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앙망(仰望)하는 구도자의 여정에 길잡이를 자청(自請)하는 나 홀로목사의 강해시간에 오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약간은 움츠려드는 것 같지만 풍요로움이 주어지는 계절인 만큼 은총이 가득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가을맞이를 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에서 한번쯤은 행복한 순간과 기쁨을 맛보았을 겁니다.
또한 한번쯤은 극한 슬픔과 좌절도 경험했겠지요.
대부분의 인생은 이렇게 교차되는 즐거움과 괴로움의 연속 속에서 마침의 순간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러한 우리네 인생과 가을에 결실을 맺는 각종 곡식과 과일들의 한해살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한 알의 과일을 생산해내기 위해 과일나무는 한 해 동안 온갖 풍상을 겪어 내야만 했습니다.
결실이 신의축복이라 여길 때 과일나무가 겪어야만 했던 고난과 시련의 시간들은 축복을 얻기 위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인간 삶의 궁극의 목표인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들었던 순간조차 영생을 얻기 위한 축복의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언제나 감사의 기도를 해야 하지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주어 진다해도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으며 영생을 얻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안배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자각한다면 오늘 여러분은 성령을 만나 영생을 얻을 겁니다.
이모든 것이 여러분의 믿음과 감사의 기도에 달렸다는 점을 말하며 6장의 마지막시간을 시작합니다.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요6:41)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요6:42)
예수께서 자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이라 하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고 합니다.(41절)
예수가 어린 시절부터 한마을에서 살았기에 부모를 모두 안다고 하며 요셉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는데 어떻게 하늘로부터 왔다하느냐고 했지요.(42절)
마을사람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님 말씀을 육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물질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답게 영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요6:43)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6:44)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6:45)
43절에 수군거리지 말라는 것은 육적인 인식으로 말해봐야 쓸데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44절에 아버지께서 이끄신다는 것은 성령의 깨어남을 뜻합니다.
내면의 성령이 깨어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성령이 드러난 예수님 같은 사람에게로 끌리게 된다는 거지요.
아직 육신의 습관에 얽매여 있는지라 완전치는 않지만 예수와 같이 성령이 드러난 분과 함께 믿음의 길을 걷노라면 육신을 버리는 날(마지막 날) 성령이 되살아난다는 뜻입니다.
45절은 구약을 인용한 것으로 워낙 중요한 내용인지라 이사야서를 보고 난후 돌아오겠습니다.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이54:11)
O thou afflicted, tossed with tempest, and not comforted, behold, I will lay thy stones with fair colours, and lay thy foundations with sapphires.
홍보석으로 네 성첩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이54:12)
And I will make thy windows of agates, and thy gates of carbuncles, and all thy borders of pleasant stones.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이54:13)
And all thy children shall be taught of the LORD; and great shall be the peace of thy children.
11절 앞부분은 별문제가 없으나 뒷부분의 화려한 채색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직역을 해보면 공정의 색을(fair colours) 너의 돌에 놓는다가(lay thy stones )되는데 돌 하나하나가 믿음의 기초이며 그사이사이에 하나님의 공정이 가미되어 있다는 뜻이지요.
청옥으로 기초를 쌓는다는 것은 변치 않는 믿음을 가리키며 육신은 성전이라 했으니 성전의 기초는 당연히 믿음입니다.
그래서 12절에 마노로 창문을 만들고(make thy windows of agates) 석류석으로 성문을 만든다고(thy gates of carbuncles) 한 거지요.
이것은 성전이 지어지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구도자의 몸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여 거룩하고 고귀해져가는 과정을 말해주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지경을 보석으로 꾸민다는 부분은 잘못된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pleasant stones를 보석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내용이 비유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pleasant stones는 기쁨이라는 보석이나 즐거움의 돌이라고 해석해야 마땅합니다.
구도자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공고해지게 되면(성전의 완성) 하나님의 은총으로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성전이 완성되고 나면 자연스럽게 제자를 받아들이게 됨으로 자녀들(제자)에게 가르침을 주게 됩니다.
이러한 일을 여호와의 교육을 받는다고(thy children shall be taught of the LORD) 표현했으며 크게 평강할 것이라 했습니다.(great shall be the peace of thy children)(13절)
이러한 이사야서 내용을 예수께서 알았기 때문에 45절과 같이 말씀하셨던 겁니다.
이 내용을 제대로 안다면 예수를 알아볼 수밖에 없다는 말인 동시에 성령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깨어나야) 예수께로 올 거라는 뜻입니다.
