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목사

요한복음11.

배가번드 2022. 4. 2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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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하늘이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만큼 피부에 와 닿는 공기도 차가워졌지요.

이제는 창문을 닫지 않고는 지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가을정령이 반가운 한편으로 영적인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태양이 지구와 조금만 멀어져도 날씨가 차가워지는 것 같이 우리네 인생도 하나님을 멀리하면 춥고 외로워집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며 편재하시는 하나님이 육신(인자)의 몸을 통해 현신하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은 늘 외롭고 추운 나날을 보내게 될 거라는 말입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여러분은 다행스럽게도 자신 안에 성령이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여러분 안에, 삼라만상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각자의 내면에 자리한 성령을 일깨울 수 있게 도와주실 것을 기원하며 오늘의 강해를 시작하겠습니다.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요6:22)

The day following, when the people which stood on the other side of the sea saw that there was none other boat there, save that one whereinto his disciples were entered, and that Jesus went not with his disciples into the boat, but that his disciples were gone away alone;

 

22절은 번역에 약간의 문제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수정을 위해 우선적으로 직역을 해보도록 하지요.

다음날(The day following)사람들이 바다건너편에서 지켜보고 서있을 때(when the people which stood on the other side of the sea saw) 제자들이 탄 배를 제외하고는 다른 배가 없었다고 했습니다.(that there was none other boat there, save that one whereinto his disciples were entered,)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지 않았으며 제자들만이 갔다고 합니다.(and that Jesus went not with his disciples into the boat, but that his disciples were gone away alone)

이렇게 직역하여 분석해보니 지난시간에 있었던 일의 연장선에서 이 내용이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번역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이렇게 기록한 이유를 알아야한다는 말이며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었다는 것이 비유라는 사실을 22절에서 밝히고 있다는 거지요.

앞 시간에 나 홀로목사가 말했듯이 예수가 물위를 걸어온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성령을 맞이한 거라는 말입니다.

바다위에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외에는 다른 배가 없었으며 예수가 타고 있지 않았으니 당연히 성령을 영접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했지요.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요6:23)

(Howbeit there came other boats from Tiberias nigh unto the place where they did eat bread, after that the Lord had given thanks:)

 

참 재미있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디베랴의 뜻이 “좋은 관찰” 이라했으니 예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제자들을 이렇게 비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the Lord=성령=하나님) 말씀의 떡을 나누어주던 곳에 가까이 왔다는 (nigh unto the place)것은 성령을 거의(아직은 완전치 않음) 깨달았다는 거지요.

여기에서 배들이라고(other boats) 복수로 표기한 것은 제자 각 개인을 배로 봤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영접한 배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사람들 모두는 배와 같습니다.

넓은 바다와 같은 세상을 항해하는 중이지요.

이어지는 내용에서 이런 사실을 요한은 밝히고 있습니다.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요6:24)

When the people therefore saw that Jesus was not there, neither his disciples, they also took shipping, and came to Capernaum, seeking for Jesus.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요6:25)

And when they had found him on the other side of the sea, they said unto him, Rabbi, when camest thou hither?

 

보다시피 사람들이 그 결과(제자들이 선택받은 결과) 예수와 제자들이 없음을 보았다고 했지요.(the people therefore saw that Jesus was not there, neither his disciples)

이 내용을 액면그대로 해석하면 갑자기 사라진 것이 되겠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성령을 깨달은 이와 그렇지 못한 이의 차이를 말해주는 겁니다.

사람들이 성령을 볼 수 없었다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 역시 배를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갔다고 했습니다.(24절)

영생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는 것을 이렇게 비유한 것이며 성령(예수)을 영접하여(찾으러) 위로(가버나움)받기위해 갔다는 말입니다.

결국 그들은 항해 끝에(바다건너편에서) 예수(랍비)님을 만났으며 언제 오셨는지를 묻게 되었습니다.(25절)

여기에서 언제 오셨냐고 묻는 것은 어느새 인가 성령이 나타나게 된 까닭을 묻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신거지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

Jesus answered them and said,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Ye seek me, not because ye saw the miracles, but because ye did eat of the loaves, and were filled.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성령)을 찾게 된(만나게 된) 까닭이 기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말씀의 떡을 먹고 충족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Ye seek me, not because ye saw the miracles, but because ye did eat of the loaves, and were filled)

결국 지난번 오병이어의 기적은 비유의 말이었을 뿐 물리적인 기적이 아니었다는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6:27)

Labour not for the meat which perisheth, but for that meat which endureth unto everlasting life, which the Son of man shall give unto you: for him hath God the Father sealed.

물질적인 것(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기보다 영생하도록 만드는 양식(말씀의 떡)을 위해 노력하라고 했습니다.

