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102)

배가번드 2022. 1. 2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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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지난번 약속대로 오늘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겪었던 여러 가지 일로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도록 해.

한국에 돌아가서 첫 번째로 내게 다가온 것은 내가 머물러야 할 곳이 별로 없구나 하는 서글픔이었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이곳저곳으로 오라고 했지만 정작 마음 편히 쉴 곳은 없더구나.

하루라도 빨리 대구로 내려가 네 할머니에게로 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서울에서의 일이 있어서 그러지도 못하고 있었지.

공장 재계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를 찾아야 하지만 이미 그러한 욕망이나 열정이 식은 지 오래되어서인지 도무지 투자자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를 않고 있었어.

더 이상 다른 이들의 구설수에 시달리고 싶지도 않고 이제는 중국에서의 힘든 생활을 정리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거든.

이제는 취직이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던 거야.

벌써 한국을 오기 전 투자하신 분들께 메일로 양해를 구해놓기도 했어.

최선을 다해 버팅기고 있었지만 공장 주인이 더 이상 임대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지라 어쩔 수 없노라 하는 핑계거리를 무기삼아 구구절절이 편지를 썼더니 다들 할 말이 없는지 묵묵부답이더구나.

어찌 보면 나로서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꺼리는 확보를 했는지라 의기양양하기까지 했어.

솔직히 신을 팔아먹기 좋은 조건이 생겼지 않니?

그렇지?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욕을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모든 이들이 이러한 마음상태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일을 하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다들 핑계거리를 찾아.

 

"이래서 내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어.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을 그 때문에 내가 좌절 했던 거야."

 

이러면서 스스로 위안을 하는 거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그것은 말이야.

내가 그렇게 살아나왔기 때문이거든.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내가 한 가지 일만을 고집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네가 알기바래.

다만 이러한 길이 힘이 들어 저러한 길을 택할 경우 이러한 어려움은 피할 수 있게 되지만 저러한 어려움을 마주쳐야 하는 것을 감수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뿐이야.

어찌되었건 나로서는 얼마든지 타당성 있는 포기의 기회가 주어져 있었고 그러한 나의 말에 대해 투자자들로서는 침묵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이러한 내 마음과는 별도로 한국에서는 한 가지 일로 의견이 분분하고 있었어.

대만의 과거 출가자 한분이 일단의 대만 동수들을 모시고 여행 차 한국을 방문하고 있었는데 그 일로서 전체 센터가 시끄러웠던 거야.

단체 일에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으려 작정을 했기에 무심히 흘리고 싶었지만 가는 곳마다 나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통에 어찌할 수 없이 시시비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더구나.

결국 억지 춘양 격으로 시비를 따져봐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는데 참으로 곤란할 지경이었지.

한국의 출가승으로부터 어떠한 일이 있었나를 들어보았고 다른 동수로부터 대만 출가승의 입장을 들어보았기에 종합적인 판단을 해볼 수 있었어.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로는 이쪽 편에 때로는 저쪽 편에 서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두가 우리들에게 교훈을 남겨주려는 신의 안배라는 생각이 드는 만큼 도대체 우리는 어떤 식으로 그 일을 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꾸나.

상세한 내부의 일은 차치하고서 우선 그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배경이 어떠한 것이 있고 그로인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는가를 살펴보도록 해.

먼저 이번 일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대만의 출가승은 스승님의 최측근이었던 출가승인데다가 우리 한국동수들에게는 절대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어.

이러한 배경을 가진 출가승이 몇 해 전인가 스승님의 일을 맡아하던 자리를 이탈하는 일이 발생이 되었던 거지.

그것도 스승님께서 이탈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3번이나 무릅쓰고 출가승의 자리를 뛰쳐나갔던 거야.

이에 스승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 그를 출가자의 신분으로 대하지 말고 일반 동수들과 같이 대하라는 지시를 하기에 이르렀던 거지.

처음 이일이 우리들에게 전달이 되었을 때는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고 내심 나 같은 경우는 박수를 치기까지 했어.

왜냐고?

그야 나 자신이 재가자로서 수행이 출가승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출가의 길로부터 탈피했다는데 대해 박수를 쳤던 것이었고 스승의 품으로 부터도 완전히 독립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 여겼기 때문이었던 거지.

