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지난 시간 한국으로 돌아간 내게 또 하나의 화두가 있었는데 그것은 식당 문제였어.
이 식당문제는 내가 3년 전 중국으로 떠나오기 전부터 있었던 것인데 아직까지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더구나.
남들 눈에는 한심하게 보이겠지만 사실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하나의 과정을 겪는 중이라 생각해.
이와 같은 일을 그저 생기는 일에 불과하다여기면 별게 아닌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연극무대라고 볼 수 있어.
이것은 단순하게 식당만의 문제라기보다 어찌 보면 내가 세상을 살아나오는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마음상태가 속속들이 보이는 한편의 파노라마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아.
나뿐만 아니라 세상사람 모두의 심리가 이와 같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으니 지금부터 작정하고 해부해 보자꾸나.
이 같은 일이 생긴 근본적인 이유는 운영하는 방식에 있다 할 수 있는데 일반식당과는 달리 단체에서 운영을 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어.
일반 식당의 경우라면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이 일어 날수밖에 없는 원인제공을 우리스스로가 해놓은 셈이지.
일반적으로 경영자가 있고 종업원이 있으면 주종관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상명하복이 될 터이지만 이곳의 경우는 스승님의 명함을 걸고 하는지라 스승님이 주관하시고 일을 하시는 분들은 다 같은 스승님의 제자라는 것이 문제가 된 거야.참으로 쉬운 일인 것 같지만 엄청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어.
함께 일을 하자면 일의 성격상 지시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밑에서 실무를 봐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할 텐데 누구는 지시를 받아야하고 누구는 지시만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것 하나 마찰이 안 되는 일이 없는 거야.
이분들 사이에 내가 잠시 끼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서울에 머무는 동안 잘 곳이 마땅치가 않아서였는데 식당을 맡고 있는 책임자 동수가 이층의 사무실에서 지내도 좋다고 허락을 했기 때문이었지.
며칠을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책임자 동수의 말도 들을 수 있었고 실무담당자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어.
먼저 실무자들의 불평을 듣게 되었는데 그들의 주장으로는 열악한 업무환경과 처우 문제들을 개선시켜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더구나.
인력이 모자라는데도 보충을 시켜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시작으로 터지기 시작한 그들의 불평은 인격문제까지 연결이 되었으며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지.
나 역시 몇 해 전 그곳에서 설거지 알바를 해보았는지라 식당일에 대해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는데 나 같은 경우는 그 같은 일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무척이나 큰 문제가 되는가 보았어.
내가 그곳에서 일을 할 때는 아르바이트로서 일당을 받기로 하고 들어갔기에 그저 내가 맡은바 일만 하면 된다고 여겼고 내 눈에 책임자 동수들의 문제가 눈에 뛰긴 했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문제일 뿐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느꼈거든.
또한 내가 그들의 하는 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가 그들로부터 멀어지면 된다고 생각했어.
구태여 그들과 토닥거리면서 함께 지낼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야.그날 실무자에게도 그러한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고 말았지.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처우개선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었지 내 생각처럼 그곳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었어.
절대로 자신들이 밀려날 수 없다는 생각이었는데 다 같은 스승님의 제자로서 왜 자신들만 불이익을 당하면서 식당을 그만두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인거야.
이렇게 실무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책임자 역할을 하는 동수는 또 다른 의견을 내놓더구나.
스스로가 생각할 때 나름대로 열심히 대우를 해주었으며 자신이 책임자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모든 경영상의 문제들은 자신의 소관이라는 거지.
자신의 역할이 책임자이고 다른 분들은 어디까지나 종업원으로서의 위치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것인데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는 문제였어.
그들의 얘기를 듣는 동안 이사람 말을 들어보면 이 말이 일리가 있고 저사람 말을 들어보면 저 사람의 말이 옳다는 것을 그때도 느끼고 있었지.
이사람 말을 들을 때면 저쪽편의 입장을 말하고 저사람 말을 들을 때면 이쪽편의 입장에서 말을 해서 중재를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더구나.
