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15)

배가번드 2019. 6. 3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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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첫 번째 선 행사 다녀온 후 명상이 얼마나 쉬워졌는지 앉았다하면 2~3시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곤 했는데 시간만 빨리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이 되고 있

었어.

가끔씩 관음(觀音)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미타불을 외우고 있거나 옴 마니 반 메 훔

(밀교의 진언)을 외우고 있기도 했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불교공부라고는 한 적도 없고 더군

다나 티베트 밀교진언은 듣도 보도 못했는데 어떻게 내가 진언을 할 수 있는지 신기하더구

.

그저 속으로 전생에 티베트의 스님이었던 적이 있었나 보다 했어.

명상을 하다보면 깜깜한 암흑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마치 용광로에 불이 타는듯하였고 발

바닥(용천 혈)이 뜨거운 것은 여전하여도 전처럼 못 견뎌 하지는 않고 견딜 만 하다 여겨졌

.

더구나 이렇게 힘든 명상이 나의 신 구 의를 맑게 해준다고 생각하니 즐거운 마음까지 일어

났고 조금이라도 명상을 더하지 못해 안달이 날 정도였던 거야.

그러한 즐거움 속의 어느 날인가 센터에 갔을 때 대부분의 동수들이 스승님 법상 앞에 합장

을 하고 인사를 한 후 명상 홀로 입장하고 나갈 때도 돌아서서 합장으로 예를 올린 후 퇴장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

평상시에도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너무 형식에 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일부러 인사

도 않고 다니며 애써 무시를 하고 지냈었거든.

내가 따르는 스승님께 예를 표하는 것이 다소 형식적인 면이 있다 하더라도 제자 된 도리로

서 당연 할 건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날따라 나 자신이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

이 들었어.

그렇게 죄송한 마음을 먹은 탓인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저녁에는 무시

무시한 꿈을 꾸게 되더구나.

꿈의 앞뒤내용도 없이 대뜸 내 몸이 공중에 매달려있는데 내 발목을 누군가 잡고서 거꾸로

들고 있는 장면이 보이지 않겠니.

누가 내 발목을 쥐고 있는가 보니,

 

이럴 수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난 거야.

절에 가보면 사대천왕이라고 해서 무서운 형상을 한 형상의 조각들 본적 있지?

그 모습보다 몇 배는 무서운 형상에다가 체구는 또 얼마나 큰지 176cm에다가 그 당시

90kg 가까운 나를 한 손에 들고서 웃고 있는 것이 아니겠니.

기절초풍 할 듯 놀라는 나와는 전혀 무관하게 씨- 익 웃는 것이 그야말로 야차의 모습 그

대로였는데 큰일 났다고 생각하고 진언을 외워야겠다 싶어서 외우려 하는데 평상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외우던 진언이 어디로 갔는지 도망가 버리고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 거야.

다급한 마음에 스승님을 찾았더니 생각을 일으킴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스승님께서 노란 법

복을 입으신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 아니겠니.

환하게 웃으시면서 야차에게 공손히 합장으로 예를 갖추시며 말씀하셨어.

 

이 사람은 나의 제자이니 용서해주십시오.”

 

그러시군요.

법사님의 제자라면 당연히 보내드려야지요.”

앞으로 조심해!”

 

하면서 보내주더구나.

스승님과 함께 나오면서 보니 저만치에서 회색 가사 장삼을 입은 노인 한 분이 오더니 스승

님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돌아오는 순간 잠에서 깼는데 온통 눈물이 흘러 귓불에

눈물이 고여 있기까지 했어.

얼마나 생생하였던지 아직까지도 기억이 선명한데 그 당시는 내가 잘못하여 야차에게 혼이

났다 여겼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육신의 스승님과 내 내면의 스승이 육신을 교육시키기 위해

서 그 같은 상황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야.

