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아들아!(220)

배가번드 2022. 8. 2.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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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데자뷰라고 들어보았니?

이 말은 원래 프랑스어로서 어떤 장소나 장면들을 미리 경험하거나 가보는 일을 말하거든.

혹 너는 이러한 일들을 경험해보았나 모르겠구나.

어떤 특정한 장소에 갔을 경우 언젠지는 모르지만 와 보았던 것 같거나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그 장소와 대화내용이 언젠가 했었던 것 같은 일말이야.

나는 삶의 곳곳에서 이러한 현상을 무척 많이 겪었던 것 같아.

언젠가 너와의 대화에서도 이러한 일을 말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글쎄요.

너무 오래되어서 우리가 그 같은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데자뷰 현상에 대해서는 경험을 한 것 같긴 해요.

그런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경험했던 데자뷰 현상은 도대체 어떠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일까 너무나 궁금합니다.

 

그래 그럴 거야.

이 같은 단어가 생긴 것을 보면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현상을 경험했기 때문은 분명한데 도대체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일어날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해.

내가 이 같은 이야기를 또다시 하게 된 동기가 최근에 영화한편을 보았기 때문인데 데자뷰 라는 영화이거든.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경력의 소유자 덴젤 워싱턴이 대본을 보자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다는 것만 봐도 이영화가 가지는 매력은 대단한 거라고 보여.

이야기에 앞서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볼까?

 

축제를 앞둔 뉴올리언스 부두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태운 배가 폭발을 일으키게 되는데 사건을 조사하기위해 화기 조사국(ATF) 수사관 더그 칼린(덴젤 워싱턴)이 파견이 되는 거야.

FBI와 공조 수사를 벌리던 도중 더그는 정부에서 모종의 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든.

처음에는 그저 지나간 일들을 현실에서 비쥬얼화 할 수 있다는 사실만 알게 되지만 수사를 하던 도중 그러한 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더그는 피해자인 클레어 쿠체버라는 여성과 폭파된 배를 구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나흘 전으로 돌아가는데 폭파를 막고 많은 인명과 클레어를 구하는 데는 성공을 하지만 자신이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어.

하지만 영화는 그것으로 끝맺음을 한 것은 아니었고 과거로 돌아간 더그의 죽음과는 달리 현실 속에서의 더그가 클레어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가 막을 내리고 있었지.

과거로 돌아간 더그 와의 짧은 사랑을 간직한 클레어는 더그를 통해 대략의 이야기를 들었던지라 폭탄을 실은 자동차와 함께 바다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더그와 달리 자신 앞에 나타난 더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거야.

현실속의 더그 역시 자신이 클레어라는 여인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데자뷰를 잘 설명한다고 볼 수 있어.

어때?

여기까지가 대략의 줄거리인데 재미있지?

 

글쎄 이렇게 대충 이야기해서는 영화가 재미있는지를 잘 모르겠지만 몇 가지 궁금한 점은 있어요.

미국 정보국에서는 정말 그 같은 실험을 할까요?

 

물론 그렇다고 생각해.

영화와 같은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상당히 근접한 상태의 과학수준에 도달한 것은 틀림이 없으리라 여겨져.

영화에서도 나와 있다시피 7개의 위성에서 추적해주는 열감지선을 따라 가면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을 재생시킬 수 있다고 했는데 홀로그래피 기법에 따라 얼마든지 영상화를 시킬 수 있다는 거야.

 

잠깐만요.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어떻게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영상화시킬 수 있는지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먼 과거 우리들의 조상시대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는지도 모두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하지만 잠시 흥분을 멈추고 내말을 들어보렴.

이 영화에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은 단지 나흘 안에 일어난 일들에 한해서라고 명시해놓은 이유가 있어.

아마도 이것은 지금의 지구과학의 열 감지 기능이 나흘에 한정지어져 있기 때문이라 여겨지는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인체가 발생하는 열에너지가 공기와 합해져버리기 때문이라 생각해.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과거에 살았던 모습을 비쥬얼화 할 수 있다는 것은 절대 동의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인간들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건물들과 거리와 가로수 등등의 온갖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가 말 이예요.

이러할 때 온전하게 우리들이 살았던 모습을 영상화 시키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도 여길 수 있겠지?

하지만 말이야.

나는 그 같은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이 같은 일을 말하기 위해서 잠시 내 기억창고를 더듬어 보아야겠구나.

아마도 94년이었을 거라 생각되는데 대전에서 엑스포가 열렸을 때였어.

