를 대비해서 또 한 번의 탄원서를 준비했지.

그간에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하러 다녔던 얘기와 함께 지금도 열심히 노력 중에 있고 나 역시 지난날을 반성하고 있으며 사회로 하루빨리 돌아가서 피해복구를 위해 힘쓰겠다는 말을 구구절절이 애절하고 간절하게 감동적으로 보일 수 있게 내가 알고 있는 미사여구를 모두 총동원을 시켜 탄원서 작성에 총력을 기울였던 거야.

탄원서 제출이 있고 난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또다시 방을 옮기라는 명을 받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억지로 참고 투덜거리면서 짐을 꾸리고 방을 나섰고 옮겨가야할 방문 앞에 위치한 운동하는 방에서 소지품검사를 받았어.

물론 형식적이긴 하지만 몸수색을 당할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

하려면 제대로나 할 것이지 다른 방에서는 담배를 피우고 있어도 잡아내지도 못하면서 애꿎은 잔챙이들만 괴롭히는가 싶었거든.

그렇게 속 깊은 곳에서의 불만으로 불통해진 심사로 들어선 또 다른 방에서는 더욱 크나큰 시련인지 공부꺼린지가 기다리고 있었어.

먼저 방보다 크기가 3배는 되 보이는 방에 15명 정도가 있는 방이었는데 방에 들어서기 무섭게 아는 척을 해 오는 사람이 있더구나.

1심 재판 날짜가 같아서 함께 다니게 되었던 옆방의 사람으로 K라는 이 사람은 화원교도소에서부터 알고 지냈는데 이곳을 먼저 와서 선임이 되어 있었던 거야.

반가운 마음은 뒤로 미루고 우선 방장에게 신고를 해야 했어.

눈대중으로 봐도 조그마한 회사의 사장은 하고도 남을 풍채를 보이고 있는 방장은 말을 아낄 줄도 알았으며 말을 할 줄도 아는 한마디로 갖출 건 다 갖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

나중에 들어보니 부도규모가 백억 대가 넘었고 이미 동일사건으로 경주에서 3년을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피해자가 고발을 하는 바람에 들어오게 된 분이었어.

인사래야 간단하게 내 사건경위와 신상을 밝히는 정도였고 오랜 수감생활의 경험도 있던 방장으로부터 방생활의 주의사항을 전달 받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인사가 끝이 나자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정하기가 곤란한 눈치를 보이고 있더구나.

교도소 밥그릇수를 따지자면 서열이 7위 정도는 돼야 하는데 먼저 있던 선임자들을 몰아낼 수도 없어 곤란해 하는 것 같기에 제일끝자리로 가겠다고 먼저 얘기를 했더니 한사코 끝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고 하시는 분이 계시는 바람에 결국은 제일말단의 옆자리가 내 자리가 되었어.

이래서 뭐든 하고자 마음먹는 것에는 반드시 방해요소가 따른다고 하기도 하고 꼴찌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가 봐.

그렇게 자리배정이 끝나고 나니 내 옆 자리에 자리하고 있던 마산의 조 폭 두목이라는 T라는 친구가 나보고 신입도 아니니까 신고식 대신 노래나 한마디 하라고 하는 거야.

지난번 경험을 해본결과 내가 안 한다고 해버리고 나면 그 서먹함이 오래가는 것은 물론 앞으로의 생활에 지장이 많다는 것을 경험한터라 흔쾌히 노래를 했어.

사실 그동안 노래를 하지 않았던 것은 하기 싫어서라기보다 남 앞에 서서 노래 부를 때 실수를 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지 노래가 싫거나 못하는 것은 아니었고 과거 노래방에 친구들과 갈 때면 마이크를 놓지 않으려고 해서 눈총도 심하게 받은 일이 있었던 화려한 전적의사나이였어.

물론 그 모든 행위가 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말이야.

틀려서 창피를 당하면 당하는 대로 최선을 다하자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어 노래를 했지.

교도소를 처음 온 날 불렀던 똑 같은 노래를 똑같지 않은 마음으로 불렀어.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 으으로오~”

 

길게 이어지는 내 노래 소리가 절정에 달했을 때 누군가 바깥에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는데 돌아다보니 교도관이었어.

창문 앞으로 불려가서 꾸지람을 들어야 했지만 별로 기분이 나쁜 정도는 아니었고 내가 연신 잘못했다고 하니 교도관도 더 이상은 추궁하지 않는 바람에 조용히 넘어가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전의 방에서보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는 것 같았지.

아들아!

