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103)

배가번드 2022. 1. 2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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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한국으로 돌아간 나에게 또 하나의 화두거리가 생겼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 일이 터져 나왔어.

난데없이 웬 화두냐고?

그것은 말이야.

늘 내가 접속하던 우리단체의 홈피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던 동물들의 안락사 문제였어.

스승님께서 우리들에게 동물 역시 우리와 같은 불성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말씀을 하신지 오래되었고 최근에는 스승님이 기르시는 개들이 아주 높은 영적수준에 이르렀다는 말씀까지 있다 보니 새삼 동물보호에 동수들의 관심이 몰리게 되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동물보호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우리들에게 알려지게 된 거지.

우리들이 외부에서 듣기와는 전혀 다른 일들이 그곳에서 일어났던 거야.

우리단체의 계율에 위반되는 안락사가 그곳에서는 일상적이다시피 일어난다는 것이 동수들에게 화두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던 거지.

처음에는 동수들이 동물사랑이 가지는 큰 의미에 감동이 되어 다들 참여를 하였다가 실상을 알게 되면서 논쟁이 일어나게 된 거였어.

이래서 진정으로 산을 사랑한다는 것은  산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라는 말은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었던 거야.

도대체 어떠한 논쟁이 일어났기에 화두까지 들먹거리는지 궁금하다고?

그렇다면 지금부터 찬반양론으로 나뉘어져 동수들에게 화두거리를 제공하였던 안락사 문제를 우리가 분석해봄으로서 우리의 인식을 넓히도록 해보자꾸나.

동물보호 협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많은 단체들이 있다는 것조차 내게는 낯설었지만 몇 해 전에  회원 중 한사람이 입문을 하게 됨으로써 나를 비롯해 많은 동수들이 그러한 단체를 알게 되었어.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 역시 동물과 사람은 엄연히 구분되어져야하고 사람이야말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생각으로 무장되어져 있던 지라 그들의 주장이 그저 사람들의 다양한 인식 중에 한부분이거니 했었지.

그러나 이러한 내 생각이 최근 들어 아주 빠르게 바뀌게 되었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분별 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난 후부터였어.

우리들이 진정 이 세상 모든 것이 신으로 부터 왔음을 인식할 수 있고 다 같이 신의 품성을 나누어받은 형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째서 동물과 사람을 구분해야하는가 라는 물음을 가지게 되었거든.

이러한 내 생각과 마찬가지로 많은 동수들도 우리들이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들조차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던 거야.

이렇게 우리가 동물사랑을 통해 신 의식에 가까워지고자 하였던 만큼 안락사를 시킨다는 것에 찬성을 하기가 쉽지가 않았던 거지.

우리들 단체의 최고 계율인 불살생과 완전히 상반되는 안락사가 동수들의 인식차원에서 받아들여지기가 힘든 것은 당연하였어.

그렇게 당연하였다면 안락사 문제가 그렇게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 아니냐고?

그렇긴 하지만 사정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어.

안락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임을 피부에 닿게 느끼는 분들은 그러한 일을 해야만 하는, 동물보호협회에 속해져 동물사랑 실천에 나서는 분들이고 보면 이러한 논쟁이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던 거지.

동물보호소의 실태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거든.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그러한 동물보호가 아니라 보호소에는 그야말로 기르던 동물이 키우기 싫어서 내다버린 유기 견들이 대부분이었어.

쉽게 말해서 개념 없는 사람들이 자녀들이 동물들이 예뻐서 기르겠다고 조르니까 마지못해 사서 기르다가 개가 병들거나 다치게 되면 내다버리는 것이고 그러한 개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그나마 동물을 사랑하는 보호협회 사람들 눈에 띄게 되면 보호소로 보내지게 되는 거야.

아들아!

너는 이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어떻게 그렇게 무자비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느냐고?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자격이 있느냐고?

잠깐! 잠깐!

네가 너무 흥분을 하고 있구나.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말을 조용히 경청해보기 바래.

우리들은 이런 말을 듣게 되면 남의 이야기라 아주 쉽게 다른 이들을 욕하거나 성토하기 쉽지만 실상을 바라보면 네 안에도 내안에도 우리 모두 안에도 이와 같은 마음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거든.

