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오늘은 최근에 일어난 나의 일상을 말해볼까 해.
한국을 다녀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그동안 나에게는 무척 많은 일들이 일어났어.
항시 그러했지만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숨 가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만 말해두도록 하마.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도 오늘은 북한에서 오신 처형의 일을 오늘의 주제로 삼기로 해.
이분은 내가 중국을 들어온 첫해 우리공장에 오셨다가 3년이 다된 오늘에 이르러 다시 오셨으니 어찌 보면 굉장히 반갑게 생각되리라 여겨져.
그러나 이분이 내게 갖는 의미는 그보다 훨씬 더 비중이 높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우리단체의 모스님 한분과의 약속 때문이었어.
그동안 세파의 굴곡을 오르내리는 동안 내가 간간히 북한 돕기를 해오고 있었고 한국을 나갈 때마다 지인들에게 함께 북한 돕기에 나서줄 것을 부탁했었거든.
그러한 가운데 작년 겨울쯤 출가승 한분이 북한 돕기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비쳐 오신거야.
혼자가 아니라 뒤에 누군가가 동참하시려는 분이 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었어.
그동안 동수들에게 말을 할 때마다 내처가의 일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개인의 일로서 받아들여지는 통에 참으로 답답하기까지 했지만 그들의 주장이 전혀 틀린 것도 아니어서 더 깊이 있는 권유의 말을 할 수 없었던 터였는데 출가승의 동참의사는 그야말로 내게 크나큰 힘이 되어 주었던 거지.
이분과는 작년부터 모종의 계획을 세웠어.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북한의 처형가족들을 이용하여 북한에다가 무료급식소를 설치하자는 거였지.
작년부터 진행시켜 오던 일이 최근에 들어 실천단계에 돌입한거야.
아니!
끼니 걱정을 하신다는 분이 웬 북한 돕기냐고?
자신조차 돌보지 못하는 주제에 남을 돕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이러한 물음들은 내가 지금껏 많은 사람들의 상념을 통해서 수없이 많이 접수하고 있는 질문들이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만 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상세하게 설명을 하도록 하마.
만약 우리들이 자신들의 형편이 이정도면 남을 도와도 되겠다 싶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을 도와야 한다면 모르긴 해도 자신 안에 자리한 욕심들이 없어져야 될 거라 생각해.
그렇지 않니?
내가 북한 돕기를 한다고 해서 거창하게 했던 것도 아니야.
그저 내게 있는 김치와 양념장 등과 몇 해 전 서울센터 동수들이 모아서 북한으로 보내고 남은 헌옷가지들을 가끔씩 보내주고 있었던 거지.
내 밑에 일을 하던 처조카 하나가 북한과 무역하는 배에 통역사로 일을 하다 보니 북한을 오가면서 어부들과 왕래가 잦거든.
그편에 실어 보내는 것에 불과한거지 돈이 드는 도움은 전혀 주지 못하고 있었어.
내가 북한의 처형식구들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결정적인 일은 처조카하나가 북한에서 배를 타고 건너오고 나서였지.
그때는 그가 얼마나 큰 모험을 했는지 몰랐지만 알고 보니 정말로 목숨을 걸고 나왔더구나.
아마도 용천폭파 사건 때 과자 지원을 하고난 후 몇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던 것 같아.
갑작스레 찾아와서 놀라기도 했고 우리사정이 워낙 어려워서 무엇을 해주지도 못했는데 며칠간 먹지도 못했다는 말과 더불어 취사도구가 필요하다는 말에 집에서 쓰던 야외용 가스레인지를 들고 부랴부랴 부두로 향했지.
막상 만나보니 몇 사람의 초췌한 모습의 난민들 몇 명이 쪽배에 앉아 있었는데 보기에도 죽기 살기로 넘어온 사람들 같았어.
당장 내가 가진 돈으로 빵과 라면 등의 먹을 것을 사주고 몇 마디 말을 나누었는데 우리단체에서 과자를 보낸 사실이 북한 신문에 실렸다고 하면서 아주 좋아하는 거야.
