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돈오점수(頓悟漸修).

배가번드 2022. 7. 5.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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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수행자들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삿된 욕망과 욕심을 버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학대했던 겁니다.

몸을 바위나 나무에 부딪혀 기며 몸부림을 쳤지요.

눈물겨운 노력이라 가상하긴 하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했던 이유는 에고가 없어지면 인간은 살 수 없다는 이치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들의 특징이 깨달음을 육신이 완벽해지는 것이라 오해한다는 거지요.

육신은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내면의 진아(眞我)가 드러난다는 이치를 몰랐기에 자신의 몸을 학대해가며 고생을 해야만 했던 겁니다.

이 또한 득도를 위한 과정이라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할 수는 있으나 그리 권장할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식의 차이라 할 수 있는데 깨달음을 증득(證得)이라 여기면 노력할 것이고 드러남이라 여기면 현실에 순응합니다.

사실 이두가지는 하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해야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다만 자신이 의식적으로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나 같은 경우를 보자면 27년 전 어느 날 드러남의 순간이 있었지만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습관에 물던 육신이 이런 상태를 인식하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도 있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훈련이 필요했다고도 볼 수 있으며 내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습관에 물던 육신을 인식시키는데 걸린 시간은 3년 정도 되었고 그 나머지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3년은 그야말로 치열한 고난의 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35년 가까이 쌓아놓은 업장을 씻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교도소를 일곱 번 가도 모자랄 죄를 내가 짓고 살았음을 자각하는 것조차 쉽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육신의 에고를 죽이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겁니다.

내면의 진아(眞我)가 드러났다면 육적인 인고의 시간은 필수입니다.

육조혜능이 14년 동안 사냥꾼들의 시중을 덜었다는 것은 이런 의미를 갖는다 하겠습니다.

육신을 인식시키는 과정과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한 교육의 시간이 필요했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도에서의 생활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13살에 인도로 건너간 예수는 육조혜능의 인고의 시간과 비슷한 기간 동안 동일한 과정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모세는 무려 40년의 세월을 광야를 떠돌며 완성을 향한 여정을 걸어야만 했지요.

이렇듯 구도자의 삶이란 진아의 드러남과 동시에 이세상과 결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것이며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며 사는 겁니다.

아마 많은 이들은 앞에 언급된 성현들처럼 특별한 일을 해야 성령이 드러난 것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어떤 단체나 종교를 만드는 교주가 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신도의 생활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각자(覺者)도 세상에는 흔합니다.

깨달음을 얻었다 해서 모두가 단체의 장의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너무나 보잘것없는 평신도 중에 성령이 드러난 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알려지는 역할보다는 알려진 분을 보필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입니다.

앞에서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묵묵히 뒷받침을 해주는 거지요.

너와 내가 남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 역시 이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나보다 더 잘하는 이가 있다면 그 즉시 그분을 보조하는 역할을 할 겁니다.

나는 늘 이렇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자신만 있으면 언제든지 자리를 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