너는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그런 무자비한 사람들하고 비교를 하느냐고?

글쎄!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이것은 어떨까?

우리들이 매스컴에서 자주 접하고 있는 일들 중에 부모님을 고속도로 휴게실에 버리거나 노망든 부모님을 방치하는 일말이야.

실상 버리기까진 않더라도 병든 부모님이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일은 어떠니?

부모님의 지나친 관심에 화를 낸 적은 없을까?

사람의 일을 어떻게 동물에다가 비교할 수 있느냐고?

그래!

바로 그거야.

내가 오늘 이러한 일을 말하는 것이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분별 심들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거였어.

기르던 개를 방치하고 버리는 것은 얼마든지 용서를 할 수 있고 사람을 버리면 천하에 고약한일이 된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사랑에는 한계와 분별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겠니?

이래서 수행에도 등급을 매기게 되는 것이고 각자가 가야하는 천국이 길을 달리 한다는 거야.

이 말에는 모든 논쟁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어.

"뿌린 대로 거두리라" 하는 성경의 말과 불교의 인과법이 일맥상통 하는 것과 같이 모든 일에 대한 결과물은 행위자들에게 있기 마련인 만큼 우리들은 다른 이의 일을 문제시 여기며 판단을 하기보다 그러한 문제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며 행동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지혜로운 자가  되지 않을까?

안락사를 해야만 마땅한 이유를 말하자면 수백 가지도 더되는 당위성을 가진 이유들이 줄줄이 나올 것이며 안락사를 관음법문 수행자가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또한 수백 가지도 넘게 나올 수 있거든.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주장만을 되풀이 하고 있을 뿐 결론은 나지 않았어.

나 역시 처음에는 방관자로 남으려고 뺑소니를 쳤지만 동수들을 만나지 않고는 안 되는 일이 있다 보니 얼마간 문제의 핵심에 가까이 가게 되었고 판단 아닌 판단을 해야만 했었는데

동수한분의 집에 갔을 때 그들로부터 안락사가 얼마나 큰 문제가 되는가를 듣게 되었던 거야.

그런데 이들과의 대화 첫머리에서 의견의 대립이 일어났었지.

그들은 분명한 어조로 말을 하기를 안락사는 동수들이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안락사를 하던 그렇지 않던 당사자가 판단할 문제라는 생각이었어.

그런데 그들은 내말에 상당한 거부반응을 보이더구나.

자신들이 생각할 때는 남들이야 어떠한 일을 해도 무방하겠지만 왜 관음법문 수행자가 그러한 안락사를 하는가를 말하는 거야.

더 이상 대화를 끌고 가다가는 나 역시 논쟁에 휘말릴 소지가 있겠다 싶기도 했고 그들과의 좋은 관계를 논쟁으로 불편하게 만들기가 싫었기에 대화를 마쳤어.

그러나 속 깊은 곳에서는 아주 실망스러워 해야만 했는데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말자체가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거든.

왜 관음법문 수행자가 안락사를 해야만 하는가라는 그들의 물음이 마치 관음법문은 이러한 것이라고 규정을 짓게 되기에 나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고 이 세상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우리들 중 누군가가 한다면 그것이 어찌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어.

지금까지도 우리들은 관음법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계율로 인해서 수없이 많은 하지 말아야하는 대상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우리들 스스로의 이익을 포기해야만 했었지.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관음법문 수행자가 스스로의 계율을 어기면서까지 그러한 일을 해야 하느냐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몰라.

그러나 아들아!

이 같은 경우는 정말 경우가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겠구나.

어째서 그러냐면 말이야.

분명 안락사가 계율에 위반되는 것은 맞겠지만 그 같은 행위가 어떠한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것이 중요하리라 여겨지기 때문이거든.

과거에 우리들은 중앙센터를 건축할 때 상당한 계율위반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자신들이 자리한 위치에서 알게 모르게 계율위반을 끓임 없이 해나오고 있어.

게다가 안락사 문제가 불거지기 전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었던 장수동 개 지옥 사건에서 이미 우리들은 크나큰 계율위반을 경험 했었거든.

