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직은 여름의 열기가 남아있지만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찬바람은 어느새 가을의 문턱을 넘고 있지요.
결실의 계절답게 시장에는 햇과일이 넘쳐나고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모처럼 사람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명절이라 가족들과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나 홀로목사는 지난주에 지인들과 함께 추석모임을 가졌습니다.
명절에는 다들 바쁘기 마련인지라 당겨서 모임을 갖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무리 우리가 구도의 길을 걷는다 할지라도 가족을 등한시 할 수는 없으며 멀리해서도 안 됩니다.
구도의 목적이 영생에 있다 할지라도 가족들과 등을 진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속성이 사랑인데 가족과 등을 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사랑의 확장을 위해 구도의 길을 걷는 것인데 가족조차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을 겁니다.
물론 성경에는 가족보다 성령을 더욱 사랑하는 자라야 하나님 제자 될 자격이 있다는 말도 있지만 그 말씀은 어디까지나 육신보다 영을 더욱 사랑하라는 가르침이지요.
가족의 내면에도 성령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배워야할 것은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이 사랑이라 했으니 과연 그러한지 성경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요18:1)
When Jesus had spoken these words, he went forth with his disciples over the brook Cedron, where was a garden, into the which he entered, and his disciples.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요18:2)
And Judas also, which betrayed him, knew the place: for Jesus ofttimes resorted thither with his disciples.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요18:3)
Judas then, having received a band of men and officers from the chief priests and Pharisees, cometh thither with lanterns and torches and weapons.
17장과는 달리 장면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 끝나고 곧바로 기드론 시내 저편의 동산(겟세마네동산)에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다가 사람들을 이끌고 왔는데 무엇 때문일까요?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요18:4)
Jesus therefore, knowing all things that should come upon him, went forth, and said unto them, Whom seek ye?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요18:5)
They answered him, Jesus of Nazareth. Jesus saith unto them, I am he. And Judas also, which betrayed him, stood with them.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요18:6)
As soon then as he had said unto them, I am he, they went backward, and fell to the ground.
4절을 보니 예수께서 당할 일을 미리 알았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할지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만약 미래 일을 진정 예수께서 알았다고 한다면 성경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가 생긴 이래로 미래를 정확히 맞춘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어쩌다 예언자들이 남긴 말들도 상세히 들여다보면 이래저래 맞추어서 비슷하게 맞는 것일 뿐 정확하게 맞추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해서 미래가 정해져있을 경우에는 내가 가만히 있어도 어떤 일이 저절로 생겨야하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제인 것은 성경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과 하나 되게 만드는 책인데 미래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말이 됨으로 이래서는 성경을 믿기 어려운거지요.
예수님만이 아들일 수 있고 보통사람들은 하나님아들이나 하나 될 수 없다면 구태여 성경을 믿을 까닭이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내용은 요한이 우리에게 이 사건에 담긴 뜻이 따로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봐야합니다.
즉, 이 사건이 미리 계획된 것이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5절에 가롯유다가 함께 왔음을 말해놓은 겁니다.
유다가 함께 와서 물어볼 필요도 없었지만 물었다고 말해놓은 것은 뭔가 감춰진 비밀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절에서 예수께서 자신이라 말을 하자 모두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렸다 한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잡으러 온 사람이 물러가서 엎드릴 까닭이 없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역시 이러한 나 홀로목사의 말을 뒷받침해줍니다.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요18: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요18:8)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18:9)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요18:10)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18:11)
앞서 예수께서 내로라하자마자 물러가 땅에 엎드렸다 했는데 또다시 물어볼 이유도 없고 대답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7절)
이렇게 반복해서 올린 것 자체가 뭔가 담겨진 뜻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거지요.
그리고 8절과 9절을 보게 되면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잡혀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제자들을 다치지 않게 한 걸로 보이지만 처음부터 예수님만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10절을 보니 베드로가 검을 빼어 대제사장 종의 오른쪽 귀를 베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나무라며 하나님이 주신 잔을 마시겠노라 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11절)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는 이 장면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보았습니다.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마26:48)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마26: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마26:50)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마26:51)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26:52)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막14:44)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막14:45)
저희가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막14:46)
곁에 섰는 자 중에 한 사람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막14:47)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막14:48)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막14:49)
I was daily with you in the temple teaching, and ye took me not: but the scriptures must be fulfilled.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막14:50)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눅22:48)
좌우가 그 될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하고(눅22:49)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눅22:50)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눅22:51)
4복음서가 각각 특색 있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제외하고 나머지 복음서에는 유다가 입맞춤 하는 신호로 예수를 잡아가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요.
