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219)

배가번드 2022. 8. 1.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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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지난 시간 너무나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서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오늘은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잠시 만요.

이야기를 시작하시기전에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지금껏 당신은 늘 말씀하시길 전생이란 없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지난번에는 있다고 말씀하셨는지요?

 

내가 언제 없다고 하였느냐?

있다고 여기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여기면 없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너는 한쪽 귀만 열렸나보구나.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까?

어떻게 단정적으로 전생이 있다고 말씀 하셨나 하는 거지요.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전생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부족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정 전생이 없다고 말을 하려면 먼저 전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난후여야 하는데 전생이 있다는 인식조차 경험치 못해본 상태에서 말을 하기 때문이었다.

 

뭔가 이상한데요.

전생이 없다고 인식을 하면 그뿐이지 있다는 것을 알고난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니요.

잘못 말씀하신 것이 아닌지요?

 

결코 잘못 말하지 않았다.

전생이 없다는 인식이란 영혼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관이 되어있고 하나님이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이 되어있다.

이모두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말입니까?

 

이미 모두다 말해주었다.

 

아니 언제 말씀하셨습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말씀을 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참으로 딱하구나.

단어만 틀려도 다른 말처럼 인식하는 너에게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할꼬?

 

그러지 마시고 한 번 더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십시오.

당신께서도 말씀을 하셨듯이 반복된 학습이야말로 최선의 공부방법이라 말씀을 하셨지 않습니까?

 

어쩌면 너에게 유리한 말만 골라듣는구나.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그저 인간들은 반복된 일을 거듭하고 있다는 말을 했지…….

 

그 말이나 이 말이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괜히 시간낭비마시고 진도를 나가시지요.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다.

많은 이들의 확장된 인식의 장을 열어주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 인만큼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전생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살았던 기억이라고 해야 적당한 표현일 것 같은데 그것만 가지고는 전생을 완벽하게 설명했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전생이라는 것이 반드시 한사람이 한생을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야기 했듯이 죽음이란 전체와 하나가 되는 것을 이름이라 하였는데 이러한 경우는 전생이라는 말이 의미가 없어진다.

이것을 언젠가 바다(전체적인 영혼)에 컵의 물(개인의 영혼)이 흡수되는 것과 비교를 하였는데 다양한 컵의 물들이 각자의 삶속의 기억들을 가지고 바다에 잠겨 들었을 때 많은 기억들이 혼합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고 나서 전체와 하나가 되는 것보다 또다시 세상을 오기를 원할 경우 전생에 대한 기억을 많이 가지고 태어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럴 경우라 할지라도 전생을 완전하게 나타내 보인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탄생 할 경우 부모 유전자(입력된 정보)의 영향으로 전생의 기억들이 섞여버리기 때문이다.

 

아하!

맞아요.

언젠가 링 림포체를 만나러 갔을 때도 그랬어요.

그는 전생에 자신이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더라고요.

그저 20살 청년의 모습그대로였지요.

그러고 보니 이제는 확실하게 인식이 됩니다.

스승님께서 왜 자신이 예수님과 노자의 후신이라고 했는지 이제야 알겠군요.

제가 처음 입문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코스타리카 법문을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스승님은 예수가 높은 차원의 행성에서 스승이 되어있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최근에는 자신이 전생에 예수님이라 하시는 바람에 황당했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어요.

그뿐 아니라 왜 그렇게 많은 전생이 있는지, 깨닫게 되면 윤회는 없다고 했는데 세세생생 윤회를 했더란 말입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러한 의문도 동수들이 워낙 목소리들을 높여서 좋아라하기에 반론조차 펼치지 못했어요.

스승이 전생에 고귀한 신분이었다는 것이 제자들로서는 너무나 좋았던 거지요.

그런데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게 있습니다.

간혹 보면 전생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들도 있거든요.

언젠가 내가본 책 나는 전생에 라마승이었다.”에서 보면 그는 자신의 전생기억을 모두 다 기억 하였지요.

이 같은 일은 어찌된 영문인지요.

 

그것은 그들이 전체와 완전한 합일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육신으로 들어온 경우라 할 수 있다.

너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스트랄 몸체로 남의 육신 안에 들어간 것이다.

 

!

그러고 보니 맞는 것 같아요.

책에서도 말을 했지요.

자신이 일본 군인들에게 고문을 당하여 죽었을 때 영국에서 죽음을 맞이한 의사의 몸으로 들어갔다고 했지요.

