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holy)한 나 홀로(holo)목사의 성경연구시간입니다.
지난시간 요나서를 읽고 참으로 많은 점을 알게 되었지요.
여러분들이 얼마나 인식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요나서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수행비법을 말해 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인식이 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서 한 번 더 본문내용을 보도록 하지요.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욘2:9)
But I will sacrifice unto thee with the voice of thanksgiving; I will pay that that I have vowed. Salvation is of the LORD.
범사에 감사하고 하나님과 약속한일은 반드시 지켜야하며 구원을 해주시는 분은 우리들안에 내재한 성령임을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수행의 비법이라 할 수 있지요.
또한 선악이 언제든지 자리바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과연 우리들의 삶에서 실천이 될는지는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이 같은 개념은 아직까지는 미완성 교향곡이라 할 수 있는데 연주를 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반복된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니 다시 한 번 더 성경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마13:1)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마13:2)
이 구절 역시 하나의 비유라 할 수 있지요.
집에서 나갔다는 말은 천국에서 내려온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바다는 이세상이라 볼 수가 있습니다.
험한 세파에 시달리는 무리들을 상대로 설법을 펼치셨음을 나타내 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르셨다는 배는 방주(구원)로서 완전한 영생을 뜻한다 할 수 있지요.
예수님은 하나님과 이미 하나가 되어 안전지대에 속해져있으며 대중들은 세파에 시달린 끝에 구원의 문 앞에 다다라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인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나 홀로 목사의 말에 딴죽을 걸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들도 생각을 해보시기바랍니다.
산상수훈 편에서도 보았듯이 예수님이 만약 바닷가에서 사람들을 상대로 설교를 하셨다고 한다면 목소리가 얼마나 커야할지 상상을 해보시라는 겁니다.
파도소리에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데 수많은 대중들을 상대로 설법을 펼치시기란 불가능한일이지요.
지난시간에도 보았듯이 평범한 내용가운데 심오한 뜻을 담아놓았는데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마13:3)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마13:4)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마13:5)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마13:6)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마13:7)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마13:8)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마13:9)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마13:10)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13:11)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13:12)
9절까지 말씀하신 내용은 뒤에 설명을 해놓았으니 잠시 뒤 살펴보도록 하고 10절과 11절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이 허락되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하니 참으로 이상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여기에는 뭔가 깊은 내막이 들어있는 것 같으니 좀 더 성경에 집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13:13)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13:14)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13:15)
이렇게 비유의 말씀을 하신 이유를 이사야서의 예언 때문이라 하셨으니 이사야서를 본 후에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사6:9)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사6:10)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사6:11)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사6:12)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사6:13)
시간관계상 이사야서 6장 전체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앞의 내용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 올라 스랍(세라핌)으로부터 선지자가 될 수 있는 의식을 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스랍이라고 나와 있는 세라핌(seraphims)의 히브리어 뜻은 “불타오르는 것” 인데 치천사(熾天使)로 알려져 있지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이야기로서 이사야 선지자가 자신의 내면(성전)에서 성령(빛)을 보고 깨닫게 된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속 깊은 이야기는 지금은 할 수 없고 그 정도로만 인식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불꽃(성령)이 이사야의 입술에 닿았다는 말이며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백성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마음을 둔하게 만들고 눈과 귀를 막아놓으라고 명한다는 겁니다.
이 구절을 보게 되면 많은 이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일으키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라면 당연히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돌아와 고침을 받도록 해야 정상이지 오히려 반대로 황폐하게 만들라고 하니까요.
그렇다면 성경은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을 적어놓은 걸까요?
아니면 이사야 선지자가 제멋대로 말을 했을까요?
여기에는 참으로 큰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잠시 창세기를 보도록 하지요.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3:22)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창3:23)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아마도 지금까지 나 홀로 목사와 함께하신 분들은 이미 여러 곳에서 창세기의 이 구절을 보셨을 터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그룹은 케루빔(Cherubim)으로 지천사(智天使)를 뜻합니다.
불 칼로 무장한 무시무시한 존재인데 이 역시 하나의 형상화된 성령(빛)의 모습입니다.
선악의 경계를 넘어서 영생과를 득하기 전 나타나는 마지막 관문과도 같은 존재이지요.
모세역시 자신내면의 성전에서 성령(영생)을 만났기에 이러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며 이사야 선지자 역시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창세기와 이사야서를 종합해 보도록 하지요.