그곳에서 과거 구소련에서 실험을 했던 영상자료를 보게 되었는데 소련의 연구팀들이 잠을 자는 사람의 꿈을 영상화 시키는데 성공을 했다고 하였거든.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은 진정 사실이라 생각할 수가 있어.

7대의 인공위성이 여러 개의 각도에서 찍어내는 영상을 종합해서 홀로그래피를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될 거야.

어때?

이제는 사실로 인정이 되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보여주는 전부가 사실은 아니라고 생각해.

어느 정도의 픽션은 가미되었다고 봐야겠지?

솔직히 나는 영화를 보면서 상당히 놀라워해야 했는데 그것이 픽션이라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과학이 담겨져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주변에서 첨단장비들을 무수히 많이 접하고 있는데 길거리 곳곳에 장치되어있는 무인카메라들을 볼 수 있거든.

이러한 모든 것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연결이 가능하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곳곳의 일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거야.

우리들은 이미 이러한 것들을 상용화 시키고 있으며 생활에 아주 밀접하게 접목시키고 있어.

더 이상 세상에 비밀이란 없는 시대가 오게 된 거지.

이미 지나간 시간에도 말을 했듯이 우리들이 하는 어떠한 행동도 누군가의 감시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이 아니겠어.

우리들이 하는 어떠한 행동도 누군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알 수 있다는 말이며 이미 그러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는 일어나고 있다는 거야.

 

그렇다면 우리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성행위를 하는 것도 포착이 된다는 겁니까?

 

그야 물론이지.

그뿐 아니라 네가 남몰래 숨어서 본다고 여기는 야동을 언제 어떠한 제목을 보았다는 것까지도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는 훤히 알 수 있어.

영화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들은 요즘 네비게이션을 상용화 시키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거든.

카메라가 설치되어있고 간단한 칩만 심어져 있으면 얼마든지 세상을 살펴볼 수가 있지 않겠어?

지금 인터넷으로 들여다보면 내가 사는 집의 전경들까지도 지도를 통해서 볼 수가 있는데 집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시간문제인거야.

그런데 너는 타임머신이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어려서부터 분명히 타임머신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기에 당연히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거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타임머신은 있다고 생각할 텐데 과연 그러한가를 살펴볼까?

우선 우리들이 영화에서 더그가 보여준 거와 같이 과거로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우리들의 세상과는 동떨어진 상태의 법칙으로 옮겨가야만해.

한마디로 시공간을 초월해야 한다는 거야.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세상은 시공간의 제한성아래 놓인 세상인 동시에 빛의 속도 아래 놓인 곳이라 믿고 있거든.

이 같은 세상을 벗어나려면 빛의 속도를 넘어서야만 하는 거지.

 

그렇다고 한다면 영화가 말하는 것은 허구이겠군요.

지금의 지구과학이 아무리 발전을 해도 빛의 속도를 능가하지는 못하니까요.

 

네가 말한 것이 맞는 것 같아.

하지만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워.

왜냐하면 지금의 지구과학이 이미 빛을 잡아내는데 성공을 했고 빛보다 빠른 물질을 발견하는데도 성공을 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물질세계의 법칙에 따라서라도 이 같은 고정관념들은 깨어져야만 해.

왜냐하면 말이야.

우리들이 매커니즘의 작용방식에 따라 세상이 움직여진다고 여길 경우 물리적 힘이 가해지는 정도가 빛보다 크다고 한다면 당연히 빛보다 빨라야하기 때문이거든.

그렇지 않니?

생각을 해보렴.

네가 공을 던질 때 힘과 속도가 비례를 하게 되는데 공을 던지는 힘이 빛보다 빠르다고 할 경우 빛을 능가하게 되는 거야.

 

그야 수학적인 개념일 뿐 세상에 적용이 될 이론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이미 지구과학의 수준도 상당한 것은 사실이거든.

혹 너는 중성미자라고 들어보았니?

일명 뉴트리노라고 하는데 진공상태에서는 빛보다 느리지만 물속에서는 빛보다 빠르다고 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의 모 대학 교수님께서 빛보다 무려 6천배가 빠른 신호를 잡아내는데 성공을 했다는 거야.

물론 빛보다 빠른 신호는 이분이 처음은 아니었고 기존의 신호는 빛보다 310배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보다 훨씬 빠른 신호를 발견한 거지.