결국 그 모든 것이 내가 만들어낸 것이고 수행자로서의 겸손치 못함을 나 스스로 단죄를 한

것이라 볼 수 있겠지만 강을 건너기까지는 뗏목이 필요한 법, 어디까지나 형식이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하는 법인데 초보수행자로서 교만한 점을 고쳐주기 위해 신이 체험을 주신 거

라 생각해.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스승님 법상 앞에서 인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식사를 할 때나

간단한 다과를 먹을 때조차도 예를 갖추게 되었어.

아들아!

이제는 왜 내가 음식을 앞에 두고 눈을 감고 잠깐의 명상을 하는지 알겠지?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구정을 며칠 앞두고 두 번째의 국제선소식이 들려왔고

지난번의 좋았던 기억으로 당연히 참석하기로 했어.

세상일도 그렇듯이 국제선 참가길 역시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여유가 있어서 아는 분들도

있고 얘깃거리도 많아졌기에 소풍 나온 아이들 마냥 즐거워할 수 있었지.

첫 번째와 똑 같은 수순으로 모든 것이 진행이 되는 가운데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첫 번째 선

때는 아직 센터가 건립 중이어서 여기저기 공사의 흔적이 있었지만 두 번째는 모든 공사가

마무리가 되어서 깔끔해졌고 없던 방공호까지 생겼다는 거야.

명상 참석차 오는 동수들이 애들을 데리고 올 경우 아이들이 놀 수 있게 만들어놓은 무지개

동산과 호수 위에다 이리저리 구부러지는 다리로 이루어진 팔각정은 명상을 마친 휴식시간 동수들의 훌륭한 산책로였고 샘물을 파서 자연스럽게 구불구불 흘러내리게 만들어진 감로천

은 명상 시 흘러내리는 물소리 따라 삼매를 맛보게 만들어주었어.

선 행사 기간 내내 비가 왔으므로 반공호안에서 명상을 했는데 특이한 점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결가부좌까지 하고 앉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몸이 앞으로 곤두박질치는 거야.

조는 것과는 다른 것이, 분명히 의식이 있음에도 몸이 기울어진다는 것은 육신과 정신이 따

로 분리되었다는 것과 같은데 그 당시로서는 처음 접해보는 현상이라서 이상하게만 여겨졌

.

몇 년이 흐른 다음 경험을 하게 된 사실이지만 몸과 영이 분리되는 현상이 실지로 일어나더

구나.

명상 중 호법이 코를 골지 말라고 하기에 열심히 만트라를 외우고 있는데 왜 그러냐고 반박을 했더니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거야.

그러한 일을 직접 겪으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코를 고는 것은 육신이고 집중을 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의식체인 것인데 바로 육과 영이 분리되었던 경우였어.

사람 몸을 크게 3가지로(, 마음, 영혼) 나누기도 하지만 몸을 다르게 나누어보면 여러 가

지 의식 체로 볼 수가 있는데 아스트랄체니 맨탈체니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거야.

시간상 여기에서는 상세히 설명할 수는 없고 보다 자세히 알고 싶으면 책을 사서 보거나 컴

퓨터를 이용하기 바라.

그렇게 방공호안에서 명상을 계속하던 중 스승님 법문 시간이었지.

방공호 안쪽으로 미끄럼틀이 높고 길게 놓여 있었고 스승님께서 그 위에서 법문을 하셨는데

그날따라 비가 오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앉아 계신 뒤쪽 구멍으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가리기 위해 장주자들이 밖에서 헝겊으로 된 보자기를 가리고서 사방에서 붙들고 있는 것

같았어.

앞에서는 보이지가 않았지만 헝겊이 자꾸 불룩해졌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 같아서 자세히 보

았더니 언뜻 언뜻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서 알게 되었던 거야.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헝겊이 날아가게 되면 스승님께서 추우실까 봐 비를 맞아가며 애쓰

는 모습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국제선을 위해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음으로 양으로 수

고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고 누구 하나 소홀한 일이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어.