국민들 모두가 그러한 곳을 방치해 두는데 대해서 분노해 할 때 우리 단체의 동수들이 그곳을 무단 침입하여 개들을 구해내기에 이르렀지 않겠니.

그렇다면 이러한 행위자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서 어쩔 수 없었노라 면죄부를 받고 있으면서 직업으로서 눈물을 흘리면서 안락사를 시켜야만 하는 그들의 심정을 어찌해서 단죄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걸까?

누구는 관음법문의 수행자로서 계율위반을 한 것이 정당화 되어야하고 누구는 단죄를 받아 마땅한 일을 한 것이 될까 이 말이야.

아들아!

이 같은 내말에 너는 안락사를 내가 주장하거나 찬성한다는 식의 생각을 하지 말길바래.

언제나 말하지만 나는 어느 쪽에도 서 있을 수도  없는 동시에 양쪽 모두에 서 있기도 해.

그러기에 항시 내 판단은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할 수밖에 없는데 안락사를 해야 하는 당사자에게 모든 것을 맡겨라 하는 것이 나의 판단이라면 판단이라 할 수 있어.

다시 말해서 이 사건을 보는 우리들 스스로는 나는 그 같은 경우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교훈을 삼아야지 그것을 내가 판단하는 위치에 서게 되면 거꾸로 그 같은 일에 나 자신이 서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거든.

그렇다면 계율위반을 한 그들의 행위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그래?

그렇다면 물어보자꾸나.

네가 어떻게 감히 그들을 심판하려 하지?

네게 그들을 심판할 권한을 누가 주었는데?

그렇지만 그들은 분명 관음법문 수행자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계율을 위반하였으며…….

스톱!

그만해도 너의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그만해두기 바래.

내가 서두에 말을 했지?

어떠한 당위성을 주장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끝도 없이 많다고 말이야.

우리들은 판단은 할 수 있지만 심판의 권한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해.

그렇다면 얼마든지 계율을 위반해도 되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내 대답은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어.

그러나 이것만은 기억해야해.

우리들이 계율을 위반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거기에 따른 결과물만큼은 반드시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신을 공부하고 신과의 합일을 위해 노력하는 자들로서 이러한 것은 기본이 아니겠니?

그러한데 어째서 행위자의 안에 있는 그자신의 신이 심판하실 일을 우리들이 하려고 애를 쓰는 거지?

이러한 심판하려는 행위가 사실은 엄청난 에고의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모르고 있어.

그렇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있지.

우리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행위자들의 업장을 나누고 있다는 거야.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아들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기 바라.

언젠가 몇 명의 동수들과 차를 마시는 중이었어.

그 자리에서 여러 가지의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좌중의 누군가가 어떤 동수분의 수행상의 고난이 어떻게 일어났으며 그러한 고난을 얼마나 대단하게 이겨나갔음을 말하게 되었던 거지.

나또한 그 당시 그분과 비슷한 경험 중에 있던 터라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뜨거운 불길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던지라 그분이 무척 존경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래서 내가 좌중을 둘러보며 참으로 그분을 존경한다는 예를 취해보였는데 우리들 중 한분이 대담하게도 그 같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면 웃음으로 넘기겠다며 호언장담을 하지 않겠니?

그 말끝에 내가 만약 당신도 그렇게 초연하게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존경한다고 예를 갖춰 인사를 하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어.

그런데 며칠이나 지났을 무렵 또다시 몇 명의 동수가 모였을 때 그분은 얼굴에 반창고를 몇 장 붙이고 손과 팔에 파스며 밴드들을 도배를 하고 나타난 거야.

우리들이 말했던 일을 자신이 경험하게 되었던 모양으로 그분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오더구나.

 

"! 이론과 실제는 다르데!"

 

이것이 바로 내가 경험한 남의 업장에 함부로 개입하지 말라는 교훈이었어.

바로 그날 그분께서 몸소 나에게 보여주셨던 거지.

!

어떠니?

이제 분명하게 드러났지 않니?

누군가의 일을 우리들이 함부로 판단하게 되면 그 일들이 바로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이야.

이 말은 내가 남의 일을 판단하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라는 것을 네가 알아야해.