레이저가 특정한 원자와 결합할 때 상호작용을 통해 신호의 속도를 높이는 전자기 유도 흡수현상(EIA)을 이용해서 세슘원자(Cs)와 레이저를 결합하는 실험을 통해 신호를 빠르게도 느리게도 할 수 있음을 증명했어.

이러한 과학적인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시간여행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되는 거야.

단한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진동수를 높이는 거라 생각해.

모든 사물들이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같은 일을 현실에서 적용시키는 데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육신이라는 한정된 진동수의 세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거든.

신호라는 말은 일종의 자기장 형태를 이름인데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진동이라고 보면 정확해.

이것이 바로 과학이 영의 세계에 근접했다는 말이며 우리들이 내면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라는 개념이 참으로 대단한 위치에 자리한 고도로 발달한 초 과학의 세계라는 말이 되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지금과 같은 물질적인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어려워.

파동을 달리한 신호체계 아래에서는 가능하게 되는데 우리 육신의 껍질을 벗고서 또 다른 몸으로 탈바꿈할 때 가능한 거야.

한마디로 말해서 육신이 아니라 영일 때 가능하다는 거지.

 

그렇다고 한다면 영화에서 육신의 더그가 과거로 돌아갔다는 것은 엄연한 거짓이겠네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영화에서도 그와 같은 일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한 부분들이 있어.

과거로 돌아가기 전 더그는 현실에서 이미 죽어버린 클레어의 집을 방문을 했는데 그곳에서 피 묻은 거저와 옷가지, 탁자에 놓인 유리잔과 벽에 걸린 글자판에 단어들이 나열되어있는 것을 보게 되거든.

 

너는 그녀를 구할 수 있다

 

이 같은 흔적들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과거 속으로 돌아간 자신이 저질러 놓은 것 이라는 사실을 과거로 돌아갔을 때야 알게 되는 거야.

물론 이 같은 일은 영화에서의 일이겠지만 우리들이 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데자뷰 현상이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 미래의 우리들이 살아버린 과거의 모습들을 보는 것 일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사실 이 같은 일은 그렇게 설명되어져서는 곤란해.

만약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지금 현실 속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이웃 중 누군가는 미래에서 왔을 수도 있을 것이고 과거에서 왔을 수도 있는 사람이 되거든.

이래서는 시공간이 없다는 말이 되어버리는데 물질적 메커니즘아래 놓여 있는 우리들의 세상 법칙은 무너지고 말아.

과거 현재 미래가 뒤엉켜버리는데 세상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게 되는 거야.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설명되어져야 할까요?

 

언젠가 너와의 대화에서 영혼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말한 적이 있어.

우리들의 영혼의 세계는 시공간이 없다고 말이야.

그리고 영혼은 너와나의 구분조차 없다고도 했고…….

기억나지?

바로 그와 같이 영혼이라면 가능해.

 

그야 기억이 나긴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의 경험을 하는 것과는 무관하지 않나요?

현실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맞이하고 있는 장면을 미리 가본 적이 있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거지요.

 

~

내가 잠시 착각을 했구나.

아직도 너는 전체와 하나 됨을 경험치 못한 인식이기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우리들이 아직 살지 않은 미래상은 한가지의 상황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상황들이 주어질 수 있거든.

예를 들어 길을 걸어가는 네 앞에 몇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고 생각해.

이러할 때 너는 어느 길도 선택할 수가 있어.

그러한 경우 첫 번째 길을 선택하면 첫 번째 길에 해당하는 풍경이 너를 기다릴 것이고 두 번째는 두 번째의 풍경, 세 번째는.......

지금 너에게 주어진 현실은 그와 같은 여러 가지의 결과물 중에 하나라고 보면 된다는 거야.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들이 현실을 산다는 것은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 되겠네요.

우리들이 창조를 하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우리들에게 선택권만이 주어져 있지는 않아.

왜냐하면 우리들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거든.

과거로 돌아간 더그가 클레어가 맞이해야하는 죽음을 막아주기 위해서 현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될 때 입었던 옷을 갈아입게 하려고 시도 했지만 그럴 수 없었어.

이것이 바로 항거할 수 없는 현실을 맞이해야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지.

우리들의 삶속에서 운명이라는 말을 쓰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야.

영화는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또 하나의 장면을 통해서 보여주기도 했는데 범인이 하는 말에서 볼 수가 있어.

과거로 돌아간 더그에게 붙잡혀 취조를 받는 과정에서 테러범은 아주 의미심장한말을 하거든.