용천폭파 사건 때 자신들 집까지 영향이 미쳤다면서 담벼락이 무너져 엄마가 허리를 다쳤는데 이제는 거의 다 나았고 자신들은 엄마가 가져온 견본책자를 돌려보고 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내가 명상을 하겠냐고 물어보았지.나를 만나 들뜬 마음 때문인지 흔쾌히 그러마고 하기에 선상에서 방편을 전수해 주었어.
아들아!
그에게 내가 방편명상법을 전수를 해주긴 했지만 그가 진정 명상을 하리라는 기대를 애당초 할 수가 없었어.
너도 생각해보면 알거야.
먹고 살기조차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계율을 지켜 나가겠냐는 거지.
물론 그러한 환경에서조차 명상을 해나가는 분들이 많은 줄 알고 있긴 하지만 참으로 힘든 일인 것만은 사실이거든.
그래서 내가 생각하길 이들이 뭔가 먹고 살거리가 있어야겠다 싶었던 거야.
지나가는 말로 북한에서 어떤 사업을 하면 잘되겠는가 물었더니 비누공장이나 국수공장을 하면 잘된다고 하면서 나를 보고 함께 국수공장을 할 것을 제의하더구나.
그러고 싶지만 우리공장의 형편이 어려워 여력이 없다고 했더니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를 보였지.
그날 참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그들에게 충분하게 먹을 것을 주지 못했다는 것과 돈이라도 몇 푼 집어주어야 했는데 하는 거야.
이후로도 가끔 연락이 오긴 했지만 항시 내가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하였어.
마음속으로 이 같은 점이 안타까웠기에 한국을 나갈 때마다 동수들에게 동참을 호소하곤 했던 거야.
그러던 차에 출가승 한분이 동참의사를 밝혀왔으니 나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더 힘이 되더구나.
사실 내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 그동안 동수들에게 알게 모르게 신세를 진일도 있었고 생각에 따라서는 이 같은 북한 돕기가 내개인의 욕심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거든.
실지로 나에게 그 같은 일은 당신 개인의 일이지 않는가 하시는 분들도 있었어.
솔직히 그 말에 반박을 하고 싶었다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인식정도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러한 해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었지.
그러나 아들아!
우리들은 알아야할 사실이 있어.
지금 우리가 명상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봐야 하거든.
우리들이 지금 명상을 하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내안에 있는 신성과 불성을 일깨워서 신과의 합일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야.
그런데 이러한 크나큰 목적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모든 사람들을 구분하여 분별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니?
어떻게 남들은 내 가족과 같이 느끼고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면서 목에 핏대를 세우는 자들이 어째서 내 가족을 사랑하는 데는 인색해야 하는 거지?
내가 남들을 돕지 않고 내 처가만을 돕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처가 식구들은 이용하여 좀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을 돕자는 것이 어떻게 내개인의 일로 치부되어야 하는가 말이야.
이 같은 생각 때문에 내가 마음상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일을 통해서 우리들 마음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 같아.
남들조차 가족처럼 대해야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면 어떻게 내 가족들을 등한시 할 수 있겠냐는 거지.
다시 말하자면 내가족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상 사람들을 내 가족처럼 사랑하겠다는 거냐 이 말이거든.
내가 설사 북한의 내처가 식구들을 돕고자 한다고 해도 그들이 진정한 사랑을 가진 이들이라면 그 같은 말을 노골적으로 뱉어낼 수는 없었을 거야.
동수들 대부분의 지원을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나는 절대 실망하지 않았어.
평상시 내가 생각하던 대로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거든.
그래서 언젠가 내가 모시던 사장님을 찾아뵙고 협조를 구하게 되었던 거지.
무려 26년 전 내가 모시던 사장님인데 아직도 나를 굉장히 반겨주시더구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만 한가히 반기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랬어.
"그래! 00아!
베풀면서 살아야 된 데이 살아보마 빌꺼 업다 아이가.
줄 수 있으마 무조껀 조야 되는 기라
좋은일 하네.