만약 이러하다면 전생을 기억한다는 것은 완전한 합일이 되지 않은 상태, 즉 높지 않은 등급이라는 말이 되는군요.

 

글쎄다.

나에게는 등급이라는 말이 없으니 그러한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인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는 죽었다고 볼 수가 없으며 다시 태어났다고도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는 귀신이라고 봐야겠군요.

 

내가 귀신이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할 것이 분명한데 제대로 설명을 하자면 그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거나 뭔가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고 여겨서 세상에 남는 선택을 했다고 말해야한다.

만약 진정으로 그가 환생을 했다고 한다면 전생에 대한 기억을 할 수가 없어야 정상이라 할 수 있으며 우주 법칙에 위반되지 않는 형태의 올바른 윤회의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스승님이 윤회를 한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합니까?

그도 마찬가지로 많은 윤회를 하였는데 등급이 낮은 건가요?

 

그는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며 윤회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전생이 누구였다고 공공연하게 밝히시는지요.

 

내가 이미 말해주었지 않았느냐?

너희 스승은 연극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

스승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어요.

자신이 전생에 노자였고 석가모니인적도 있었고 또한 예수였으며 강희대제라는 말씀도 하셨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자들 중에 자신과 함께 전생에서 연극을 하던 이들이 주변에 있다고도 하셨지요.

보다 구체적으로 전생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나 하는 사실까지도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내가 말해주지 않았느냐?

영혼을 어떠한 것인가를 규정짓는 일 자체가 깨달음의 척도라고…….

진정 깨달은 이들은 이미 영혼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신과의 완전한 합일을 하였으니 그 어떠한 전생도 그의 것이 아닌 것이 없다.

따라서 너희 스승의 그러한 말들은 제자들의 등급을 고려해서 연극을 하는 것으로 봐야한다.

예수를 창으로 찔렀다고 믿는 이들과 예수를 십자가에 목 박아 죽였다고 믿는 이들을 위해서 그러한 죄의식을 없애주기 위한 눈물 나는 노력을 하는 중이며 전체와 하나 되지 못하고 세세생생 윤회의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고 믿는 길을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너희들의 인식대로 하자면 석가모니도 예수도 자신의 전생을 모두 기억을 한 상태로 태어났어야 하지만 그들 모두는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만약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전생에 대한 기억을 모두 다 한다면 이미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며 이세상의 법칙에도 위반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내 말뜻을 알겠느냐?

 

그렇다고 한다면 전생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의 윤회를 하지 않는다는 말씀이겠군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 일뿐이다.

자신이 얼마만큼의 인식의 장을 열었나에 따라 그가 죽음을 맞이한 후 경험치가 달라질 것이고 그러한 경험 후 이 세상을 다시 오게 되었을 때 그가 맡은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5세계는 부처님의 세계로서 윤회가 없다고 하거든요.

그러한 존재들은 이 세상을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만약 너희들의 인식처럼 차원과 등급으로 영혼을 인식한다면 분명 너희들은 그곳에 가게 될 것이며 너희가 경험하고자 하는 것을 너희의 인식만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신과의 완전한 합일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 너희는 너희라는 자아가 존재하기에 완전한 합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스승님의 말씀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진실이라고 볼 수가 없겠군요.

 

너는 아직도 진실타령이냐?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면 진실 아닌 것이 없고 거짓되다 믿으면 모두가 거짓이 되는 것이다.

지금 너희들은 각자의 인생무대에 올라있지 않느냐?

이미 우리들은 이세상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진실운운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너희는 제자와 스승이라는 상황설정을 해놓고 연극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요.

이제껏 연극을 해온 스승의 일을 당신이 모두 말해버리고 나면 이제 더 이상 스승의 역할은 못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지금까지 네 스승이 우리들은 하나라고 수십 년을 말해주었지만 진정 말뜻을 제대로 헤아리는 이들은 없었다.

따라서 지금의 내말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 진정으로 내말을 이해하는 수준에 있다면 아마도 그는 오히려 스승을 떠나기보다는 더욱더 도우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요?

 

너는 지금껏 내가 무엇을 했다고 보느냐?

지난 십 수 년을 너와 함께 그를 도와주었지 않느냐?

내가 이미 말해주었지?

우리들의 영혼이란 결코 분리된 적이 없는 것이라고…….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줄까?

나는 결코 너희들의 일에 간섭을 하지 않으며 너희가 나를 그렇게 인식을 할뿐이다.