판단은 하되 심판만은 신의 영역으로 놓아두라는 소리거든.

판단을 하게 되면 심판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만약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가 않아.

판단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이 행위자가 되었을 때 내가 할지도 모를 행동지침으로 삼자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만 심판을 내려버리게 되면 우리들은 행위자들의 인과를 불러오게 되는 거야.

다시 말하자면 안락사가 잘한 것이냐 못한 것이냐 하는 심판을 우리들이 하게 될 때 그 일에 따른 업장을 우리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나누게 된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나쁜 것이 아니네요?

 

그렇지.

심판을 내려서 그러한 업장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같은 일이 나쁘진 않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얼굴에 반창고로 도배를 해야 하는 일이 생길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거야.

아들아!

이 같은 일들은 일반인들은 인과가 돌아오는 속도가 느려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들 관음법문 수행자들은 그야말로 바로바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해.

지금도 수많은 동수들이 이러한 것을 경험하고 있어.

누군가 남들의 일을 함부로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러한 말 때문에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치게 됨을 반드시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구업을 짓지 않게 조심할 것을 권하고 싶구나.

수없이 많은 부정적인 일을 하면서도 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들도 있고 업장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 같은 사람들도 있다고?

그래?

너는 정말 좋은 경험을 했구나.

만약 네가 그러한 사람을 보았거든 얼른 그 사람으로부터 도망가기 바라.

그는 말이야.

우리가 말로만 듣던 마왕이거나 마왕의 하수인으로 일을 하는 이거든.

본인이 마왕이기에 마의 일을 하는데 어떻게 업장을 받게 되겠니?

당연히 마왕으로부터 포상이 주어지겠지.

그렇다면 마왕을 하면 안 되겠냐고?

나쁜 일을 해도 괜찮다면 마왕이야말로 센 것 같으니까 마왕을 하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해도 돼.

왜 안 되겠니?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는 그들이 지금 이 땅에도 많이 살고 있어.

어디 있냐고?

도무지 마왕처럼 생긴 사람들은 눈 씻고 봐도 안 보인다고?

너는 아직도 형상에 머물고 있구나.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니.

마왕이라는 것이 머리에 뿔을 달고 이빨을 드러내고 입으로 피를 흘리는 야차의 모습을 한 것이 아니라 그 행위에 있다고 말이야.

지금도 우리주위에는 이러한 마왕의 하수인노릇을 하거나 마왕의 지위에서 하는 짓들을 서슴없이 해내는 인간 닮은 이들이 많이 있어.

지금 중동에서는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들을 죽이는 자들은 현장에서 총으로 그들을 죽이는 병사가 아니라 뒤에서 그들을 조종하는 마왕과 같은 일을 하는 자들이야.

그들이야말로 죽어서 무간지옥에 떨어져야할 사람들이지.

아니!

남들이 하는 짓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심판 말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들의 일을 함부로 규정짓고 그들을 심판하느냐고?

그렇구나.

나도 모르게 내가 한말처럼 나도 행동하고 말았네.

그러나 아들아!

네가 모르는 것이 있어.

나는 말이야.

그들을 마왕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거든.

그들의 행위를 마왕으로 규정짓기는 하되 그 너머에 있는 그들의 본성을 보는 것 또한 함께 하고 있어.

무슨 말 같지 않은 말을 하는 거냐고?

너의 그 말이 절대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나또한 알아.

그러나 아들아!

우리들이 이러한 경우에도 절대 냉정을 잃지 말아야해.

그들의 행동으로 그들이 지옥을 갈지 천국을 갈지는 하나님만이 판단할 문제겠지만 나는 그러한 일을 지옥갈일이라 규정을 짓고 절대 그러한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 나에게 폭력이 얼마나 처참하고 무서운 것인가를 가르쳐 주기위해서 하는 행위라 받아들인다는 거야.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면 그들은 신의 도구로써 인간들에게 교훈을 준다는 것이지.

어찌 보면 그들은 우리들이 저질러놓은 폭력적인 에너지들이 어떤 형태로든 해소 되어야 하는 일을 맡아서 하는 신의 도구들이기도 한 거야.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들이 알아야하는 중대한 사실이 한 가지 숨어있어.

