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의 강해를 마친지도 벌써 10여일이 지난 것 같습니다.
해를 넘기지 않으려고 무리를 한 탓에 아직도 몸이 완전하게 낫지는 않고 있으며 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계속되던 작업이 갑자기 중단된 탓에 긴장이 풀려 몸살이 나기도 했고 냉증치료로 인해 침 몸살이 더해진데다가 위내시경 후유증까지 겹쳐 죽다 살아났지요.
하지만 어찌되었건 해를 넘기지 않고 마무리를 짓게 되었고 약속된 시간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육신은 성전이요 성전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약속시간을 어기지 않게 만들어 주셨으니 마음속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처음 시작을 알릴 때도 잠시 언급이 있었듯이 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없는 내용이 담겨있었는데 정말 놀라운 일이었지요.
가장 충격적인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 육신의 부활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되살아 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죽지 않았으며 담긴 뜻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누군가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 홀로목사의 요한복음강해를 읽어본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이 같은 일은 너무난 명백한 일입니다.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요19:39)
And there came also Nicodemus, which at the first came to Jesus by night, and brought a mixture of myrrh and aloes, about an hundred pound weight.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요19:40)
Then took they the body of Jesus, and wound it in linen clothes with the spices, as the manner of the Jews is to bury.
침향은 알로에를 가리키는 것으로 몰약과 함께 상처치료에 특효가 있는 약재입니다.
세마포로 상처를 쌌다는 것은 치료를 목적으로 한 것이지 시체를 보존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결국 십자가 사건은 하나의 연극이었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왜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런 연극을 해야만 했던 걸까를 생각해 봐야합니다.
사실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 예수께서는 미리 이런 연극을 예고한 적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마16:1)
The Pharisees also with the Sadducees came, and tempting desired him that he would shew them a sign from heaven.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마16:4)
A wicked and adulterous generation seeketh after a sign; and there shall no sign be given unto it, but the sign of the prophet Jonas. And he left them, and departed.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세상과 분리되었다 여기는 이들로서 영적인 길을 걷는 이들 대부분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사두개인들은 내세를 믿지 않으며 현실세계와 모세오경만을 믿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이들 모두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지라 예수를 시험하려 했던 거지요.
바리새인들처럼 영적인 세계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했으며 사두개인처럼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일만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적이 필요했던 겁니다.
바리새인들로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기적을 행사해보라는 것이었고 사두개인들은 천국복음을 말하려면 천국의 일을 나타내 보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같은 그들의 요구에 따라 예수께서는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했으니 오늘날의 우리들은 요나의 기적에 대해 알 필요가 있지요.
그래서 잠시 요나서를 보고 난후 돌아오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요1:17)
Now the LORD had prepared a great fish to swallow up Jonah. And Jonah was in the belly of the fish three days and three nights.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요2:1)
Then Jonah prayed unto the LORD his God out of the fish's belly,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요2:2)
And said, I cried by reason of mine affliction unto the LORD, and he heard me; out of the belly of hell cried I, and thou heardest my voice.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요2:10)
And the LORD spake unto the fish, and it vomited out Jonah upon the dry land.
요나서의 내용을 액면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밤낮을 지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이 내용은 비유의 가르침으로 세속 삶에 빠져 살았던 요나의 일탈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합니다.
요나서 2장 2절에 물고기 뱃속이 아니라 스올의 뱃속이라 한 것은 요나가 정말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줍니다.
스올의 뜻은 “무덤, 땅 밑 세계, 죽음의 상태” 등으로 사람이 죽어서 가는 음부(陰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요나가 영적으로 죽은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에 처한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것이며 그러한 상황에서조차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 응답을 받는다는 것이 요나서의 핵심이지요.
이렇게 기도를 한 끝에 요나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2장10절에 기록해놓았는데 바로 이러한 비유의 가르침을 예수께서 실천하겠다는 뜻으로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실에 입각(立脚)하여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사두개인들이나 바리새인들에게 주는 하나의 시험과도 같은 거라 보면 정확합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기적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가르침의 핵심을 얻지 못하게 되어 영생의 하늘에 도달할 수 없게 만드는 겁니다.
그렇지만 요나서와 같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주고자했던 가르침의 핵심을 파악하는 사람들은 영생의 하늘을 보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교회목회님들이 십자가에 자신의 죄를 못 박고 예수님이 되살아난 것과 같이 영적부활을 하라는 가르침은 그야말로 진리의 말씀이지요.
예수십자가의 부활이 뜻하는 바는 바로 이런 것이며 예수만이 기적을 일으킨 육신의 부활이 아니라는 점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이런 일을 깨닫지 못한다면 영원히 우상숭배자의 자리에서 내려서지 못하며 육신예수의 부활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런 일은 너무나 당연하고 쉬워서 마음이 순수한 사람들은 이 말을 듣는 즉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성령이 깨어난 분을 믿는 것만으로도 영적 부활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육신부활의 진실을 말한다 해서 뭐가 달라질 것이 있느냐를 말하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볼일은 아니지요.
언젠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예수의 후손들이 영국법정에서 재판을 벌인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부활을 하신 후 프랑스로 넘어가 많은 자손을 남겼고 그 후손되는 이가 영국법정에서 진실여부를 재판받게 된 겁니다.
결과는 예수님의 후손이 맞는다는 판결이 났으며 방청객으로 있던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옷을 찢고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도 중앙일보에서 이 뉴스를 보도했다가 한 달 만에 삭제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하지요.(예수에 대한 영국 법정의 확정 판결- 영국 BBC방송 - YouTube)
동영상 내용 중에 유대의 왕이 되려다가 반발에 의해 처형되기 직전 프랑스로 도망했다는 것은 성경과는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이지만 일부는 신빙성이 있습니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미리서부터 막은지라 더 이상 퍼져나가지는 않았지만 이일을 계기로 유럽사회와 미국에서는 기독교가 쇠퇴의 길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예수님의 탄생을 사람과 동일시 여기지 않고 신격화 시켰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믿음생활을 했으므로 자신이 그동안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진실이 드러나자 믿음의 뿌리가 흔들린 겁니다.
이런 일을 보더라도 나 홀로목사의 성경강해는 널리 알려져야만 합니다.
진정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을 안다면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프랑스로 피신해서 후손을 낳았다 해서 믿음이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사생아라 할지라도 내 믿음이 흔들일 이유가 없는 것이고 영생을 얻는데 하등 걸림돌이 되지 못하지요.
예수님은 단지 먼저 영생을 얻은 선지자 이었으며 우리에게 하나님과 하나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영적 스승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행적이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흔들 수 있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나 홀로 목사는 지난 10년간을 노력해왔던 것이며 마침내 요한복음을 통해 십자가 부활에 대한 진실을 밝혔습니다.
그동안 나 홀로목사와 함께 하신 분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내면에 예수님이 성령으로 자리했을 것이며 영적부활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그렇지만 영적부활이 내적으로 이루어졌다 해도 육신을 가진 이상 늘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되새겨야합니다.
그러므로 나 홀로목사의 성경강해는 요한복음으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마지막을 알리는 자리가 새로운 강해를 시작함을 알리는 자리인거지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심어놓은 영적부활의 가르침을 예수님 제자들은 실생활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적용했는지를 보는 것이야말로 영적부활이 이루어진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해 줄 거라 믿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영적부활이 이루어졌기를 바라며 앞으로의 여정에도 동참하여 세상 끝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왕국에 이르게 되길 기원하며 요한복음의 마지막을 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