자신이 미래를 보았는데 자기가 저지른 일로서 기소가 되지는 않는다고 했던 거야.

이 말은 배를 폭파시킨 일로서 자신이 죗값을 치르지 않는다는 말이었는데 결과를 놓고 보면 정확하게 맞는 말이었어.

더그가 우여곡절 끝에 배가 폭파되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이 말은 사실이 되었던 거지.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항거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해야만 한다는 말이 되겠군요.

 

너는 여전히 성급하구나.

내말을 끝까지 들어보렴.

만약 네 말처럼 우리들의 미래가 정해져있기만 한다면 인간들의 자유의지는 쓸모가 없어져 버리거든.

이래서는 세상사는 재미가 없지 않겠어?

미래는 만들어 가는 거라는 말이 무색하게 되는 거지.

그러기에 영화에서도 이 같은 일을 설명해 주었는데 원래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던 클레어를 구하고 폭파되는 배를 구할 수 있었다는 결말을 만들어 냈던 거야.

영화초반부에 죽음을 맞이했던 클레어와 배의 폭발이 엔딩에서는 부활이 되었거든.

 

결국 우리들은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군요.

 

글쎄다.

정말 그러할 수 있을지는 개개인의 역량에 딸린 문제일 것 같아.

영화에서도 보여주었듯이 우리들의 미래는 정해져있기도 하지만 바뀌기도 했거든.

이러한 점을 보면 운명이란 있다고 여기면 있는 것이 되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다는 말도 되는 거야.

 

저기요.

뭔가 확실하게 답변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도대체 운명이란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들이 알아야할 사실이 있어.

영화에서도 보았듯이 정해져있던 미래가 바뀌어졌거든.

그 같은 일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야.

클레어에 대한 더그의 사랑이 미래를 바꾸어 놓았던 거지.

물론 거기에는 인과의 법칙에 따라 응분의 대가가 치러져야했는데 더그의 죽음이 있었어.

자신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클레어를 사랑했던 더그의 힘이 그것이 가능하게 한 거야.

어때?

이제는 이해가 되었지?

 

그렇다면 사랑의 힘이 운명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겠군요.

하지만 그 또한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왜냐하면 현실 속에서 보면 자신의 가족이나 형제, 또는 애인을 사랑하지 않는 이는 없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죽음의 순간들을 맞이해야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이 있지 않습니까?

각가지의 불운을 피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깨달음을 얻었다는 스승조차도 제자들의 운명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왕왕 보게 되는데 하나님이라고 일컬어지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조차 피할 수 없이 맞이해야하는 불운의 순간들이 있거든요.

 

그러기에 이것은 자신의 믿음과 결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봐야하거든.

영화에서는 말해 놓지 않았지만 영혼을 깨달은 존재들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할 수 있음을 우리들은 알고 있어.

하지만 그 같은 일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우리들이 명심해야할 일들이 있는데 시공간을 초월하여 정말 높은 단계에 있는 영혼이라고 한다면 너와 나의 구분이 있을 수가 없다는 거야.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서 누군가에게 준다거나 누군가를 또 다른 누군가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은 아직까지 전체와 하나 되지 못했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거지.

그러하기에 관세음보살이나 부처가 무상정등정각은 아니라는 말이 되거든.

하나님이 자신을 믿는 사람들만을 위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더 이상 하나님의 역할을 하지 않을 때라야 가능한 일이 되는 거야.

 

그렇다고 한다면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잘못 믿는 것이 되는가요?

 

그게 아니거든.

그들이 잘못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믿는 성경속의 하나님을 자신들의 인식만큼 믿는 거라 볼 수 있어.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크게 인식의 폭을 넓히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크게도 작게도 만들 수 있는 거야.

이것은 어떠한 믿음에도 적용될 말이지.

지난시간에도 말을 해주었지만 심판하는 하나님을 만드는 것도 인간들이고 사랑의 하나님을 만드는 것도 인간들인데 자신이 어떠한 하나님을 믿을지는 자신에게 달린 거야.

아들아!

오늘도 약속된 시간이 다되었구나.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음시간을 기대해야겠어.

시간이 많이 흘렀거든.

요즘 너와의 대화를 여유 있게 진행시킬 만큼 시간이 넉넉지가 않아서 중단을 했었는데 특별휴가를 얻어 모처럼 대화를 나누었으니 나와 함께 생활전선에서 생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직장상사와 동료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오늘은 여기에서 작별을 하고 다음에 또 다른 이야기로 만나자꾸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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