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를 키워보면 많은 일들을 경험합니다.
내가 농부는 아니지만 화단에 채소를 심어본적은 있습니다.
그때 경험한 여러 가지 일중에 기억에 남는 한 가지는 씨앗을 뿌린 후 얼마간 자라던 채소가 일정크기로 자란 후에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겁니다.
이 같은 현상은 땅에 영양분이 부족한 탓이며 비료가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비료를 주었더니 다섯 명이 다 먹지 못할 만큼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혼에도 영양공급이 필요합니다.
어쩌다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 내 귀에 전달되었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영양공급이 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영혼이 성장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각자의 인연에 맞는 종교를 선택하여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신앙생활이 필요하지요.
이미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믿음의 방향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복적인 신앙생활에서 나 자신이 신이 되는 믿음으로 옮겨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냐 하겠지만 성경은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창5:1)
This is the book of the generations of Adam.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5:2)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Adam,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했으니 우리가 하나님과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1절)
그리고 2절을 보게 되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던 날에 그들을 사람(아담)이라 일컬었다 하셨지요.(called their name Adam)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건데 아담을 먼저 만들고 갈비뼈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은 비유의 말씀으로 담긴 뜻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겁니다.
하와의 뜻이 “생명, 여자, 삶”이라는 사실을 볼 때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숨결인 생명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우리자신의 몸이 하나님과 같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창조의 역사가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창6:1)
And it came to pass, when men began to multiply on the face of the earth, and daughters were born unto them,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6:2)That the sons of God saw the daughters of men that they were fair; and they took them wives of all which they chose.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6:3)
And the LORD said, My spirit shall not always strive with man, for that he also is flesh: yet his days shall be an hundred and twenty years.
위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땅위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로 삼았다고 기록했지만 이 내용 역시 액면대로 볼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 딸들의 아름다움을 본 것이 아니라 정의롭고 공정하고 깨끗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fair는 아름다움보다는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깨끗한 것으로 해석해야함으로 이와 같은 해석이 합리적이지요.
결정적으로 3절에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항상 함께하지 않는다 한 것은 이 내용에 담긴 뜻이 따로 있음을 말해줍니다.(My spirit shall not always strive with man)
영육이 투쟁한다는(strive) 것을 묘사한 것으로 사람이 육신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육신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알고 있으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러한 해석이 타당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날이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한 것은 사람의 수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록 사람이 육신에 초점이 맞춰져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함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연합된 존재라는 뜻이지요.
120년이란 숫자의 개념보다는 삼위일체 하나님이(3) 사람의 몸(4)안에 담겨있다는 말입니다.(3×4=12)
만약 이러한 해석을 낳지 못하면 성경은 심각한 오류에 직면하게 됩니다.
사람수명으로 받아들일 경우 5장에 기록되어있는 내용이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구백삼십 년을 산후로 자손 대부분이 칠팔백년을 살았는데 갑자기 수명이 백이십년으로 줄어들리는 만무하지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성경을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액면대로 볼 것인지 담긴 뜻을 헤아릴 것인지는 본인의 역량에 딸린 겁니다.
다만 한 가지 명심할 것은 하나님은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 하나님은 우리내면에도 거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목적은 단한가지이며 그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거지요.
성경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모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서 살아나게 만들어야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담고 있는 존재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하나님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는 겁니다.
신앙에 첫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에게는 중요하겠지만 적어도 수행의 길을 오래 걸었다면 이제부터라도 스스로를 고귀하게 여겨야지요.
물질과 육적인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 세상너머의 세계에 눈을 떠야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이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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