모세의 창세기가 먼저이니 이사야는 모세오경을 통해 성경에 대해 알았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무에게나 영생과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이사야는 그렇게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이사야서만 보게 되면 왜 그런 말을 기록해놓았는지 잘 알 수가 없지만 예수님이 하신말씀을 보게 되면 이해가 가게 되어 있지요.
마태복음 13장15절을 보게 되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기었다 했는데 이 같은 이유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이사야서가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이사야서와 마태복음을 종합해보니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해졌는데 성령과 함께하는 이의 말을 듣지 않게 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시험을 넘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지요.
앞서 보았듯이 성령이 하지 않는 일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볼 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11절부터는 약간의 노선변경이 이루어집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사람들을 언제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할 것인가를 하나님께 물었을 때 온 땅에 사람의 발자취가 없어지고 땅이 황폐해질 때까지라고 했는데 이것은 사람의 마음속을 비유한 말입니다.
인간적인 속성들이 완전히 무너지고 마지막 남는 것이 거룩한 씨(성령)라는 말을 이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성읍과 가옥, 토지들은 모두가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만든 것들이며 인위적인 것들이지요.
이러한 모든 육적인 것들이 무너져야(황폐해짐)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성령)이 발아(發芽)하게 되어 새로운 영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사야는 그야말로 대단한 비유의 말을 해놓은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라 항상 비유의 말씀을 하신 겁니다.
나 홀로 목사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확인해 주고 있으니 다음구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마13:17)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13:16)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성경내용을 말한 것이 아니라 깨달은 스승인 자신을 말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선지자와 의인들도 보고 듣지 못한 것들을 보고 듣게 되었다는 말은 성경의 기록들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비유의 말씀인 것 같으면 선지자들이나 의인들이 모를 리가 없겠지요.
그러므로 이 구절은 과거의 선지자들이나 의인들은 예수님이 해주시는 말씀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여기에는 예수님과 제자들만 아는 수행비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지라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을 볼까요?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마13:18)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마13:19)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마13:20)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마13:21)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마13:22)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13:23)
이 말씀을 듣고 보니 나 홀로 목사는 지난세월이 주마등(走馬燈)처럼 떠오릅니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구도의 길을 걸어오다 보니 숱하게 많은 일들을 겪었는데 예수님의 지금말씀이 절절히 가슴에 와 닿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어느 단체 어느 종교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기도한데 본인의 그릇됨에 따라 결실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똑같은 물을 독사가 마시면 독을 만들고 소가 마시면 우유를 생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많은 종교인들은 말할는지 모릅니다.
자신들이 전해주는 복음의 말씀이야말로 진실 되고 참된 진리이며 자신들만이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정말 그러한지는 지금의 예수님말씀을 잘 듣고 판단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참된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지 않아서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이고자하는 사람의 마음 밭이 중요한 것이지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런 까닭에 나 홀로 목사는 지금까지 교회를 다녀도 마음 편하게 다닐 수가 있으며 절을 간다 해도 문제가 없으며 어떤 스승을 모신다 해도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나 홀로 목사는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 홀로 목사의 말을 믿고 숭배하는 것은 절대로 원하지 않는 바이니 자신 안에서 성령과 만나시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나 홀로 목사의 말에 동조를 할 수 없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은 더 이상 이곳을 서성이지 말고 다시는 얼씬도 하지마시기 바랍니다.
가끔씩 귀신들린 자들이 이곳을 들락거리면서 부정적인 기운을 보내는지라 글을 쓰고 싶지가 않기 때문인데 많은 이들이 자신 한사람으로 인해 피해 본다는 것을 알고 저 멀리 사라지라는 거지요.
너무 심했나요?
하지만 나 홀로 목사의 말을 고깝게만 들을 것은 아닌 성 싶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여기에 대해 해주실 말씀이 있을 것 같으니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마13:24)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마13:25)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마13:26)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마13:27)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마13:28)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13:29)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13:30)
많은 목회자들이 이 말씀을 인용하기를 자신들이 전해주는 복음말씀을 듣지 않으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지옥 간다고 서슴없이 말을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는 자신들의 깨달음 정도를 봐야 하리라 여겨집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님처럼 자신 안에서 성령을 만난이가 말을 하는 것이지 그저 입으로만 성경말씀을 외워서 할 말은 아닌 거지요.