이렇게 생각했던 내가 실망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2년 전에 있었던 그분과의 만남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 당시 김치판매를 하기위해 한국을 나가게 되었던 내가 때마침 한국방문을 하고 있던 그분을 만났던 것인데 반가운 마음에 만나긴 했지만 한국의 장주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에서 알게 모르게 서로 간에 깊은 골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어.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의 말씀이 자신이 출가자의 길에서 벗어나고 나서 상당한 깨달음이 있었노라 말씀을 하고 계셨으니 중앙센터에 머물고 있던 장주 자들로서 기분이 좋을 리 만무한 일이었거든.

그러나 정작 내가 실망을 했던 것은 장주 자들의 그것과는 전혀 방향이 다른 것이었어.

나로서는 그가 어차피 스승님의 말씀까지 거역해가면서 장주 생활을 포기했다면 아주 독립적인 생활을 해나가던가 그렇지 않다면 조용하게 뒷전에서 머물러 주어야 할 텐데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거야.

그분이 분명 출가자 생활에서 얻을 수 없었던 많은 점을 깨달은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았으며 그러한 말을 듣고 있는 한국의 장주 자들의 심기가 불편해 하는 것 또한  감지가 되고 있었는데 그때 감지되고 있었던 골이 얼마 전 내가 한국을 갔을 때 불거져 나왔던 거지.

이러한 이면에는 우리 한국장주들과 그분과의 일만이 아니라 대만 자체에서부터 이미 골이 깊어지고 있었어.

대만의 출가승들과 그분과의 첨예한 대립이 되고 있었는지 오래 되었고 그러한 파장이 한국에 까지 전파되었던 거야.

아들아!

여기에는 우리들이 알아야할 중요한 사실이 숨겨져 있어.

그것은 말이야.

그분의 말처럼 재가자 생활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점이 출가자 생활을 해서는 얻을 수 없거나 혹은 재가자 생활을 해서는 출가자 생활에서 얻어야하는 그 무엇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이 알아야 한다는 거지.

물론 이러한 말이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상의 몇몇 가지 일에 불과하며 진정한 내면의 궁극적인 목표점은 결코 둘 일수가 없어.

외형적이고 보다 육적인 것에 초점이 맞추어 지게 되면 분명히 달라 보이겠지만 영적으로 보게 되면 형태만 달리했을 뿐 모든 것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어찌 분별이 있겠는가 말이야.

결국 이러한 말을 한다는 것이 보다 깊지 못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아니겠냐는 거지.

이러한 점이 우리 수행자들의 분별을 부추기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내가 말하기 위해 지금 그들의 행위를 문제시 여기는 것 일뿐 그들이 진정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이 문제를 풀어보도록 하자꾸나.

아들아!

이 같은 내말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어.

지금껏 내가 누구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판하였다면 그것은  모두 내 것이라는 것을 네가 알았으면 해.

혹 내가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해도 결국 내 안에 있기에 내가 그 같은 일을 잘못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또한 그 같은 잘못을 내가 주위를 인식하여 겉으로 표현을 하지 못했을 뿐 여건이 주어지면 나 역시 얼마든지 하였을 것이고 그보다 더욱더 못한 행동들을 했을 거란거야.

게다가 지금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 자체가 내 눈에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내 나름의 시각으로 판단을 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모습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고 다만 우리들은 그러한 일들을 통해 인식의 폭을 넓혀보자는 취지일 뿐이라는 것을 사족처럼 달아놓고 싶구나.

!

그렇다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왜 우리들은 출가재가를 구분을 하는 것이고 그러한 점이 왜 우리의 수행에 걸림돌이 되는가를 알아보도록 해.

먼저 우리들이 출가 재가를 구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진정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거든.

진정으로 깨닫게 되면 출가 재가가 둘이 아니라는 얘기는 어떤 경전에도 나오는 말이며 어떤 스승들도 그러한 말을 하지 않는 이가 없어.

이러한데도 왜 우리들은 구분을 하게 되는 걸까?

그것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기위해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러한 점을 본인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자신이 깨달았는지 아닌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얻기 위해서는 얼마나 자신의 생각이 이원성을 벗어나 있나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한다면 이미 그는 정답에서 벗어나 있다는 거지.

결국 출가가 옳다거나 재가가 옳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느 쪽도 진실일수 없거나 둘 다 진실일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점에 대해 요가에서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어.

 

"포기와 행위는 같은 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포기는 세상의 모든 생활을 버리고 출가를 한분들을 이름이고 행위는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재가자를 이름은 물론이지.

이 말의 참뜻은 이세상의 모든 행위를 통해서 자각을 이루어 가는 것이나 모든 세상살이를 벗어나 오로지 신의식과의 합일을 이루어 나가는 포기의 궁극적인 목표점은 하나라는 것이야.