내가 자꾸 일이라는 것은 순서가 있고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 앞에 놓였을 뿐이라는 말을 자주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어.

내가 다른 곳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이방을 왔더라면 모르긴 해도 한판전쟁이 붙어야 했을지 모르는 일이었거든.

내 옆에 자리한 마산조폭 두목이 내가 앞의 방에서 하듯이 그렇게 뻣뻣하게 나갔으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고 감방장 이하 여러 사람들이 결코 그냥 순순히 넘어갈 분위기들이 아니더라는 거야.

앞의 방까지는 그래도 경제사범들만 따로 모아두어서 그런대로 폭력적인 면이 덜했지만 이방에는 조 폭부터 강도 등의 강력범들도 끼어 있었거든.

신은 내게 앞서 여러 방을 거치는 동안 예행연습까지 시킨 후 본 게임에 임하도록 하지 않았나 싶더구나.

이방에서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

자기 고모부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는 바람에 고발을 당한 K, 한사코 자기가 뼁끼통 청소를 하고 그 옆에서 주무시겠다고 우기시던 극장을 운영하시다 들어오신 T, 고물상을 경영하시다 오신 l, 안경테공장을 경영하다 부도가 나서 들어온 B, 오토바이가게를 운영하다 장물아비로 걸려 들어온 C, 등등 다 이야기를 하려면 책한 권은 쓰고도 남을 얘깃거리가 있겠지만 대충 넘어가고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얘기만 추려보도록 해.

한번은 항소심 심리를 받고자 나와 감방장이 함께 나가게 되었는데 원래 한방식구가 나가면 함께 대화도 나누고 해야 하지만 내심 감방장의 행위가 내 눈에 거슬렸던 관계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아는 척도 하지 않았어.

처음 방안에 들어와 인사를 했을 때부터 내 나이가 자기보다 적다 싶으니까 무조건 반말을 하려고 들기에 기분이 좋지가 않았거든.

그러한지라 자꾸 대화를 나누다 보면 반드시 형 동생 삼으려고 할 것이 뻔했고 나로서는 결코 그런 사이로 발전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터라 대화를 나누기 싫었어.

앞에서도 잠시 얘기 한 적이 있었겠지만 내 성격이 나이가 많다고 남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그러한 일이 용납이 안 되기 때문에 그분의 사장님다운 모습이 나와는 맞지 않았던 거야.

솔직히 그분보다는 나에게 문제가 더 많았겠지만 그 또한 내 개성임에야 어쩌겠니.

지금도 그러한 성질만큼은 버리지 못하고 있어서 내입에서 말씀 낮추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10년 연상 이라 해도 반말을 함부로 하다가는 나에게 한 소리듣기 십상이야.

물론 이런 성질 탓에 남에게도 말을 함부로 하진 않아.

내가 싫어하는 만큼 남들도 싫어 할 거라 생각하거든.

그때 감방 장으로서는 당연히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권위를 세워야 했겠지만 그분 권위를 세워 주기위해 억지로 알랑거리고 싶진 않았고 대화 자체를 나누기 싫었던 거였어.

그리고 내가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았는데 어느 누구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이유가 그 어디에도 없었고 죽음조차 두렵지 않은 내가 뭐가 아쉬워서 남에게 굽실거려야 하는가 말이야.

이미 세상 기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가치관을 마음에 담고 있었으니 결코 그분의 권위의식을 인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거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내가 그분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심리를 받으려 함께 가게 되었으니 그 서먹함이 어떠했겠니.

일부러 모른척하고 내려가는 중에 몇 층인지 모를 곳에서 한 무리의 다른 재소자들이 합승을 하게 되었는데 조 폭들이 대거 올라타고 있었어.

14명 정도를 태우게 되어있었는데 지들 두목의 자리를 확보해주려고 나에게도 비킬 것을 바라는 눈치였지만 일부러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고는 안 비키고 버팅 겼지.

니들이 아무리 조 폭이라도 내가 비키고 싶어야 비킨다는 식으로 서있었더니 내 기운이 워낙 강하게 느껴졌던지 지들끼리 자리를 마련해서 두목을 호위하듯이 에워싸더구나.

조 폭들이라면 다들 무서워서 벌벌 떠는 줄 아는 그들의 처사가 내심 못마땅했고 교도관도 있는데 지들이 어쩌랴 싶기도 했거든.

우리 방 감방 장과 조 폭들과는 이미 일면식이 있었던 모양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워낙 부도규모가 크다 보니 조 폭들조차 대접을 하는 것 같았어.