예수님께서 가라지를 불사른다고 말씀하신 것은 성령의 입장에서 말씀하신 거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앞서 나 홀로 목사가 여러 차례 말씀드렸다시피 자신 안에 내재한 성령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거지요.
그런 까닭으로 나 홀로 목사를 반대하거나 부정적인 분들이 이곳에 머물지 말라는 말을 한 것이며 나 홀로 목사가 심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내재한 성령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해가 되었으리라 여기며 다음구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마13:31)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13:32)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13:33)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설명을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깨달음을 얻은 상태를 설명한 겁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깨닫게 되면 온 세상이 천국 아닌 것이 없게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이것은 또한 자신내면의 성전(천국)에서 성령을 만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편안함을 얻게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말했던 불교의 반야심경 내용 중에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는 말이 부풀게 한 누룩과 마찬가지의 말이라 할 수 있지요.
아마도 따지기 좋아하는 누군가는 예수님께서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넣어 부풀게 했다는 사실을 들어 불교의 반야심경과는 다르다 하겠지만 이미 앞선 내용에서 확인한바 예수님께서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 했기 때문에 정확히 일치된다 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항시 비유를 들어 말씀을 하셨는데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마13:3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마13:35)
이 말씀은 시편 78편의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잠시 본 후 계속하겠습니다.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시78:1)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시78:2)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시78:3)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시78:4)
시편 78편의 제목은 아삽의 마스길인데 아삽은 모으는 자를 뜻하고 마스길은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지난시간 보았듯이 성령의 불덩어리와 함께할 수 있게 모은다는 의미이지요.
모으는 자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시편 78편을 예수님이 인용하신까닭은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하나의 의무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며 구약속의 말씀들을 하나같이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시편을 통해 알아야할 사실은 성경말씀이 지극히 비유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이지요.
이 같은 구절을 보면서도 성경을 액면그대로 읽어야한다는 분들이 있다면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입니다.
잠시 보시죠.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마13:36)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마13:37)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마13:38)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마13:39)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마13:40)
무리를 떠나 집에 들어가셨다는 것은 대중들을 향해 설교를 끝마치고 다시금 내면의 세계(성전, 천국)에 집중상태로 들어가셨다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내용들 모두가 성령이 임하여 말씀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이렇게 기록한 겁니다.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좋은 씨는 천국의 복음을 올곧게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이 순수한자들을 말함이며 악한자의 아들 가라지는 예수님처럼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씀하는 이를 반대하거나 훼방하는 이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추수 때라는 것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를 말하며 추수 꾼이 천사라는 말은 앞서 보았던 케루빔이나 세라핌을 말하는 것인데 죽음의 터널을 지나 영생으로 가기위해서 반드시 건너야하는 천상의 파수꾼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마13:41)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13:42)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43)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여기에서는 성령과 하나 된 예수, 즉 성령의 위치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 홀로 목사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보너스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세상의 만물이 성령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만물이 진동(빛과 소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알 것이며 성령과 진동이 하나라는 것도 알겠지요.
이와 같이 영생으로 가기위해서는 빛과 소리를 인식하는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나 홀로 목사가 임의로 지어내는 말이 아니라 깨달음을 말하는 많은 선지자들이나 영적스승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며 이미 창세기나 이사야서를 통해서도 확인을 해본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이러한 상태를 말씀하신 것인데 진동력이 맞지 않으면 마치 불에 태워지는 것처럼 뜨거움을 느끼게 되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무간지옥에 떨어질 영혼도 있으니 울며 이를 갈게되리라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의인들은 하나님과 하나가되어 빛(성령)의 세계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겁니다.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라고 한 것은 태초에 인간에게 하나님이 불어넣어준 숨결인 성령과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지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13:44)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마13:45)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13:46)
천국은 물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나타내 보인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이 구절을 보며 보화나 값진 진주가 있음을 알면 당연히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살 것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이유는 그런 뜻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에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인가를 판단하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겁니다.
정말 천국을 값지게 여긴다면 자신의 재산을 아끼지 않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가끔씩 이러한 구절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나 종교단체에 전 재산을 털어 넣는 것을 보는데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이 살아감에 있어서 육적인일보다 영적인일을 더욱 값어치 있게 여기라는 것을 교회당에다가 재산을 바치라고 말한다는 것은 순전히 예수를 팔아먹는 인간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물론 교회나 종교단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부는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자신이나 가족들조차 돌볼 수 없는 정도의 처지로 몰아간다면 결코 바람직하다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나님 말씀은 교회나 종교단체에서 들을 수 있겠지만 천국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합니다.