이런 말씀과 함께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줍니다.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6:46)
Not that any man hath seen the Father, save he which is of God, he hath seen the Father.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6:47)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요6:48)
이 내용을 액면그대로 해석하면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Not that any man hath seen the Father) 오직 하나님의 사람만이(save he which is of God) 아버지를 보았다 입니다.(he hath seen the Father)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람이란 육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가리킵니다.
영이신 하나님(성령)과 하나 된 자만이 아버지(하나님, 성령)를 보았다는 뜻이지요.
이러한 까닭에 예수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선포한 겁니다.(47절)
예수님(성령)을 완전히 믿으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며 곧 영생을 얻게 되기에 예수는 스스로를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48절)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오해할까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더하셨지요.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요6:49)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6:50)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6:51)
I am the living bread which came down from heaven: if any man eat of this bread, he shall live for ever: and the bread that I will give is my flesh, which I will give for the life of the world.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만나를 구약속의 모세가 주었던 떡으로 알고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만나의 제대로 된 의미를 가르쳐주려고 한 겁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육적이고 물질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말씀하셨으며 세상의 생명을 위한 살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가 말한 살은(my flesh) 육신이 아니라 성령을 비유한 것으로 삼라만상 안에 깃든 하나님의 생명력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친절하게도 성령에 대해 설명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형편없었습니다.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요6:5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
Then Jesus said unto them,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Except ye eat the flesh of the Son of man, and drink his blood, ye have no life in you.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4)
Whoso eateth my flesh, and drinketh my blood, hath eternal life; and I will raise him up at the last day.
52절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을 육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신의 살을 사람들에게 먹이겠냐는 거지요.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에 예수는 인자의 살과 피를 먹지 않고는 생명이 없다고 말해줍니다.
이 말씀 역시 영적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것이 분명한지라 먼저 인자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인자는 말 그대로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로서 일반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이신 성령이 우리 몸 안에 거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드러난 이는 이러한 일을 알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통해서만 역사하신다는 사실까지 압니다.
그래서 성령을 깨달은 예수를 인자라 칭하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예수께서 인자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다고 했던 겁니다.(ye have no life in you)(53절)
54절에 인자의 몸과 피를 취한 자는 영생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야합니다.
몸과 피는 영체와 생명을 뜻하며 먹는다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서 육신(성전)안에 하나님(성령)이 살고 있음을 믿고 구도의 길을 걷노라면 육신을 버리는 날 성령의 부활이 이루어진다는 뜻이지요.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몸과 피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5)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6:56)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6:57)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6:58)
This is that bread which came down from heaven: not as your fathers did eat manna, and are dead: he that eateth of this bread shall live for ever.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요6:59)
예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제대로 믿게 되면 성령(예수)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예수(성령)의 일부분이 된다는 뜻으로 예수 안에 거한다고 했으며 믿는 이의 마음 안에 성령이 되살아남으로 예수가(성령이) 그 안에 거한다고 한 겁니다.(55~56절)
57절은 하나님과 성령, 그리고 사람의 상관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삼라만상 안에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이신 성령이 예수님의 몸에 들어온 것을 보내셨다 표현했고 아버지로 인해 산다 했습니다.
우리(예수를 포함한 모든 사람)가 육신으로 살아가지만 실질적으로는 성령(영혼)이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와 같은 이치를 믿게 되면(예수를 먹게 되면) 그 사람 역시 성령으로 인해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나(예수)로 인해 살게 된다 한 겁니다.
58절은 참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떡은 예수의 몸이 아니라 성령을 가리키는 것인데 조상들이 먹고도 죽어버린 것과 다르다고 했습니다.(not as your fathers did eat manna, and are dead)
이 말인즉 그 옛날 이스라엘 조상들은 모세가 주었던 만나의 참된 뜻을 몰랐기에 죽었다는 거지요.(육신과 함께 영혼도 죽음)
하지만 예수가 주는 떡(말씀, 가르침, 성령)을 먹는 이들은 영생을 얻는다고 했는데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위내용의 마지막59절은 앞의 내용이 모두 비유의 가르침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나훔의 마을”이고 나훔의 뜻은 “위로, 동정”인데 성령을 깨닫지 못하고 믿음이 약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예수께서 가르침을 주셨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예수께서 친절하게 성령에 대해 가르침을 주셨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요6:60)
Many therefore of his disciples, when they had heard this, said, This is an hard saying; who can hear it?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근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요6:61)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요6:62)
What and if ye shall see the Son of man ascend up where he was before?
제자 중 다수의 (반응이)결과가(Many therefore of his disciples)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고 합니다.(This is an hard saying; who can hear it?)
그러자 이 사실을 안 예수께서 인자가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면 어쩔 것인가를 묻습니다.(61~62절)
이 말씀은 올라가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말이 아니라 올라가는 것을 봐야 믿겠냐는 뜻이지요.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봐야 믿을래?” 정도가 될 겁니다.