물질적인 것들은 소멸하지만(perisheth) 말씀의 떡은 영생까지 지속된다는 말이지요.(endureth unto everlasting life)

바로 예수님(인자)께서 이것을 주신다는 말이며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 인 치신(봉인한)자라는 말입니다.(him hath God the Father sealed)

이러한 예수님 말씀에 제자들은 다음과 같이 반응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요6:2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9)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them, This is the work of God, that ye believe on him whom he hath sent.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요6:30)

They said therefore unto him, What sign shewest thou then, that we may see, and believe thee? what dost thou work?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요6:31)

 

28절은 제자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인 치심을 받고 싶다는 말입니다.

자신들도 인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해주고 싶다는 거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합니다.( believe on him whom he hath sent)(29절)

하나님의 일은 사람들마다 영생을 얻게 만드는 것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겁니다.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 됨을 뜻하고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은 예수(성령)와 하나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또한 예수님(성령)과 하나가 되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완전히 믿을 때라는 사실을 볼 때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이 같은 예수님말씀에 대해 제자들은 곧바로 표적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What sign shewest thou then)

믿으려면 근거가 될 만한 사인이 나타나야하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당신이 한일 중에 보고 믿을 만한 일을 말해보라는 거지요.(what dost thou work)(30절)

그러면서 성경에 기록된 만나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들의 조상은 모세가 준 만나를 먹었는데 당신도 이정도의 기적을 행할 수 있어야하지 않겠냐고 물었지요.

이 같은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요6:32)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6:33)

 

32절을 보면 하늘로부터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고 했으며 참 떡을 주신 분은 내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3절에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알기로 떡은 만나를 가리키는 것이며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백성을 애급에서 끌고나와 광야에서 주린 백성들을 먹이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 끝에 나누어 준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여기에는 뭔가 깊은 뜻이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출애굽기에 나와 있는 관련내용을 보고난 후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지요.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16:3)

And the children of Israel said unto them, Would to God we had died by the hand of the LORD in the land of Egypt, when we sat by the flesh pots, and when we did eat bread to the full; for ye have brought us forth into this wilderness, to kill this whole assembly with hunger.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16;4)

Then said the LORD unto Moses, Behold, I will rain bread from heaven for you; and the people shall go out and gather a certain rate every day, that I may prove them, whether they will walk in my law, or no.

모세가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출16:8)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출16:13)

And it came to pass, that at even the quails came up, and covered the camp: and in the morning the dew lay round about the host.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출16:14)

And when the dew that lay was gone up, behold, upon the face of the wilderness there lay a small round thing, as small as the hoar frost on the ground.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출16:15)

 

구약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성경은 수행자들에게 있어서는 보물창고와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비유를 심하게 해놓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깊은 뜻을 볼 수가 없게 되어있지요.

그래서 예수께서는 구약의 내용을 제자들에게만 특별하게 해석해 주셨던 겁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예수께서 함직한 해석을 해보겠습니다.

3절에서의 그들은 믿음이 약한 이스라엘 백성(the children of Israel)을 가리킵니다.

영적으로 걸음마 단계에 있는, 구도의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 초보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자신들이 애급 땅에 있을 때 배불리 먹고 지냈는데 광야로 끌려나와 다 죽게 생겼다고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겁니다.

애급은 이집트를 가리키며 뜻은“검은 땅”으로 성령을 깨닫지 못한 불모의 땅, 즉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육신에 속한 삶을 살며(by the flesh pots) 마음껏 먹고 살다가(we did eat bread to the full) 신의 섭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죽을 것인데(we had died by the hand of the LORD in the land of Egypt)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모세)에 이끌려 나왔다가 물질적 빈곤에 처해졌음을 불평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의 입을 통해 양식을 비처럼 내려주겠다고 하며 일정량만큼 매일같이 거두라고 합니다.(4절)

그런데 양식을 비처럼 내린다는 것은 엄청 많은 량의 양식을 일시에 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비가 매일같이 오는 것이 아니라 절기에 맞게 적절한 시기에 온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시기에 맞춰서 양식을 주신다는 거지요.

이 말씀은 매일같이 적당량의 양식을 거두게 될 거라는(the people shall go out and gather a certain rate every day) 언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렇게 하신(적당한 량만 주신) 이유는 그들이(구도자) 하나님 율법을 준수하는가를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욕심내지 않고 계율을 지키며 여호와가 우리 삶을 보살핀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8절에서 여호와께서 아침저녁으로 먹을 것을 주신다고 했던 겁니다.