간혹 중간역할을 하는 사람이 나서게 되면 처음에는 중간역할을 하다가 차츰 그들의 문제 속으로 들어가서 결국 남의 일이 자신의 일이 되는 경우를 볼 수 있어.
내생각과 조금이라도 틀리게 되면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 쉬운데 이럴 경우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과는 마찰을 일으키거나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게 되는 거지.
이것이 상담자 역할을 하는 이가 가지고 있는 모순점이거든.
이 같은 일을 해결하기위해 단체의 책임자들이 많은 노력을 했지만 해결점을 못 찾았던 것이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어.
아들아!
식당문제가 오늘날 크게 불거지게 되기까지에는 식당의 역사가 밑바탕에 깔려 있으니 먼저 식당의 역사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 같아.
식당이 처음 오픈했을 무렵 한국의 채식식당이라 불리는 곳이 별로 없을 때였고 채식동호인의 숫자도 많지가 않았던 만큼 적자를 면치 못했어.
그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 만들어진 식당이라 많은 동수들의 피땀 어린 봉사의 힘으로 버티어 나가야만 했고 몇몇 동수들은 적잖은 돈을 손해 봐야만 했거든.
또한 일을 하시던 많은 분들은 월급도 못 받고 봉사를 해야만 했고 지하실에서 숙식을 해가며 수행과 일을 병행해야만 했던 거야.
그러던 것이 어느 날인가 방송에서 돼지 콜레라니 광우병이니 하는 사태들을 겪어나가면서 채식열풍이 불게 되자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발전을 하게 된 거지.
이렇게 어려움을 겪어 나온 식당이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것은 한마디로 장사가 제대로 되기 시작하고 부터인 것 같아.
앞서 고생을 할 때는 모두가 적자에 허덕이다보니 자신의 불만을 토로할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거든.
마치 우리네 세상살이처럼 똑같은 수순을 밟는다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내 부모 세대만 하더라도 한 달 월급이 몇 천원을 받은 예가 허다하고 멀리 갈 것도 없이 내가 처음 취직을 했을 때 숙식제공을 받는 조건으로 월3만원을 받았으니 알만 하지 않니.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시 되는 때였기에 누구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고 하루세끼 밥만 먹어도 좋았지.
그러다가 노동임금이 급격히 개선을 하게 되었는데 70년에 분신자살을 한 전태일이라는 젊은 청년하나가 자신을 희생시킴으로 인해서 획기적인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시키게 되었던 거야.
바로 이와 같은 수순을 우리단체의 식당 역시 밟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어.
책임경영을 하고 있는 분들이 처우개선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실무 팀의 바람이고 그것을 수용하기에 벅참이 있다 보니 조율 중에 일어나는 진통이라 보면 될 것 같아.
그런데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하는 방법이 너무 과격하다보니 마찰이 생기고 서로 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 거지.
어떤 분들은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세무서에다 고발을 하기까지 했는데 같은 단체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불만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고발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 같은데 그러한 일이 일어난 거야.
나 역시 예전에 이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지라 남 욕할 처지는 아니다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구나.
그러나 어쩌랴.
이것이 우리네 수준들인걸.
아들아!
아마 너는 나의 이 같은 말에 적잖게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구나.
어떻게 수행단체에서 그러한 일이 발생되는가 하고 말이야.하지만 절대 그렇게만 여겨서는 곤란해.
수행단체는 사회의 축소판일 뿐 더 이상 성역이 될 수 없거든.
어느 단체나 이러한 일들은 일어나기 마련인데 다들 쉬쉬하는 것뿐이야.
사람들은 대부분 이러한 일이 발생하게 되면 그 당장 그 일이 잘한 일인가 못한 일인가를 살펴보게 되지만 실상을 바라보게 되면 그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게 돼.
모두들 인식정도가 같지 않다보니 일어나는 지극히 당연한 일인거지.
한마디로 서로가 도구가 되어서 공부를 하는 중이다 이 말이거든.
절대로 인정을 할 수 없겠지만 그것이 그들 스스로가 처해있는 역할을 지키게 만들어주는 힘이라는 거야.