그날의 스승님 법문을 요약하면 장주자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외부

사람들이 장주자들 하고 자꾸 결혼들을 하나 봐.

스승님이 일을 하시기 위해서는 조금 전처럼 비바람을 막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스승님을 대

신하여 입문 식을 거행해야 하는 관음사자의 역할까지 막중한 일이 있는데, 그렇게 중한 일

을 시키기 위해서는 수년간을 스승님 밑에서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거든.

그런데 기껏 교육을 시켜놓으면 밖에서 명상하러 오시는 일반 동수가 결혼이라는 코뚜레를

꿰어서 데려가 버리는 통에 많은 차질을 줄뿐 아니라 본인들에게도 좋지 않다는 말씀이셨

.

사실 나 역시 출가나 재가가 틀리지 않다고 늘 주장하던 사람이긴 하지만 막상 재가자의 신

분으로 대중을 위한 봉사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란 것을 경험해봐서 잘 알

.

오로지 스승님과 대중에 대한 봉사만 하기 위해서는 출가자의 신분이어야 보다 자유롭게 봉

사를 할 수 있는 것이지 본인들의 가족부양의 의무가 있는 분들은 한계가 있는 법이지 않겠

?

그래서 이세상의 많은 성직자의 삶들이 독신인 경우가 많지 않나 생각해.

그날 스승님께서는 많이 우셨는데 아마도 앞으로 사회생활에서 겪어야 하는 장 주자의 앞날

이 걱정이 되셨던 것 같았어.

그렇게 우울해 하시는 스승님의 법문으로 그날은 다들 우울했지만 다음날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즐거운 법문이 이어졌어.

인도에 있는 어떤 스승이 구정물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도 각각 구정물을 받아오

게 한 후 모두들 스승을 따라 하라고 지시를 하더니 손가락으로 구정물을 휘휘 젓고는 손

가락을 입으로 가져가서는 맛있다는 듯이 빨아먹더라는 거야.

그러자 모든 제자들이 하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스승처럼 구정물에 손가락을 담근 채 몇

번 젓고 난 후 코를 쥐고 억지로 손가락을 입으로 넣는데 그 모습을 본 인도스승이 박장대

소를 하더라는 것이었어.

너무나 통쾌하게 웃는 스승께 제자들이 이유를 묻자 인도스승이 대답하길,

 

너희들은 흉내만 낼 줄 알았지 진정으로 나를 따라 하지는 못했다.

처음 내가 너희들에게 시범을 보일 때의 손가락은 중지였으나 입으로 가져간 손가락은 검지

였는데 너희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중지를 구정물에 담그고 그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지 않

았느냐?”

 

하며 더욱 웃었다는 얘기였어.

아들아!

이 얘기는 웃기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법문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과거에 수많은 가르침이 존재하고 선지식이나 스승을 따라 공부한다 하지만

결국 모두흉내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씩 자신들을 둘러봐야 할 것 같아.

실체는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며 허상만 쫓아서 헤매지나 않는지……

성경을 믿건 불경을 믿건 아니면 또 다른 믿음을 믿던지 모두가 한번쯤은,

?

라는 강한 물음을 자신들에게 해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 자신이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괜찮을 일이겠지만 강요에 못 이겨서 억지로

한다든지 또는 남들에게까지 싫다는 것을 강요해야 하는 의무를 요구 받는다던가 한다면 반

드시 자신이 믿는 종교를 돌아 불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아들아!

티베트에는 종일토록 마루를 닦는 수행을 하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그분들은 마루 닦는

것이 즐거워서 더욱 닦기를 원한다고 하더구나.

이분들은 마룻바닥을 닦는 것이 수행 자체이고 본인들에게는 희열이긴 하지만 누구에게 강

요하거나 강요받지 않아.