구도자의 매일을 하나님이 보살핀다는 뜻으로 먹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해가 진후 저녁은 물질적 축복을 가리키며 해가 뜨는 아침은 영적인 가르침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13절과 같은 말씀을 남겼는데 빛(성령)이 드러나지 않는 밤에는 메추라기고기(물질적 축복)가 진(육신)을 덮고(covered the camp) 해가 드러나는 아침에는 이슬(순수함, 성령)이 호스트 주변을 둘러싼다 했습니다.(in the morning the dew lay round about the host)

밤에는 진(camp)이라 하고 저녁에는 호스트(host)라 한 것은 물질에 속한 삶(밤)의 주인은 육신이기에 진이라 했고 영에 속한 삶은 해가 드러나는 아침에 해당함으로 진정한 주인(성령)이라는 뜻에서 호스트라는 단어를 선택한 겁니다.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아침저녁으로 일어나는 육과영의 교차되는 삶을 이렇게 표현한 거지요.

그리고 14절에 이슬이 마른 후에(the dew that lay was gone up) 라고 한 것은 영적인 축복이 땅(육신)에 스며든 후, 즉 영적축복을 받아들인 후를 가리킵니다.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하얀 서리같이 생긴 것은 믿음이 없던 마음에 작은 믿음이 생겨난 것을 비유한 것으로 수행자가 얻어야할 진정한 음식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사람들이 먹어야할 음식이기에 모세가 15절과 같이 말한 겁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과 내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얻어야할 하나님의 떡입니다.

이제 왜 예수께서 요한복음 33절과 같이 말씀하셨는지 아셨으리라 믿으며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요6: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요6:36)

But I said unto you, That ye also have seen me, and believe not.

 

예수님 말씀대로 생명의 떡이라면 항상 주실 것을 제자들이 요청하고 있습니다.(34절)

그러자 예수께서는 자신이 생명의 떡이며 자신에게 오는 자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거라 말씀하셨는데 이는 곧 성령을 가리킵니다.(35절)

영생을 얻었다는 말은 성령이 드러났다는 말이고 성령이 드러났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스스로가 성령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밝힌 까닭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면서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제자들이 예수의 육신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성령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입니다.(36절)

물질(육신)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하며 가시적 인식의 범주를 넘어 거시적 세계를 볼 수 없다는 거지요.

그만큼 성령을 깨닫기(깨어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성령을 드러내는 일이 힘들다는 점을 예수께서 아시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위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6:37)

All that the Father giveth me shall come to me; and him that cometh to me I will in no wise cast out.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예수께 데려다 준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이끌림 현상을 비유한 겁니다.

진정으로 구도의 길을 걷는 이는 하나님이 계시는 영생의 하늘을 목표로 삼는지라 당연히 성령이 드러난 사람에게 끌리게 되어있지요.

이런 이유로 예수께서는 결코 내어 쫓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방향을 틀어 내몰지 않을 거라 기록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I will in no wise cast out)

이 구절에 wise는 현명하다는 뜻이 아니라 “방향을 틀다, 진로를 바꾸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구도자가 성령을 드러내겠다는 목적을 바꾸지 않는 한 예수님(성령)이 방향을 틀지는 않는다는 뜻이지요.

좀 더 면밀하게 말하자면 구도자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 이상 성령은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태초부터 오늘날까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성령입니다.

육신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존재이지요.

그런 까닭으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요6:38)

For I came down from heaven, not to do mine own will, but the will of him that sent me.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9)

And this is the Father's will which hath sent me, that of all which he hath given me I should lose nothing, but should raise it up again at the last day.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예수(성령)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은(I came down from heaven )예수(육신)의 뜻을 행하려 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38절)(not to do mine own will)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한 것이라 함은 성령을 깨닫게 만드는 일로서 예수님이 해야 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내게 주신자라(he hath given me) 한 것은 성령에 이끌려온 제자들을 가리키며 마지막 날에 살린다는 것은(I will raise him up at the last day) 육신이 멸망하는(육신의 죽음) 날에 영혼이 부활한다는 뜻입니다.(39절)

그리고 40절에 아버지의 뜻이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 한 것은 하나님의 실체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고 편재하시는 까닭에 반드시 사람의 육신(인자)을 통해서만 현신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즉, 예수님과 같이 성령을 깨달은(드러낸) 사람만이 영생을 얻게 해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고 한 겁니다.

마지막부분에서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한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성령을 드러낸 이(예수)는, 곧 하나님과 하나 되었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뜻이지요.

이것은 예수의 육신이 말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내면의 성령이 예수님 입을 통해 말씀해 주셨다는 뜻에서 이렇게 말해놓은 겁니다.

예수를 믿는 각개인마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마지막 때) 성령(예수)이 나타나 데리고(부활) 갈 거라는 언약의 말씀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왜 예수를 믿어야 천국 간다고 말하는지 아셨겠지요.

예수를 육신으로만 인식하면 재림을 기다릴 것이고 성령으로 인식하면 멸망의 날에 구원을 받을 거라는 말을 끝으로 오늘강해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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