그들이 만약 이와 같은 인식을 하게 되면 그들은 그 자리에 머물지 못하거나 아니면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리면서 그 자리를 즐기게 돼.
아이들이 노는 양을 보면서 속으로 웃는 거지.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철없이 굴 때가 있었는데 하면서 말이야.
지금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내가 말한다면 아마도 엄청난 투쟁을 벌려야해.
그것이 바로 그들이 자신들안에 쌓아둔 업장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알고서 그곳으로부터 빠져나오려고 스스로 노력하기 전에는 절대 벗어날 수가 없어.
그래서 우리들이 수행을 하는 것이거든.
이 같은 일을 보지 못한다면 상담을 아무리 잘하거나 중계역할을 해도 소용이 없는 거야.지금 동수들은 센터내부에서 설왕설래 말들이 많아.
다들 자신의 잣대로 식당일을 보면서 누구는 이쪽 편에 또 다른 누구는 저쪽 편에서 갑론을박을 벌리고 있고 나와 뜻이 같지 않은 동수들을 적대시 하고 있어.
이 모든 것이 모두 깨닫지 못한 무지 탓이라고 봐야해.
아니, 깨달음으로 가기위한 몸부림이라 봐야겠지.
모르긴 해도 내가하는 이 말끝에 상당히 많은 반발들을 할 거야.
너는 잘 몰라서 그렇지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냐 하면서 구구절절이 자신의 당위성을 주장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분들 주장 속에서의 진실일 뿐이거든.
아들아!
이제는 너도 알지?
그들의 주장이 진실이라는 것을 말이야.
또한 상대편의 주장도 진실이라는 것도 안다고?
그래!
이제 너도 많이 성장하였구나.
바로 그런 거야.
이 말이 맞는 순간 저 말이 거짓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은 그 인식에서의 진실이고 저 말은 저 인식에서의 진실이 될 때 우리들에게는 분쟁보다는 타협이 있게 되는 거지.
내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었고 그들을 앞에 두고 삼자적인 시각으로 중재를 해보려했지만 점차 높아지는 그들의 언성에 내가 자리를 피하다시피 해버렸어.
더 이상 들어봐야 평행선만 유지할 뿐이라는 것을 많은 경험을 통해서 알았거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 직분에 만족을 하는 것만이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생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해.
요가에는 이런 말이 있어.
"최고의 존재와의 합일을 위해서는 어떠한 직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처해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대가없는 행위를 할 수 있을 때 완전한 신과의 합일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진정한 하심을 하라는 뜻으로도 받아들여 질 수 있는데 아직도 그러한 마음준비가 안된 이들에게 어울릴 수 있는 말이 아니야.
지금 이쪽이나 저쪽 편에 서서 편 가르기를 하거나 극심한 자기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미안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영적수준들이 해탈을 논하기는 멀었다고 볼 수 있어.
지난번에 말을 했지?아직 이러한 마음상태에 있는 분들은 시시비비를 스스로 못 벗어났다는 것을 본인들이 증명해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야.
말을 하다 보니 생각이 나는데 사실은 내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때도 이 비슷한 일을 겪었던 적이 있었어.
내가 행여나 중국식구들의 사심을 불러일으킬까 두려운 마음에 우리들 돈이 아니라 동수들의 돈으로 공장을 설립했다고 하였지.
다들 내가 큰돈이라도 있는 것처럼 여겨서 손을 벌리는 사저의 친척들이 없잖아 있었거든.
그러한 사람들을 차단시킬 목적으로 내 돈이 아니라 투자자들이 따로 있다고 했더니 이들이 나중에는 그 돈을 같이 쓰자는 거야.
어차피 네 돈도 아니지 않는가 하는 거였어.
너무나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혔었는데 내가 워낙 노발대발하며 욕을 해대자 다들 슬그머니 자신들 주장을 내려놓더구나.
그러나 이러한 일이 사저의 친척들만 저지른 게 아냐.
돈을 관리하기위해서 사저의 친척들을 못 미더워한 내가 중국동수를 경리로 취직을 시켰는데 이들 역시 오십보백보이긴 매한가지였어.