결국 행위자들 역시도 결국은 그러한 행위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만큼 행위를 하지 않고도 부질없음을 깨달은 포기 자들이 어찌 틀리다 할 수 있겠냐는 거지.

그리고 우리단체의 일을 하기 위해서 그들의 희생이 절실한 것인데 우리 재가자들이 그들을 위해주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을 위할 것인가 말이야.

비단 이것은 우리 단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세상의 수많은 수도자들이나 출가자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 아니겠어?

누군가는 이 세상의 덧없음을 말해주는 이들이 있어야 어느 날 문득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이 신을 찾고자 하지 않겠냐는 거지.

그렇지 않니?

그뿐이 아니야.

스승님을 도와 이 세상에 많은 수행자들의 요구에 맞는 홍법을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정사에 얽매임이 없는 출가자들이야말로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가진 분들일 텐데 그러한 점은 간과한 체 결코 출가자 생활로서는 얻을 수 없음을 말한다면 그야말로 에고의 발상이 아닐 수 없지 않는가 말이지.

그리고 그보다도 더욱더 크게 잘못된 점으로 비춰진 점은 그가 은연중 자신이 스승님의 지시를 3번이나 어겼음을 자랑하는 대목이었어.

그토록 많은 출가 재가자들을 모아놓고서 하시는 말씀이 그러하다면 그야말로 스승을 따르는 자로서 해야 할 말이 도가 넘는 것이 아니겠니?

혹 그가 정말 스승의 지시를 어기고 출가자의 길에서 멀어지기로 작정을 했으면 아주 독립을 하던지 그렇지 않다면 조용하게 재가자의 신분으로 지내는 것이 옳은 것이지 수많은 동수들 앞에서 그러한 발언을 하는 것은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모를 일이야.

만약 그분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다고 한다면 센터에 머물면서 스승님의 일을 하는 이들은 뭐란 말이며 스승님의 지시를 목숨으로 알고 지내는 모든 동수들은 뭐가 되냔 말이지.

이것이 바로 그분이 한국으로 가지고 온 문제의 핵심이었던 거야.

이미 대만에서 출가승들과의 마찰 때문에 빚어진 깊은 골이 한국까지 들어오게 된 거였어.

한국의 장주 자들로서는 대만장주 자들의 지시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며 그들 자체도 그분의 그러한 사고방식에 절대 동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거라 여겨져.

우리단체 내부의 일이라 소상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일들이 앞서 말한 적이 있었던 00마마 사건과 절대 둘이 아니라는 것이 내 개인의 생각이야.

왜 그러한가 하는 것을 지금부터 설명을 해보도록 해.

앞서 00마마에 가신 분들이 아직도 참회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대해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지만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참회를 하려는 분들조차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모른다는 것이 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거든.

아들아!

너무나도 웃기지 않니?

참회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모르면서 참회를 하겠다는 것을 말이야.

완전 코미디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당사자들로서도 이해를 못할 뿐 아니라 우리 일반인들조차 이해를 할 수 없는 심각한 이유가 있어.

스승님의 법문에 보면 우리 자신이 스스로의 스승이며 우리 자신이 지고한 존재라는 대목이 수도 없이 나오거든.

그러하듯이 00마마 역시 그러한 점을 말하며 스승님의 말씀을 가르친다고 하는 거야.

높은 법문만을 골라 수행력이 높은 제자들만을 따로 선별하여 가르친다고 말하고 있으니 겉으로 봐서는 전혀 나쁘지 않아.

그리고 이점에서는 나 역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여기고 있어.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히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 거야.

그것은 가르침을 주는 주체가 우리가 따르는 스승과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이며 이미 우리단체와는 길이 완전히 다르다는 거지.

다시 말을 하자면 우리의 법문은 스승과 하나인 동시에 스승이 우리의 법문이라는 거야.

스승 외에 누군가가 스승의 역할을 대신하는 일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단체를 벗어나서 또 다른 하나의 법문이라는 거야.

여러 가지 정황을 보았을 때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스승의 법문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거든.

진정 그들이 다른 길을 택했다면 미련 없이 떠나야 하는 것이며 뒤돌아보지 말고 걸어가야만 했어.

그런데 왜 참회를 하려고 하는 거지?

그들이 스스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을 하니까 다시 돌아오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아야만 해.

그래야 참회를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니겠냐는 거야.

아직도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가 모르고 있더구나.