사람은 그래 사는 기 맞는 기라"
수행도 하시지 않는 분 입에서 부처님 같은 소리가 구구절절이 나오고 있었어.
북한에서 하는 짓을 보고 절대로 도와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들을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사장님의 말씀은 내생각과 정확하게 일치되고 있었지.
단체복 맞춤공장을 하시는 분이라 여분의 옷들을 많이 가지고 계셨는데 일반적으로 맞춤옷의 경우 주문숫자보다 여분으로 좀 더 많은 숫자들을 만들거든.
혹시 불량품이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인데 그러한 것들이 일 년만 모아둔다해도 그 량이 어마 한거야.
이미 상당량을 처분한 후인데도 모아주신 옷가지들이 수십 박스였는데 모두가 깨끗한 상품들이었어.
물론 옷을 옮기느라 운반비가 무척 많이 들었다만 정말 기분이 좋더구나.
나를 아직도 좋게 보아 주신다는 점도 기분이 좋았고 수행도 하지 않으신 분이 나보다도 더욱더 자비심과 사랑이 넘친다는 것이 그렇게나 기분 좋을 수가 없었던 거지.
아들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북한 사람들은 도와주어도 고마운 것도 모르니까 도와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니?
도움을 받는 이가 고마운 것을 느껴야 도울 맛이 나는 거지 고마운 줄도 모르는 사람들을 왜 돕느냐는 생각을 한다면 그야말로 안타까운 노릇이구나.
그 같은 말이 일반인들의 입에서 나온다면 아직까지 인식이 모자라서 그렇다 하겠지만 소위 수행씩이나 하는 자들의 입에서 그러한 말이 나온다면 그들이 진정 보살이고 부처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맞나 의심스러운 일이며 신과의 합일은 멀었다고 말해주고 싶어.
북한 문제가 나오기만 하면 사람들은 무조건 도와주어서 안 된다고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거든그들이 북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말이야.
왜 북한이 저토록 못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또, 지금 북한의 주민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날 사장님과의 대화에서도 잠시 말을 지만 북한의 정권이 무조건 붕괴되기만을 바란다면 뭘 라도 한참을 모르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해.
만약 지금 이 태에서 북한이 무정부 상태가 된다면 그 난민들이 어디로 갈 것 같니?
그들이 남한으로 물밀듯이 내려오게 되면 그 많은 난민들을 다 죽이기라도 할 거냐?
그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흡수해야 하는 이들은 남들이 아니라 바로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들인거야.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도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유지되어야하는 절박함은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직시할 줄 알아야지 그들을 도와주면 무조건 핵무기 개발을 해서 우리에게 들이댄다는 아주 초보적인 생각을 벗어나지 못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북한의 주민들은 대부분이 전쟁이 터졌으면 하고 있어.
왜라고 생각하니?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까짓것 한번 터트리자 이거야.
북한의 노동자 월급이 중국 돈10원(한국도1300원)에 불과한데 이러한 월급조차 국가 에서 돈이 없어 지급을 못해주고 겨우 쌀이나 옥수수 등의 곡물로 지급하고 있다하니 이러고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해.
중국의 평균 임금이 500원(6만5천원)이어도 사네 못 사네 난리를 피우는데 북한의 경우 어떠할지 짐작이 가지 않니?
이래도 우리들은 그들이 핵무기 개발을 하기 때문에 도와주지 않아야할까?
자꾸 고립을 시켜서 자폭이라도 하도록 만들어야 시원한가 말이야.
지금 북한에서는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이 포착되고 있다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고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로 여겨지고 있어.
우리들이 지원해주는 돈들이 상당부분 핵무기 개발에 들어가고 있으며 그 바람에 중국에서도 북한으로 들여보내는 물자 중에 쌀까지도 통제를 시키고 있으며 가루로 된 옥수수나 쌀가루를 보내는 중이거든.만에 하나라도 쌀을 그대로 보내게 되면 팔아먹을 수도 있고 저장을 해서 전쟁준비에 써먹지 않을까 우려한 때문이지.