동수들이 투자를 했으니 엄밀하게 따지면 내가 공장 주인이라 할 수 없다는 거였지.
그래서 내가 아주 강하게 받아쳐 버렸어.
“당신들을 보고 투자를 해줄 한국동수들은 한명도 없다.
이 모든 것들은 나를 보고 동수들이 투자를 해준 것이며 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 이상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공장이나 다름없다.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들 그만두고 나가라.”
이렇게 강하게 몰아치고 나서야 다들 조용해질 수 있었어.
너는 이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평등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요?
왜 누구는 지시를 해야 하고 누구는 지시를 받아야합니까?
왜 누구는 왕이 돼야 하고 누구는 노예가 되어야하냔 말입니다.
그래!듣고 보니 네 말이 맞기도 하구나.
그렇지만 아들아!
우리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떻겠니?
모두가 왕이 돼 버리면 지금과 같은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또, 모두가 노예가 돼 버린다고 했을 때 과연 이세상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말이야.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 중에 있는 것은 맞아.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그러한 세상이 된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세상은 대혼란 속에 빠져들 것이 아니겠니?
빠르게 발전을 시켜 나간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 말이거든.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모든 것들이 평범해야하고 동등해야 한다고 가정하게 된다면 세상이 아주 잘 돌아갈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아.
지금 그와 같은 일을 잘 보여주는 사회가 있는데 바로 북한이라 할 수 있어.
이들의 일하는 모습을 언젠가 말을 했을 거야.
나무 한그루를 심는데도 나무를 중심으로 빙 둘러 서서 내가 한번 네가 한번 이렇게 한다고 하니 어떻게 일이 효율적이고 생산적일수가 있겠니.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사회가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복락을 누리게 만드는 유토피아 건설에 그 목적이 있는데 사실은 크나큰 오류라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던 거지.
그러나 아들아!
내가 생각하는 공산주의는 진정한 유토피아 건설이 맞는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이념은 그야말로 아주 좋은 거라고 생각해.
다만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의 사회민주주의 건설이 되려면 남들보다 더욱더 노력하고 남들을 위한 봉사의 정신과 하심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아무리 똑똑하고 진리로 무장한다하여도 남을 위한 봉사와 희생정신이 가미되지 않고서는 결코 성인의 인식을 가질 수 없으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해탈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 여겨져.
왜 우리들이 남들을 위해서 보시를 해야 하고 동물에게조차 사랑을 베풀어야할까?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분리의 개념을 뛰어넘게 해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거야.
남들조차 내 가족처럼 여길 수 있을 때 진정한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이런 사람은 가족처럼 여겨야 하지만 저러한 행동을 하는 이들은 아주 나쁜 인간에 불과해서 도울 필요조차 없다는 식의 계산을 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상의 가치관을 한 치도 못 벗은 사람의 인식이며 자신이 에고의 소리에 순응하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해야만 해.
내가 중국의 동수들에게 이공장이 내개인의 공장이라기보다 신이 주신 공장이라고 말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 모든 것이 신 아닌 것이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말이었지 그들의 생각처럼 신이 있고 숭배자가 따로 있는 인식에서 나온 소리는 아니었거든.
그러한 그들의 생각을 깨기 위해 그들에게 소리친 말은 이러했어.
"신이 내게 이 공장을 하도록 시키셨고 나를 이곳 책임자로 앉히셨습니다.
나에게 와서 월급을 받고 일을 하든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구하시오"
이처럼 나 역시 한국의 식당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구나.
자신이 맡은바 직무에 충실하고 하심을 하면서 일하거나 아니면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나라고 말이야.
수행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놓고서 그 책임조차 단체에 돌리는 것은 일반인들조차 하지 않을 행동임을 우리가 알아야만 하지 않겠니?
다른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니까 나도 거기에 따른 저러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논리상 틀리지는 않겠지만 인과의 고리를 끊겠다는 수행자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라고 여겨지고 신이 되신 스승님을 모시는 자들의 입을 통해 나올 말은 더더구나 아닌성싶어.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식당에 일을 하는 당사자들보다 옆에서 부추기고 있는 동수들이 더 나빠.
