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아무리 생소한 곳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주변의 길을 알게 됩니다.
내가 사는 지역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완전히 생소한 곳이기에 길을 알 수가 없었지요.
그렇지만 몇 년을 사는 동안 주변의 길을 샅샅이 알게 된 겁니다.
안양에 사는 내가 의왕시에 사는 동생 집에 자주 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알아진 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알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모험심이 한몫을 했습니다.
내가 사는 관양동에서 동생네를 가려면 인덕원을 지나 수원방향으로 가는 것이 정석이지만 안양 종합운동장 방향으로 가다가 한림대성심병원 쪽으로 좌회전해서 가는 길도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지요.
몇 년을 사는 동안 인덕원 쪽으로 나있는 길만 다니다가 분명히 뒤쪽으로도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일부러 가보았더니 더 빠른 길이 나왔던 겁니다.
처음부터 이 길을 알게 된 것은 아니었고 중간에 농수산물 시장 옆으로 난 길로도 다녀보고 학의천 옆으로 나있는 도로를 가본 끝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내목표점은 의왕시에 사는 동생 집과 내가 사는 집이었지요.
처음 몇 번을 헤매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는 했으나 결국에는 빠른 길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길을 잘못 들어 헤맸던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으며 찾았던 길도 빠르기에 있어 그렇게 차이가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남의 아파트출입구를 길로 착각하여 들어가거나 샛길을 찾는답시고 막다른길로 접어든 것을 제외하면 그렇게 많이 헤맸던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헤매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내 욕심과 급한 성질 탓으로 지혜롭지 못한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차가 적게 다닌다는 것은 길이 막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함에도 한적한길이라 지름길일수 있다 착각을 한거지요.
무엇보다도 길라잡이라 할 수 있는 이정표를 봐야하는데 보지 않고 내 두뇌의 판단을 따랐던 겁니다.
내면의 느낌은 잘못된 길이라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내 마음은 이를 무시하고 막다른길을 경험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순간조차도 필요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잘못된 길을 가보았기에 이제 더 이상 잘못된길을 선택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내게 길을 묻을 경우 이 길과 저 길의 특성을 상세하고도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게 된 겁니다.
사실 잘못된 길이라는 것은 애당초 없으며 나에게 필요하지 않는 길일뿐이지요.
정확하게 표현해서 목적지에 합당한 길이라고 해야 됩니다.
이러한 일은 영적인 길에도 적용이 되는 일이며 세상 어느 곳에도 적용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내가 전기 일을 할 때만 하더라도 통신업체에 속해져 있었으며 단순하게 시키는 대로만 일을 했지요.
작업을 해야 하는 부분의 도면을 주면 치수를 잰 후 시공을 하면 되는 단순한 일을 했던 겁니다.
성질이 급하고 손이 빨라 남들보다 일은 많이 소화시켰지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봐야합니다.
약 5년의 시간을 통신업체에서 일을 한 후 전기업체로 옮기고 난후부터 제대로 된 전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업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전기의 경우 기초배관을 모두 맡아서 할경우가 많은지라 나도 모르게 많은 일들을 알게 되었지요.
소방과 통신업체의 기초배관작업까지 모두 맡아서 함으로 전기관련업무를 골고루 알게 된 셈입니다.
통신업체에 있을 때는 그저 전선을 끼우거나 기구를 달기만 하면 되었지만 전기업체에서는 모든 배관과 결선작업까지 해야 함으로 알기 싫어도 저절로 알게 됩니다.
특히 청주현장에서 판넬 결선작업을 하면서 많은 일들을 알게 된 겁니다.
회로에 대한 개념이 그때 생긴 거지요.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도면을 들여다보니 내가 했던 작업이 어떤 것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력이 부실한 탓에 도면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혼자서 일을 할 때면 이상하게도 회로가 눈에 보이면서 도면을 이해합니다.
나 혼자 경로당의 회로구성을 했을 정도이니 전등 밝히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배관작업만 해서는 전체를 파악하기가 어렵지요.
입선과 함께 결선까지 해보아야 전기업무 전체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되는 겁니다.
기초 작업부터 시작해서 입주하자까지 보았기에 전기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한 셈입니다.
마치 제대로 된 길을 찾기까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했던 것처럼 전기 일에 대해 알기위해 십 수 년을 보냈던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과거부터 지금까지 불필요한 순간은 없었다고 여겨집니다.
비록 내가 하는 일의 결과가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할지라도 그 순간조차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은 영적인 길에도 어김없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특정한 종교를 선택해서 영적인 길을 걸어갈 때 그 길이 전체를 알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마치 통신업체나 소방업체처럼 전체 전기일의 부분일수 있다는 거지요.
비록 전체이지는 않지만 그 또한 전기의 일부분으로서 중요한 역할입니다.
이러한 일을 길 찾기에 비유하면 집에 오는 길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쪽이든 뒤쪽이던 집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며 옆길로 세지만 않으면 됩니다.
가끔씩 일을 하다보면 자기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내가 보았을 때는 내방식이 좋을 것 같은데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는 지라 이럴 때면 내주장을 내려놓습니다.
그가 말하는 길도 길이고 내가 말하는 길도 길인데 구태여 내 길을 고집할 이유가 없기에 무조건 따라줍니다.
다소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만 조금 돌아간들 어떠랴 싶기 때문입니다.
작업을 지시하는 사람이 두 사람을 붙여 놓았을 때는 이유가 있다 생각하기에 무조건 내 생각을 접어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종교를 받아들이는 내 방식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동생이 권유하여 교회를 나가는 것도 하나의 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산 정상으로 향하는 여러 갈래의 길 중에 하나라고 여기고 있으며 그들의 방식을 따라주는 겁니다.
하나님이 동생 옆에서 살게 한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으며 성경을 공부할 기회로 삼고 있지요.
교회에 나갔을 때는 그들의 방식을 들어주지만 나 혼자 있을 때는 내 방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명상센터에 나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서는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만 나 혼자 있을 때는 나만의 명상방법을 말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혼자 일하기를 좋아하지요.
나와 일을 해본 이들은 알지만 나는 아주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간낭비를 하지 않으며 효과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혼자일할 때 오히려 성과(成果)를 더 많이 냅니다.
물론 마음이 맞는 사람과 일을 하면 능률은 배가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지라 내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 홀로목사가 되기를 원했으며 그 역할을 맡게 된 겁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여러 가지의 길이 놓여있듯이 신과 사람사이에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어떤 길을 선택한다 해도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그곳에 도달하기 마련입니다.
다만 나처럼 여러 경험을 한사람은 빠른 길을 알고 있어서 더 이상 헤매지 않는 거지요.
빨리 가고 싶은 사람은 지름길을 택하고 좀 더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늦게 가는 것일 뿐 더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찰나(刹那) 속에 우주가 담겨있음을 아는 이는 들으시오.
'짧은생각 긴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가 완장을 차지 않는 이유. (4) | 2023.10.05 |
|---|---|
| 바꿀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인식. (2) | 2023.10.04 |
|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다. (0) | 2023.10.02 |
| 욕심을 버리려면 죽어야 가능하다. (1) | 2023.10.01 |
| 기본소양은 갖추고 살자. (2) | 2023.09.30 |