그리고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마태복음에는 베드로가 제사장 종의 귀를 자르자 예수께서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기록했으며 마가복음에는 교회에서 날마다 가르쳤는데 그때는 잡아가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에는 베드로가 잘라버린 귀를 예수께서 만져 낫게 하셨다고 기록했는데 다들 한가지씩은 틀립니다.
이렇게 틀리다는 것은 이 내용을 액면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는 겁니다.
특히 마가복음49절을 보면 교회에서 날마다 가르쳤는데 그때는 잡아가지 않고 그날 잡아가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유다가 구태여 입맞춤해서 신호를 해줄 이유가 없지요.
게다가 누가복음 51절에서는 잘라진 귀를 예수께서 만져서 낫게 했다 기록했는데 이는 더욱더 액면대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는 겁니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정도 기적은 쉽게 할 수 있다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 분들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대단하신 예수님인데 왜 지옥을 없애버리지 않고 내버려두는지요.
골치 아프게 지옥과 천국을 나누어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지 말고 온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버리면 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나 홀로목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예수님의 기적을 면밀히 살펴본 결과 물리적인 기적이 아니라 영적인 기적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가복음에서 잘린 귀를 낫게 해준 것은 이 내용을 액면대로 볼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는 겁니다.
따라서 이 내용에는 뭔가 숨겨진 일이 있습니다.
아직은 단정 짓기는 어려우니 좀 더 성경을 지켜보도록 하지요.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하속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요18:12)
Then the band and the captain and officers of the Jews took Jesus, and bound him,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요18:13)
And led him away to Annas first; for he was father in law to Caiaphas, which was the high priest that same year.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권고하던 자러라(요18:14)
Now Caiaphas was he, which gave counsel to the Jews, that it was expedient that one man should die for the people.
예수님을 붙잡아 온 것까지는 다른복음서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데 14절은 뭔가 이상합니다.
안나스의 사위인 대제사장 가야바가 한사람을 희생시켜 백성을 위한다고 하니 예수님을 희생시켜 뭔가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 내용을 보건데 사전에 이일에 대한 의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요.
그렇다면 다른 복음서에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마26:59)
Now the chief priests, and elders, and all the council, sought false witness against
Jesus, to put him to death;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마26:60)
But found none: yea, though many false witnesses came, yet found they none. At the last came two false witnesses,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마26:61)
And said, This fellow said, I am able to destroy the temple of God, and to build it in three days.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
하냐 하되(마26:62)
And the high priest arose, and said unto him, Answerest thou nothing? what is it
which these witness against thee?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마26:63)
But Jesus held his peace, And the high priest answered and said unto him, I adjure thee by the living God, that thou tell us whether thou be the Christ, the Son of God.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
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26:64)
"Yes, it is as you say," Jesus replied. "But I say to all of you: In the future you
will see the Son of Man sitting at the right hand of the Mighty One and coming on
the clouds of heaven."
마태복음을 보니 아주 이상합니다.
예수님을 잡아온 것은 어디까지나 죄가 있어서일 텐데 잡아놓고 죄목을 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61절을 보니 두 사람이 와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다시 지을 수 있다고 말했음을 증언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대제사장이 이러한 말이 죽을죄인지 예수께 묻고 있다는 겁니다.(62절)
이것은 죄인을 심문하는 것이 아니라 죄목을 두고 의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으로 보자면 63절에 예수께서 침묵하신 것은 그런 일은 죄목으로 합당하지 않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맞느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예수께서 대제사장이 말한 대로라고 했는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음과 동시에 그 말이 죄목으로 적당함을 내비치고 있는 겁니다.
또한 덧붙이시를 자신이 그리스도이고 하나님 아들이 맞지만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훗날 자신들의 영안이 열리게 되면(성령을 깨닫게 되면) 인자(성령)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음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했지요.