나 역시 이러한 점은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는데 힘이 들고 고통스러운 현실이 다가왔을 때

얼마든지 다른 길을 선택할 기회가 내게 있음에도 수행의 일환으로 삼고서 정진을 하기로

내가 결정을 했을 뿐 어느 누구도 내게 요구하지 않았고 내가 이렇게 힘든 현실을 수행의

일환으로 삼았다고 해서 남들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어.

심지어 아들인 네게도 채식이라든지 명상을 강요하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니?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더구나.

당신이 그렇게 좋다면 왜 가족들에게 권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지.

소를 물가에 끌고 가더라도 물은 못 먹인다고……

내가 하는 명상이 내게 천국을 가져 다 주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있어서의 천국

일 뿐 다른 사람에게까지 천국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고 아무리 나의 스승이 최고의

존재라 해도 어디까지나 나의 문제일 뿐 다른 이들까지 강요받아야 할 이유가 없음을 내가

알기 때문이야.

언젠가 목이 마르면 물을 찾게 되는 만큼 물을 준비하고 권하기는 할 수 있지.

그래서 내가 가족들 모임 때마다 채식할래?” 하면서 떠보듯 하는 것이 아니겠니.

이야기가 많이 옆길로 나온 것 같은데 다시 반공후속으로 돌아가도록 하자구나.

재미있는 법문을 하시고 내려오신 스승님께서 내가 앉은 자리 옆으로 오셨을 때 나와 내 옆

에 앉은 동수를 번갈아 가며 보시며 그렇게 재미있다는 듯 웃으시는데 순간적인 느낌으로

뭔가 있구나 싶었어.

내 옆의 사형과 나의 인과를 보신 것 같았는데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후 그 사형과 내

가 심하게 다툰 후에야 그때 스승님께서 웃으신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야 꿈에도 몰

랐던 거야.

동수들에게 몇 마디의 당부의 말씀이 있으신 후 그날의 법문은 끝이 났고 텐트가 있는 대나

무 밭으로 가서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 일정이 마무리가 되고 있었어.

다음날 하루 두 번 제공되는 식사 중 아침식사를 마치고 휴식시간이 되어서 여기저기 기웃

거리는데 저만큼 연락 인이 보여서 갔더니 누군가와 이야기하던 중으로 내가 나타나자 황급

히 얘기를 중단하고 얼버무리는 폼이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는 것 같았어.

나중에야 알았지만 어떤 동수 한 분이 선 행사만 참석하면 식구들 중 누군가가 자꾸 죽는다

는 것이었고 그때도 식구들 중 누군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선 기간 중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건데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는 내가 혹여 알게 되면 충격이라도 받을까 봐 그들

로서는 나를 배려한답시고 쉬쉬한 것이지.

아들아!

너는 어떠니?

사람이 죽는 것이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니?

하기야 너는 아직 정신세계를 모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아들아!

정신세계와는 별도로 사람은 누구나 죽기마련이라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시일

의 늦고 빠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란 것도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왜 다들 감추어야 하고 죽

음이 슬프고 안 좋은 일인 것으로 인식되어야 할까?

사람이 이 몸으로 사는 것이 한번밖에 없고 영혼 역시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이 다들

생에 대한 애착을 그토록 이나 갖고 있는 것이고 슬퍼하는 것이겠지만 소위 정신공부씩이나

한다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서 그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은 한심하기까지 했어.

육신으로 맞이하는 생이 마지막이고 영혼도 없다고 생각해서 생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들

조차도 제사를 모시는 것을 볼 수가 잇는데 그러면 도대체 누구에게 절을 하고 제사를 한다

는 말인지 모르겠고 DNA하나에 책27천 권에 해당하는 정보가 기록되어있다는 과학자의

보고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되묻고 싶기까지 해.

모차르트나 다른 많은 천재들이 아무런 배움도 없이 어떻게 피아노나 다른 많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지 윤회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니?