이런 나 홀로목사의 해석이 옳다는 것을 다음내용이 증명해줍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요6:64)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신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것은 우리 몸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힘은 영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물 안에 깃든 하나님의 품성을 가리키는 겁니다.
편재하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숨결이자 파워, 곧 성령이라 말할 수 있지요.
이러한 사실이 인자의 입을 통해 나올 때 그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면 곧바로 성령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예수의 말씀이 곧 영이고 생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63절)
하지만 64절을 보니 이렇게 귀중한 예수님말씀조차 제자들 가운데 믿지 않는 이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인지와 자기를 팔자가 누군지 예수께서 처음부터 아셨다고 합니다.
만약 이 내용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이 세상에는 예수처럼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은 한명도 없게 됩니다.
앞날을 모두 알지 못하면 성령과 하나 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니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도 이런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렇게 되면 성경은 거짓말을 기록한 책이 되며 예수님조차 거짓말쟁이가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고 따르면 성령을 깨닫고(하나님과 하나 됨) 영생을 얻는다는 말이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살아서 영생을 얻을 자도 있다 하셨으니 육신예수가 재림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이치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육신예수께서 성령의 입장에서 말씀하신 걸로 봐야합니다.
아직 성령이 드러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믿지 않는 자나 예수를 팔자 안에도 하나님의 품성인 성령이 담겨있다는 뜻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행위자의 내면에 있는 성령은 믿음이 있는지, 혹은 불신의 마음을 가지거나 예수를 파는 일을 하는지 안다고 한 겁니다.
이렇게 해석을 해야만 다음내용이 이해가됩니다.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요6:65)
And he said, Therefore said I unto you, that no man can come unto me, except it were given unto him of my Father.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6:66)
From that time many of his disciples went back, and walked no more with him.
성령이 모두에게 담겨있기에 성령(아버지)이 이끌어주어야(허락해야) 예수께로 오게 된다는 겁니다.(65절)
각자의 내면에서 성령이 어느 정도 깨어나야 예수를 알아보고 올 거라는 뜻이지요.
영어로 직역해보면 내 아버지가(of my Father) 그것을 준 사람을 제외하고(except it were given unto him) 나에게 올 자가 없다 이며(no man can come unto me) 스스로의 내재한 성령이 깨어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다고 표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뜻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예수 곁을 떠나가고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했던 겁니다.
그들로서는 자신 안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인정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약했던 이런 제자들과는 달리 굳건한 믿음을 가진 이들도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요6:67)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6:68)
Then Simon Peter answered him, Lord, to whom shall we go? thou hast the words of eternal life.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요6:69)
And we believe and are sure that thou art that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열두제자란 하나님과 연합한 제자(3×4=12)를 뜻하며 성령이 어느 정도 드러난 제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도 가려냐는 예수의 물음에 당신께서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데(thou hast the words of eternal life) 누구에게 가겠냐고 되물었던 겁니다.(Lord, to whom shall we go?)(67~68절)
또한 열두제자(우리)들은 예수(주)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the living God), 그리스도인줄 믿고 확신한다 말했습니다.(we believe and are sure that thou art that Christ)(69절)
성령이 드러난 사람들답게 예수님이 살아 숨 쉬는(역사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제자들의 믿음에 응답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요6:70)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6:71)
He spake of Judas Iscariot the son of Simon: for he it was that should betray him, being one of the twelve.
예수께서 열둘을 선택했다 한 것은 성령이 드러났다는 말과 같으며 제자들의 내면(성전)에 자리한 하나님(성령이신 예수)이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너희 중에 하나는 마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연합한 열둘 중에 하나가 마귀라고 했고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라고 했으니 액면대로 보자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시몬의 뜻은 “응답하다” 인데 하나님과 연합된 무리 중에서도 응답을 받는 이가 가룟유다이지요.
그런데 마귀라고 했으니 보통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는 아주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요한복음이 끝나기 전 여기에 대한 답을 말씀드리기로 하고 우선은 물음표를 찍어둔 체 6장을 마무리 짓도록 하지요.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유의하시고 다음시간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기를 기원하며 작별을 고합니다.
손가락도 내 몸이요
발가락도 내 몸인데
팔다리도 내 몸이 아닐 손가.
눈, 코, 입, 귀 다른 위치에 달려있어도
얼굴에 달려있기는 마찬가지,
뒤통수도 머리가 아닐 손가.
지체(肢體)에 따라
명칭을 달리해도
내 몸임에는 틀림없을 터,
모두가 나에게 속한 나의 부분이로세.
성령도 이와 같이
만물 속에
천백억 화신(化身)으로 나투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