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목사

마가복음14.

배가번드 2019. 8. 2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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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변함없이 홀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생을 향한 길을 걸어가는 나 홀로목사

와 함께 하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난시간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시간 역시 영생을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습니다.

시간관계상 인사말은 줄이고 2천 년 전의 예수님이 홀리(holy)한 성령으로서 나 홀로목사의

입을 통해, 또한 여러분의 눈과 귀를 통해 함께하실 것을 믿으며 성경 속으로 들어가겠습니

.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 들거늘 예

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10:1)

And he arose from thence, and cometh into the coasts of Judaea by the farther

side of Jordan: and the people resort unto him again; and, as he was wont, he

taught them again.

 

히브리어 유대(Judaea)의 뜻은 하나님찬양이며 요단(Jordan)은 영원이라는 뜻이니 예수님께

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영생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 의지하려(resort) 모여들었지요.

이렇게 몰려든 까닭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 전례대로 가르쳤다는 말은 영생을 얻은 이의 책임과 의무를 나타냅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많은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전례대로, 관습대로) 영적인 가르침을 펼쳐야

했다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축약하면 예수님은 영생을 얻은 큰 스승이라는 말이지요.

영생을 얻은 예수님이 어떤 가르침을 펼칠지 성경에 집중해보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

(10:2)

대답하여 가라사대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10:3)

가로되 모세이혼 증서를 써주어 내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10:4)

 

율법을 중시여기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시험하기위해 이런 문제를 낸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는 이혼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성경에 기록된 율법에 대한 해석도

가지가지였던 모양입니다.

과연 모세는 어떻게 말해놓았는지 살펴본 후 돌아오겠습니다.

 

사람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24:1)

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아내가 되려니와(24:2)

후부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내었거

나 혹시 그를 아내로 취한 후부가 죽었다 하자(24:3)

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어 보낸 전부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으로 너

는 범죄케 하지 말지니라(24:4)

 

위내용을 보면 아내가 순결하지 않으면 이혼증서를 써서 돌려보내도 된다했습니다만 조건이

달려있습니다.

1절에 기뻐하지 않으면 했으니 남편이 이해할 수 있으면 같이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

니다.

단지 이혼한 후에는 약간 달라집니다.

이혼당한 아내가 재혼을 한 경우라면 다시 재결합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이유는 결혼이란 단순히 남녀가 만나 한집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마태복음 27편에 올려져있으니 참조(參照)하시기 바라며 이곳

에서는 예수님말씀을 경청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10:5)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10:6)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10:7)

For this caus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cleave to his wife;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10:8)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더라(10:9)

What therefore God hath joined together, let not man put asunder.

 

참으로 재미있는 표현이 많은 것 같습니다.

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 당시 이스라엘사람들의 빈번한 이혼에 일침을 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신명기 내용을 들어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들을 쉽게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지요.

너희 마음이 완악하다는 것은 얼마든지 신명기내용을 유하게 해석할 수 있음에도 자신들 편

리한대로 해석하고 있음을 꼬집은 겁니다.

그래서 6절에서 창세기에 나온 내용을 예로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 때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만든 것은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성장하면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로 나아간다고(cleave to his wife) 한 것은(7) 둘이 한

몸이 되기 위해서이며(8) 하나님 뜻을 따르기 위해서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여기에서 창세기에 담겨진 부부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어떤 의미가 담겨있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생령이 된

지라(2:7)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2:22)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2:23)

이러므로 남자부모를 떠나 그 아내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24)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 담긴 창세기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는 말씀은 육신은 물질계(상대계)에 속해져 있다는 말이며 생기(생명

의 숨결,the breath of life)를 코에 불어넣었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의 몸 안에

들어있음을 나타냅니다.

생령(a living soul)이 되었다는 것은 사람이 곧 하나님의 성령을 담고 있는 살아 숨 쉬는

생명체라는 말이지요.(7)

그리고 21절부터 24절까지는 남자와 여자가 나뉜 과정과 결혼의 의미에 대해 말해 놓았습

니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원래 한 몸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함이기도 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알

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약간의 미혹이 남아있는 분이 있다면 다음구절을 통해 결혼의 참된 의미를 깨닫기

바랍니다.

 

아담이 그 아내하와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3:20)

 

하와의 뜻은 생명, 여자, 살다 입니다.

아담(사람)안에 생명(갈비뼈)이 담겨있다는 말이니 곧 성령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

.

모든 산자의 어미라는 말인즉, 생명이고 생명은 곧 성령이자 하나님의 품성이지요.