게다가 조 폭 두목이 잡혀온 내용도 백억 대가 넘는 사업 건에 관련된 사건으로 들어왔던 것인데 시외버스 터미널 이전과 관계하여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았지.

그런데 웃기게도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조 폭들 나이들이 40대정도가 되었는데 불구하고 조그마한 아이들이 형님 하고 부르는 것이 너무나 귀에 거슬린다는 거야.

 

~짜석들이 눈치도 엄시 아부지 것 튼 사람보고 행님이 뭐꼬 행님이!”

어이 야들아~! 앞으로 아 새끼들보고 회장님이라 부르라케라 아랏나?”

 

서슬 퍼런 형님의 말에 밑에 후배들이 90도로 꺾어지는 인사로 ! 형님!”을 외치고 있었는데 그 옛날 내가 알던 뒷골목 건달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어.

일찍이 주먹세계를 은퇴하신 원로겪인 분들이 뒷골목 대포 집을 차려놓고 사시는 곳을 몇 번인가 갔을 때 아들 같은 애들에 불과한 우리들이 젊은 혈기에 한때 장난을 한다는 것을 아시고 술값도 변변히 받지 않으시며 한사코 자기들을 형님이라고 불러주길 바라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보이고 있었지.

지금의 어깨들은 그런 인간적인 면보다는 자기 체면이 우선이 되는 것이고 아이들 장래나 생각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말이며 어떻게 하면 이용을 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써먹을까만 생각한다는 거야.

이것이 지금 아이들이 그토록 동경한다는 폭력조직 들의 현주소라는 거지.

그렇게 별스럽게 이를 앙 다물고 다른 이들과는 대화조차하지 않고 재판정에 들어갔는데 또 한 번 내 의식에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어.

1심과는 달리 항소심의 판사님은 보다 구체적으로 내 가슴 밑바닥까지 다가오고 있는 분이었는데 사건 하나하나를 자신의 일처럼 다루고 있는 그 판사님의 행동에서 신의 손길이 느껴지더구나.

내 사건의 내용을 모두 다 읽으시고 탄원서까지 읽어보신 모양으로 몇 번인가 나에게 피해자들로부터 수표회수는 얼마나 했는지 물으시고 가능성이 있다면 더 노력을 하라고 몇 번을 강조하시는 것이었어.

꼭 나에게 특혜를 주려는 것 같은 인상마저 풍겼는데 그것은 내 개인의 생각일 뿐이었고 다른 분들에게도 똑같이 대하고 있었던 거야.

그것은 보통 때보다 배는 길어진 재판시간을 보면 알 수가 있는데 교도관들이 투덜거릴 정도로 시간이 소요되고 있었어.

하지만 재소자들이 불평하는 소리는 거의 없었고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보는 조 폭들만 불평들을 하였지.

그들로 서야 판사님이 조목조목 범죄행위를 따지려 드는데다가 검사이상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통에 진저리가 날 정도였거든.

한마디로 내 눈에는 한국판 포청천으로 비춰졌었는데 이분을 만나고 나서 법조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고 어느 사회고 한두 명의 좋지 않은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으로 그때까지 부정적이던 시각이 방향을 달리 하게 되었어.

그렇게 장시간의 심리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더구나.

옆방의 사람들이 방이 깨어지는 바람에 그 방 일원중의 한 분이 우리 방에 배정을 받은 것이었는데 대부분의 방이 깨어진다는 표현은 방에서 싸움이 일어나거나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여서 흩어지는 것을 말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그와는 달리 방안에 있는 분들끼리 방안에서 말 타기를 하다가 마룻바닥이 꺼지는 사고가 일어나서 오게 되었으니 말 그대로 방이 제대로 깨진 거야.

이렇게 방이 깨지는 바람에 우리 방으로 건너오게 된 L선생님은 건설 사업을 하시다 부도가 나는 바람에 교도소를 들어오셨고  부산이 고향이신데 대학은 대구에서 나온 특별한 경력의 사장님으로 나와는 모든 면에서 생각이 잘 통하는 분이었어.

사실은 이러한 인간관계도 이분의 성격이 좋은 탓이지 내 까다로운 성격을 감안하면 나와 가까워질 사람은 몇 없을 거라 생각해.

평상시 옆방과는 운동시간이 같다 보니 이미 알고 지내고 있었고 이분이 워낙 사람이 좋아서 방장은 물론 우리 방 식구들 중 모르는 분이 하나도 없다시피 했으니 신고식이고 뭐고 있을 필요도 없이 환대를 받았어.

아들아!