다들 자신들이 당사자들도 아니면서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입들을 함부로 놀리는데 참으로 그들이 최고의 스승을 모시고 있는 자들이 맞기나 한가 한심스럽기 그지없어.
자!
아들아!
어떠니?
내가 이렇게 말을 하니까 이제 그들 모두가 수행자들 같지도 않지?
그러나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지금 신랄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 또한 또 다른 편향된 시각일 뿐이란 것을 알아야해.
모든 일이 그저 일어나는 일은 없고 모든 이들이 부처임에 틀림이 없다고 본다면 어떻게 해석이 되어야할까?
그때도 지금의 나와 같이 다들 싸잡아서 비판하고 욕을 하게 될까?
아마도 그래서는 진정 그들을 진정한 부처로 볼 수가 없지 않을까 싶구나.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일을 통해 어떠한 교훈을 얻어야 하겠니?
그들 모두를 부처로 여겨야 한다고?
그렇긴 한데 진정 네가 그럴 수 있겠니?
억지로 그렇게 말을 해봐야 무슨 쓸데가 있겠니?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고?
그것은 말이야.
그들은 우리들에게 교육을 주기위해 힘들게 연극들을 하고 있는 부처님들이라 여겨야 하는 거야.
그들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그토록 열성적으로 싸움판을 벌리고 있는 것은 삼자들인 우리들이 그들을 통해서 배우기를 갈망하는 우리들 내면의 스승들이 시키는 대로 연극을 하는 거라 생각하는 거지.
내가 지금 너무나도 쉽게 말을 하고 있지만 참으로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거든.
이러한 생각을 늘 할 수 있으려면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해.
그러려면 수없이 반복되는 현장이 마련되어야 하고…….
그래서 내 눈앞에 놓인 문젯거리들은 사실은 신이 마련해준 축복의 자리가 되는 거지.
세세생생 쌓아둔 습관을 씻어내 주기위한 신의 안배가 되는 거야.
그렇지만 이러한 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기도 하는데 그러할 때는 스스로를 빨리 되돌아봐야해.
언제나 내가 말을 하지만 나 자신이 어떤 일을 맞이하게 될 때 나도 모르게 이원성의 테두리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고 있다면 얼른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거지.
아!
나도 모르게 연극에 휘말리고 있구나!
그리고는 얼른 이원성을 벗어나서 삼자적인 관조자의 위치를 고수하거나 그렇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휘말리더라도 항상 내주장이 반드시 관철돼야만 한다는 극한 상태에는 머물지 않아야 하는 거야.
이러한 생각에 오래 머물게 되면 너의 인식이 사정없이 바닥을 헤매게 되거든.
아마도 네 두뇌는 말을 할 거야.
"내가 이렇게 주장을 해야 그들을 교육시킬 수 있고 발전을 시켜줄 수 있어"
만약 네가 이 같은 너의 두뇌의 속삭임을 듣는다 하더라도 틀리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거기에 따른 결과물만큼은 반드시 너에게로 돌아 올 거라는 것을 명심하기바래.
그것이 좋은 것이든 혹은 나쁜 것이든…….
아들아!
이렇게 놓고 본다면 그들은 어디까지나 지금 아주 훌륭한 배역을 소화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어.
그들 내면의 스승은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는 거지.
지금 보이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진보하기 바란다하고 말이야.만약 네가 이제 더 이상 저들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조용히 그 무대에서 내려오기 바라.
더 이상 너는 그곳에서의 배역이 주어지지 않았거든.
그러나 네가 조용한 가운데 그들과 섞여있고 싶으면 아주 조용하게 그들 주위에 머물러도 좋아.
어떠한 시시비비에도 관여하지 않고 머문다면 그들은 네가 있는 줄도 모를 테니까 말이야.
오늘 우리들은 그분들을 통해서 또 한 번의 인식변화를 가져보았으니 다음번에는 너와의 대화를 마무리 짓기 위한 힘찬 발걸음을 옮겨보자꾸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