당연히 이 말씀은 비유로서 인간이 이 같은 사실을 깨달을 때 하나님과 동일해질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가끔씩 어떤 사람들은 여성과 남성 중 어느 쪽이 영적으로 뛰어난가를 말하길 즐겨하는데

영적으로 보자면 남녀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육신적으로 보자면 여성이 좀 더 진화 되었다고 봐야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현대과학이 말하기도 하거니와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화가 많이 되었다는 것은 먼저보다 변화가 일어났다는 말이니 나중에 만들어졌다는 말이

지요.

남자가 먼저 만들어졌기에 좀 더 진화된 모습의 여자가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여담으로 한말이니 큰 의미를 가지지는 말기바라며 마가복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일을 묻자온대(10:10)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10:11)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10:12)

 

앞서 창세기를 통해 보았듯이 남녀의 만남에는 아주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대중들에게 이 같은 말씀을 하지 않고 집에서 제자들에게만 말했을까

?(10)

그이유가 바로 간음죄를 크게 다루던 그 당시 이스라엘 관습 때문이라는 것을 11절과 12

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구약의 계율을 중시 여기던 이스라엘사람들이 행여 예수님말씀을 듣고 문제를 일으

킬까 두려웠나봅니다.

그러면 구약의 어떤 내용이 간음에 대한 처벌을 말해놓았을지 함께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20:10)

 

과연 무시무시합니다.

정말 이런 식일 것 같으면 함부로 이혼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미 우리들이 보았듯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사람들이 구약

의 내용을 자신들 편리한대로 해석해서 이혼을 쉽게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율법을 세울 때의 시대적 배경을 보면 레위기가 먼저고 민수기가 나중입니다.

그리고 내용을 보더라도 결혼을 하기전과 후는 완전히 다릅니다.

결혼 전 순결을 강요하지 않은 대신 결혼 후에는 엄격한 계율을 적용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살피기보다 그 당시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행동강령에 따

라 즉흥적으로 성경을 적용시켰기에 예수님께서 경계하신거지요.

그리고 결혼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다면 함부로 경거망동하지는 않을 거라는 뜻에서 이런 말

씀을 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행동해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을 가르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만 따로 말씀해 주신거지요.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이 같은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잠

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8:4)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8:7)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8:8)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8:9)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

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8:10)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

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8:11)

 

예문(例文)을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사람들은 레위기의 율법을 중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보다 더욱 중요한 것을 말씀하셨는데 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거지요.

죄인 된 자들이 남의 죄를 함부로 심판할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왜 이러한 일이 중요한가 하면 자신이 심판받지 않으려면 심판하지 않아야하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면 예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했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

씀하신 것으로 남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인가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어떤 내용을 썼기에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둘씩 돌아섰을까요?

위내용을 봐서는 알 수 없지만 나 홀로목사의 느낌으로는 이런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7:1)

Judge not, that ye be not judged.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7:2)

 

마태복음 11편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비판이 아니라 심판입니다.(Judge)

이 내용을 그 당시 사람들이 읽고 제대로 인식했다면 돌아설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을 종합해볼 때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보다 우리들 안에 성령

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소리(양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신 것 같습니다.

말을 하다 보니 결혼에 관한 이야기에 너무 오래 머물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에서 멈추고

진도를 나가겠습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0:13)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0:1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10:15)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10:16)

 

예수께서 아주 간단하게 영생을 얻는 자격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랐다는 말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하나 된 분으로 여겼기 때문

이었습니다.(13)

그만큼 믿음이 있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제자들은 이러한 믿음보다는 아이들이 예수님께 무례히 행하거나 혹은 버릇없이 굴

거나 귀찮게 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막으려 했던 겁니다.

그러나 오히려 제자들을 나무라며 어린아이들이 오길 허용하라 하셨습니다.(14)

여기에서의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한 거지요.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여야한다는(15) 말씀과 함께 아이

들을 축복하신 것은 하나님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영생을 허락한다

는 것을 비유한 겁니다.(16)

이렇게 보면 영생을 얻는 것은 아주 쉬운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은 영생을 얻지 못할까요?

성경에는 일반인들이 영생을 얻지 못하는 명백한 이유가 기록되어있습니다.

함께 보시죠.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 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

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0:17)

And when he was gone forth into the way, there came one running, and kneeled to

him, and asked him, Good Master, what shall I do that I may inherit eternal life?

 

예문을 올리고 보니 아주 특이한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글성경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까했지만 영어성경을 보면 무엇을 해야 영생을 상속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what shall I do that I may inherit eternal life?)

마태복음에는 부자청년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던 것으로 나왔는데 마가복음에 이

렇게 기록한 것은 윤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부자청년의 이야기 마지막부분에 윤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윤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다시 성경에 집중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

느니라(10:18)

 

이 내용은 부자청년의 믿음이 없음을 나타내보이고 있습니다.