인자가 하늘구름을 타고 온다는 것은 성령의 실체를 말해놓은 것으로서 그리스도는 육신이 아니라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대제사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어디까지나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지요.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주러 올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물리적인 기적을 행사하여 독립을 쟁취하게 만드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한 잘못된 이스라엘백성들의 믿음을 고쳐주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신거지요.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뭔가 알 수 없는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는데 다시 요한복음으로 돌아가서 어떤 비밀이 있는지 좀 더 살펴 봐야할 것 같습니다.(나 홀로목사 마태복음28편 참조)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요18:15)
베드로는 문 밖에 섰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요18:16)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요18:17)
그 때가 추운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요18:18)
예수를 잡은 자들이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마26:57)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마26:58)
저희가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막14:53)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막14: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쌔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눅22:54)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눅22:54)
요한복음만 올려서는 이 장면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려운지라 나머지 복음서도 함께 올렸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복음서 모두 대제사장한테 곧바로 간걸로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요한복음서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에게 먼저 끌고 간걸로 기록되어있지요.(요한복음18장 13절)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면 대제사장 가야바가 행한 일이 어떤 성질의 것이었다는 것을 말하기위해 요한이 일부러 삽입시켜놓은 내용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예수님이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다는 것을 말하기위해 없는 장면을 만들어 놓았다는 거지요.(요한복음18장 14절)
또한 요한복음에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제자하나가 있었다고 했으며 그가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간 걸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제자 중에 대제사장과 통하는 이가 있었다는 점을 말해놓은 것은 서로 통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문지키는 여자를 등장시킨 것만 보더라도 요한이 복음서를 통해 뭔가 담긴 뜻을 알리려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겁니다.
건장한 남자를 시켜 문을 지키는 것이 일반적인 일인데 여성이 문을 지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또다시 요한복음으로 돌아가 어떤 이상한점이 더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요18:1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요18:20)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요18:21)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요18:2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요18:23)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요18:24)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장면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요한이 이 장면을 연출한 것은 어디까지나 예수께서 죄 없이 잡혀갔다는 점을 강조하기위해 서입니다.
그러면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요18:25)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요18:26)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요18:27)
베드로의 불 쬠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막14:67)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쌔(막14:68)
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막14:69)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막14:70)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막14:71)
닭이 곧 두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막14:72)
요한복음을 제외한 나머지 복음서는 모두가 비슷하게 기록하고 있음으로 마가복음만 올렸습니다.
보시다시피 내용이 조금 다르지요.
요한복음에는 문을 지키는 여자에게 한번 부인하고 두 번째는 같이 불을 쬐던 사람에게 부인했으며 세 번째는 귀를 잘린 사람의 일가인 사람에게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복음서에는 모두 주변에 있던 사람에게 부인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하기위해서 기록한 것일 뿐 정말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사복음서중에 유일하게 요한복음만이 다르게 기록한 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담긴 뜻을 헤아리라는 메시지를 심어놓은 겁니다.
아직도 나 홀로목사의 말을 믿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 사료(思料)되는바 다시성경에 집중하겠습니다.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요18:28)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요18:29)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18:30)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요18:31)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18:32)
That the saying of Jesus might be fulfilled, which he spake, signifying what death he should die.
여기에도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내용이 보입니다.
유월절잔치를 먹고자 관정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 것은 예수님이 희생양이 되려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겁니다.(28절)
다른 복음서에는 무조건 빌라도 앞에 끌고 간 것으로 기록되어있지만 유독 요한복음만이 예수님이 유월절을 위한 희생양이 되려한다는 점을 말해놓은 거지요.
32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정해놓았고 그러한 죽음에 이르게 만들기 위해 다들 노력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월절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유월절은 다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을 놓지 않으려는 이집트 바로 왕을 징계하기 위해 장자를 죽인 일에서 비롯된 겁니다.
이집트 땅의 모든 첫 태생은 모두 죽이겠지만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재앙을 피할 수 있게 하겠다는 여호와의 말씀을 지킨데 대한 기념행사를 유월절이라 부르지요.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액면대로의 내용이고 담긴 뜻은 다릅니다.
이집트의 뜻은 “검은 땅”으로 믿지 않는 이방인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부터 탈출하여 믿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출애굽입니다.
일단 믿음의 길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육신의 속성이 죽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심어진 첫 사람 아담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육신에 각인된 인간의 속성이 죽어야 믿음의 불꽃이 심어질수 있는 겁니다.
이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성령을 깨달은 사람의 힘이 필요하지요.
피는 곧 생명이고 성령과 같습니다.