요즘은 일반인들조차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이때 최고의 스승을 모시고

정신공부를 한다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다소 실망은 했지만

그래도 나를 배려하는 그 마음만큼은 고맙게 받아들이며 모른 척 그 자리를 피해 다른 장소

로 갔었어.

경서판매대 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어서 가보았더니 스승님께서

멀리 보이시는데 서로들 보기 위해서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는 중이었지.

거리가 멀긴 했지만 스승님을 향해서 합장인사를 드렸는데 알아보시고는 같이 인사를 해주

셔서 너무나 감동을 받았어.

지난 선 때도 그렇게 사람마음을 읽으셔서 놀랐는데 이번선 역시도 나에게 감동을 주시더구

.

마음속으로 다짐했어.

 

앞으로 스승님을 의심하는 일은 두 번 다시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재미있는 법문과 즐거운 선 오행사가 끝이 나는 마지막 날 공연을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고 아침부터 비가 내릴 것처럼 날씨가 잔뜩 찌푸려져 있었어.

일찍 내려가 국가별로 나뉘어져 있는 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기다리는데 앞의 월남 남자 동

수 한 분이 비를 맞을 것 같아서 이쪽으로 당겨서 앉으시라고 손짓을 했더니 대뜸 화를 내

는 거야.

보아하니 내가 비켜달라는 소리로 오해를 한 모양으로 뭐라고 월남말로 얘기하는 폼이 자기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자기자리를 구해달라는 소리 같았어.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보고만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그때서야 내 말뜻을 알아차렸는가 보았지만 내가 처음 권했을 때 강하게 반발했던 것이 미

안하기도 하고 계면쩍기도 해서 혼자서 비를 계속 맞고 있더구나.

한참을 비를 맞다가 안내하시는 분이 와서 옮기라고 얘기를 하자 그제야 자리를 옮겼는데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내 마음 또한 불편하긴 매한가지였어.

차라리 처음에 가만히 내버려둘 걸 괜히 나서서 권했다가 마음만 상하게 해준 꼴이 되었지.

도움을 줄 때나 받을 때 충분히 지혜롭지 못하면 자칫 상대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기분 나빠

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어.

누군가를 돕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과 될 수 있으면 누군가가 도움

을 바랄 때 도와주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

그렇게 비가 내리는 중에도 공연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돌아오는 날은 식사를 하면서 채

식으로 만든 햄이 있기에 먹어보니 맛이 기가 막힌 것이 이 햄을 한국으로 가져가서 판매를

해도 되겠다 싶더구나.

그래서 물어보니 사형 한 분이 판매하는 공장을 안다고 해서 20박스를 주문했는데 다들 왜

그렇게 많이 사는가 걱정들을 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구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구

한다 해도 가격이 비싼 만큼 싸게 구입하면 센터동수 들도 한 박스씩 먹을 것이고 판매한

돈은 센터기금으로 쓰면 일석이조의 일이 되겠다 싶어서 산거야.

나중에 한국 와서 판매하고 수익금이 30만원이나 남아서 센터기금으로 충당을 했으니 장사

꾼의 기질을 백분 발휘한 것이 아니겠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한국 밤 풍경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가 있었고 내가 사는 한국 땅

의 밤 풍경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

아들아!

이렇게 해서 두 번에 걸친 대만에서의 국제선행사는 막을 내리고 또 다른 수행 길의 경험들

이 열리고 있었으니 마지막은 항시 출발을 의미하고 있고 출발점 역시 또 다른 일의 종착점

이니 만큼 시작도 끝도 없다는 유행가 가사는 참으로 진리인 것 같지 않니?

 

아들아!

너는 어디에 있는 거니?

네가 서있는 지금의 위치를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니?

아니면 종착점으로 삼고자 하니?

너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거니?

지금 이 순간 너의 선택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거니?

너에게 항시 열려 있는 모든 순간들이

너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음을 말해주고 싶구나.

아들아!

너의 선택이 어디를 향해있어도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