말을 하고보니 많은 분들이 혼란스러워 하실 것 같아 약간의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할 것 같습니다.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는 예수님말씀은 성령을 깨닫게 되면 안과 밖이 없는지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 일뿐 정말 천국이 사람들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요.
사람의 몸이 대우주를 담고 있음을 알게 되면 천국이 내면에서 발견되는 것이 맞는다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국이 하늘 높은 곳에 있다는 말도 틀리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언젠가 관련구절이 나오게 되면 다시 한 번 더 설명하기로 하고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다시 천국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으니 성경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마13:47)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마13:48)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마13:49)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마13:50)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잘못해석하게 되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모두 지옥에 떨어져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고 여기게 될 테지만 이 말씀은 특정종교에 국한된 말씀이기보다 모든 인간들이 적용받아야할 말씀이라 봐야합니다.
세상 끝이란 각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말하며 그때에 가서 선악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말씀을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말하는 선악은 세상기준의 선악이 아니라 얼마나 영적인가 육신적인가의 기준입니다.
천국을 가기위해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며 육신적으로 치우쳐있는 영혼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해놓은 겁니다.
그만큼 자신의 영혼을 깨닫는 것은 중요한 것이기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마13:51)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마13:52)
Then said he unto them, Therefore every scribe which is instructed unto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unto a man that is an householder, which bringeth forth out of his treasure things new and old.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성령과 하나 됨의 영광을 입은 자를 말하며 깨달은이(인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처럼 성령과 하나 되면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의미로서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온다고 말씀하신 것인데 지금까지 보았던 대로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의 말씀들을 모두 알게 되고 새로운 말씀으로 재창조하기까지 한다는 거지요.
집주인이란 결국 천국의 주인이라 할 수 있으니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every scribe which is instructed unto the kingdom of heaven)라고 말씀하신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만이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고 하지 않고 서기관마다 라고 하셨다는 것은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은 물론 자신의 제자들도 그러할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겁니다.
따라서 나 홀로 목사와 함께하는 여러분도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 할 수 있겠지만 조만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신실함에 응답을 해주시리라 확신을 하는 바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따라야지요.
여러분의 믿음이 과연 얼마만한가가 중요하며 얼마나 영적일수 있느냐가 관건이기도합니다.
이모든 것은 여러분 개개인의 역량에 달린 일이라 말씀드리며 13장의 나머지 부분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마13:53)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마13:54)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마13:55)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마13:56)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마13:57)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마13:58)
지난시간에도 보았듯이 참으로 딱한 노릇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펼쳐도 예수님을 그저 한마을에 살던 개똥이정도로 취급하는지라 말씀이 먹히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까닭에 깨달은 스승들은 행동거지를 조심해야하며 늘 근엄한 상태로 지내야 하는 겁니다.
하긴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자라난 형제들이며 한동네서 눈만 뜨면 보아오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천국의 복음을 말하며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 하니 어떻게 믿어지겠냐는 거지요.
마치 한 이불을 덮고 자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절대 믿음이 서지 않는지라 예수님께서는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았다고 했지요.
이 말씀을 우리는 집중해서 봐야하는데 앞서 보았던 많은 기적들이 믿음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58절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천국복음역시 믿음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결국 영생이라는 것도 자신의 믿음으로서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니 나 홀로 목사와 함께하시는 여러분이 얼마만큼의 믿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얻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오늘은 여기에서 쉬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함께 하시는 성령이신 하나님!
오늘도 저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고 입을 열어주셔서 감사하나이다.
아침까지 몰랐던 것을 저녁에 알게 해주시고
오늘까지 몰랐던 것을 내일 알게 해주시니
내 귀와 눈이 당신으로 인해 열리고 닫히고 있나이다.
요란한 세상의 오케스트라 연주는 듣지 못할지라도
내면으로 울려 퍼지는 천상의 음악소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것임을 아나이다.
당신의 숨결이 온 우주에 가득하고
당신의 손길이 세상을 받치고 있음을
내가 알도록 하신 나의 하나님!
어제까지 하찮은 인생을
오늘 당신이 귀하게 여겨주셨으니
내 삶이 풍족해 졌음이니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