성령을 드러낸 예수님 같은 분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것이 곧 피를 바르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행사 때 무교병을 먹는 것입니다.
무교병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담긴 뜻은 말씀을 비유한 겁니다.
부풀려지거나 첨가되지 않은 순수한 가르침을 무교병에 비유한 거지요.
하나님과 하나 된 순수한 영혼이 전하는 가르침이 무교병과 같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예수께서는 스스로가 희생양이 되려 했습니다.
시간관계상 대략의 유월절 유례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드렸으니 참고하시길 바라며 또다시 예수님이 잡혀가신 곳으로 돌아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겠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요18:3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요18:34)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요18:35)
Pilate answered, Am I a Jew? Thine own nation and the chief priests have delivered thee unto me: what hast thou done?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요18:37)
Pilate therefore said unto him, Art thou a king then? Jesus answered, Thou sayest that I am a king. To this end was I born, and for this cause came I into the world, that I should bear witness unto the truth. Every one that is of the truth heareth my voice.
빌라도가 예수더러 유대인의 왕이냐를 물었다는 것은 예수를 고발한 죄목이 뭐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 스스로가 유대인의 왕이라 떠들고 다녔다고 고발 한 거지요.(33절)
그래서 34절에 예수께서 누가 나를 유대인의 왕이라 말하는가를 물었던 것이며 빌라도는 유대사람들과 제사장이 넘겼다는 말을 하였는데 이렇게 질문과 대답형식으로 기록해놓은 것은 그들이 예수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 사실 때문에 고발한 사실을 밝히고자 한 겁니다.
그러면서 빌라도는 도대체 왜 그렇게 말했나를 묻고 있지요.(what hast thou done?)(35절)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이 왕이라고 한 것은 이세상의 왕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왕국에서 왕이라는 점을 말해줍니다.(36절)
예문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빌라도에게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 되었음을 설명해주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라도가 곧바로 예수님이 왕이 아니냐 말할 수 있었던 거지요.
발리도의 이 같은 말에 예수께서 자신이 왕이라 말하며 이 같은 결말을 위해 자신이 태어났고(To this end was I born) 세상에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결말이란 하나님과 하나 되어 하나님왕국의 왕이 되는 일을 가리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타고났고 하나님왕국에 올라 하나님과 하나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 진리이며 이 같은 진리를 증거 하러 자신이 세상에 왔노라 말씀하신 겁니다.
그래서 진리(하나님왕국)에 속한 자는 예수님 말씀을 알아듣는다 하신거지요.
다음 내용을 보면 나 홀로목사의 이 같은 해석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요18:38)
Pilate saith unto him, What is truth? And when he had said this, he went out again unto the Jews, and saith unto them, I find in him no fault at all.
진리가 무엇이냐 물었던 빌라도가 예수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이렇게 기록해놓은 것은 예수님과 빌라도가 개인적으로 진리에 대해 많은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음을 암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의도적으로 감춰진 진실을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게 길을 열어놓은 겁니다.
어찌되었건 빌라도는 취조결과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놓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사람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요18:39)
But ye have a custom, that I should release unto you one at the passover: will ye therefore that I release unto you the King of the Jews?
저희가 또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요18:40)
Then cried they all again, saying, Not this man, but Barabbas. Now Barabbas was a robber.
앞서 말씀드린 대로 유월절은 구도자가 이방의 마음으로부터 탈출하여 믿음의 길을 걷기시작한날을 기념하는 행사지요.
그래서 사람을 놓아주는 풍습이 생겨난 겁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어본 결과 죄가 없음을 깨달은 빌라도가 어떻게든 예수님을 풀어주고자 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가 강도를 놓아주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죽여야만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아직은 결말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고정된 일이 순서에 따라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정하여놓은 일을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시켜 완성시킨 사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사람을 희생시켜 전체 이스라엘사람들이 유익함을 얻는 일이라 했으니 과연 그 일이 무엇일지 다음시간을 기대하며 18장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봄바람에 언 땅이 녹아내리고
여름날 뜨거운 태양빛이 곡식을 영글게 만들 듯이
광야의 외마디 외침에 업장이 녹아내려
갇혀있던 성령이 꿈틀대기 시작하고
번뇌가 보리 되어 성령이 자라나더니
믿음의 나무가 되더라.
반석 같은 믿음은 가지가 되고 잎이 되어
뭇 생명들을 사랑으로 품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