아마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데는 국제사회의 북한 고립작전들이 중국에까지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라 여겨져.
이러한 현실 속에서 그들은 점차 어려운 지경에 빠져들고 있는 거야.
그런데 이러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들 모두가 당장 그들을 고립시켜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니?
앞에서 내가 주장했던 대로의 일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말이지.지금 중국에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국경지대 모처에 난민촌까지 설립해놓고 있어.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니?
북한 정권이 붕괴될 경우 난민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러한 곳을 마련한 것이 아니고 뭐겠는가 말이야.
이렇게 놓고 본다면 우리들은 어떠한 대응을 해나가야 할까?
겉으로는 국제사회의 발을 맞추어서 북한이 핵개발을 못하게 억제하는 한편 뒤로는 그들이 최소한의 굶주림을 면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거지.
이러한 것들을 바로 우리 민간단체에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말이야.
정부는 어디까지나 국제사회의 여론을 살피며 견제를 해야 하고 사회단체들이 나서서 구호사업을 벌려야 마땅한 일이지 우리단체처럼 뒷짐을 지고서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지혜를 공부하는 사람들답지 않아.
그렇지 않니?
아들아!
지난번에도 말을 한 적이 있지만 우리들은 언제나 선택의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어.
그리고 이쪽에서 바라보면 이러한 논리가 맞고 저러한 쪽에서 보면 저러한 논리가 맞아.
얼마 전 너와 다루어 보았던 안락사문제처럼…….
이러할 때 우리들은 우리의 선택의 권리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도울 수 있으면 도우면 되는 것이고 도울 수 없으면 돕지 않으면 되는 거야.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 열을 올리며 나서는 거냐고?
너는 아직도 모르겠니?
내게 그들이 도움을 요청해 왔지 않니?
그리고 보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그들을 돕기 원한다는 거야.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내가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거든.
북한 주민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내가 한 것이었기에 내가 나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내가 그 같은 일을 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동원해서 노력을 했고 다른 이들의 동참까지 호소를 했던 거야.
결과가 좋지 않아서 실망을 하지는 않았냐고?
후후.
솔직히 말해줄까?
약간은 실망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
내가 할 수 만큼의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를 남길 필요가 없거든.
그리고 나는 아직도 남을 도울 만큼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기도 해.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해 나갈 수 있는데 뭐 하러 다른 이들의 참여여부에 내가 예민해져야 하겠냐 이거지.
사실 내가 이번 북한의 처형일로 서운했던 것은 정작 다른데 있었어.
좀 더 나은 봉사활동을 해나가기 위해서 북한의 처형을 입문을 시켰으면 했었는데 그것이 무산되었기 때문이야.
그 모든 것이 그분의 탓이긴 하지만 상당한 아쉬움을 남기는 일이 아닐 수 없더구나.
무엇 때문에 입문이 좌절 되었냐고?
그것은 말이야.
순전히 당사자의 문제이긴 하지만 이곳의 입문절차에도 문제가 있었어.
한국 같으면 아주 쉽게 입문이 될 것을 이곳은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입문이 이루어지거든.
너도 알지?
중국에서 파룬궁을 얼마나 박해하는지 말이야.
이들이 우리단체역시 파룬궁 다음으로 요주의 대상으로 보고 있거든.
사실 이들은 종교전체를 모두 인정하지 않아.
공산주의 이념자체가 종교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으로 대외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지만 집회를 갖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어.
특히 우리단체의 경우는 파룬궁처럼 박해를 당하기까지 했거든.
그러다 보니 입문 식을 상당히 까다롭게 하고 있는데다가 북한에서 오신 처형이 아직까지 입문을 받아들일 마음에 준비가 안 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어.
내가 봐도 아직까지 개념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 보였던 거야.
단지 북한의 사정상 예외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던 것이고 때맞추어서 나오게 된 만큼 신의 가호가 있으리라 기대를 했던 거지.