너도 잘 모르겠다고?

네가 모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니만큼 너를 위해서 잠시 설명을 해보도록 하마.

우리들이 높은 법문을 보게 되면 육식을 하는 것이 수행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며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어.

그리고 우리스승님께서도 그러한 말씀을 하시고 계셔.

하지만 우리들 단체는 계율이라는 것이 분명 살아있거든.그것은 우리단체 사람이기 위해서 최소한 지켜야 하는 하나의 규칙인거야.

그러한 것들을 높은 법문을 하는 사람이라서 어겨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스승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말이지.

다시 말을 해서 그러한 행위가 맞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단체가 정하고 있는 계율에 위반이 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니?

우리가 스스로 생각할 때 스승님의 가르침에 반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님께서 그러한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라는거야.

스승님께서는 이러한 일이 발생되고 얼마 후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고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수차례 경고를 하셨거든.

그런데도 그들은 말을 듣지 않고 있다가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에야 그들이 간곳이 스승님을 빙자한 또 다른 법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다시 돌아오고자 하게 된 거지.

바로 이러한 점이 최근에 일어난 장주자의 일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거야.

어떠니?

이제 조금 사태의 윤관이 잡히기 시작했지?

만약 그렇다면 우리들은 스승의 어떠한 말씀에도 이의를 달아서도 안 되고 스승을 능가해서도 안 되며 스승과 같은 경지에 다다르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렇게 높은 경지를 우리가 갈수조차 없고 이를 수 없다면 도대체 수행을 해서 뭐하느냐고?

이야!

네가 그러한 질문을 할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구나.

그래.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질문이야.

우리들이 스승과 같은 경지에 다다를 수 없다면 아마도 스승님의 가르침은 달라졌을 테지만 지금까지 스승님의 가르침은 외형적인 형태만 달리했을 뿐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다르지 않아.

물론 다르게 여기는 분들도 많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고 있어.

언제나 스승님께서는 우리들이 자신들의 스승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길 바라고 계셔.

그런데 왜 그들이 높은 법문을 하는 것을 막는 거냐고?아들아!스승님께서는 절대로 그들을 막은 적이 없어.

언제나 우리들 모두에게 떠날 수 있게 문을 열어 놓았으며 언제든 들어올 수도 있게 만들어 놓았거든.

아니!

앞서 스승님께서 그들의 참회를 받아주시지 않았다고 해놓고 어떻게 자유롭게 들어오게 한다는 거냐고?

너는 참으로 오해를 하고 있구나.

너도 생각을 해보렴.참회를 하고 들어오고자 하는 이가 스스로 참회를 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고 있다면 어째서 그것이 스승의 책임이라 할 수 있겠니?

다시 말을 해서 그들이 영혼이 우리단체에 들어오고 싶지 않아 하는 거라는 것을 스승께서 아시기에 그들 영혼의 요구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뿐이야.

어때?

이제 알겠지?

앞에서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는데 왜 마무리를 하려느냐고?

그렇구나.

내가 깜빡하고 지나칠 뻔했네.

네 질문이 스승과 같은 경지에 우리들이 다다를 수 없다면 수행을 할 필요가 전혀 없지 않나 이었지?

나 역시 너와 마찬가지 생각이야.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우리들이 알아야할 사실이 있는데 만약 우리들이 진정으로 높은 경지에 오르게 된다면 어떻게 하게 될까?

아마도 나 같은 경우는 절대 지금껏 따르던 스승께 조금이라도 누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 같아.

그리고 나 자신이 스승이 되고 싶다면 조용히 떠날 것 같은데 너는 어떠니?

너 역시 그러하다고?

그래.

역시 너는 내 아들이구나.

바로 이것이 그들이 잘못 행동했다고 여기는 내개인의 생각이야.

진정 그들이 높은 수행자이고 그들의 경지가 높다고 한다면 그들의 행동이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어.

아주 아름다운 퇴장을 하게 될 때 우리들은 그들을 위해 박수를 치게 되는 것이고 그들의 발자취가 빛이 나는 법이거든.

그러나 그들은 그 누구도 과정에 머물고 있을 뿐 결과물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 것 같아.

너도 조금만 깊이 있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거야.

우리들이 알다시피 스승님의 법문은 대학생들만을 위한 법문이 아니고 우리들 모두가 같은 인식정도를 가진 것 또한 아니거든.

이러할 진데 어떻게 스승의 가르침이 이런 것이다 하는 규정을 할 수 있겠냐는 거지.