나를 담고 있는 너의 여러 인식가운데 한가지인식이 나를 그렇게 규정짓고 있는 것이다.

 

금방 저를 도와서 스승을 도왔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간섭을 하지 않는다니요.

 

앞서 우리들의 대화에서 충분하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기억을 못하고 있구나.

이미 말했지 않느냐?

전기가 직접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받아들인 기계가 일을 하는 거라고…….

그리고 전기를 발생시키는 일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전기를 공급하는 일, 전기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일까지 다양한 형태의 일이 있다는 말도 했다.

그것이 바로 인간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라는 것도 말해주었고 이모두가 역할에 따른 일이라 할지라도 전기가 직접 일을 할 수는 없다고도 말했다.

따라서 나는 지금껏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하!

그렇다고 한다면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네요.

그분은 하나님이 일을 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이용한다고 하셨는데 참으로 옳은 말이었군요.

 

그렇긴 하지만 그는 아직도 영혼의 일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그저 성경속의 하나님이야말로 최고라고 믿고 있으며 심판하는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님의 참모습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은 이럴 것이라고 하는 인식의 제한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해주어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자신의 영을 경험 못해보았기 때문에 이해 할 수가 없다.

또한 그들의 역할이 지금 그들의 인식 속에 머물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고…….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

어떻게 설명을 할까?

그래.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될 것 같구나.

너희들은 흔히들 예수가 부활을 한 후 승천하여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다고 하지 않느냐?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동일하며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육화되어 나신 것이 예수님이라고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면 천당을 가게 되며 불신을 하면 지옥을 갈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지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했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합일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았다는 의미를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한다는 것은 너희들이 알고 있으되 그가 인간세상을 통해 완성을 이루고 원형계로 진입했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

이것은 한사람의 인간이 자신 안에 심어져있는 하나님의 참모습을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육신을 갖고 있는 동안은 절대 완전할 수가 없다.

 

맞아요.

안 그래도 무척이나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하셨지요.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시고(26:39)”

 

이 말씀이 참으로 궁금했었어요.

자신이 하나님인데 왜 이러한 기도를 했나 싶었거든요.

결국 이렇게 놓고 본다면 자신이 육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이라 큰소리치는 사람은 거짓을 말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만약 이러할 경우 또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과 몇 년을 함께 지내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보려 하느냐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은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것은 원형계의 하나님이 어떻게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는가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려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하나님의 품성은 인간들안에 담겨져 있다는 말도 되는 것이고 이러한 점을 완전히 깨닫게 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하셨는지요?

 

만약 그렇게 말해주었더라면 아마도 제자들은 걷기도 전에 날려고 했을 것이다.

아직 영적으로 성숙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신 안에 하나님이 있다고 큰소리치고 다니면 하는 짓이 어떻겠느냐?

남의 영혼을 자신 안에 종속시키려는 마왕이 되거나 맹인이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통달하여 깨달은 것처럼 말을 하며 하나님과 하나 된다고 말들은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영의 실체를 모르면 결국 성경속의 글자로만 영을 인식 할 수밖에 없다.

 

아들아!

잠시 신과의 대화를 멈추고 육신과의 대화무드로 전환을 해야겠구나.

우리들은 흔히들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며 그가 신이라고 생각을 하며 숭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는데 실상을 바라보면 그런 것이 아니거든.

진정 우리들이 알아야할 일은 우리들 내면에 성령이 깃들어있다는 것이며 그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야.

누군가 육신을 가진 체 자신이 재림예수라고 하거나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그의 행동을 유심히 들여다봐야해.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러한 말을 하는지 타인들을 가르치기 위해 방편적으로 말하는지를 살펴야 하는 거지.

이것을 달리 말하자면 누군가 자신을 위해 숭배의 자리에 올라있다 하더라도 과감하게 우상숭배의 그늘을 벗어나서 자신내면으로 향하여야 한다는 말도 되는 거야.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시험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거든.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을 해놓았어.

 

자신의 부모나 자식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자만이 나에게로 올 수 있다

 

이 말씀은 부모나 자식을 희생물로 삼으라는 말이 아니라 외형적인 것의 어떠한 값어치보다 자신내면에 깃든 하나님인 성령을 두려워하라는 말인 거야.

오늘은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대화를 시도하였는데 이상하게 전생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는구나.

아쉽지만 신은 또다시 이별을 원하고 있으니 잠시간 쉬었다가 못 다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도록 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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