너도 생각을 해보면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얼마나 북한에 단한사람의 관음법문 수행자가 생기길 간절하게 바랬는지, 그들을 이번 기회에 입문을 시켜서 봉사활동과 더불어 그들 가족들이 모두 관음법문을 할 수 있었으면 했는지…….
내가 처음 처형을 방편입문 시켜서 북한으로 돌려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한국을 갔을 때였어.
우리들이 방편입문자들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열을 내며 말을 했더니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하더구나.
"스승님께서 이미 다 알아서 해놓았는데 뭐 하러 열을 내는지 모르겠네.
김치공장을 하러 들어갔으면 사업이나 잘하지"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어찌 이런 말을 하는가 싶어 뭔가 대꾸를 해주려다가 괜히 논쟁을 벌이고 싶지가 않아서 입을 닫아버리고 말았지.
만약 그분의 말씀대로라면 우리들은 뭐 하러 전단지를 돌려가며 홍법을 하는 거지?
스승님 역시 전 세계를 돌며 순회강연을 할 필요가 뭐있었겠는가 말이야.
이미 신이 모든 것을 안배해 놓았고 북한에도 관음법문이 벌써 들어가 있는데 뭐 하러 우리가 홍법에 열을 올리는가 하는 말이었는데 참으로 한심하더구나.
그렇지만 더 이상 깊이 있는 말을 하지는 않았어.
그분의 인식정도에서는 그 말이 사실이거든.
당연히 그 인식에서 나올 말을 그분이 하는데 내가 약 올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만약 내가 하고 싶다면 내가 알아서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는 내방식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던 거야.
그렇게 했기에 나는 절대 후회하지 않아.
단지 입문의 문턱에서 좌절해야 했던 것이 못내 아쉬운 거지.
아들아!
이러한 아쉬움의 마음도 잠시 뿐이었어.
어제 저녁 식구들과 차를 마시면서 모든 것들을 훌훌 털어버렸거든.
두 사람의 입문대기자들이 한사람은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영향을 주었다 생각해서 미안해하며 풀이 죽어 있었고 또 다른 분은 그분대로 이번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에 다들 침울해 하였지.
아무래도 분위기를 바꾸어 주어야겠다 싶어 차를 마시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나도 모르게 말이 술술 나오고 있었어.
"반드시 입문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 각자가 스승님에 대한 신심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스승님의 견본책자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누구라도 신실하게 칭하이 무상사를 염하면 해탈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이 입문을 구태여 하지 않아도 스승님에 대한 신심만 제대로 가진다면 얼마든지 목적달성을 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입문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절대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더욱더 스승님에 대한 신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들아!
어쩌면 나도 모르게 말이 술술 나오는지 절로 신이 날 지경이더구나.
다들 실망스럽던 마음을 비우고 차를 마시며 즐겁게 도담(道談)을 나누다가 각자의 잠자리로 돌아갔지만 그러한 대화는 그들에게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아주 많은 즐거움을 주었어.
언제나 그러하지만 내가 말을 할 때 그 말을 제일 먼저 듣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었고 그 말을 통해 교훈을 얻는 이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거든.
그러한 점은 너와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임은 물론이야.
나는 내가 하는 너와의 대화에 집중을 하고 열심히 글로 옮긴 후 다시 한 번 정서를 하기위해 읽어보고는 깜짝 놀랄 때가 너무나 많아.
어떻게 내가 이런 말을 했을까 하는 거지.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반복해서 읽고 다시 한 번 내 마음에 되새기곤 해.
아들아!
나는 내가 한말을 내가 듣고자 너와의 대화를 하고 있다만 너는 도대체 얼마나 나의 말에서 얻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오늘도 나는 너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들이 언제든지 이러한 시각도 가질 수가 있고 저러한 시각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
그러한 가운데서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소신 있게 해나가고 있으며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하면서도 결과에 만족할 줄 아는 방법을 말하고자 했던 거야.
분명하게 내가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면서도 집착 없이 일을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거지.
네가 내말에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네 자신 안에 언제나 자리하고 있는 신의 축복이라는 것을 말하며 오늘은 여기에서 쉬어가자꾸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