그것은 말이야.

우리들 모두가 사실은 그러한 전쟁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며 나도 모르게 동참을 하고 있다는 거지.

무슨 말을 하는가 하겠지만 너 역시 조금만 깊이 있게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를 할 수 있어.

너도 이제 나비효과라는 말이 낯설지만은 않을 거야.

그렇지?

뉴욕시내 한복판에서 이루어진 나비의 날갯짓이 태평양 한복판에서는 태풍을 일으킨다는  나비이론은 달달 외우는 사람들조차 이러한 내말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할 테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는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거라 여겨지는 만큼 좀 더 설명을 해보자꾸나.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참으로 많은 살생과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은 너 또한 동의하리라 여겨져.

사람이던 짐승이던 폭력적인 행위에 따른 고통은 모두들 싫어하며 죽임을 당하게 될 때 공포감과 증오심을 나타내게 되지 않겠니?

그렇지?

이러한 폭력적인 기운들이 모여서 어떠한 형태의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 내가 말하려는 요지야.

이래서 우리들은 진정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건데 신구의가 깨끗하게 유지 되어야하는 이유들이 이 땅에 비폭력의 유토피아가 생기도록 바라는 사람들의 생각들이 실현되게 하기 위해서라면 이해가 되겠지?

내가 하는 폭력적인 행동이나 생각들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남들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천하에 때려죽일 인간들이라 여긴다면 얼마나 모순된 행동인지 이제 이해가 가지 않니?

아들아!

네가 만약 나의 이 같은 말에도 너의 생각은 생각에 그친 것이고 남들은 행동으로 나타낸 만큼 절대 너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한다면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왜냐하면 네 말이 전혀 틀린 것도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 역시 너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한 심판을 할 위치에 있지 않거든.

그러나 말이야.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어.

이러한 나의 말은 어디까지나 네가 심판을 내리려는데 있어서의 말 이였을 뿐 네가 전쟁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싶구나.

다시 말해서 네가 전쟁이라는 참혹함을 싫어하고 그리로 부터 인간들이 멀어지길 바란다면 이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나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거지.

네가 남들의 행위를 심판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었나 하는 것을 알아야하기 때문에 그러한 원인에 대한 분석을 해준 것뿐이거든.

이러한 내말을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것은 네게 달려 있는 거야.

그래서 이런 말이 있어.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에 달려있다"

 

전정 우리들이 평화를 원한다면 이제라도 그 첫걸음을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구나.

그런데 우리들이 진정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어떠한 폭력적인 생각과 행위조차 하지 않아야 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주제로 삼은 안락사문제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러고 보니 우리들은 또 하나의 모순점을 앞에 두고 있네.

그러나 아들아!

동물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들에게 죽음을 내려야하는 안락사 문제가 폭력이 아니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곳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앞에 놓여 있는 만큼 어디까지나 그들이 알아서 할 문제가 아니겠니?

만약 누군가가 그러한 일은 도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그러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어.

진정 그렇다면 직접 그 일을 주체가 되어서 하라는 거야.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고 단 한 마리의 유기견이라도 입양을 하여서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라는 거지.

입으로는 동물사랑 어쩌고 심각하게 떠들지만 직접 유기 견을 키우면서 동물병원에 가서 수술비로 수백만 원을 날리게 되면 지금 주장하는 안락사 반대의 말이 쏙 들어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거라 감히 장담할 수 있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어느 곳, 어떤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거든.

그러나 진정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해 뛰어드는 사람은 극히 적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누군가 이러한 안락사 문제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거든 단한마리의 유기견이라도 입양을 하기바래.

그러다보면 이 땅에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개들이 없어질 것이며 안락사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 될 거야.

아들아!

동물의 안락사 문제가 되었건 전쟁으로 사람이 죽는 것이 되었건 우리들은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만 탓하지 말고 그 일을 통해서 우리들의 영적인 성장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며 오늘의 시간을 마무리 하도록 해.

마지막으로 네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절대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에 그치지 말고 네가 그 문제를 푸는 사람이 되길 바라.

사랑한다.

아들아!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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