팔만사천법문이 아니라 인간들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법문을 해야 할 것이며 때로는 유치원생들도 다독거리고 때로는 박사코스의 사람들의 에고를 무자비한 방법으로 깨트리는 법문을 해야 하거늘 어찌 우리 두뇌로 스승의 법문을 규정지을 것인가 말이야.

정말 도를 얻었다면 그들은 스스로가 스승이 되려고도 않을뿐더러 도에 가까이만 갔다 하더라도 스승을 힘들게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

아들아!

언제나 말을 하지만 우리들이 충분히 겸손하지 못하고서는 절대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해.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한 적이 있듯이 우리의 에고가 있는 한 신을 볼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이유인거야.스승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셔.

 

"여러분들은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이 절망하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들이 겸손 하라는 말씀이거든.

언제까지나 우리들은 두뇌에 머물고 있다 보니 스승님의 말씀을 영적인 해석을 낳지 못하고 있는 거지.

이 같은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이미 앞에 말한 몇 가지 일들이 보여주고 있지만 너의 이해를 돕기 위해 또 한 가지의 웃기지도 않는 사건 하나를 말해주마.

국제선이 열리는 어떤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어.

입문자들 외에는 못 들어가는 곳을 모 동수한분이 가족들을 데리고 갔다가 스승님의 호된 꾸지람을 당했다는 거야.

스승님께서 상당한 시간동안 이 제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셨던 모양이었지.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난 다음이었지.

스승님께 꾸지람을 당한 동수가 타 동수들에게 자신의 마음상태를 말했는데 스승님의 질타가 이어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서 스승님에 대한 반항심이 일어나더라는 것이었어.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이 대만동수들에게 알려졌고 이 사건으로 대만에서 아주 대단한 반응들이 있었다는 거야.

아들아!

너는 대만의 동수들이 어떤 반응들을 했을 것 같니?

아마도 단체의 규칙도 어기고 스승님께 반항심을 보였으니 당연히 단체에서 쫒아내야 한다고 말했을 거라고?

그래.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짐작을 했어.

일반적으로 보자면 이와 같은 순서가 당연하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대만에서 너의 짐작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지 않겠니.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그들은 이 동수를 초청하였고 극진하게 대접하였다는 거야.

어떠니?

너는 이 같은 일이 이해가 가니?

이해는 할 수 없지만 뭔가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것 같으니 말해보라고?

하하하하.

말을 하자니 어이가 없어서 먼저 웃음이 나오는구나.

그들이 초청을 해서 극진하게 대접을 한 이유가 자신들은 스승님의 꾸지람에 오금이 저려 감히 부정적인 생각조차 못하는데 그가 얼마나 대단하였으면 스승님 면전에서 대항하려는 마음을 먹었겠냐는 거였어.

어때?

이제야 네 궁금증이 씻어졌니?

그러고 보니 그러한 해석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네 하는 너의 반응이 예상되지만 이것을 우리단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에 비추어 보게 되면 문제는 아주 심각하게 번지고 있음을 알 수 있어.

앞에서도 말을 했지만 몇 가지 일연의 상황들이 우리들의 이러한 마음상태나 인식에서 불거져 나온 일이라는 거야.

누구나가 마음속에 담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들이 밖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을 확대 해석하여서 어쩌자는 거냔 말이지.

!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어.

스승님께서 우리들 마음속의 부정성과 겸손치 못한 마음들을 없애주시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데 이러한 발상은 찬물을 퍼붓는 행위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스승님을 따르기로 한 자들의 입에서 스승님께 대항하려는 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뭐 하러 단체에 남아서 스승을 힘들게 만드는가 말이야.

나는 그들이 대단하지 않다거나 대단하다고 판단할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아.

다만 진정 그들이 대단하고 자신을 내세우고 싶다면 어서 빨리 단체에서 떠나 독립하라는 거지.

그래서 세상의 많은 중생들을 교화하는 스승이 되어 세상에 빛이 되시라는 거야.

그래야 다음사람들이 흔들림 없이 자신의 수행을 해나갈 것이고 스승님께 누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이거든.

그렇지만 아들아!

이것은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님을 너에게 고백해야겠구나.

지금 내가 예리하게 퍼붓는 비난의 화살이 사실은 모두 내게 향하는 나의 자성의 목소리라 할수있어.

내게 보이는 그들의 잘못이 사실은 모두 내재한 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을 끝으로 오늘은 여기에서 여정을 마무리하고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이어지고 있었나를 살펴보도록 하자꾸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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