17절에서 청년이 예수님더러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한 것은 아직 예수님을 하나님과 하나

된 분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마가는 18절에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된 분이라는 것을 강조한 겁니다.

이런 믿음으로는 영생을 얻지 못할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확인해 볼까요.

 

네가 계명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10:19)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10:20)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

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10:21)

Then Jesus beholding him loved him, and said unto him, one thing thou lackest: go

thy way, sell whatsoever thou hast, and give to the poor, and thou shalt have

treasure in heaven: and come, take up the cross, and follow me.

 

부자 청년은 어려서부터 하나님 계율을 열심히 지켜왔습니다.(19,20)

그랬기에 예수님(하나님)이 사랑스럽게 보셨지요.

하지만 영생을 얻기에는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길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 했는데

그것도 그냥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들고(take up the cross) 따르라고 합니다.(21

)

십자가의 길은 영적인 길을 뜻합니다.

예수님말씀은 물질적인 삶을 버리고 고난의 길인 십자가의 길(영적인 삶)을 선택하라는 거

지요.

말은 쉬우나 실천은 참으로 어려운법입니다.

과연 부자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일는지요.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10:22)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10:23)

 

역시 물질을 추구하는 삶을 벗어나기가 어려웠나 봅니다.

하지만 그 청년만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요.

예수께서 둘러보셨다고 한 것을 볼 때 주위의 많은 이들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

.

그러면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한지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10:24)

And the disciples were astonished at his words. But Jesus answereth again, and

saith unto them, Children, how hard is it for them that trust in riches to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약대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10:25)

 

모두들 아시다시피 너무나도 유명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진 말씀인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 있습

니다.

한글성경을 보면24절에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했는데 영어성경을 보면

약간 다릅니다.

그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재물을 믿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어렵다고 했지요.(how hard is

it for them that trust in riches)

무조건 부자가 천국가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물질에 의지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자신의 진정

한 영혼(성령)보다 물질세상을 더 믿는 사람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10:26)

 

예수님제자들조차도 물질적 삶의 방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거지요.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10:27)

And Jesus looking upon them saith, With men it is impossible, but not with God: for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순하게 물질적인 삶을 벗어나 영적인 삶을 살라는 말이 아니라 영의

세계에 대해 좀 더 소상하게 알아야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성령이란 전체인 하나님을 객체화시킨 첫 단계의 영혼을 일컫는다 할 수 있는데 우리 몸 안

에 가장 깊숙이 들어앉은 하나님의 품성입니다.

이런 단계의 영혼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너와나의 경계가 없고 부증불감(不增不減)하기 때문

에 바늘귀보다 더욱 작은 미립자의 세계조차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러한 영혼이며 하나님과 하나 된, 성령이 드러난 분이라는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렇게 성령에 대한 일을 알지 못하면 아직은 물질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

롭다 말할 처지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인 베드로가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말인지 집중해봅시다.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10: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10:29)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

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10:30)

But he shall receive an hundredfold now in this time, houses, and brethren, and

sisters, and mothers, and children, and lands, with persecutions; and in the world to

come eternal life.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10:31)

 

제자들 중 대표자격인 베드로가 자신들(12제자)은 세상 것을 모두 버리고 주를 따랐으니 어

떤 결과가 오게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성령)과 복음(영적인길)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자는 이번 생

(금세)에서(now in this time)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with persecutions) 다음

(내세)에서(in the world to come) 영생을 받는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분히 윤회를 인정하는 발언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데로 17절에서 부자청년이 어떻게 하면 영생을 상속받을 수 있느냐 물었던

것과 같은 말이지요.

우리가 이번 생에서 영생을 얻지 못하면 다음 생에 무엇으로 태어날지 확신할 수 없다는 말

이며 제대로 살지 못하면 끔찍한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삶이라고 막살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합니다.

이렇게 해서 부자청년을 비유한 가르침이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가르침이 이어질지 성경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

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

10:32)

 

예루살렘의 뜻은 평화의 터전입니다.

여기에 쓰인 예루살렘의 뜻은 성전이며 영생을 얻기 위해 걸어가는 여정을 나타내고 있습니

.

미리 영생을 얻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영생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묘사한 것이며

가는 길이 평탄치 않기에 제자들이 두려워했다고 기록한 겁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왜 이렇게 기록해야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

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10:33)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10:34)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부활하는 사건을 예견한 것 같은 이 내용은 아주 지혜롭게

받아들여야합니다.

마태복음28편에서 이 내용을 충분히 다룬 만큼 이곳에서는 간단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

니다.