이 일로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

이분이 함께 있던 방식구들 중에 방장 역할을 하던 사람은 폭력범들이 득실거리는 데를 배정 받게 되어서 무진장 고생을 하였고 반대로 이분은 평상시 알고 지내던 우리 방에 배정을 받았으니 이것이 어떻게 우연으로만 생각할 문제겠니.

먼저 있던 방에서는 신입이 들어오면 골탕을 얼마나 먹이는지 말도 못할 지경이었다고 하니 남들에게 골탕을 먹인 감방장이 그런 인과법의 적용을 받았다는 것이고 뿌린 데로 거둔다는 예수님의 말씀 또한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냐는 거지.

그리고 똑같이 신고식에 관여했을 이분은 왜 우리 방에 배치를 받게 되었겠냐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함께 잘못을 저질렀다고는 해도 마음상태가 같지 않았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연공덕이라는 연결고리가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현실이 재수 없음을 탓하고 있지만 그러한 불평과 불만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는 마음을 얻어야 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라는 거야.

재수가 없어도 내 탓이요 좋아도 내 탓이며 그 모든 것을 재수 좋게 여기게 되면 더 이상 좋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는 것을 또 한 번 생각하였는데 이상하게도 현실에서는 잘되지를 않고 있었어.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많은 거리가 있었다는 것을 실토 해야겠구나.

내가 그 당시 얼마나 뜨거운 불길 속에 있었는지 지나간 감방 속에서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것이 내가 당하는 일도 아닌데 불구하고 가슴이 터질듯이 고통스러웠던 것은 내 마음속의 분별심이 만들어내는 불평불만의 소리였던 것 같아.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일이 감방장의 일이었는데 다른 모든 분들에게는 안돼 보이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그분에게만큼은 그러지 못했던 것은 나 자신의 인식에 따른 시각 탓이었지.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그 당시 감방 장이 치질이 심해서 온수로 뒷물을 해야 했는데 그물을 받아 챙기는 일부터 뒤처리(뒷물한 후 기물정리)까지 방안의 아랫사람을 시켰고 낮에는 늘어지게 자고 남들이 다들 자는 밤에 신문을 뒤적거리는 것 또한 눈에 거슬렸으며 나이가 많고 적고 관계없이 함부로 반말을 하는 폼이 그러했던 거야.

그렇다고 그분이 교양이 없고 무식하게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적당한 선에서 절제와 통제를 아주 잘하고 있었어.

그런데 왜 불만이었냐고?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고 내가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데서 오는 질투심 또한 있었을 거라 생각해.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그분은 아주 잘하고 있는데 대한 질투심 말이야.

앞의 방에서 겪어보았지만 적당한 독재와 절제 그리고 타협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 아니겠어?

내가 싫어서 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는데 내가 싫다는 감정을 가짐으로 인해서 오는 반대적인 분별심이 나를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게 한 거라 생각해.

아들아!

너는 내 말이 이해가 가는지 모르겠구나.

잘 이해를 못한 것 같으니까 좀 더 설명을 해보도록 해.

가령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내가 좋고 나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누군가 내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짓을 하게 되면 그것을 못 참게 된다는 거지.

내가 절대로 남에게 반말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함으로써 생긴 반작용의 법칙인 것이고 내가 싫은 짓은 남에게 절대 시키지 않겠노라는 내 결심이 다른 이들의 행동까지도 비판하게 만들었다는 거야.

이러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러한 생각 때문에 고통스러웠음을 말하고 싶어.

내가 저질러보고 해본 나쁜 짓들은 이해를 잘하는데 비해서 내가 해보지 않고 저질러보지 않은 남의 잘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런 거지.

그 당시 내가 겪고 있었던 감정의 변화가 이런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보니 정도이상의 과잉반응을 보이게 되었던 거야.

정작 당하는 분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고 어찌 보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데 불구하고 가슴 아픔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사건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어.

이 같은 점이 나로 하여금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괴로움을 가져다주더라는 것이었는데 겪어보지 않은 분들은 이 마음의 고통을 몰라.

이래서 수많은 경전에서는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고 하는 것이거든.

내가 남을 미워하면 할수록 내 마음이 더욱더 고통스러워 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 어찌 알까마는 내가 해본 경험으로 비춰볼 때 남을 미워하는 것이 결국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고 남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란 것만은 틀림없이 확인할 수 있었음을 말하고 싶어.

아들아!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준 그 방의 감방장님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스승인줄 알겠지?

오늘은 여기에서 그 분께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이장을 마치고 다음에는 또 다른 일로써 만나도록 하자꾸나.

 

감방장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시죠?

하시는 모든 일이 잘되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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