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근친상간의 역사라 혹평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그들의 말을 옳다고 할 수는 없지요.
성경을 액면대로 보게 되면 그 말이 사실인 것은 맞지만 속뜻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구절에 담긴 뜻을 살펴볼까합니다.
롯이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 거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하였더니(창19:30)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창19:31)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창19:32)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자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19:33)
이튿날에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창19:34)
이 밤에도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창19:35)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창19:36)
Thus were both the daughters of Lot with child by their father.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창19:37)
And the first born bare a son, and called his name Moab: the same is the father of the Moabites unto this day.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었더라(창19:38)
And the younger, she also bare a son, and called his name Benammi: the same is the father of the children of Ammon unto this day.
이 내용을 제대로 보려면 먼저 등장인물의 이름에 담긴 뜻을 알아야합니다.
롯은 뜻은“자손” 소알은 “작다” 벤암미는 “내근친의 아들” 모압의 히브리어 뜻은 “아버지로 인해 얻은 자”이며 암몬의 뜻은 “내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시간관계상 상세한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롯과 딸들과의 관계는 영적으로 스승과 제자를 가리킵니다.(나 홀로목사 “이세상은 소돔과 고모라”편 참조)
액면으로는 부녀간으로 보이겠지만 육적 인식에 머물고 있던 제자(믿음의 딸들)들을 영적으로 높은 인식의 세계로 끌어올렸음을 보여주는 겁니다.(30절)
술이 취해 사람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모를 정도면 아이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이 내용을 액면대로 해석해서 근친상간을 통해 아이를 낳았다고 여긴다 해서 안 될 것은 없지만 성경을 통해 영적인 깨달음을 얻으려면 이 같은 해석은 필수입니다.
처음 성경을 보았을 때는 나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으며 도대체 왜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을 기록해 놓았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성경이 기록된 목적은 인류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영생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다시금 찬찬히 분석해보기로 했으며 담긴 뜻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류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전체과정을 생각해볼 때 근친상간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태초에 어떤 생명체가 만들어 졌을 것이고 세포분열과 같은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시작점은 하나일 수밖에 없으며 분리는 자신에게서 시작되었을 것이고 또 다른 분리가 이어져 왔을 것이기에 인류역사에 있어 근친상간은 운명과도 같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영적인면만을 중시하여 세상의 법도를 무시하고 선을 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알고 보면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지요.
어차피 우리네 인간들의 삶이란 역할을 바꿔가며 윤회를 하는지라 이번 생은 아비의 역할을 다음 생은 딸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 같은 일도 사람답게 살았을 경우일 뿐 짐승 같은 짓을 하면 짐승의 역할을 맡게 될지도 모릅니다.
구태여 이번 생에서 역할을 넘어서는 경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며 그럴 경우 죄의식에 사로잡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수도 있지요.
시간관계상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하지만 사람의 몸은 다양한 인식의 복합체라 할 수 있으며 가장 높은 인식체는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하지만 낮은 인식체는 윤회의 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어떤 인식에 머물고 있으며 자신을 어떤 인식체로 여기느냐는 것이 이래서 중요한 겁니다.
현재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육신이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육적인 인식을 넘어설 수 없으며 그런 인식에 따른 사후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정말 죽으면 그만이 될 것이며 사후에 영원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인식에 따른 일들이 주어질 거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얻어야할 것은 영생이며 육신은 목적을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육신을 가볍게 여기라는 말이 아니라 구도자의 목적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 현재 자신에게 누가 다가와 있는지 어떤 순간이 도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으며 자신영혼의 앞날까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어떤 식으로 보느냐는 중요한 것이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다른 이의 경우는 내가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 나는 이렇게 받아들이며 나 자신을 이런 식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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