앞서 밝힌 대로(32) 마가가 말하고자한 것은 영생을 향해 걸어가는 구도자의 길은 험하고

거칠며 그로인해 목숨을 버릴지라도 영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겁니다.

물론 마가는 예수님이 부활한 사건을 알고 있었지만 액면그대로의 일보다 이일을 통해 영의

부활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려 한 거지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영생을 향한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영생을 향한 길에는 어떠한 어려움들이 있을는지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

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10:35)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10:36)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10: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

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10:38)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

는 세례를 받으려니와(10:39)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

니라(10:40)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10:41)

 

12제자 중 두 사람인 야고보와 요한이 원하는 것은 영생을 얻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

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 된 자로서 당연한 요구인 것 같습니다.(35~37)

그런데 예수님은 아주 이상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한다했지요(38)

이 말씀은 제자들이 영의 세계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마시는 잔과 세례를 제자들이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그들이 영의 세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내용을 보면 이 같은 점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동일하게 고난의 잔을 받고 세례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물질적이고 육신적인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며(39) 진정한 자신의 영혼(성령)이 깨

어나게 되면 저절로 하나님의 좌우편에 앉게 될 거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요.(40)

이러한 점은 비단 야고보와 요한만이 아니었음을 41절은 말해줍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궁금하군요.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

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10:42)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

(10:43)

Not so with you. Instead, whoever wants to become great among you must be your

servant,(NIV)

But so shall it not be among you: but whosoever will be great among you, shall be

your minister:(KJV)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10:44)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제자들의 무지함을 깨우쳐 주기위한 예수님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일반인(이방인)들의 경우에는 권력자들이 권세를 행사해 사람들을 다스

리지만 영생을 향해 걸어가는 구도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거지요.

오히려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하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대속 물로 내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43절의 내용입니다.

한글성경 내용을 보면 NIV를 번역한 것 같은데 좀 더 사실감 있고 교육적인 면을 고려하자

KJV를 봐야합니다.

섬기는 자에 해당하는 단어를 NIVservant, KJVminister를 썼는데 servant는 하인을

뜻하니 당연히 섬기는 자 일 것이고 minister는 장관이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성직자를

뜻합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성직자는 높이 들어 올림 받는 직위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한

봉사와 헌신의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이 영생을 얻고자할 경우 많은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

히는 일을 감수해야한다는 말이지요.

당연히 이곳을 방문하시는 여러분도 영생을 얻으려면 십자가의 길을 감수해야합니다.

그 옛날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거나 순교는 하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을 위해 봉사와 헌신

을 즐겨해야하며 적어도 군림(君臨)해서는 안 될 거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해서 영생을 향한 여정에는 명예욕과 권력욕이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또 어떤 가르침이 우리를 기다릴지 성경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

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10:46)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

거늘(10:47)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10:48)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

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10:49)

소경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10:50)

And he, casting away his garment, rose, and came to Jesus.

 

여리고의 뜻은 종려의 성읍이며 아름다움과 번성을 상징하는 고장이기도 하며 생명에너지의

원천이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이들을 생명의 원천으로 이끌고 갈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경이 구원을 요청했던 거지요.(46)

디매오의 뜻은 존경 이니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멜기세덱)으로 여겼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었다는 말은 일반인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며 그럼에

도 불구하고 더욱 심하게 소리 질렀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47,48)

이러한 소경의 믿음에 예수님은 곧바로 반응 하시고 부르셨지요.(49)

그런데 50절을 보면 아주 중요한 대목이 보입니다.

겉옷을 내어버리고(casting away his garment) 일어나 나왔다했는데 여기에서의 겉옷이란

의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외형적이고 육신적인 허례허식(虛禮虛飾)을 가리킵니다.

이정도의 믿음이라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과연 소경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요.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

를 원하나이다(10:51)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10:52)

And Jesus said unto him, Go thy way; thy faith hath made thee whole. And

immediately he received his sight, and followed Jesus in the way.

 

위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장님이 눈을 뜬 것이 아니라 영적소경이 영안(지혜안)을 열었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이유가 52절에 나와 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에 해당하는 영어를 보면 thy faith hath made thee whole

니다.

whole은 완전한, 온전한 등의 뜻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장님이었던 자가 온전케 되었은즉 영생을 얻었다는 말이지요.

예수를 길에서 좇았다는 말은 예수님의 길을 따랐다는(followed Jesus in the way) 말이니

제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길을 걷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얻고자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니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길이

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10장을 모두 마친 것 같군요.

만약 누구라도 나 홀로목사의 말이 조금이라도 의심이 간다면 마태복음과 비교해서 읽어보

시기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성경에 대해 믿음이 있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뭔가를 보게 될 거라는

것을 말씀드리며 마가복음 10장의 막을 내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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